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404화 (400/411)

404. 김유찬 II

김유찬은 곧바로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그는 태평양 상공에서 계속 궁리했다.

"연지와 이연지."

제이콥 마틴은 이정호가 과장으로 근무하는 병원의 이름은 안다. 하지만 집 주소 같은 개인정보는 모른다.

그 병원으로 곧바로 찾아가면 이정호를 만날 수는 있다. 하지만 비행기에서 계속 궁리해 봐도 그건 답이 아니었다.

"확인이 먼저야. 근거 없이 들이대도 될 일이면, 제이콥이 전화를 했을 때 대답을 들었어야 해."

그는 바보의 사랑에서 동생 역을 맡은 이연지를 떠올렸다.

"연지가 그 이연지라는 것부터 확인해야 해."

드라마 속 설정으로는 그와 여동생은 사는 곳은 다르다. 그래서 같이 연기하는 일이 많지는 않았다.

대신에 이연지의 친화력이 워낙 높아서, 농담 정도 주고받는 사이는 된다.

하지만 이연지의 개인적인 연락처는 모른다.

"연지의 전화번호를 내가 어떻게 알겠냐고."

누가 번호를 아는지는 안다. 드라마 제작진에게 물어보면 연락처 정도는 손에 넣을 수 있다.

그러면 뒤에서 김유찬이 미성년자의 번호를 알아갔다는 말이 돌 수는 있다.

그는 지금 체면이나 오해를 조심할 처지가 아니다. 딱 한 가지 문제만 아니면 무슨 욕을 먹든 이연지의 연락처부터 알아내고 싶었다.

하지만 이 일은 그렇게 공개적으로 진행해서는 안 된다.

김유찬은 제이콥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우리 세 명은 공동으로 이 저주받은 병의 존재를 밝혀냈습니다. 치료법을 찾기 위해 많은 정보도 주고받았습니다. 그들이 공동 연구자인 나한테 갑자기 비밀로 하는 이유가 있을 겁니다.

-혹시 사이가 나쁘신가요?

-사이는 좋습니다.

-그럼 혹시 돈이나 명예 문제….

-그런 문제였으면 지금까지 같이 연구하지도 않았겠지요.

제이콥 마틴은 김유찬에게 당부했다.

-비밀로 하는 이유가 뭔지는 모르지만, 평범한 건 아닐 겁니다. 그 비밀이 공개되면 민정의 치료가 불가능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조심해서 움직여야 합니다.

김유찬은 온갖 불법적인 이유를 다 떠올렸다.

"이유가 뭐든 상관없어. 사람을 죽이는 것만 아니면 다 받아들일 거야."

스튜어디스가 지나가다가 김유찬에게 다가와 필요한 게 없는지 물었다.

"괜찮습니다. 아주 편안합니다."

스튜어디스가 김유찬의 테이블에 초콜릿을 살포시 올려놓고 지나갔다.

비행기 승객에게 제공되는 초콜릿이 아니었다. 손으로 예쁘게 포장한 그 초콜릿을 받은 사람은 김유찬뿐이다.

김유찬은 머리를 굴리려면 당분이 필요했다. 그가 포장지를 벗겼다.

포장지 안쪽에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연지의 번호도 이렇게 저절로 손에 들어오면 좋을 텐데."

저절로 들어오기는커녕, 그가 이연지의 전화번호를 알아보러 다니는 것조차 할 수 없다.

김유찬이 초콜릿을 입에 넣고 씹었다.

"의심받지 않고 연지와 만나려면 촬영장에서 보는 게 제일 좋은데…."

지금은 그것도 어렵다. 현장에 가면 드라마 촬영에 참여해야 한다. 그러면 시간을 너무 많이 빼앗긴다.

그렇다고 거기까지 가서 이연지만 만나고 오는 건 너무 이상해 보인다.

김유찬이 스케줄 표를 확인했다.

"연지는 내일까지 촬영 스케줄이 없어. 촬영장으로 가는 건 방법이 아니야."

그는 고민하고 궁리했다.

"이연지. 어떻게 찾지?"

그는 기내 인터넷 서비스로 이연지를 검색해보았다. 많은 동명이인이 인터넷에 흔적을 남겨놓았다.

그중에서 그가 아는 배우 이연지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인터넷에 있는 사진은 드라마 홍보 자료에 나오는 모습뿐이었다.

이연지는 심지어 소속사도 없었다.

"연지는 고등학생이라서 진로를 아직 결정하지 않…. 아. 고등학생."

이연지는 촬영장에 교복을 입고 오는 경우가 많았다. 정규 수업을 마치고 오는 날엔 항상 그랬다.

그는 즉시 인터넷을 검색했다.

"그 교복을 찾으면 학교도 찾을 수 있어. 수업을 다 마치고 촬영장에 오는 날도 있었으니까 너무 먼 곳은 아니겠지."

그는 기억을 떠올리며 수도권에 있는 학교의 교복 사진을 모두 검색했다. 비슷한 교복이 많았다.

그는 그중에 세 개를 골랐다.

"이것 중에 하나같은데…."

기억이 선명하지 않아서 확신이 없었다.

"직접 보면 알겠지."

김유찬은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공항에 주차해둔 차를 몰고 한강 남쪽에 있는 첫 번째 학교 근처로 이동했다.

교복을 입고 돌아다니는 학생들이 있었다. 실제로 보니 그의 기억 속 교복과 약간 차이가 있었다.

"여긴 아니야."

두 번째 학교는 서울 북쪽에 있었다. 그가 한강 다리를 넘어 북쪽으로 이동했다.

그는 학교 앞에서 땡땡이를 치는 학생을 발견했다. 그런데 그 교복이 기억 속의 교복과 똑같았다.

"여기다!"

그는 촬영 스케줄을 다시 확인했다. 오늘은 이연지가 출연하는 장면이 없다.

"아직 수업 중이겠지?"

일단 차를 근처 공영주차장에 세워두고 학교 앞으로 돌아왔다.

얼굴을 노출하고 돌아다닐 수는 없다.

"이래서 히어로들이 가면을 쓰는구나."

그는 마스크와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리고 학교 근처 카페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커피를 주문하면서 물었다.

"애들이 수업 마치고 나오려면 오래 걸리나요?"

"한 시간쯤 뒤에 끝나기는 하는데 왜…."

"조카를 만나러 와서요."

"아. 그러시구나."

김유찬은 창가 자리에 앉아 고민했다.

"연지가 정말 그 이연지일까?"

아직은 알 수 없다. 그가 본 건 환자의 이름과 나이, 의료 정보뿐이다. 의료 정보는 그가 알아볼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실제로 쓸만한 정보는 이름뿐이다.

교문에서 학생들이 쏟아져나왔다.

김유찬도 카페 밖으로 나왔다.

잠시 후에 이연지가 가방을 한쪽 어깨에 메고 교문을 나서는 게 보였다.

"역시 여기가 맞았어."

교문 앞에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여기서 이연지와 만날 수는 없다.

김유찬이 이연지를 조용히 따라갔다. 이연지는 친구들과 함께 걸어갔다.

뒤에서 계속 따라가기만 할 수는 없다. 그러다 놓치면 일이 어려워진다.

그가 어쩔 수 없이 걷는 속도를 높였다. 그는 이연지를 추월한 후에 뒤로 돌아서며 앞을 막았다.

"연지야."

이연지가 즉시 가방을 휘두를 준비를 하며 외쳤다.

"드디어 정체를 드러냈구나! 누구냐!"

"어?"

이연지가 친구들을 돌아보며 머리카락을 휙 넘겼다.

"내가 그랬지? 스토커가 붙은 거 같다고. 이게 찬란하게 빛나는 스타의 삶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인가?"

친구가 걱정했다.

"스토커면 신고해야 하는 거 아냐?"

"아. 맞다. 빨리 경찰에 신고…."

김유찬이 선글라스를 벗으며 말했다.

"연지야. 네가 찬란하게 빛날 정도는 아직 아니지 않냐?"

"어? 앗! 유찬 오빠! 스토커가 오빠였어요?"

"나 스토커 아니다."

이연지의 친구들이 김유찬을 보고 비명을 질렀다.

"꺄아악!"

"팬이에요!"

김유찬이 얼른 선글라스를 썼다.

"쉿. 사람들이 본다."

"넹! 쉿!"

김유찬은 이연지를 만나러 왔지만, 친구들을 보내고 그녀만 데려가면 그것도 그림이 이상하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이연지와 친구들을 근처 분식집으로 데려가 떡튀순을 사주었다.

여고생은 대부분 잘 먹는다. 추가 주문으로 라볶이와 쫄면이 들어왔다.

이연지가 떡볶이를 먹으며 물었다.

"근데요. 미국 가신 거 아니에요?"

"국내에서도 해야 할 일이 있어서 돌아왔어."

"그렇구나. 그런데 왜 우리 학교 앞에…."

"이쪽에도 볼일이 있거든. 지나가다가 교복이 익숙해서 봤더니, 네가 보이더라."

"히히. 그렇구나."

김유찬이 이연지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런데 너…. 어디 아픈 데 없어?"

이연지가 팔을 흔들어 보였다.

"당연하죠. 저 완전 건강해요."

"그래 보이긴 하더라."

라볶이를 먹던 친구가 이연지에게 말했다.

"너 저번에 병원에 입원했었잖아."

"아. 그거? 에이. 그건 별거 아니야."

김유찬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입원?’

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디가 아팠는데?"

‘혹시 케이타이거 증후군이니?’

이연지는 먹는 데 집중하며 대충 대답했다.

"그냥 간단한 수술 받은 거예요."

"수술이 간단…했어?"

"넹. 며칠 입원하고 끝났어요."

김유찬은 실망했다.

‘우리 누나의 병은 간단한 수술로 치료할 수 없어. 며칠 입원하는 정도로 회복될 리도 없고. 연지는 그 이연지가 아니구나.’

그가 실망하며 물었다.

"무슨 병인데?"

"몰라요."

"응? 왜 몰라?"

"아빠가 그냥 간단한 수술이라고만 했어요."

수술까지 했는데 병명을 알려주지 않는 건 자연스럽지 않았다. 김유찬은 다시 의심이 들었다.

‘왜 딸에게 비밀로 한 거지?’

"너 어디 사냐?"

"앗! 우리집 주소를 왜 물어보시지? 인사 오려고 그러시나?"

"너희 다 집에 데려다주려고."

이연지의 친구들이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

"고마워요!"

"역시 히어로 김유찬!"

김유찬은 이연지와 친구들을 차에 태워 집으로 데려다주었다. 다들 학교에서 가까운 동네에 살았다. 그는 친구들을 먼저 데려다준 후에 마지막으로 이연지의 집으로 향했다.

동네가 익숙했다. 김유찬은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강인 씨네 집하고 가깝네?"

"히히. 맞아요. 옆 동네에 아저씨도 살고 은하 언니도 살고 보라 언니도 살아요. 아참. 알레이나 언니는 우리 동네에 살아요."

갑자기 알레이나 민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김유찬의 목소리가 자기도 모르게 커졌다.

"알레이나가 여기 살아?"

"네. 왜 놀라세요?"

"아니, 아니다."

이쯤 되면 다른 정보도 확인을 안 할 수가 없다.

"연지야."

"네?"

"아버님은 뭐 하시니?"

"의사요."

"어, 어디서?"

이연지가 종합병원 건물을 가리켰다.

"저기 저 병원이요."

제이콥과 이정호, 로버트는 케이타이거 증후군 연구를 공동으로 했다. 그렇지만 제이콥은 이정호의 한국 집 주소까지는 모른다고 했다.

대신에 근무하는 병원의 이름은 김유찬에게 알려주었다.

‘그 병원이야.’

그가 이연지를 쳐다보았다. 이연지가 물었다.

"왜 그렇게 보세요?"

"너 건강해 보여서."

"히히. 원래 건강했는데 지금은 더 건강해요."

***

김유찬은 이연지도 집으로 데려다준 후에 곧바로 이정호가 근무하는 병원으로 이동했다.

이연지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묻지는 못했다. 동료 배우의 아버지 이름까지 묻는 건 자연스럽지 않았다.

그래도 이쯤 되면 이정호가 이연지의 아버지라는 건 예상할 수 있다.

‘연지가 그 이연지야.’

그는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접수 데스크를 찾아갔다. 직원이 진료 신청서에 적힌 이름을 보고 김유찬의 얼굴을 보았다.

그녀의 눈이 동그래졌다.

"호, 혹시…."

김유찬이 선글라스를 슬쩍 내리며 말했다.

"이정호 과장님께 조용히 진료받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네, 네! 그럼요! 당연하죠!"

"쉿. 제가 병원에 온 건 비밀로 하고 싶어서."

"아! 네! 당연히 그러셔야죠!"

김유찬은 이정호의 진료실에 들어간 후에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벗었다.

미리 연락을 받은 이정호가 활짝 웃었다.

"하하하. 김유찬 씨. 우리 딸이 신세를 많이 지고 있습니다."

"따님 이름이…."

"이연지요. 이연지. 어? 알고 오신 거 아닙니까?"

"물론 알고 왔습니다. 확인하고 싶어서요. 우리 드라마에 출연 중인 이연지가 따님 맞으시죠?"

"당연하죠. 하하하."

김유찬이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휴우."

"저런. 어디가 아프셔서 그렇게 한숨을…."

이정호는 오해했다.

"혹시 코브라 헬기와 싸우다가 어디 안 좋은 곳을 다치셨습니까? 그래서 조용히 치료받으려고…."

오해한 후에는 큰소리도 쳤다.

"저만 믿으십시오. 제가 환자의 비밀은 정말 확실히 지키니까요."

김유찬이 숨을 고른 후에 본론을 꺼냈다.

"우리 누나가 말입니다."

"저런. 누님이 아프시구나. 병원에 모시고 오시죠."

"김민정입니다. 지금 미국에서 닥터 제이콥 밀러가 우리 누나를 맡고 있습니다."

이정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김유찬은 지금까지 확보한 정보에 더해서, 이름을 듣자마자 이정호의 표정이 굳는 것까지 보면서 확신했다.

‘역시 뭔가 숨기고 있어!’

그가 바라는 건 하나밖에 없다.

김유찬이 책상을 두 손으로 잡으며 몸을 앞으로 숙였다.

"이정호 박사님. 우리 누나 좀 살려주세요. 제발 부탁합니다."

이정호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잘…."

"우리 누나. 김민정. 닥터 밀러가 박사님한테 자료를 몇 번이나 보내 의견을 물었잖아요."

"그건…."

"제발 살려주세요."

"아시겠지만, 케이타이거 증후군은 치료법이 없…."

"연지는 나았잖아요."

"그, 여, 연지는…."

김유찬이 몸을 더 앞으로 기울였다.

"연지가 저번에 수술을 받고 나았다면서요. 연지가 직접 그렇게 이야기했단 말입니다."

"연지에게는 어떤 병인지 가르쳐주지 않았…."

"알레이나 민도 활발히 활동하던데요? 알레이나도 이 동네에 산다면서요? 여기서 치료했으니까, 관리를 받기 위해서 이 병원 가까이에 사는 거잖습니까?"

"다시 말하지만 치료법은…."

김유찬이 강하게 나갔다.

"혹시 불법 장기 거래입니까?"

이정호가 얼른 손을 흔들었다.

"그건 아닙니다."

"그럼 뭐가 문제입니까? 사람을 살려야 하는데 약품 좀 불법으로 쓸 수도 있지!"

이번에는 이정호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게 아니라…."

"어떤 방법이든 저는 다 상관없습니다. 제발 우리 누나를 살려주세요. 의사는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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