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399화 (405/411)

399. 트랩

차 이사는 나강인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지구를 위험에 빠뜨릴 기술을 팔았냐고?’

그가 빼돌려 팔아먹은 기술 중에 그런 게 없는 건 아니다.

"쓰는 놈이 악용하니까 사고가 터지는 거다!"

나강인이 물었다.

"짚이는 게 있나 보다?"

"사람은 마트에서 파는 자동차 부동액만 마셔도 죽을 수 있어! 요리하는 데 쓰는 식칼로 찔러도 죽는다고! 농사짓는 데 필수인 농약도 사람이 먹으면 죽는 독약이 된다!"

"농약 기술도 팔았냐?"

"그런 이야기가 아니잖아! 기술이 나쁜 게 아니야! 그걸 악용하는 놈이 나쁜 거라고!"

"그러니까 기술을 훔쳐서 팔긴 했지만 너는 잘못이 없다?"

"그…. 나는 핵무기는 안 팔았다! 진짜로 지구를 망하게 할 무기는 안 팔았다고!"

박순기가 옆에서 말했다.

"천하의 차 이사가 사짜처럼 논점을 흐리는 변명을 할 줄은 몰랐는데요."

"본질은 도둑놈이니까요."

"남들의 뒤에 숨어있을 때는 대단한 힘을 가진 놈 같았는데, 이렇게 보니까 이놈도 다른 놈들하고 똑같네요."

"잡아놓고 보면 다 그놈이 그놈이죠."

"하긴."

차 이사가 소리를 질렀다.

"내가 앞으로 저지를 예정이란 건 또 무슨 소리냐!"

"나로 모르지."

"뭐?"

"어쩐지 그럴 거 같아서. 잘 생각해봐라. 네 계획 중에 지구를 위험하게 할 만한 게 있는지."

차 이사는 나강인에게 얻어맞아 엎어진 직후에는 충격으로 움직이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면서 다시 움직일 힘이 생겼다. 드래곤 플레이트가 충격을 어느 정도 흡수해준 덕분이다.

차 이사가 말했다.

"알았다. 내가 생각을 할 테니가…."

차 이사가 말을 하는 척하다가 혁대 버클로 위장한 단검을 뽑아 나강인을 향해 던졌다.

통하지 않았다. 나강인이 그 단검을 슬쩍 움직여 피했다.

차 이사는 계속 싸우려고 기습한 게 아니다. 그는 단검을 던지자마자 엎어진 상태에서 안방을 향해 개구리처럼 점프했다.

나강인이 점프하는 차 이사의 뒷덜미를 덥석 잡았다가, 거실 바닥에 패대기쳤다.

"케엑!"

박순기가 그 모습을 보면서 말했다.

"그 유명한 차 이사 꼴이 참."

차 이사는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패대기쳐진 충격이 커서 제대로 반항하지도 못했다.

차 이사가 네 다리로 몸을 일으키려고 하다가 그대로 엎어져 기절했다.

박순기가 기절한 차 이사의 두 손에 수갑부터 채우며 나강인에게 말했다.

"지원팀은 곧 도착할 겁니다."

박순기는 지원팀이 오기 전에 부비트랩으로 사용한 장난감 대포를 가져왔다.

"이거 정말 순식간에 개조하시던데요."

그 장난감은 금속으로 정밀하게 만든 대포였다. 현대식 대포가 아니라 대항해시대에 썼을 법한 디자인이지만 있을 건 다 있었다.

나강인은 박순기의 트렁크에 넣어둔 드래곤 윙의 날개를 방패로 쓰려고 분리할 때 그 모형 대포를 발견했다. 그는 즉시 현장에서 대포를 개조했다. 9mm 탄약 하나를 뜯어 화약과 뇌관을 확보하고, 박순기의 취미인 드론도 뜯었다.

드래곤 윙에서도 부품을 뽑아 썼다.

그렇게 순식간에 무선으로 작동하는 초소형 대포를 만들어 지하실 계단 출구에 설치했다.

박순기가 모형 대포를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불법 화기를 진짜 뚝딱 만드시네요. 이거 지원팀이 오면 뭐라고 해야 하나…."

"장난감을 활용한 겁니다만."

"장난감치고는 위력이…. 원격 발사 기능도 있던데요?"

"요즘 장난감에 그런 기능은 기본이죠."

"그…렇죠. 네. 이건 장난감이죠. 장난감."

나강인이 모형 대포를 받으며 말했다.

"이 장난감은 남들이 못 보게 갈아버려야겠네."

박순기가 하소연했다.

"그거 매물이 없어서 진짜 어렵게 구한 건데요. 박스도 안 뜯었던 건데…."

"새로 하나 만들어줄게요."

"아! 그러면 구형 말고 현대식 견인포도 될까요?"

"격발기까지 실제 구조 그대로 만들면 되겠지요?"

"당연하죠! 드래곤 시리즈의 제작자가 수작업으로 만들어준 대포라니. 그거 정말 귀한 거네요."

욕심도 생겼다.

"저기, 드론도 부수셨는데, 드론처럼 무선 조종으로 날아다니는 소형 드래곤 윙도 하나…."

"새 모형 대포를 받기 싫다고요?"

"드론은 새로 사려고 했습니다. 암요. 그렇고말고요."

잠깐 기절했던 차 이사가 정신을 차렸다.

"헉!"

그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안방으로 가려고 했다. 두 손이 뒤로 묶여 있는 데다가 충격을 크게 받아 일어나지는 못했다. 그런데도 꿈틀거리며 안방을 향해 바닥을 기어갔다.

나강인이 물었다.

"야. 안방에 뭐 좋은 거 있나 보다? 저기에 네가 지금까지 무슨 짓을 했는지에 대한 단서라도 있…."

갑자기 의심이 들었다.

‘기어가 봤자 손이 묶인 상태로는 데이터를 지울 방법이 없을 텐데? 왜 굳이 안방으로?’

그러다 지하실에 있을 때와 달라진 점을 하나 깨달았다.

‘전파 교란이 끝나서?’

나강인이 안방 방문을 향해 장난감 금속 대포를 던졌다. 평범한 방문이라면 구멍이 뚫려야 한다.

그런데 문에서 쇳소리가 났다.

AI 전지인이 즉시 보고했다.

-방문 내부에 철판이 들어있습니다!

나강인이 차 이사를 발로 걷어차서 안방으로 날렸다. 동시에 손을 뻗었다. 박순기와 차동석의 멱살이 잡혔다.

그가 그 둘을 잡고 안방으로 뛰어들어갔다. 그런 후에 방문을 발로 차서 닫았다.

방문 안쪽에는 커다란 강철 고정장치가 좌우로 두 개씩 네 개나 있었다. 손잡이 쪽에 두 개, 경첩 쪽에 두 개였다.

나강인이 고정장치 네 개를 전부 걸었다.

박순기가 멱살을 잡혔던 부분을 손으로 문지르며 물었다.

"나. 사범님. 왜…."

"귀 막아요."

나강인의 귀에는 음파를 제어하는 독립 모듈이 있다. 그 모듈의 기능 중에는 지나치게 큰 소리를 차단하는 것도 있다. 그래서 그는 귀를 막지 않아도 되지만, 박순기나 차동석은 그런 능력이 없다.

박순기가 일단 귀를 막으면서 다시 물었다.

"왜 이러시…."

갑자기 거실에서 폭탄이 터졌다.

큰 폭발은 아니었다. 수류탄보다도 약했다.

그렇지만 거실에 사람이 있었으면 크게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는 위력이었다.

집이 통째로 흔들렸지만 안방의 철문은 폭발에 뚫리지 않았다.

나강인이 귀에서 손을 떼도 된다는 손짓을 한 후에, 놀란 눈을 한 박순기에게 말했다.

"저놈에게 진짜 폭탄 기폭장치가 있었나 봅니다."

"어, 언제 기폭장치를 누른 거지요?"

"지하실에서 거실로 올라오기 직전이겠지요."

"아! 지연폭발 기능이 있는 폭탄이군요."

"차 이사는 차동석 사장님을 인질로 잡고 우리에게 방에 들어가라고 요구했습니다. 그 상태에서 차 이사가 집 밖으로 나가면 우리는 곧바로 거실로 나왔을 겁니다. 차 이사가 밖에서 차 사장님을 이용해 시간을 조금 끌면, 거실에서 폭탄이 터졌겠지요."

"와…. 차 이사 이 새끼. 끝까지 함정을 팠네. 진짜 포기를 모르는구나."

***

지원팀이 현장에 도착하기 직전에 폭탄이 터졌다. 그들은 굉음과 함께 단독주택 유리창이 모조리 박살 나는 모습을 보았다.

합수부 형사도 지원팀에 있었다. 그가 차에서 뛰어내렸다.

폭탄은 터졌지만 화재는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단독주택의 상태는 엉망이었다.

합수부 형사의 목소리가 떨렸다.

"차 이사의 함정에 전부 다 당했…."

활짝 열린 현관문으로 나강인이 걸어 나왔다. 옷에 그을음 하나 묻어있지 않았다. 그가 합수부 형사를 보았다.

"아. 오셨습니까?"

형사가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휴우. 그럼 그렇지. 당했을 리가 없지."

박순기가 뒤따라 나왔다.

"어? 다들 오셨네요? 조금만 더 일찍 왔으면 좋은 구경 하셨을 텐데."

그의 뒤를 차동석이 걸어 나왔다.

지원팀 몇 명이 즉시 권총을 뽑아 차동석을 겨누었다.

"차 이사다!"

"아, 아닙니다! 나 아니에요!"

박순기가 손을 흔들었다.

"에헤이. 이분은 피해자입니다. 총 내려요. 차 이사는요."

박순기가 거실로 들어가 기절한 차 이사를 질질 끌고 나왔다.

"여기 이놈입니다."

박순기가 지원팀 사람들에게 차 이사와 차동석의 관계를 설명했다. 어떻게 잡았는지도 신나서 이야기했다.

나강인은 뒤로 쓱 빠졌다.

차 이사는 수갑을 찬 채로 지원팀 차량 중 한 대의 뒷좌석에 처박혔다. 나강인이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합수부 형사가 나강인의 옆으로 다가와 말했다.

"드디어 차 이사를 잡았네요."

"오래 걸렸죠. 일도 많이 터졌고."

"저놈 잡으려고 여러 기관에서 나섰는데…. 어느 기관의 손을 들어주실 겁니까?"

"순기 씨가 같이 와서 잡았으니까, 경찰이 처리해야죠."

"승자는 경찰이군요."

"그게 제일 깔끔하니까요."

합수부 형사가 나강인을 돌아보며 물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뭐가요?"

"차 이사를 실제로 잡은 사람은 선생님이잖습니까?"

"아시잖아요. 제가 전면에 노출되면 다른 일을 할 때 방해되는 거."

"그래도…."

나강인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제가 범죄자 하나 잡았다고 해서 저한테 딱히 생기는 것도 없잖습니까? 용감한 시민상 정도는 받을 수 있으려나?"

"받을 겁니까?"

"아니요."

"그 상이라도 받으면, 하시는 일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합수부 형사가 말한 ‘하시는 일’은 무술감독 이야기였다.

그런데 나강인은 연예계에서만 일하는 게 아니다. 다른 일도 많이 한다.

지구연합군의 잠입 침투 임무도 비밀리에 수행 중이다. 기억과 데이터가 날아가 스스로 임무를 설정하고 활동하고 있지만, 비공개로 조용히 움직여야 할 때가 꽤 많았다.

그러니 얼굴이 너무 많이 팔리면 좋지 않았다.

나강인이 박순기를 보았다.

"순기 씨 특진하겠네요."

"윗분들이 누가 차 이사를 실제로 잡았는지 모르는 것도 아닌데, 특진이 될지…."

"같이 잡으러 온 건 맞으니까, 거 웬만하면 승진 좀 시켜주시지."

"순기가 운이 좋으면 그렇게 되겠죠."

차 이사는 단순히 차 한 대에 태워서 데려가는 게 아니다. 앞뒤로 경찰특공대 무장요원들이 탑승한 호송차가 두 대나 붙었다.

합수부 형사가 말했다.

"공격헬기 편대와 공군 전투기도 대기 중입니다. 호송 도중에 수상한 상황이 벌어지면 즉시 출동할 겁니다."

"손발 다 잘려서 입만 남은 놈인데 뭘 그렇게까지 하십니까?"

"바로 오늘 공격헬기로 사람들을 습격했으니까요. 과거에 저지른 일들을 봐도 보통 놈이 아니니까, 위에서는 단 하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으려는 거죠."

나강인은 군과 경찰이 왜 그렇게까지 하는지 짐작이 갔다.

"오늘 사건은 사망자가 없으니까 수습할 수 있다는 거군요."

"그렇죠. 공격헬기를 탈취당한 건 여러 사람이 옷을 벗어야 할 사건입니다. 그런데 범인을 빠르게 찾아내 체포했습니다."

"그놈이 알고 보니 국제 용병과 킬러들을 움직이는 최악의 범죄자고요."

"맞습니다. 그런 놈이 공격헬기까지 동원해 일을 저질렀는데도 아무도 안 죽고 즉시 해결했습니다. 시나리오만 잘 짜고 여론의 도움만 좀 받으면, 대성공한 작전이 되는 거죠. 그러면 옷을 벗지 않고 넘어갈 수 있을 겁니다."

"다행이네요."

"그렇게만 되면 윗분들이 아마 많이 고마워할 겁니다. 선생님이 오늘 여러 사람의 목을 붙여주신 겁니다."

나강인이 피식 웃었다.

"고마우면, 언론에 제 이름이 안 나가게 처리해주시죠."

"제가 확실히 이야기하겠습니다."

***

합수부에도 차 이사 체포 소식이 전해졌다.

합수부장이 아쉬워했다.

"차 이사는 우리가 잡았어야 했는데."

다른 간부가 맞장구쳤다.

"그러게요. 나강인은 그동안 우리를 그렇게 고생시켰으면서, 어떻게 차 이사를 잡을 때 우리 쪽 인원은 안 부른 겁니까?"

경찰에서 온 간부가 말했다.

"불렀습니다. 근처에 있던 합수부 요원이 지원팀으로 합류했으니까요."

"아니, 기왕이면 지원팀이 아니라 체포 현장에 데려가 줬어야죠."

"많은 걸 바라시네. 차 이사가 눈치 못 채게 하려고 딱 한 명만 데려간 거잖습니까?"

"어차피 경찰에서 잡았으니까 다 좋다 그겁니까? 아. 그러고 보니까 그 경찰과 개인적으로도 아는 사이죠?"

"그거야 뭐…."

"과장님은 참 좋겠네요."

합수부장이 말했다.

"자자. 차 이사에 관해서는 우리가 전문가잖습니까? 지금 현장에도 우리 요원이 있고, 이후 수사에도 우리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확실히 수사해서 성과를 챙깁시다. 지금 현장 상황이 어떻습니까?"

"차 이사의 아지트가 하나가 아닐 거라더군요. 다른 아지트들을 찾는 중입니다. 차 이사와 그동안 거래한 놈들, 정보를 팔아먹은 놈들, 앞잡이들까지 다 찾아서 잡아야죠."

"거 보십시오. 우리도 챙길 게 많습니다."

***

삼선 국회의원 김석명이 한숨을 푹푹 쉬었다.

"제기랄."

운전하는 보좌관은 얼굴이 창백했다. 드라마 촬영장 습격 사건 뉴스를 봤기 때문이다.

보좌관이 물었다.

"의원님. 진짜 의원님이 하신 거 아니죠?"

"아니야."

"하지만 제가 그 드라마의 오늘 촬영 스케줄도 알아오고, 국방부 홍보 협찬 스케줄도 알아왔는데, 그 사건이 어떻게 그렇게 딱…."

김석명이 짜증을 냈다.

"이 새끼가 지금 무슨 위험한 소리를 하는 거야! 그게 우리랑 무슨 상관이야!"

"그, 그렇죠?"

***

박순기가 나강인에게 말했다.

"나 사범님이 참여하고 계신 드라마 스케줄을 빼낸 사람은 많은데, 그중에서 세 건의 사건이 일어난 날의 촬영 스케줄을 모두 빼낸 사람들로 용의자를 압축했습니다."

나강인이 명단을 보았다.

"아직도 몇 명이 남았군요."

"어제까지는 그랬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드라마 촬영장 쪽이 아니라 국방부의 코브라 헬기 협찬 스케줄을 알아내려면, 국방부에도 연줄이 있어야 합니다."

박순기가 사진을 한 장 보여주며 씩 웃었다.

"삼선 국회의원의 보좌관이라면 국방부에 그 정도 연줄은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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