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407화 (407/411)

407. 일상

김유찬은 비밀수술이 성공했다는 연락을 받았는데도 누나가 수술받은 병원에 가지 않았다. 그는 톱스타라서 파파라치를 조심해야 했다.

수술 당일은 CF 촬영을 마치고 곧바로 집으로 갔다.

이튿날은 그의 누나가 병원을 옮겼다. 그런 날에 그가 병원에 나타나면 무슨 일인지 알아보려는 사람들이 생길 수 있다.

그래서 그는 드라마 촬영에 집중했다.

오늘 액션에는 김유찬의 얼굴이 노출되는 장면이 있다. 가면이 없을 때는 액션도 김유찬이 직접 연기해야 한다.

대신에 나강인이 변장을 하고 적 역할을 맡았다.

김유찬은 운동을 어느 정도는 한다. 태권도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 배우다 말았지만, 배우로 활동하면서 기본적인 건 골고루 배웠다.

나강인이 김유찬을 위해 동작을 몇 개 가르쳐주었다.

"다른 분들과는 이렇게 하고, 나랑 싸울 때는 내가 다치는 건 걱정하지 말고 진심으로 공격해요."

"에이. 강인 씨가 다칠 걱정을 왜 해요? 내 손에 칼이 있어도 그런 걱정은 안 할 텐데 맨손이잖아요."

"어… 하긴 뭐."

"그렇죠?"

"그렇죠."

카메라 앞에서 전투가 시작됐다. 여자 주인공남현주를 네 명이 습격했다.

남현주도 싸움을 잘한다는 설정이지만 혼자서네 명과 싸워 이길 정도는 아니었다. 게다가 넷중에 고수가 있었다.

나강인이 남현주의 발차기를 피하며 그녀를 걷어찼다. 그녀가 뒤로 나가떨어졌다.

"악!"

바로 그 순간에 김유찬이 가면을 쓰고 돌입했다.

다른 액션 배우 세 명과 김유찬은 싸울 때 진짜로 때려서는 안 된다. 실수하면 다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유찬이 때리는 척하면 배우도 맞는 척하며 넘어졌다.

타격 순간의 어색함은 나강인이 감춰주었다. 그는 액션 배우가 맞는 연기를 하는 순간 카메라 앞을 빠르게 지나갔다. 김유찬의 발이 액션 배우의 몸 닿지 않았다는 건 시청자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다른 두 명도 마찬가지였다. 나강인이 김유찬을 공격하고 김유찬이 받아칠 때, 그들은 거기 휘말려 쓰러지는 모습을 연기했다.

게다가 그 세 명과의 싸움은 순식간에 진행돼서 시청자들이 어색함을 느낄 시간이 없었다.

진짜는 나강인과 김유찬의 일대일 싸움이었다.

김유찬이 나강인을 향해 발차기를 날렸다. 사정보지 않고 앞차기, 돌려차기, 뒤돌려차기가 연속으로 날아갔다.

적 고수 역할을 맡은 나강인은 김유찬의 공격을 적당히 피하고, 막고, 약하게 맞았다. 그러면서 일부러 빗나가게 치거나, 동작만 크고 막기 쉬운 공격을 날렸다.

두 사람은 거의 20초간 쉴 틈도 없이 공방을 주고받았다.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김유찬의 공격속도가 느려지고 있습니다. 김유찬이 지쳐갑니다.

김유찬이 뒤돌려차기를 크게 날렸다. 나강인이 그 공격을 받아치려다가 얻어맞고 뒤로 날아갔다.

"크아악!"

그냥 날아간 건 아니다. 날아가기 직전에 손으로 김유찬의 가면을 툭 건드렸다.

가면이 얼굴에서 벗겨져 하늘로 솟아올랐다.

나강인은 옆으로 날아가 쓰러졌다. 김유찬만 카메라 앞에 서 있었다.

김유찬이 남현주를 돌아보았다.

"괜찮아요?"

남현주가 김유찬의 얼굴을 향해 손가락을 뻗으며 경악한 모습을 연기했다.

"가면 히어로가 바보 너였어?"

김유찬이 당황한 표정으로 얼굴을 만졌다.

"어?"

얼굴을 만지는 건 연기였지만 당황한 표정은 진짜였다. 싸우는 도중에 가면을 벗길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아슬아슬하게 할 줄은 몰랐다.

"어…."

주변에는 그에게 맞아 쓰러진 적이 넷이나 굴러다녔다.

김유찬이 남현주를 보며 웃었다.

"히히. 나 바보 아니다."

"지금 이 상황에서 그렇게 웃으면 속겠냐고!"

"하긴."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남현주가 급히 제안했다.

"너 들키면 안 되잖아. 일단 여기를 빠져나가야…."

김유찬이 갑자기 남현주의 허리를 확 끌어당겨 왼팔로 안으며 몸을 돌렸다. 잠깐 기절했던 적고수가 정신을 차리자마자 단검을 뽑으며 달려들었다.

김유찬이 남현주를 안은 채로 몸을 뒤로 눕혀 적의 공격을 피했다. 적이 두 사람의 앞을 스치듯이 지나갔다.

김유찬이 도망치는 적의 등을 향해 이단 옆차기를 날렸다.

"커억!"

나강인이 정통으로 맞은 척하며 앞으로 날아갔다.

경찰 사이렌 소리가 더 가까워졌다. 적을 처리한 김유찬이 남현주의 손을 잡았다.

"일단 튀자."

"으, 응? 응."

그들이 그곳을 손을 꼭 잡고 뛰어서 도망쳤다.

촬영이 끝났다.

최진욱이 박수를 치며 일어났다.

"이야아. 김유찬 씨. 액션도 엄청 잘하네요?"

김유찬이 활짝 웃었다.

"그동안 실전 리얼 액션을 어깨너머로 본 게 있는데 이 정도는 해야죠. 흐흐흐."

신은하가 한쪽에서 그 모습을 보며 말했다.

"유찬 오빠가 오늘 아주 신들린 액션 연기를 하네?"

이연지가 맞장구쳤다.

"일상 연기도 잘하고 액션도 잘해요. 그리고 바보처럼 웃는 연기는, 와, 진짜 잘생긴 바보 같아.

오늘 웃음은 왜 저렇게 맑아요?"

"이 방송 나가면 난리 나겠다. 저 웃음 때문에."

"히히. 인정."

"물론 강인 오빠가 액션을 맞춰준 덕분이지만."

"그 와중에도 아저씨 편을 들어요?"

"당연하지."

***

김유찬은 이튿날 병원을 방문했다.

김민정은 어제 이정호가 근무하는 병원으로 이 송됐다. 그 병은 빠른 회복 속도가 특징이다. 그녀의 몸은 수술 후 이틀 동안 꽤 회복됐다.

김유찬이 VIP 병실에 들어가자마자 눈물부터 흘렸다.

"누나아!"

"야. 톱스타가 그렇게 울면 남들이 놀래."

"누나아!"

김민정이 손바닥을 앞으로 내밀었다.

"야. 껴안으려고 하지 마. 나 아직 아파."

김유찬은 이번에는 신나서 말했다.

"걱정하지 마. 이제 전보다 더 건강해질 거래. 이 수술 받은 사람들은 다 엄청 건강해졌대."

"그런 사람이 많아?"

"어? 아니, 나도 잘 몰라. 비밀수술이잖아."

김민정이 피식 웃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확신해?"

"근데 내가 이 수술을 받은 사람 중에 두 명을 아는데, 진짜 건강해. 막 날아다녀."

"그래? 나도 그렇게 되면 좋겠다."

김유찬이 스마트폰을 꺼냈다.

"진짜야. 이건 누나만 알아야 해. 얘야. 벽 차고 점프하는 동작이 진짜 일품이라니까?"

김유찬이 이연지와 촬영장에서 찍은 사진 몇 장을 보여주었다.

"아. 얘도 나처럼 그 병에…."

"누나 수술해준 이정호 과장님 딸인데, 비밀이니까 어디 가서 말하면 안 돼."

김민정이 사진을 넘겨보며 말했다.

"나도 주의사항은 충분히 들었어. 들통나면 너까지 다친다고… 어머. 이 사람은 누구야?"

이연지의 사진이 다 넘어간 후에 김유찬과 나강인이 같이 찍은 사진이 한 장 나왔다.

"강인 씨? 이거 진짜 귀한 사진이야. 강인 씨는 원래 사진을 안 찍어. 나니까 같이 찍어준 거야.

우리 되게 친하거든."

"이 사람이 네가 전부터 전화로 말한 그 나강인 씨야? 무술감독 한다는?"

"왜? 관심 있어? 그러지 말지? 누나랑 나이 차이가…."

김민정이 앙상한 주먹을 들었다.

"맞고 싶니?"

"아니, 그게 아니라, 노리는 사람이 많은데 다들 국가대표급 미녀라 싸움 자체가 안 돼."

"그래서 물어본 거 아니야. 이 사람, 잘하는 게 많다고 했지?"

"어. 뭐든 다 잘해."

"혹시… 수술도 잘해?"

"으응?"

김민정이 나강인의 사진을 확대했다.

"이 눈을 본 것 같아. 수술 직전에."

김유찬이 웃었다.

"에이. 아무리 다 잘해도 그럴 리가 없잖아."

"그렇겠지?"

"당연히 그렇…겠지?"

***

복면 셰프는 요리사들이 가면을 쓰고 등장해 실력을 겨루는 요리 배틀 방송이다.

그런데 그 방송에 오랜만에 로봇 가면을 쓴 철인 셰프가 등장했다.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 그 방송을 본 사람들의 댓글이 줄줄이 붙었다.

-이야아. 철인 셰프가 다시 나왔네.

-구원투수로 나온 듯.

-구원투수라니요?

-2연승 한 셰프가 누군지 정체가 유출됐잖아요. 그런데 셰프 쪽에서 일부러 정체를 흘렸다는 소문이 있어요.

-진짜면 제작진 열 받았겠네요.

-그래서 떨어뜨리려고 자객을 투입한 듯.

-효과 확실하네요. 철인 셰프가 상대편 멘탈을 아주 탈탈 털어 버렸잖아요.

-실력을 보면 굉장히 유명한 셰프일 텐데 도대체 누구죠?

-팬들이 찾아봤는데, 의심되는 사람은 몇 명 있는데 다들 안 맞는 조건이 하나씩은 있대요.

-그래서 결론이요?

-결론은 누군지 모르겠다던데요.

***

복면 세프의 심사위원이면서 진행자인 오규철이 영화감독 손태민과 술을 마시면서 말했다.

"그 사람 식당에서 위생 문제가 생겼는데, 그걸 덮어보겠다고 자기 정체를 일부러 흘렸더라고요. 방송으로 보답한다나? 방송에서 잘나간다고 해서 이미 거기서 밥 먹은 손님들에게 무슨 보답이 되는데요? 열만 더 받지."

영화감독 손태민이 물었다.

"그럼 그냥 탈락시키지 그랬어?"

"위생 문제로 확정 처분을 받는 것보다 생방송이 빨라요. 정체를 일부러 흘리는 걸 들은 사람은 있는데, 눈치만 겨우 챌 수 있게 살짝 흘려서 물적 증거는 안 되고요. 그냥 탈락시켰는데 저쪽에서 반발하면 일이 지저분해지잖아요. 방송에도 타격이 가고요."

"그래서 자객을 투입했구나."

"그렇죠. 아주 확실히 밟아서 탈락시켰죠."

"자객한테 대가는 뭘 줬어?"

"우리 매장 2인 식사권 다섯 장이요."

손태민이 웃었다.

"강인 씨는 돈은 안 통하는데 여기 식사권은 통한단 말이… 아!"

손태민이 나강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강인 씨! 내 영화에서 액션 맡아주면 식권, 아니 식사권 줄게! 페넬로페 식사권 많이 줄게!"

-한다고 했잖아요.

"그러면 드라마 끝나면 바로 들어가는 거다?"

-영화 들어가려면 아직 준비할 거 있으실 텐데, 왜 벌써 독촉하실까?

"할리우드에서 앤서니 피트 감독이 강인 씨한테 차기작 액션 맡기러 들어온다며? 그 소문 나도 들었어."

-그거 아직 한참 남았어요.

"다른 누가 또 치고 들어올지 알게 뭐야. 다음엔 무조건 내 영화다. 알았지?"

-상황 봐서요.

"어? 아니, 또 무슨 상황… 어? 어? 끊었네."

오규철이 손태민의 술잔에 술을 따랐다.

"그래도 손 감독님 영화는 맡아주겠죠."

"그래야 돼. 강인 씨 없으면 그 영화는 못 찍어."

***

자연 체조 2단계는 며칠 뒤에 인터넷에 공개하기로 했다.

그런데 오늘은 프프걸스 없이 천사전사단만 모였다. 프프걸스는 중요한 음악방송 스케줄이 있어서 오지 못했다.

나강인이 풀이 죽어 있는 천사전사단 네 명을 보았다.

"프프걸스 애들이 부러워서 그래?"

"그… 네."

부러워하는 마음은 이해가 갔다. 프프걸스와 천사전사단은 지역 소규모 행사에서 나강인과 처음 만났다.

그런데 지금은 프프걸스만 잘나가고 천사전사단은 여전히 인기가 그저 그랬다.

프프걸스는 많이 떴다. 정식으로 발표한 히트곡도 있고, 천만 영화 운명의 창의 OST도 불렀다.

반면에 천사전사단은 히트곡도 없고 OST도 없다.

나강인이 작은 소리로 물었다.

"지인아. 초기 메모리에 노래가 좀 있다고 했지?"

-지구연합군 군가들이 있습니다.

나강인이 네 사람에게 제안했다.

"나한테 군가 스타일의 곡이 하나 있는데, 그거라도 불러볼래?"

"네?"

"자연 체조 2단계 영상을 인터넷에 공개할 때, 남자 버전은 그 노래를 배경음악으로 깔아볼까 해서."

천사전사단은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다.

곡을 준다고 하자마자 확 밝아진 얼굴로 인사했다.

"고맙습니다!"

천사전사단은 좋다고 했지만 일을 진행하려면 소속사도 동의해야 한다.

자연 체조 영상이 최초로 공개되는 건 윤아름의 너튜브 채널이지만 천사전사단은 SAH 엔터소속이다.

천사전사단은 전담 매니저가 없다. 그동안은 그들에게 일이 생기면 다른 가수의 매니저가 잠깐와서 도와주곤 했다.

그런데 회의실에 온 사람은 신은하의 매니저인 박우섭이었다.

나강인이 물었다.

"박 실장님이 왜?"

"하하, 그게요. 제가 얘들을 맡았거든요."

"배우 담당이신데요?"

"가수 팀이 바쁠 땐 제가 깍두기로 뛰기도 합니다. 그리고 얘들은 강인 씨한테 배우는 게 많으니까, 그냥 제가 맡았습니다."

나강인은 연예계에서 계약 관계로 도움을 받을 일이 있으면 박우섭에게 부탁한다. 그래서 연예계에는 박우섭이 나강인의 파트 타임 매니저 일도 한다고 알려져 있다.

"일이 많으시겠네요."

"강인 씨를 섭외하고 싶다는 연락이 많기는 한데, 제 선에서 거의 다 커트하고 있으니까 괜찮습니다."

들어오는 제안 중에는 그의 선에서 커트하지 않고 나강인에게 보내주는 것도 가끔 있다.

제안이 워낙 좋아서 그렇게 한 경우는 나강인도 할지 말지 생각은 해본다.

박우섭은 방송국 국장처럼 그의 선에서 커트하기 어려운 상대가 연락했을 때는 나강인에게 그냥 넘겼다. 그럴 때는 나강인이 직접 거절했다.

그런 일이 쌓이면서 박우섭은 업계에 이름이 꽤 알려졌다. 특히 피디나 감독들이 박우섭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박우섭이 물었다.

"그런데 얘들한테 줄 곡이 있다면서요? 자연 체조 2단계에 배경음악이 필요하면 회사에서 곡을 받아도 되는데…"

"좋은 곡이 천전단한테 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만."

"아. 그건 그렇죠. 아무래도 얘들한테 회사의지원이 좀 약해서…"

나강인이 USB 메모리를 내밀었다.

"확인해보고 괜찮으면 쓰시죠."

회의를 마치고 SAH 엔터를 나온 후에 나강인이 말했다.

"저 회사에서 그 곡을 쓸까?"

AI 전지인이 대답했다.

-곡의 수준은 최상입니다. 지구 최고의 작곡가 들이 모여서 만들었습니다.

"근데 군가잖아."

-그러게 말입니다.

나강인이 준 곡은 AI 전지인의 초기 메모리에 들어 있는 지구연합군 군가 중 하나다.

"쟤들은 아이돌인데, 아이돌에게 군가라…"

-없는 것보단 나을 겁니다.

"그렇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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