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8. 일상 II
매니저 박우섭은 나강인이 준 USB 메모리를 들고 SAH 엔터 사장 서재현을 만났다. 나강인과 관계된 일은 서재현에게 직접 보고해야 한다.
사장 서재현은 잘나가던 가수 출신이다.
그가 물었다.
"어? 나강인이 작곡도 해?"
"뭐든 다 잘하는 사람이니까요."
"그래도 이건 아니지. 작곡은 뭐 아무나 하나?"
"제가 들어봤는데 꽤 괜찮았습니다."
서재현이 피식 웃었다.
"박 실장은 원래 배우 담당이잖아. 전문가의 귀가 아니니까 좋게 들릴 수도 있어. 하지만 이 바닥은 그렇게 쉬운 곳이 아니야."
"그래도 나강인 씨가 만든 노래인데 들어보지도 않고 거절하시면…"
서재현이 자세를 똑바로 했다.
"그러면 후환이 두렵긴 하다. 일단 들어보자."
사장실에는 오디오 장비 제어용 노트북이 있었다. 박우섭이 USB 메모리를 그 노트북에 꽂고 M P3 파일을 재생했다.
스피커에서 힘이 느껴지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서재현이 음악을 들으며 말했다.
"도입부는 좋네. 아마추어가 제법…"
서재현이 입을 다물었다. 그는 노래가 끝날 때까지 말이 없었다.
노래가 끝난 후에 박우섭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사장님? 어떠신지…"
"어? 어… 노래가 되게 좋네?"
박우섭이 실실 웃었다.
"역시 좋지요? 나강인 씨는 정말, 하다 하다 작곡까지 잘할 줄은 몰랐습니다."
서재현의 이마에 주름이 잡혔다.
"노래는 좋은데… 군가 느낌이 나네?"
"아! 군가 스타일로 만들었다고 하더라고요."
서재현이 손가락으로 탁자를 톡톡 두드리며 궁리했다. 그러다 손가락이 멈추었다.
"노래는 좋아. 좋은데, 요즘 트랜드와 너무 안맞아. 이게 팬들에게 통하겠어?"
"어렵나요?"
"어렵지. 우리 작곡가들을 붙여서 멜로디만 몇 조각으로 잘라서 쓰고 나머지는 뜯어고칠까? 그러면 통하겠는데?"
"곡을 갈기갈기 찢자는 제안은 사장님이 강인 씨한테 직접 하셔야…"
"그런 위험한 일을 내가 하겠냐?"
박우섭이 설명했다.
"어차피 이 노래는 음악방송에 내보내려고 만 든 게 아닙니다. 자연 체조 동영상의 배경음악으로 깔려고 만든 겁니다. 그러니까 트랜드는 신경안 쓰셔도 될 것 같은데요."
"하긴 그렇지."
서재현이 다시 탁자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그러면 어떤 작업이 필요할까? 안무는 이미 자연 체조가 있으니 따로 만들 필요는 없고…"
"우리 회사 녹음실에서 녹음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예산은 별로 안 들면서, 천전단 애들한테 노래가 하나 더 생깁니다."
"박 실장. 이거 꼭 하고 싶은가 보다?"
박우섭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얘들이 작은 행사라도 가면요. 자기 노래가 부족해서 남의 노래까지 부르고 옵니다. 이 곡이 있으면 이제 안 그래도 될 거 같아서요."
"그럼 해야지. 녹음은 누구한테 맡기지?"
"이 노래를 만든 강인 씨한테 녹음 작업까지 다 맡기면 되겠죠. 이미 가사도 다 써놨던데요."
나강인은 디지털 싱글도 하나 내고, 운명의 창 OST에서는 남자 목소리로 피처링도 했다.
"강인 씨는 실력파 가수니까 잘할 겁니다."
서재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인터넷 영상 배경음악 정도는 그렇게 해도 되겠지."
"며칠 뒤에 자연 체조 2단계가 인터넷에 공개되는데요. 그 전에 녹음해야 합니다."
"바로 진행하면 되겠네."
***
며칠 뒤에 자연 체조 2단계가 인터넷에 공개됐다.
예전에 공개된 자연 체조 1단계는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소문 덕분에 하는 사람이 많았다. 국내만이 아니라 외국에도 하는 사람이 꽤 있었다.
그 사람들은 2단계 영상이 공개되자마자 인터넷으로 보고 따라 했다. 외국에서도 많이 찾아보았다. 덕분에 공개된 영상의 초반 조회수가 급증했다. 너튜부 메인에도 추천됐다. 영상을 보는 사람이 빠르게 늘어났다.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 2단계 영상 이야기가 올라왔다.
-와. 1단계는 할만했는데, 2단계는 너무 어렵습니다.
-1단계는 입문용, 2단계는 숙련자용이니까요.
-제가 해봤는데, 자세 교정 효과는 2단계가 더 좋습니다.
-아는데 어려워서 그러죠.
-1단계에 능숙해지면 할만합니다. 더 열심히 하세요.
-남자 파트는 볼륨을 좀 키우고 해보세요. 배경음악을 들으면서 하면 더 잘 되던데.
-아. 배경음악 그거 되게 좋죠.
-저는 운전할 때 그 음악을 들으면 차의 속도가 저절로 올라가던데요.
-저도요. 저절로 더 밟게 되더라고요.
-속도감이 달라져요. 막 돌진해야 할 거 같고, 그래요.
-그런데 그 노래는 누가 부른 거죠?
-천사전사단이요. 자연 체조 남자 파트에 나오는 아이돌입니다.
그 노래는 인터넷 밖에서도 들렸다.
-어제 야구 경기장에서 이 노래 나오던데요.
-축구 경기 할 때도 나와요.
-노래가 응원가로 쓰기 딱 좋잖아요.
***
박우섭이 서재현에게 보고했다.
"그래서 천전단 애들이 부른 노래가 여러 경기에서 응원가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영상이 공개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저도 놀랐습니다."
"하긴. 군가 느낌이 많이 났으니까 응원가로 괜찮겠다. 경기장에서라도 많이 불러주면 좋겠어.
차트 진입은 무리겠지만."
"어… 그게요."
"왜? 차트에 진입했으면 내가 보고를 받았을 텐데? 못 들었잖아."
"그게 아니라요."
박우섭이 태블릿으로 영상을 보여주었다.
"이건 우리 시간으로 어제 새벽에 있었던 영국과 프랑스의 축구 경기 영상인데요."
"난 해외 축구는 별로 관심이… 응? 왜 여기서 이 노래가 들려?"
그냥 들리는 것도 아니고 중복돼서 들렸다.
"이 경기에서 양쪽 국가 응원단이 다 이 노래를 응원가로 썼습니다."
"아니, 이 노래를 어떻게 알고?"
"인터넷에서 봤겠죠."
"신기하네. 그런데 지금 가사가… 한국어가 아닌데?"
"강인 씨가 인터넷에 외국어 가사도 공개했거든요."
"영어가 아닌 말도 들리는데?"
"영어와 프랑스어 가사를 다 공개했습니다. 같은 곡이라도 가사가 다르니까 느낌이 좀 다르죠?"
"그러네."
"양쪽 응원단이 자기네 나라의 말이 더 크게 들리게 하려고 진짜 악을 쓰면서 노래했답니다. 응원가로 싸운 거죠."
"이야아. 그거 좋네. 그런데 강인 씨가 영어와 프랑스어를 잘하나?"
"그게 아니라요."
"역시 사람이 다 잘할 수는 없…"
"가사를 24개 언어와 문자로 번역해서 올렸습니다."
"으응? 번역기라도 돌렸어?"
"아니요. 각국 네티즌의 평을 보면, 그 나라 작사가가 쓴 것처럼 완벽하답니다. 각 나라의 문화적 특징을 가사에 완벽히 담았다던데요."
"그, 그래?"
"그래서 다른 나라 응원단들도 다들 자기네 나라 언어로 이 노래를 부릅니다."
"번역기를 쓴 게 아니면 어떻게 한 거야? 나강인 씨가 설마 24개 언어를 다 잘하는 건 아니겠지?"
"설마 아니겠죠. 현지 번역가를 썼겠죠."
"그래. 사람이 어떻게 혼자 24개 언어를… 어? 잠깐."
서재현의 눈이 반짝거렸다.
"그러니까 이 노래의 반응이 지금… 국제적이야?"
"예. 응원가로 주로 쓰이고 있긴 하지만, 지구전 지역에서 통하고 있습니다."
서재현이 흥분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박 실장. 뭐해? 빨리 뮤직비디오부터 준비해!"
"네?"
"천전단 애들 불러서 뮤직비디오 찍어야지!"
"자연 체조 영상이 이미 있어서 뮤직비디오를 만들면 오히려 혼란이…"
"아. 그런가? 그러면 정식 음원 작업부터 바로 들어가! 애들 프로필 사진도 다시 찍고!"
"네? 네!"
"세계 진출의 꿈이 이렇게 시작될 줄은 몰랐는 데, 기회가 왔으면 잡아야지!"
***
SAH 엔터 구내식당에서 신은하가 말했다.
"강인 오빠. 설마 24개 언어를 다 할 줄 아는 건 아니지?"
AI 전지인이 자랑했다.
-제가 다 합니다.
나강인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가사는 네가 번역한 게 아니라 초기 메모리에 여러 언어로 들어 있었잖아."
-그래서 지구연합군 군가는 병사들이 국적에 상관없이 부를 수 있습니다.
신은하가 젓가락을 흔들며 말했다.
"번역기를 돌렸다고 하기엔 완성도가 너무 높은데, 가사를 자기가 번역했다는 사람이 한 명도 안 나오네? 다른 사람이 했으면 그래도 번역가에게 맡겼다고 생각할 텐데…"
신은하가 나강인을 빤히 쳐다보았다.
"내가 인간의 한계 따위는 개무시하는 사람을 알거든? 진짜 24개 언어를 다 할 줄 알아?"
"그게…"
그들이 있는 식탁으로 천사전사단 네 사람이 달려왔다. 그들은 나강인을 향해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선생님!"
"스승님!"
"사부님!"
"형님!"
나강인이 물었다.
"뭐냐?"
리더 남정석이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형님이 주신 우리 노래가 응원가로 엄청 떴대요!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들도 응원가로 부른대요!"
"지구 전체에 쫙 퍼졌대요!"
AI 전지인이 자랑했다.
-이것이 바로 지구연합군 군가의 힘입니다.
신은하가 옆에서 말했다.
"너희는 이제 난 보이지도 않나 보다?"
"앗! 누나도 계셨어요?"
"응. 처음부터 있었어."
그녀가 네 사람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잘됐다. 이제 어깨 쫙 펴고 다녀."
"네!"
***
권수연의 이라미드 태양전지 논문이 국제 학술지에 등재됐다. 그것도 학술지의 표지 논문으로 올라갔다.
그 논문에 의하면 그녀가 개발한 이라미드 태양전지는 태양광을 전기로 바꾸는 효율이 기존제품보다 월등히 높았다.
그 논문을 보고 여러 연구소가 같은 실험을 진 행했다. 그 연구소들이 동일한 결과를 얻었다고 발표했다.
율명바이오 사장 권동진은 제약과 바이오 업계 기업가 모임에 참석했다가 많은 사람의 인사를 받았다.
그룹 계열사 중에 에너지나 태양전지 관련 회사가 있는 경우는 사장들이 권동진과 특히 더 친하게 굴했다.
권동진이 신나서 딸 자랑을 했다.
"하하하. 전에 누가 그러더군요. 우리 수연이가 천재라고, 우리 딸이 사실 옛날부터 평범하진 않았어요. 으하하하."
대기업 계열사 사장이 조금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느 회사에서 벌써…"
"아. 회사는 아니고 수연이 친구인데요. 그 친구도 천재거든요. 하하하."
"아! 친구 이야기군요. 하하하!"
이라미드 태양전지는 공중파 뉴스에도 나왔다.
전문가 패널이 나와서 설명하는 뉴스 채널도 있었다.
"이라미드 태양전지의 성능은 사실 증명된 거나 마찬가지죠. 동일한 결과를 세계 여러 연구소에서 확인했으니까요."
"그러면 언제쯤 우리가 쓸 수 있을까요?"
"글쎄요. 양산까지 가려면 아직 해결할 문제가 남아있을 겁니다. 양산이 실제로 가능한지도 확인해야 하고요."
"만약 적당한 가격으로 양산하는 데 성공한다면, 태양전지 업계에 영향이 클까요?"
"태양전지만이 아니라 대체에너지 분야 전체에 폭풍이 몰아치겠죠."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 그 뉴스를 요약한 글이 올라왔다.
부정적인 댓글이 붙었다.
-해마다 기적의 암 치료제 뉴스를 몇 번씩은 보지만 아직 나온 건 없던데요? 이것도 그런 거겠죠.
곧바로 반박 댓글이 달렸다.
-현직에 있습니다. 요즘 우리 회사는 이라미드태양전지 때문에 난리가 났습니다. 상용화가 가능해 보이거든요.
-우리 회사도요. 윗분들이 라인 갈아엎고 라이 센스받아서 저거 생산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합니다.
-우리 회사는 이라미드 태양전지가 상용화되면 우리 제품에 적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으라고 하던데요.
-와… 회사들이 그렇게 나올 정도면, 저거 진짜되는 건가 보네요?
-저게 나오면 우리 아파트 베란다에 태양전지판 달아야 할 듯.
-이제 전기세 싸지나요?
다른 것을 보는 사람도 있었다.
-이건 단순히 전기만 싸게 공급하는 기술이 아닙니다.
-태양전지가 전기 만드는 데 쓰는 거잖아요. 그게 아니면 뭔데요?
-화력 발전소가 덜 돌아가도 된다는 거죠. 그러면 뭐가 좋아진다? 탄소 배출량이 줄어듭니다.
그러면? 지구 환경이 좋아지죠.
-그런다고 우리가 체감할 수 있나요?
-미세먼지가 줄어들면 파란 하늘을 볼 수 있어요.
-헐! 진짜 좋은 거네!!
-원자력 발전소 대신에 태양광 발전소를 지으면 그만큼 재난 위험이 줄어듭니다.
-방사능 폐기물도 줄어들고요.
-그러니까 이 태양전지가 지구의 미래를 구하는 기술이라고요?
-네. 맞습니다. 그래서 국제 학술지가 표지에 사진을 실어준 겁니다.
다른 쪽으로 감탄하는 사람도 나왔다.
-그러니까 대학원생이 박사학위 논문을 냈는 데, 그게 지구의 미래를 구하는 대체에너지 기술이란 거네요?
-노벨상도 노려볼 수 있을걸요?
-박사학위 논문으로 노벨상? 천재인가?
-천재 맞음.
-쩌네.
AI 전지인이 뉴스를 보며 말했다.
-아직 갈 길이 멉니다. 2082년의 이라미드 태양전지는 에너지 효율이 훨씬 더 높습니다.
"이론은 같은데 그때는 더 좋은 신소재를 썼겠지."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