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락방 황녀님 1권
Ⅰ
“이거 시러어!”
와장창!
기껏 차려놓은 밥상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엎어졌다.
앞에 서있던 시녀 두 명의 얼굴이 종이 구겨지듯 일그러진다. 힘껏 내던진 덕분에 접시에 놓인 음식물이 꽤 멀리까지 날아가 쏟아졌다.
매번 있는 일이었지만, 그녀들로선 짜증 나는 일이 아닐 수 없을 거다.
‘그래도 이건 아니지.’
엎어진 음식물을 노려보듯 쳐다보며 보이지 않게 인상을 찌푸렸다. 가축에게 줄 돼지죽 따위보다 못한 음식을 먹고 싶진 않다.
사람을 아무리 무시해도 그렇지, 음식물 쓰레기 같은 걸 가지고 오는 법이 어딨는가. 게다가 오늘은 음식물의 상태가 평소보다 더 심각했다. 몇 시간만 더 둬도 곰팡이가 필 것같이 보인다.
그만큼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다아과아! 줘어!”
양팔과 양다리를 침대에 쿵쿵 내리치며 소리쳤다. 정신연령 서너 살. 내가 적당히 설정한 나이였다.
물론, 이건 썩은 내 나는 돼지죽을 먹느니 공기 중에서 딱딱하게 굳어버린 쿠키를 먹겠다는 내 의지이기도 했다.
어린애 같은 연기를 하는 것도 제법 오래된 일이라 그녀들도 그러려니 하는 편이다.
“알았으니까 그 입 좀 닥치세요!”
바닥을 청소한 시녀 하나가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소리쳤다.
‘망할 년들.’
생각과는 달리 내가 물기 어린 눈으로 끅끅거리며 고개를 저으니 시녀는 그제야 세모꼴로 뜬 눈으로 손을 뗀다. 손에서 쓰레기 냄새가 풀풀 풍겼다. 시녀들이 침대 위로 딱딱한 빵 두 개를 던졌다.
멍청한 척 헤실헤실 웃는 표정으로 빵 두 개를 양손에 쥐었다.
그런 나를 바라보는 시녀들의 눈이 한껏 혐오의 빛을 띤다. 가져왔던 식기를 대충 챙긴 시녀 두 명이 몸을 돌렸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목소리는 정중한데 행동은 전혀 아니다.
“웅, 잘 가아!”
그래도 멍청하게 보일 수 있도록, 바보처럼 빵을 든 손을 붕붕 흔들어 인사했다. 물론 두 시녀가 내 인사를 받아주는 일은 없었다.
제대로 치우지도 않은 바닥의 음식 찌꺼기들을 두고 두 명의 시녀는 방을 나갔다.
덕분에 청소되지 않은 다락방의 퀴퀴한 먼지 냄새에 오물 냄새까지 섞였다.
철컥. 묵직한 쇳소리가 들린다. 밖에서 자물쇠까지 잠근 거다. 소리 없는 한숨을 내쉬며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내가 있는 곳은 황성 맨 꼭대기의 끄트머리에 있는 다락방이었다. 이곳은 감옥과 똑같이 철문이 달려있었다. 밖에서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나갈 수가 없다.
하루에 한 번, 식사를 주러 시녀들이 들어올 때를 제외하면 이곳은 늘 어두컴컴했다. 내가 사는 다락방은 어쩌면 감옥보다 더한 곳이었다.
손에 쥔 퍽퍽한 데다 딱딱하기까지 한 빵을 입에 물었다. 돌덩이를 씹어 먹는 기분이 드는 건 괜한 착각일까? 물도 없이 퍽퍽한 것을 꾸역꾸역 씹어 삼켰다.
딱딱한 나무로 된 침대에 앉아 말없이 천장을 올려다봤다. 내 키보다 두 배는 더 높은 곳에 작은 창문이 있었다. 손바닥 두 뼘 정도 크기의 창문엔 그마저도 쇠창살이 달려있다.
그 사이로 보이는 새파란 하늘만이 날씨와 시간대를 짐작하게 할 뿐이다.
“언제쯤 나갈 수 있으려나.”
어눌한 말투는 때려치운 채 중얼거렸다.
소문에 따르면 가뭄이 극에 달했다고 들었다. 제국은 곧 무슨 수를 써서라도 수원(水原)을 얻으려고 할 거다.
그리고 그때 이기적인 내 아비가 내놓을 가장 쓸 만한 공물은 나일 확률이 높다.
‘일단은 반반하게 생긴 황녀니까.’
게다가 시키는 건 뭐든 할 정도로 정신연령이 낮고 멍청하다. 그들에게 이만큼 쓸 만한 제물이 또 어디에 있을까.
“아, 하나 이상은 도저히 못 먹겠다.”
생각하다 말고 하나 남은 빵을 낡은 베개 위에 올려두며 말했다. 꾸역꾸역 씹어 목으로 넘긴 딱딱한 빵에 볼이 다 아팠다.
곰팡이가 피진 않았으니 단지 공기 중에 오래 노출된 것이 분명하다.
‘대체 얼마나 오래된 빵일지…….’
아마 버리기 직전인 것을 가지고 왔겠지.
“아콰.”
작은 목소리로 내뱉은 바람처럼 속삭이는 부름에도 눈앞에 선명한 푸른빛이 떠올랐다. 양손을 모아 앞으로 뻗으니 푸른빛은 내 손바닥 위에 살포시 앉았다.
[안녕하세요, 주인님.]
“안녕.”
[물을 드릴까요?]
“응, 목을 축일 정도로만.”
[네, 기꺼이.]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노래처럼 들렸다.
푸른빛이 강해지더니 손바닥에 깨끗한 물이 차올랐다. 급히 그것을 입으로 가져가 목을 축였다. 딱딱한 빵으로 꽉 막혀있던 목이 그제야 뚫렸다.
“하아.”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 제국이 조금 더 궁지에 몰렸으면 좋겠다. 용서 없이 강렬하게 내리쬐는 태양을 바라보며 그렇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