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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넘게 같은 교육이 계속됐다. 나는 밤중에 남자를 받는 법을 배웠다. 다리를 벌리고, 남자를 유혹하고, 교태를 부린다.
이리나라고 자신을 소개한 중년 여자가 가르치는 건 대체로 그런 것들이었다. 아무리 수치심을 안 느끼려고 해도 안 느낄 수가 없었다.
평생토록 이렇게 연기가 무너질 것 같았던 적은 처음이다. 교육받는 내내 표정이 무너지고 다 때려치우고 싶었던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시겠습니까? 황녀께선 단지 당신을 취하려고 하는 남자의 말을 따르기만 하면 됩니다.”
“아, 알게써……요.”
이리나는 회초리를 드는 것에 망설임이 없었다. 내 대답이 느리거나, 행동을 바로 하지 못하면 바로 회초리로 나를 때렸다. 게다가 존댓말까지 강요하는 것이 가관이다.
그것을 한 달 내내 당한 덕분에 원치 않게도 그녀가 손만 들면 저절로 몸이 움찔했다.
‘하지만, 진짜 아프단 말이야.’
회초리를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근육의 움직임만으로도 내가 울상 어린 표정을 짓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렇다고 이름뿐인 황녀에게 반항이 허락되는 건 아니겠지만.’
문제는 옷차림으로 보아 한낱 시녀, 혹은 시녀장 수준의 위치에 있을 법한 여자가 황녀인 내게 회초리를 들었다는 거다.
이건, 아비인 황제가 공개적으로 그것을 묵인하거나 혹은 허락했다는 이야기다.
덕분에 내 취급은 더 생각할 것도 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매일매일 하게 된 샤워에서 손찌검이나 괴롭힘은 기본이었다. 반항할 수도 없으니 가만히 몸을 떠는 척 연기할 뿐이다.
이것들 전부가 언젠가, 그들에게 돌아가기만을 간절히 바라면서.
“상대가 허락하지 않으면 황녀께선 절대로 말을 하면 안 됩니다.”
교육 내용 안에서 대충 그들이 원하는 게 뭔지 보였다. 나는 표정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최대한 노력했다.
겁에 질린 어린아이의 얼굴.
그 표정을 할 때면 이리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만면에 띤다.
“어디서든 상대의 질문엔 무조건 뭐라고 대답하라고 했죠?”
“네, 알겠습니다.”
또박또박 발음하지 않는다고 뺨을 몇 번이나 맞았던지.
그렇다고, 바로 또박또박 발음할 수는 없었던 터라 며칠이나 맞고서야 조금씩 고쳐나갔다.
덕분에 매일 밤 이리나를 죽이겠다고 난리 치는 아콰를 막아야 했지만 말이다.
“좋습니다.”
물론 저 한마디도 못 외우는 척하다가 몇 대 맞고, 울면서 또 외우는 척하기를 몇 번 반복했다.
덕분에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필연적으로 맞을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얼마나 힘껏 때렸는지 안 아픈 곳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 덕에 요 한 달간 절실히 깨닫고 있는 사실이지만, 폭력은 정말 사람을 약하게 만든다.
“침대 위에서는?”
“얌전히…… 남자분께서 시, 시키는 대로 함미다아.”
짝, 회초리가 볼을 강타했다. 이번에도 생각지 못한 통증에 놀란 토끼 눈으로 볼을 붙잡았다.
굳이 쥐어짤 것도 없이 생리적으로 솟은 눈물이 툭, 떨어졌다.
“말끝을 늘이지 말라고 했죠! 대체 몇 번을 가르쳐야 합니까!”
‘뭘 가르쳐? 대충 설명하고 때린 것밖에 없으면서!’
옆에 있는 화병을 던져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목까지 차오른 분노를 억누르며 고개를 툭, 떨궜다.
“죄, 죄송……합……. 흐윽…….”
타이밍 좋게 눈물도 함께 바닥으로 떨어졌다. 뚝뚝, 서러운 듯 울음소리를 흘렸다. 사실 진짜 아프다.
울지 말라면 울지 않을 순 있지만 나는 어디까지나 어린아이였다. 내 울음소리에 회초리가 다시 한번 날아왔다.
“그치세요!”
“히끅. 히끅.”
반쯤은 정말 아팠기 때문에 나도 이게 연기인지 아닌지 조금 헷갈렸다. 확실한 건 만약 눈앞의 인간이 죽는다면 정말 비참하게 죽기를 바라고 있는 것뿐이다.
‘아, 진짜 다 때려치울까.’
아콰를 부른다면 이곳에서 벗어나기는 쉬운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내가 지금껏 참았던 것이 무용지물이 된다. 십몇 년의 세월이 의미가 없어진다는 얘기다.
그건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내가 내 발로 트럼프 제국을 떠나면,
‘또다시 신에게 선택받은 자가 나올 거야.’
그래선 안 된다. 내가 마지막이 되려면, 저들이 나를 놓아야 했다. 신앙심을 잃은 신성제국은 멸망해야 옳다. 그걸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은, 바로 나였다.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울음을 그치고 몸을 움츠리며 겁먹은 척 몸을 덜덜 떨었다. 눈치를 살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철이 든 이후로 나는 이런 연기를 계속했다. 줄곧, 미친 것처럼, 자라지 못한 것처럼 굴었다. 이제 와서 무너질 만큼 한심한 연기력은 아니었다. 보이지 않게 주먹을 쥐었다.
“무슨 짓을 해도 가만히 있어야 합니다. 알았어요?”
“히끅, 네.”
이건 완전히 노예를 교육할 때나 가르칠 법한 내용이었다.
그걸 황녀인 나에게 가르치는 의도는 명백했다. 웃음밖에 나오질 않는다. 나는 겉으로는 울며, 속으로는 웃었다.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자르딘 왕국으로 넘어가서, 남자를 죽이는 거야.’
조금 잔인한 생각을 머릿속에 담았다. 성노예로 취급받느니 차라리 저주받은 인간으로 유명해지는 게 낫다.
누가 되든 간에 아콰에게 부탁해 병처럼 꾸며 죽이면 된다. 가능하다면 집을 차지하거나, 불가능하다면 그대로 도망가는 방법도 생각하고 있다.
‘……문제는 왕에게 진상되는 경우인데.’
사실 볼모는 대체로 왕에게 가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성노예도 마찬가지다. 나라와 나라끼리의 교류란 대개 그런 것이었다.
‘왕을 죽일 수도 없고.’
게다가 이 경우 아비인 황제가 자르딘 왕국의 왕에게 굽히고 들어간 것이다. 제국에서 받는 볼모이니, 왕궁에 둘 수밖에 없을 확률이 높다.
‘그래도 아콰가 군사력이 떨어진 트럼프 제국과는 다르게 자르딘 왕국은 점점 강대국이 되어가고 있다고 말했으니까.’
기댈 것이 있다면, 자르딘 왕국이 트럼프 제국을 무시하는 경우다.
‘아마도 지금 전쟁이 나면 황제로선 이길 자신이 없을 테고.’
그러니까 콧대 높은 아비가 굽히고 들어가지 않았겠는가. 게다가 물이랑 식량도 필요했을 테고 말이다.
“서, 선생님. 감사합니다.”
주어진 정보를 분석하면서도 연기는 잊지 않았다.
배운 대로 인사를 하고 침대 위에 올라갔다. 내가 보기에 이리나라는 여자는 자신보다 신분이 높은 사람을 깔아뭉갠 것이 어지간히 기분 좋은 모양이다.
내 인사에 대답도 하지 않고, 이리나는 나갔다. 철컥. 밖에서 또 자물쇠가 잠겼다.
점점 수위 높아지는 교육에 수치심만 점점 상승하고 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를 연기하기 위해 얼굴이 붉어지지 않도록 거의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었다.
[주인님, 죽여드릴까요?]
노래하는 목소리가 분노를 담은 채 시리게 묻는다. 요 한 달간 몇 번이나 같은 말을 들었는지.
그래도 아콰는 매번 똑같이 화를 내며 내게 묻는다.
“아니, 괜찮아.”
애써 담담하게 대답했다. 어차피 자연히 사라질 사람이다. 내가 없으면 제국은 멸망의 길을 걸어갈 거다. 그리고 그들은 내가 비를 뿌리는 걸 보며 후회하겠지.
그 꼴을 보기 전에 죽이는 건 아까운 일이다. 그러니까 나는 절대로 여기서 무너질 수 없었다.
‘저 이리나라는 여자는 예외로 두고 싶지만.’
마음 같아선 당장에라도 죽이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도대체 얼마나 맞았는지 몸 이곳저곳에 시퍼런 멍이 안 든 부위가 없다.
“사실 죽이고 싶긴 해.”
결국은 울화가 터질 것 같아 솔직하게 입을 열었다.
[주인님! 제가! 죽여드릴게요!]
아콰가 한껏 신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어린애 같은 목소리가 기꺼워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생각건대, 아콰가 없었다면 나는 이미 미쳐버렸을 거다.
“조금만 더 참자, 아콰.”
아콰에게 말했다. 사실 저것은 내가 나에게 하는 말이었다.
[네…….]
대답하는 아콰의 음색이 한껏 시무룩해졌다. 빛무리를 달래듯 손바닥 위에 올렸다.
이 제국을 벗어난다면 내 능력을 숨길 마음 따위는 없었다. 오히려 마음 놓고 드러낼 거다. 세계를 돌아다니며 가뭄이 든 지역에 비를 내리고, 물을 부르며 노래할 거다.
멍청한 트럼프 제국을 마음껏 비웃으며, 원래는 트럼프 제국에 뿌려졌을 비를 다른 나라에 뿌릴 생각이었다.
언젠가 모든 것을 알게 된 트럼프 제국이 사막이 된 바닥에서 비참하게 무릎을 꿇을 때까지.
“괜찮아.”
다짐하듯 중얼거렸다.
“복수의 마무리는 어디까지나 내가 할 테니까.”
내 어머니를 멸시하며 죽인 대가를 그들은 몸소 톡톡히 치르게 될 거다. 평생 애정 어린 손길 한 번 잡아보지 못한, 불쌍한 어린아이의 손에 의해서.
그리고 몇 달 뒤, 나는 정말 잘 꾸며진 가축과 다름없는 꼴로 자르딘 왕국을 향해 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