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화 (9/99)

* * *

결국, 지금 페델리우스라는 기사의 품에 안긴 채 왕궁을 나서는 중이었다.

물론, 나는 왕과 눈이 마주친 그 상태 그대로 마차에 올려질 때까지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왕이 던진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는다.

‘원하는 걸 가졌냐고?’

대전을 나서기 전, 왕은 분명 그렇게 물었다.

소리 없이 유려하게 움직인 입술은 내가 알아들을 정도로 또박또박 말하고 있었다.

놀라움보단 두려움이 앞섰다.

‘왕은 내가 정상이라는 걸 알고 있어.’

이건 추측 따위가 아니라 확신이었다. 실제로 이곳은 물의 축복을 받는 자르딘 왕국이었고, 그는 이 나라의 왕이었다.

정말로 아콰가 숨겨주고 있는 문양을 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쳐도 꺼림칙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미쳤어.’

머리를 벽에 처박고 싶을 정도로 눈앞이 캄캄했다. 뭐가 어디서 잘못됐는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보이지 않게 치맛자락을 세게 쥐었다.

단 두 번이다. 마지막에 왕과 마주친 것을 제외하면, 왕과 제대로 시선을 마주한 건 단 두 번뿐이었다.

그조차도 한 번은 마주쳤다고 하기도 힘들 정도로 짧은 순간이었다.

그런데도 그 마주침으로 인해 아직도 몸에 한기가 남은 듯 오싹했다.

나는 아비인 황제를 실제로 마주한 적은 없지만, 저런 느낌은 아니었다.

공포와 두려움이 동시에 몰려오면서도, 감히 범접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죽여야 하나?’

아콰에게 부탁해서 죽일까? 내가 살기 위해선, 상대를 죽이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줄곧 그랬다.

하지만, 도저히…….

‘죽는 이미지가 그려지질 않아.’

왕은 무슨 일을 당해도 굳건히 서 있을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는 가끔 아콰가 물거울에 비추어 보여주던 내 아비와는 달랐다. 내 아비는 황제였으나 죽일 마음만 먹는다면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왕은 아니다.

저 왕은 한마디로 죽일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기에 더 무섭다. 알면서도 나를 이곳에 남겨, 이 기사에게 떠넘긴 이유를 알 수가 없다.

“황녀 전하, 오시는 길에 불편하신 건 없으셨습니까?”

갑작스러운 부름에 생각에 잠겨 숙인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페델리우스가 나를 마차 의자에 앉히고 있었다.

‘황녀 전하라니…….’

정말 과분한 호칭이라고 생각했다.

존중받아야 마땅할 제국에서도 평생 들어본 적 없는 호칭이다. 이런 머나먼 타국에서 들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게다가 왜 이래? 부담스럽게.’

아무리 기사라고 하지만 난생처음 받아본 정중한 태도에 기가 질렸다.

주변에 있는 사람이라곤 하나같이 나를 무시하거나 적의와 악의를 숨기지 않는 사람뿐이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왕에게서 떠맡은 물건을 위한 친절함이겠지만, 그래도 이럴 때 무슨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모르겠다.

‘맨날 울거나 떼쓰거나 소리 지르는 연기만 해왔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일 거다. 아! 그것 말고도 겁에 질려서 울먹거리는 연기도 많이 했다.

‘대답은 못 하니까…….’

짧은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아…….”

작게 내뱉은 목소리는 다행히 가라앉아있지 않다.

“시이러어……!”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소리를 질렀다. 동시에 몸을 비틀며 겁에 질린 표정으로 뒤로 물러났다.

물론 물러난다고 해도 마차 안이었지만 말이다.

내 행동에 페델리우스의 무표정한 얼굴 위로 옅은 낭패감이 서린다. 곤란하다는 눈빛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이리나는 누군가 내게 무슨 행동을 하든 절대 반항하지 말라고 했지만…….

‘내가 퍽이나 그러겠다.’

깽판이라는 깽판은 다 치고, 제국의 위신을 바닥에 떨어뜨리는 일이라면 흔쾌히 할 마음이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 좋은 일은 어떤 것도 하지 않을 거다.

열심히 뒤로 물러나 구석에 몸을 구겨 넣었다. 구석은 제일 마음이 편해지는 공간이다.

페델리우스는 그런 나를 따라 마차 안까지 들어와 한쪽 무릎을 꿇고, 내게 시선을 맞췄다.

……그리고 그 모습 그대로 한참이나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다.

‘대체 뭐야?’

말이라도 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가 던지는 시선의 의미를 도무지 알 수가 없어 답답했다.

“제가 무섭습니까?”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던 페델리우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섭냐고? 굳이 따지면 무섭다기보단 부담스럽다. 척 보기에도 달가워하지 않는 타국의, 그것도 정상인과는 확연히 다른 황녀를 대하는 태도가 너무 정중하다.

물론 말투는 딱딱하지만, 적의는 느껴지지 않는다. 아마도 이 왕국의 누구도 모르겠지만, 이 모든 것들이 내게는 처음이다.

하지만, 나는 내게 이런 관심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지금껏 연기해온 거라곤 오랜 방치에 미쳐버려서 정신연령이 어린아이 상태에 머문 황녀였다.

아무것도 모르고, 무시하기 좋으며, 괴롭히기도 좋은 상대.

‘오시리아 황녀’는 결코, 상대방의 친절과 호의에 감사하다고 인사할 수 있는 아이가 아니었다.

게다가 질문을 던진다고 ‘네’ 하고 평범하게 대답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나, 지이입! 지입 갈래애!”

결국, 고민 끝에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울먹이는 표정으로 마차 의자를 쾅쾅 두드리며 떼를 썼다.

페델리우스가 급히 손을 뻗어 어린애처럼 떼를 쓰며 의자를 내리치는 내 손을 붙잡는다.

“의자가 딱딱해서 다치실 겁니다.”

굳은살이 가득 박인 단단한 손에서 온기가 느껴졌다. 목소리에는 염려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마치 아콰가 날 걱정할 때와 비슷한 느낌이다.

동시에 의심이 불쑥 고개를 내민다.

‘왕이 뒤에서 따로 명령이라도 했나?’

내게 친절하게 구는 이유를 알 수 없어 그를 경계했다. 이 친절함에는 분명히 무언가 이유가 있을 거다. 세상에 이유 없는 친절은 없고, 가치 없는 이에게 친절을 베풀 자는 더더욱 없다.

억지로 떠맡은 것이 뻔한, 정신이 어린아이 상태인 황녀다.

울고, 떼를 쓰는 것을 눈앞에서 뻔히 봤을 거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귀찮아해야 정상이 아닌가.

“우으……?”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손가락을 문 채 고개를 기울였다. 페델리우스가 손가락을 문 나를 빤히 보더니 나를 향해 손을 뻗는다.

움찔.

굳은살 박인 커다란 손이 이리나의 회초리와 순간 겹쳐 보여서 나도 모르게 몸을 떨고 말았다.

‘이런. 실수했다.’

아니나 다를까, 우직한 기사님은 손을 뻗은 채 그대로 굳었다. 그가 말없이 손을 내린다.

어쩐지 눈빛이 심각해졌다. 나 역시 낭패감에 눈빛이 한층 가라앉았다.

그걸 뭐라고 생각했는지 페델리우스는 입매마저 굳혔다.

‘……이게 아닌데.’

실수했다. 그 생각이 가장 먼저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나는 정말 오랫동안 시간이 멈춰버린, 어린아이를 연기해왔다. 성장을 멈춘 것처럼 굴면서, 폭력에 익숙해져 갔다.

내가 하는 행동에 어색함이 없도록 아콰가 보여주는 물거울 속의 어린아이를 온종일 보고 있었던 적도 있었다.

그 때문인지 이제는 누군가 툭, 치면 생각보다 몸이 먼저 반응할 때가 많다.

그런 것 중에는 아예 습관이나 버릇으로 자리 잡아버린 것도 있었다.

그것들은 가끔 나도 모르게 불쑥 튀어나오곤 한다. 나 역시 폭력에 길든 것같이 구는 행동엔 당황스러울 때가 많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악의가 없는 사람에게 곤란함을 줄 생각은 없었다. 단지 부담스럽게 구는 남자가 나를 귀찮다고 생각하며 내팽개치길 바랐다.

‘어쩌지.’

페델리우스는 기사답게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덕분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이런 상황은 처음이라 나 역시 습관처럼 문 손가락을 뺄 생각도 하지 못하고 굳어버렸다.

“일단, 제집으로 가겠습니다.”

페델리우스가 먼저 운을 떼었다.

“우아아아! 지입! 지븐 조아아!”

아, 모르겠다. 일단 집이라는 소리에 기분 좋은 척 혀 짧은 소리를 내질렀다.

반쯤은 자포자기의 심정이었다. 여기서 더 떼를 썼다간 이 남자가 기분이 나빠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다행히 내 멍청한 행동에 그의 분위기가 조금 풀어졌다.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것도 같다. 눈치를 살피다 입을 헤벌리며 웃음도 터뜨려줬다.

“헤헤헤.”

페델리우스의 눈이 조금 커졌다.

하지만 그는 가타부타 말을 덧붙이진 않았다. 그저 말없이 마차 문을 닫고, 내 맞은편에 앉아 마부석을 향해 두어 번 노크했다.

“집까지 모시겠습니다.”

페델리우스의 말과 동시에 마차가 출발했다. 그리고 나는 또다시 산 채로 지옥의 입구에 발을 디뎠다.

멀미는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것이 분명했다.

“우욱…….”

목을 타고 뭔가가 울컥 올라오는 느낌에 다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마차가 출발한 지 오 분도 채 되지 않았다. 하지만, 멀미에 시간 따위는 상관없는 모양이다.

마차와 함께 내 시야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최악이다.

‘그러고 보니 마차 다시는 안 탈 거라고 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입을 막은 채 몸을 최대한 웅크렸다. 그래도 토기는 가시지 않는다.

“멈춰라!”

내 이상행동에 함께 있던 페델리우스가 급하게 마차를 멈춰 세웠다.

근 한 달 동안 함께 다녔던 제국의 사절단과는 확연히 다른 행동이다.

물론, 그 배려는 아무런 쓸모도 없었다. 이미 다시 시작된 멀미에 눈앞이 뱅글뱅글 돌고 있었으니까.

“우욱…….”

마차가 덜컹, 소리를 내며 급정지했다. 앞으로 쏠린 덕분에 토기가 함께 올라왔다.

“괜찮으십니까?”

‘괜찮을 리가 있나!’

속에 있는 걸 다 게워내고 싶을 정도로 괴롭다.

연기건 뭐건 일단 나는 반쯤 제정신이 아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몸을 한껏 웅크리고 입을 틀어막고 있는 거다.

그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일이었다. 살아생전 경험해본 적 없는 멀미라는 것에 대한 대처방법은 모르고 있었으니까.

자르딘 왕국으로 오는 내내 멀미에 고통스러워하는 내게 신경을 써준 건 아콰뿐이었다.

“실례하겠습니다.”

반대편에 앉아있던 그가 성큼 다가오더니 나를 앞에서 끌어안았다.

“죄송합니다.”

그가 내 귓가에 대고 한 번 더 사과한다.

내게는 그저 단어들이 떠다니다 한쪽 귀로 들어와 한쪽 귀로 빠져나갈 뿐이다.

말이 머릿속에 제대로 들어오질 않는다.

‘아?’

그리고는 그가 내 등 뒤로 손을 뻗었다.

‘자, 잠깐……!’

정확히는 내 드레스 안으로 손을 넣어, 안쪽에 꽉 묶인 코르셋 끈을 풀었다.

끈 사이 드러난 피부로 기사 특유의 까칠한 손길이 느껴졌다.

물론 그 덕분에 불편하기 짝이 없던 풍성한 드레스가 헐렁해졌다.

숨쉬기 힘들었던 것이 단숨에 편해졌다. 어쩐지 토기가 좀 가시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숨이 편해지니 다시 토기가 몰려왔다. 입을 좀 더 꽉 틀어막았다.

“이쪽으로 기대십시오.”

페델리우스가 내 대답을 기다리는 대신 나를 끌어당겨 어깨에 기대게 했다. 졸지에 입을 틀어막은 채 얼굴을 기댄 이상한 모양새가 됐다.

그래도 차가운 금속에 볼이 닿으니 한층 기분이 나아진다.

떨떠름함을 느낄 새도 없이 페델리우스는 내 손을 붙잡았다. 그리곤 검지와 엄지 사이를 꾹꾹 누르기 시작한다.

“아!”

분명히 힘껏 누르는 건 아닌데도 몹시 아프다. 삼킬 새도 없이 비명이 튀어나왔다.

몸이 절로 부들부들 떨린다. 통증에 눈물이 맺혔는데도 그는 누르는 걸 멈추지 않았다.

‘잠깐! 너, 너무 아픈데?’

“흡.” 숨을 급히 들이켰다.

이리나나 또 다른 시녀들이 이렇게 했다면, 나는 울음을 터뜨리고도 남았다.

하지만 나는 정말 드물게도 망설였다. 날 걱정하는 사람을 속이는 건 어쩐지 껄끄럽다.

‘하지만, 연기는 계속해야 하고.’

솔직히 처음 보는 사람이고 남자인 데다 기사라서 좀 민망스럽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 우직한 남자가 내게 질려야 내 연기는 끝을 맺는다.

미안하긴 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었다. 이런 식의 관심이 계속되면 나는 평생 이런 연기를 해야 할 테니까.

‘물론, 그러진 않겠지만…….’

처음에는 몰라도 사람은 상대의 가치를 깨닫게 되면 본성이 드러난다.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상대의 가치를 평가하고, 점수를 매겨서 본성을 드러낼 사람과 아닌 사람을 고른다.

처음에 왔던 시녀들이 구색이라도 맞춰주듯 약간의 대우는 해주려고 하다가, 결국은 눈앞에서까지 막말하는 걸 서슴지 않게 변해버린 것처럼 말이다.

‘이런 짓을 평생 해야 한다니.’

끔찍한 미래를 생각하니 망설임이 짧아졌다. 나는 곧바로 눈물을 모으기 위해 서러운 일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굳이 오래 떠올릴 필요도 없었다.

살아온 내 인생은 서러운 일로 가득했으니까. 그것이 더는 서러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게 될 정도로 긴 시간 동안 줄곧 말이다.

“흐읍…….”

뚝. 뚝. 뚝. 굵직한 눈물이 바닥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내 손을 주무르던 페델리우스가 또 경직됐다.

적당한 때구나 싶어서 그의 품 안에서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

“아파……. 흡, 아파아!”

“황녀 전하, 이건 아픈 게 아니라…….”

그가 급히 손을 떼며 내게 설명을 하려는 모양새로 입을 연다.

물론, 그 설명을 가로챈 건 나였다.

“잘못해써여……. 끄윽…….”

혀 짧은 소리를 내며 겁에 질린 척 몸을 움츠렸다. 누군가에게 혼나거나 맞을 때마다 거의 반사적으로 내뱉었던 말이다.

그러면 그들은 늘 우월감에 사로잡혀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

물론, 이것도 몸에 밴 버릇 중 하나여서 지금은 이런 상황만 오면 반사적으로 나가는 말이 됐다.

‘조용하네?’

뭐라도 설명하려고 하거나, 달래는 척이라도 해줄 줄 알았던 우직한 기사는 어째 말이 없다. 숙이고 있던 얼굴을 슬쩍 들어 그를 살폈다.

표정이 살벌할 정도로 굳어있다.

‘음. 뭐 잘못 건드렸구나.’

풍기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상당히 화가 난 것같이 보이기도 했다. 울어대는 꼴에 귀찮아졌나?

생각보다 빠르긴 하지만, 나를 억지로 떠맡은 것을 생각하면 신빙성이 있긴 하다.

‘그쳐야겠다.’

그래도 저 근육질 손으로 맞고 싶진 않았다. 볼이 부어오르는 것으로 끝나진 않을 것처럼 보인다.

그의 심기를 더 건드리기 전에 적당히 울음을 그치기로 했다.

“히끅, 히끅.”

울음을 그치는 척하면서 조심히 페델리우스의 눈치를 살폈다.

괜히 울었다. 참아도 될 일이었는데 너무 나간 모양이다. 뒤늦게 후회가 파도처럼 몰려온다.

아무리 다락방에 갇혀 구박받고 살았어도 여태까지 남자에게는 맞아본 적이 없다. 돌봐주는 이들은 전부 시녀였다.

하물며, 매일 단련을 하는 기사에게 맞아본 기억은 더더욱 없었다.

‘아콰를 불러야 하나?’

생각했지만 바로 마음을 접었다. 이 좁은 공간에서 아콰를 불렀다간 환한 빛 때문에 분명히 들킬 거다.

‘그냥 닥치자.’

행동은 생각만큼이나 빨랐다. 히끅거리던 울음소리를 그쳤다. 다시는 이 사람 앞에서 이런 식으로 울면 안 되겠다.

‘시녀들과 기사의 근력은 굳이 숫자로 보여주지 않아도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 날 테니까.’

울음을 그치고, 눈동자를 굴려 열린 창문 밖을 쳐다봤다. 번화가인 듯 보이는 길 한복판에 마차를 멈춰 세운 건 누가 봐도 통행 방해였다.

‘한 번 더 사과해야 하나?’

만난 지 얼마 안 돼서 성격 파악을 다 하지 못했다. 이런 타입이 화나면 더 무섭다는 이야기를 아콰에게 들은 것 같기도 하다.

그는 표정에도 변화가 거의 없어서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어림짐작하기도 어려웠다.

페델리우스는 그렇게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멀미가 심하신 것 같은데, 걸어가시겠습니까?”

그가 한참 만에 아까와 별다를 것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내게 대답을 기대하듯 여상스러운 질문이었다.

‘학습능력이 없네.’

짧게 평가를 내렸다. 그게 아니면 답답한 타입이거나.

보통은 내가 대답을 제대로 하지 않거나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으면 대화를 포기한다.

아예 내 의견을 묻고 답을 들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말이 안 통하는 상대에게 의견을 구해 봤자 시간만 낭비할 뿐이 아닌가.

게다가 그 상대가 아무 가치도 없는 존재라면, 더더욱 신경 쓸 필요가 없으니까.

“거러가?”

알지만,

“응!”

……그래도 마차는 더 못 타겠다.

방긋방긋 웃는 해맑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눈물을 흘려서 그런지 휘어지는 눈이 뻑뻑하다.

하지만 열심히 기쁜 척했다.

‘이젠 맞기도 싫고.’

그래도 단어 하나만 알아들은 척하기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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