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화 (11/99)

* * *

“오셨습니까? 메디르 님.”

“후후, 자네가 날 부르다니 흔한 일은 아니잖은가.”

“흔쾌히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백발이 성성한 데다 수염까지 새하얘질 정도로 고령인데도 불구하고, 메디르 님은 젊은이들에게 지지 않을 정도로 건강했다.

“오늘은 트럼프의 황녀 때문에 부른 건가?”

“예, 맞습니다. 이쪽으로 앉으십시오.”

손님방에 있는 소파로 안내하며 메디르 님께 자리를 권했다.

허리를 두어 번 툭툭 친 메디르 님이 소파에 훌쩍 앉았다. 멀쩡한 허리인데도 불구하고 메디르 님은 종종 습관처럼 행동하곤 했다.

메디르 님의 맞은편에 앉자 타이밍 좋게 집사인 페드로가 다가왔다. 그는 정중하게 찻잔과 찻주전자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뒤로 물러났다.

“이번에 새로 구한 찻잎으로 우린 차입니다. 드셔보십시오.”

집사인 페드로가 내온 차를 메디르 님께 권했다.

메디르 님이 새하얀 수염을 몇 번 쓰다듬으며 고개만 쭉 빼 차를 유심히 살폈다.

“호오, 찻물의 색은 별반 다를 게 없는데 향이 아주 독특한 차로군.”

그렇게 말한 메디르 님은 곧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찻잔을 들었다.

그가 먼저 한 모금을 입에 머금는 것을 보고, 나도 뒤따라 찻잔을 들었다.

‘다행히 기분은 좋아 보이시는군.’

왕궁의 ‘필두의’를 맡고 있는 메디르 님을 이곳까지 부른 이유는 폐하께서 돌보라고 한 황녀 때문이었다.

나는 여태까지 권력 싸움이니, 물밑 싸움이니 하는 귀찮은 일에 휘말리는 것이 싫어서 폐하께서 주시는 것은 대부분 거절해왔다.

‘제1기사단장이라는 직위면 충분하다고 그렇게나 말씀드렸는데.’

각종 공을 치하한다는 의미로 내리는 작위나 재물도 받지 않았다. 폐하께서도 이해해줬다고 생각했다.

여태까지는 내 거절에 폐하께서 재차 권유하는 법은 없었으니까.

그런데 오늘은 아니었다.

“여기까지 와주셔서 재차 감사드립니다.”

“음, 어차피 퇴근길이었으니 신경 쓰지 말게.”

메디르 님이 손을 내저었다. 과한 인사는 상대에게 부담이다. 그것을 알기에 짧게 네, 하고 대답하며 대화를 끝맺었다.

“게다가 페델리우스 경의 찻잎에 대한 사랑은 유명하니까 말이야. 진귀하고 새로운 차들을 맛볼 수 있는데 어찌 거절할 수 있겠나. 자네의 집은 좀처럼 초대받기 힘든 집이니 말이네.”

“마음에 드시면 가시기 전에 챙겨드리겠습니다.”

말에 뼈가 있다. 뼈 있는 말을 받아쳐야 옳지만, 적절한 말이 떠오르질 않았다. 그저 메디르 님이 좋아할 법한 다른 대답을 내놓는 것이 최선이었다.

“오, 그래 준다면 내 사양은 하지 않지.”

메디르 님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손에 들고 있던 차를 한 모금 더 마신다. 다행히 내 대답에 기분이 상하거나 불쾌한 기색은 없다.

타인과의 대화는 늘 목을 타게 했다. 말솜씨가 없어서 대화를 즐기지 않는 편이라 더더욱 그렇다.

그래도 오늘은 메디르 님이 꼭 필요했다. 갈증을 달래기 위해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목적을 말했다.

“메디르 님도 아까 대전에 계셨으니 황녀께서 어떤 모습이었는지 보셨을 거라 생각됩니다.”

“물론, 봤다네. 마치 어린아이 같았어. 황녀의 행동거지와 사절단의 행동을 보면, 황녀는 아마도 어릴 적 트라우마 같은 것으로 인해 정신이 어린아이인 상태로 시간이 멈춰버렸을 확률이 높네.”

‘역시 그랬던 건가.’

찻잔에서 올라오는 김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폐하의 옆에서 봤을 때 느꼈던 싸한 기분은 기우가 아니었다.

그들은 숨긴다고 숨겼겠지만, 누구도 그녀를 귀한 황녀로 예우하고 있지 않았다.

“황녀의 소문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지.”

“예. 트럼프 제국에서 말이 나온 후 몇 번인가 의제로 올라와 논의를 거치며 알게 된 것이지만, 황녀는 저주받은 존재로 유명했습니다. 황녀께선 제국민을 포함해 제국 전체에서 원망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주해 온 제국민에게 들은 바로는 제국에서 황녀를 모르는 이는 없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같이 그녀를 저주라고 표현했다.

제국은 아무것도 모르는 황녀를 방패막이로 쓰고 있었다.

‘황실에서 모든 재앙을 황녀의 탓으로 돌린 것도 있겠지만…….’

제국에서 황녀의 평판은 최악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말조차 알아듣지 못하는 가냘픈 여인이다. 거센 바람만 불어도 날아갈 것처럼 가볍기도 했다.

“트럼프 제국은 줄곧 신에게만 의지해 오지 않았나. 그저 계속되는 가뭄에 돌릴 곳 없어진 분노가 향한 곳이 마침 황녀였을 뿐이지. 아무것도 모른 채 희생양이 된 게 가여울 뿐이네.”

“예.”

“그나저나 듣자 하니 원래는 폐하께선 이번 친선교류를 거절할 예정이라고 들었는데.”

순식간에 분위기를 바꾼 메디르 님이 짓궂은 표정으로 묻는다.

숨길 일도 아니고, 알 만한 이들은 알고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원래는 그럴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폐하께선 그러지 않았다. 그분은 대전에서 갑작스럽게 생각을 바꿔 황녀를 받아들이고, 제국의 요구를 수용했다.

도대체 무엇이 폐하의 마음을 돌렸는지는 말하지 않는 이상 알 수 없는 일이다.

목이 탄다.

“워낙 장난기가 많은 분이시니 말입니다.”

말을 덧붙이고는 식어가는 차를 한 모금 입에 머금어 갈증을 해소했다.

“허허, 장난이란 말인가.”

물론 어디까지나 이건 폐하의 말을 빌린 것뿐이다.

아무리 약해진 국가라고 하더라도 나라와 나라 사이의 거래를 ‘장난’이라고 하는 이는 자신이 아는 한 폐하밖에 없다.

하지만, 폐하는 누구보다 백성을 위하는 분이시다. 타국에서 저주받은 존재라고 칭하는 이를 불러들여 민심을 어지럽히는 분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폐하는 황녀를 받아들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알 수가 없어.’

물론, 폐하께서 하시는 일이니 분명 무언가 이유가 있다고는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귀찮다고 내게 떠넘기실 줄이야.’

다시 눈앞이 캄캄해지는 기분에 미간이 좁혀졌다.

황녀가 백치라는 사실이 내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왕께서 돌보라고 명령하신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니 싫지는 않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저 자신이다. 사람, 특히나 여자나 어린아이를 상대하는 데 도무지 서툴기만 한 자신에게 그녀를 떠넘긴 것이었다.

사람과의 대화에 능숙하지 못한 나를 잘 알고 있는 폐하께서 말이다.

도무지 좋은 의도가 있었다고는 생각되질 않는다. 물론, 어떤 명령을 하더라도 폐하께서 원하신다면 거부할 의사는 없지만.

“그래서 궁금한 게 뭔가? 페델리우스 경.”

메디르 님이 나를 생각의 늪에서 건져냈다. 손윗사람을 앞에 두고 생각에 잠기다니. 불경한 일이다.

생각을 날려버리며 눈에 힘을 주곤 메디르 님과 시선을 마주했다.

“황녀께서 원래대로 돌아올 확률은 없는 겁니까?”

궁금했던 것을 입에 담았다.

아까, 처음으로 가까이서 마주한 황녀는 내가 손만 들어도 발발 떨고, 말만 하면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을 당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예 대화 자체가 불가능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건 사람을 두려워하는 눈이었다.

폐하께서 황녀를 다시 궁으로 데려가지 않는 이상 아마도 앞으로 같이 살게 될 텐데, 이후에도 나를 무서워해선 곤란하다. 그렇기에 그냥 넘길 사안은 아니라고 판단했을 뿐이었다.

‘최소한 말을 이해하고, 겁을 먹지 않을 정도만 되어도 좋겠지.’

오늘 메디르 님을 부른 이유는 그것 때문이었다.

나는 황녀와 비슷한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환자를 상대하거나, 마음의 병을 가진 사람을 마주보고 상대해본 적이 없다는 이야기였다.

줄곧 그것은 어디까지나 의원들의 일이라고 생각했고, 내가 해야 할 일은 전장의 최전선에서 검을 들고 싸워 그들을 지키는 것이었으니까.

그렇다고 어린아이를 상대해본 적이 있는 것도 아니다. 여자와 대화를 많이 나눠봐서 말솜씨가 좋은 것도 아니었다.

무뚝뚝하기로 유명한 자신에게 조언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래서 부른 것이 메디르 님이었다.

그녀를 돌보게 된 건 괜찮지만, 볼 때마다 몸을 떨면 나도 황녀도 편하지는 않을 테니까.

“음…….”

내 질문에 메디르 님이 곤란한 표정으로 작게 신음을 흘린다. 그리곤 나를 한 번 보더니 굳게 닫혀있던 입술을 뗐다.

“말을 가르쳐보게.”

“예?”

뜬금없이 나온 대답에 생각할 새도 없이 반문을 해버렸다. 내 반문에 메디르 님이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뭐, 어려운 일은 아니라네.”

그렇게 말하며 메디르 님은 느긋하게 차를 한 모금 더 마셨다. 경악스러운 감정과 함께 주름 잡힌 미간을 엄지로 꾹 누르며 메디르 님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만약 황녀가 단순히 충격이나 주변에 의해 정신상태가 어린아이에 머물러있는 거라면 다양한 단어와 말을 듣고, 풍부한 감정을 느끼고, 평범한 생활을 하는 것만으로 나아질 수도 있네.”

이건 내가 약으로 어찌할 수 있는 증상이 아니야. 메디르 님이 그렇게 덧붙이며 고개를 저었다.

동시에 얼굴이 절로 구겨졌다. ‘다양한 단어와 말’이라니.

하루에 말을 하는 시간이라곤 폐하의 질문에 대답할 때뿐이다. 혹은 훈련 시에 병사들에게 명령하는 것이 전부였다.

다양한 말이란, 나와도 인연이 없는 단어였다.

“……제가 말입니까?”

“그렇지. 폐하께서 무슨 생각이신지 내 짧은 견식으로는 모르겠으나, 그분께서는 자네에게 맡기지 않았는가? 분명 뭔가 이유가 있을 걸세.”

지금껏 거부한 것에 대한 괴롭힘이나 보복이라는 생각밖에 안 듭니다만. 차마 내뱉을 수 없는 말을 목 안으로 삼키며 고개를 숙였다.

눈앞이 다시 캄캄해졌다.

“후후, 차나 한 잔 더 주게.” 메디르 님이 능글맞게 웃으며 덧붙인다.

메디르 님이 내민 빈 찻잔에 차를 따랐다.

제국 내에서 나만큼 말주변이 없는 자도 없을 거다. 그런데 그런 내가 누군가에게 말을 가르친다? 어불성설인 이야기다. 내게 누군가를 말로 가르치는 재능 따윈 없었다.

‘검이면 이야기가 조금 달랐겠군.’

하지만 포크 하나 들기 힘들어 보이는 그 가벼운 몸으론 그조차도 불가능할 거다.

검을 들다 검에 깔릴지도 모른다. 검 밑에 깔려 버둥거리는 황녀를 상상하니 눈앞이 새하얘졌다.

‘검은 무슨. 검 근처에는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하게 해야겠군.’

다른 사람이면 모르겠지만, 황녀에겐 충분히 충분히 위험한 일이다. 그녀의 몸에서 느껴지는 거라곤 뼈밖에 없었다.

실제로 아까 황녀를 안았을 때 내심 무척 놀랐다. 앙상한 나뭇가지마냥 메말라, 종잇장만큼이나 가벼웠다.

나는 평생토록 그렇게 메마르고 가벼운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살아있는 것조차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검도 아닌 것을 가르치는 건 무리다.

“아무리 생각해도 제게는 무리인 일입니다. 차라리 메리와 페드로에게 말해놓도록 하겠습니다. 황녀께서도 저보단 그 둘이 더 좋을 겁니다.”

“자네 좋을 대로 하게나. 안타깝긴 하지만 어차피 타국의 황녀, 나 역시 자네의 부탁이 아니었다면 별 관심이 없었을 걸세. 왕께서도 무언가 생각이 있으시니 황녀를 불러들였겠지만.”

메디르 님이 선을 그었다. 확실히 냉정한 말이었지만, 그의 의견에 틀림은 없다.

나 역시 아마도 폐하께서 맡기지만 않으셨다면 관심을 가졌을 리 없다. 줄곧 서로 엮일 리 없는 공간에서 살아오지 않았는가.

새하얀 피부, 보기 드문 진홍색 머리카락, 벌꿀만큼이나 진한 황금빛 눈동자. 그러나 황녀의 눈은 죽어있었다.

손을 들 때마다 몸을 떠는 것이 무슨 일을 당해왔는지 대충 짐작이 갈 정도다.

‘하지만…….’

내겐 모시는 왕이 더 중하다.

줄곧 모셔온 사람이다. 동정심 하나로 감히 저버릴 수는 없었다. 메디르 님이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돌연 입을 열었다.

“자네는 기사치곤 마음이 너무 여려.”

그는 찻잔을 주름진 손으로 매만지며 말했다.

그건 오랜 연륜이 느껴지는 손이었다.

“페델리우스 경. 자네의 위치는 이곳이야. 그녀가 타국의 황녀라는 걸 잊지 말게. 언젠가 전쟁을 하고, 우리가 짓밟을 나라의 핏줄이지. 자네가 황녀를 제정신 차리게 하고 싶다면 그것도 좋겠지만, 정을 주진 말게나.”

메디르 님이 버석하게 메마른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이것이 진심 어린 조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메디르 님은 허튼소리를 하지 않는다. 게다가 연륜이란 절대 무시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제국과의 전쟁이 난다면 황녀는 가장 먼저 자네가 베어야 할 존재가 될 걸세.”

이유를 설명하듯 메디르 님이 덧붙여 말했다. 목소리에는 염려가 담겨있었다.

“명심하겠습니다.”

마음을 다잡으며 담담히 대답했다. 당장에라도 무너질 것 같던 여인이 떠올랐지만, 애써 지워버렸다.

왕께서 언젠가 그녀의 목을 원한다면, 나는 검을 뽑아야 한다.

평생 모시겠다 맹세한 왕이 내게 맡긴 분이다. 내가 그녀에게 부여할 수 있는 가치는 어디까지나 그뿐이었다.

주먹을 쥔 손 위로 힘줄이 솟아났다. 저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간 듯했다.

가만히 그것을 바라보다 천천히 힘을 풀었다.

기분이 가라앉아버렸다.

“뭐, 이 건은 자네가 알아서 할 거라고 믿고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합세.”

“예, 알겠습니다.”

“조금 더 자세한 조언이 필요하다면 일단 황녀를 한번 만나봐야 할 것 같은데.”

메디르 님이 찻잔을 마저 비우며 말했다. 나 역시 이미 다 식어버린 차를 한 모금에 비워냈다.

이곳으로 오기 전, 황녀께는 메리를 보내둔 참이다.

그녀는 앞으로 메리가 전담해서 돌보게 될 거다. 신경 써서 돌봐주라고 언질을 줬으니 분명 잘 돌보고 있을 테지.

메리는 이 집안의 하나뿐인 시녀이니 말이다.

“예, 안내하겠습니다.”

대답하며 찻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의 잔향을 음미하던 메디르 님도 내 뒤를 따라 일어섰다.

메디르 님은 원래 폐하의 몸을 보살피는 뛰어난 의원이었다. 수많은 의원 중에서도 단연 으뜸이다.

나 역시 개인적인 친분이 아니었다면 감히 부를 수도 없었을 거다. 나는 정중하게 그를 방 밖으로 안내했다.

황녀에게 준 방은 2층에 있는 두 번째 방이었다. 내 집에 있는 방 중에 그나마 햇볕이 가장 잘 드는 방이다.

‘핏기가 없어도 너무 없더군.’

2층으로 올라가며 한숨을 삼켰다.

자꾸 쓸데없이 신경이 쓰인다. 정을 주면 안 된다고 선을 그었지만 이미 기울어진 마음을 쉽게 돌리기는 어려웠다.

황녀의 방은 문이 굳게 닫혀있었다. 손을 살짝 말아 쥐고 가볍게 문을 두드렸다.

“네~”

노크 소리와 거의 동시에 안쪽에서 밝은 음성이 들렸다. 익숙한 목소리는 메리였다. 아무래도 황녀를 챙기는 도중이었던 모양이다.

뒷짐을 진 메디르 님을 잠시 봤다가 열리는 문을 향해 다시 시선을 옮겼다.

“아, 주인님! 황녀님을 보러 오셨나요?”

빼꼼 열리는 문으로 메리가 말갛게 웃으며 얼굴을 쏙 내밀었다. 언제 봐도 밝은 얼굴이라 황녀에겐 나보다 훨씬 도움이 될 거다.

“그래. 지금 들어가도 되겠나?”

“네, 그럼요.”

메리가 문을 마저 활짝 열며 대답했다. 안쪽으로 침대에 앉아 있는 황녀가 보였다.

황녀는 방금 씻었는지 젖은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채 한층 가벼운 복장을 하고 있었다.

“저는 지금 황녀님께서 드실 식사를 가져오려고 했어요.”

“그럼 황녀님 곁에는 나와 메디르 님이 있을 테니 다녀와라.”

“알겠습니다.”

허리를 숙이며 대답한 메리가 몸을 돌려 황녀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어쩐지 황녀의 표정이 내키지 않아 보인다.

떨떠름한 표정에도 메리는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황녀님, 메리가 금방 식사를 가져올게요!”

자신을 3인칭으로 지칭하며 메리가 말했다. 그 처음 듣는 말투에 절로 인상을 썼다. 묘한 표정으로 메리를 쳐다봤지만, 그녀는 내 시선을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주인님.”

그저 내게도 예의 바르게 인사하며 메리가 방을 나갔다.

고개를 돌린 방 안에는 어쩐지 뚱한 표정의 황녀가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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