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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으로 돌아가는 중에 색색거리는 숨소리가 들려와 시선을 내렸다. 품에 안긴 황녀가 어린애처럼 태평하게 잠에 빠져들었다.
조금 황당한 느낌까지 들어 입술을 꾹 닫았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창문에서 뛰어내렸지?’
그건 마치 자살이라도 하려고 한 것 같은…….
멋대로 추측한 내용은 생각만으로도 불쾌해서 바로 지워버렸다.
비명이 들렸을 땐 명상을 하고 있던 도중이어서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커다란 비명을 지를 여자라곤, 이 집안엔 오늘 데리고 온 황녀밖에 없었다.
바닥에 떨어져 다소 놀란 표정으로 굳어있는 황녀의 모습은 정말 뜻밖이었다.
그리고 투명하고 깨끗한 벌꿀 같은 눈동자와 시선을 마주한 순간 심장이 쿵,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건 자신이 죽을 뻔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눈이었다.
난생처음 ‘심장이 바닥으로 떨어진다,’라는 말을 이해했다.
‘실수였겠지.’
아무리 정신연령이 어려도 자신의 취급이 안 좋다는 건 알고 있을지 모른다. 도망가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이런 것이 위험하다는 것도 가르쳐주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황녀를 진찰한 메디르 님에게 들은 이야기는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최근 학대도 제법 받은 것 같고, 저체중에 영양실조, 눈을 보니 빈혈기도 약간 있네. 상당히 오랜 시간 방치된 것 같은데 그런 것치곤 다행히 당장 눈에 띄는 병은 없어 보이더군.>
<메디르 님, 그녀는 황녀입니다.>
<그리고 저주받은 것으로 유명해서 제국 전체의 미움을 받고 있지.>
<…….>
<페델리우스 경, 몸이 아닌 마음에 생기는 병에는 여러 가지가 있네. 만약, 황녀가 지속적인 학대에 오래 노출되어있었고, 줄곧 어딘가에 방치되어 있었다면 황녀의 현 상태는 전부 설명이 가네.>
<불의의 사고가 아니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지. 물론 어디까지나 나 혼자만의 의견이지만 말이야.>
“이런.”
생각에 잠겨 어느새 걸음을 멈췄던 모양이다.
피부로 닿는 밤공기가 차다. 잠옷만 입고 나온 황녀에겐 추울 법한 날씨였다. 다시 발을 움직였다.
품에 안긴 황녀의 몸이 잘게 떨린다. 동시에 걷는 속도를 조금 빨리 했다.
지체할 것 없이 곧장 황녀의 방으로 향했다. 뚝. 닫힌 황녀의 방문을 열려다 움직임을 멈췄다.
황녀를 방에다 데려다 놓는 건 좋다. 문제는 창문에 여전히 안전장치가 없다는 사실이다.
아까는 나무에 걸려서 떨어지기라도 했는지 운이 좋았다고 치더라도 황녀가 또 같은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그리고 그때도 같은 행운이 찾아온다는 보장 역시 없었다.
‘……확실히, 교육이 시급하겠군.’
위험하거나 해서는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가르쳐놔야겠다.
머릿속에 계획을 세우며 문고리를 손에서 놨다. 이 방에 두었다간 위험하다. 그렇다고 사용인들에게 맡기기에도 불안했다.
“어쩔 수 없나.”
짧은 고민을 마치고 몸을 돌렸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 반대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비슷한 디자인의 문 몇 개를 지나니 보이는 것은 익숙한 문이었다. 2층 중앙에 있는 내 방이다.
바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언제 봐도 쓸데없이 넓은 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방 중앙에 놓인 커다란 침대에 황녀를 조심스레 눕혔다. 안긴 것이 불편할 법도 한데 다행히 황녀는 오는 내내 뒤척임이 없었다. 숨소리도 고른 것을 보니 불편한 곳이 있진 않은 모양이다.
“그나저나 정말 가볍군.”
밤이 내려앉은 조용한 방에서 감상을 입 밖에 냈다. 실제로 성인 여자를 든다는 느낌은 거의 없다.
지독한 훈련에 근력이 붙은 팔로 드니 더 가볍게만 느껴졌다.
게다가 메디르 님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모른 척을 할 수도 없게 됐다. 황녀를 내려다보며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정신 차려라, 페델리우스.”
손을 들어 마른세수를 연거푸 하며 자신을 꾸짖듯 말했다.
그래 봐야 이미 기울어진 마음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는다. 저울 위에 얹힌 추를 열심히 덜어봤지만, 쓸모없는 짓이었다.
이미 기울어진 저울은 수평을 되찾지 못했다.
‘조금만이라면 괜찮겠지.’
내 의지로 감정을 갈무리할 수 있을 아슬아슬한 부분까지만 발을 딛는 거다. 언젠가 명령을 받으면 조금 망설일 수는 있어도 검을 뽑을 수 있게. 다짐하듯 머릿속을 정리했다.
분명히 내게도 영향이 있겠지만 그건 이미 마음이 기운 시점에서 내가 감수할 부분이었다.
“옛날 버릇은 결국 시간이 흘러도 없어지질 않는군.”
인정할 부분은 인정하자. 이미 흘러넘치는 동정심에 추의 무게는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워졌다.
옛날부터 생긴 것답지 않게 정이 많다는 소리는 많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 메디르 님께도 들었었군.’
생각하니 허탈한 웃음이 입 안을 가득 채운다.
전쟁이 나면 가장 먼저 동원되어 검을 뽑아야 하는 기사 가문에서 태어나 마음이 약해 걱정도 많이 끼쳤다.
약육강식의 세계 속에 사는 약한 동물을 때때로 강자에게서 구해주기도 했다.
당연히 흘러갈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면 안 된다고, 몇 번이고 혼이 났다. 하지만 그걸 되새겼음에도 죽어가는 것들을 볼 수가 없어서 몰래 구하기도 했다.
그렇게 데려와 키우던 동물이 제법 됐다. 문제는 이번엔 동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게다가 타국의 황녀다.
톡 치면 뚝 부러질 마른 장작처럼, 보는 것만으로도 안쓰러워서 시선을 안 주려야 안 줄 수가 없는 황녀.
주워온 동물은 결국 아버지의 손에 전부 버려졌다. 도태된 것들의 결말은 대개 그러하듯 좋지 못했다.
내가 돌보던 것 중에 살아남은 것은 없다. 물론 지금은 그리 무섭던 아버지도 없었다.
다만, 지키겠다고 맹세한 왕이 있다.
“……저는 왕께서 당신에게 검을 향하지 않기만을 바라야겠습니다.”
혼잣말하며 앙상한 나뭇가지마냥 가는 손을 잡아 이불 속에 넣어줬다.
이 나이나 되어서 어린애처럼 소원을 조심스레 내뱉었다.
만약, 서로 목줄이 채워지지 않은 채 만났더라면 조금 더 괜찮은 결말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이미 줘버린 동정을 도로 담을 수 있을 만큼 나는 약은 성격을 가지진 못했다. 심란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황녀는 깊은 잠에 빠진 채 고른 숨을 내쉬었다.
나도 방 한쪽에 마련된 소파 옆에 검을 둔 채 소파에 몸을 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