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화 (15/99)

* * *

햇살이 따갑다.

눈이 파일 것 같아서 베개를 끌어안아 얼굴을 묻었다. 끙끙거리며 엎드렸다가 문득 베개도, 이불도 부드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지.’

게다가 다락방에는 햇살이 들어오지 않는다. 워낙 높은 곳에 있었던 데다가 햇살이 들어오지도 못할 만큼 창문이 작았기 때문이다. 물론, 겨울에 찬 바람만큼은 여과 없이 잘 들어왔지만.

“아…….”

눈을 뜨니 시야에 익숙하지 않은 풍경이 담겼다.

어딜 봐도 고급스러운 벽지, 편안한 침대와 손이 미끄러질 정도로 부드러운 이불, 척 보기에도 장인이 만든 게 분명한 화병까지.

‘아차, 여기 그 기사의 집이었지.’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뒤늦게 뇌가 사고를 시작했다.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몸이 무거운 느낌이 없다. 뒤척인 것 같지도 않고, 정말 꿈도 꾸지 않으며 푹 잤다. 덥거나 춥지도 않았다.

“아, 머리 아파.”

작게 중얼거리며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았다. 개운하긴 한데, 몽롱함이 눈 앞을 가린다. 그런데 어제 메리에게 안내받았던 방과는 확연히 다르다. 방 크기도 그렇고, 조형물도 그렇고.

“여긴 어……흡.”

숨을 삼켰다. 방에는 나 혼자가 아니었다. 남자가 있었다. 정확히는 어제부터 심심하면 나를 들어 올리는 기사, 페델리우스가 말이다.

‘쟤, 쟤는 왜 저기서 자?!’

이 넓은 저택에서 부족할 것 없는 집주인이 왜 소파에 웅크려 잠을 자는 것일까.

조금 과장해서 내가 살던 다락방만큼이나 커다란 침대를 두고! 조금 다급히 양손으로 입을 막았다.

‘설마 듣진 않았겠지?’

듣진 않았을 거다. 다행히 그는 아직 자는 듯했다. 고개를 돌렸다. 테라스까지 있는 넓은 방이었다.

새파란 하늘 조각밖에 보이지 않던 다락방과는 달랐다.

테라스 밖으로 나무와 정원이 보였다. 태양이 고개를 내밀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자세히 보니 해가 뜬 지 얼마 안 된 모양이다.

‘어쩐지, 햇살이 살인적일 정도로 눈부시더라.’

생각하며 하품을 했다.

“황녀 전하?”

잠에 잠긴 목소리가 귀를 두드린다.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몸이 절로 떨렸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목에서 나는 듯했다. 고개를 돌리니 방금까지 누워있던 페델리우스가 피곤한 기색으로 소파에 앉아 있었다.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여전히 가라앉은 목소리지만, 듣기에 불편함은 없다. 나는 굳은 표정 그대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들킨 줄 알았다.

‘그리고 잠을 잘 잤느냐고 묻는 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인데…….’

널찍한 침대를 내버려 두고 왜 소파에 가서 자는지……. 이해되지 않는 사람이다.

사서 고생하는 게 취미인가? 흠. 고개를 기울였다가 이내 원래대로 돌렸다.

나를 바라보던 페델리우스가 관자놀이를 몇 번 꾹꾹 누르더니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허리춤에 검까지 차곤 내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아프신 곳은 없으십니까?”

‘……이 사람은 언제쯤 되면 질문하는 걸 그만두려나.’

대답 따위 돌아오지 않을 걸 뻔히 알 텐데 정말 꿋꿋하다.

이것도 오래 지나지 않아 없어질 것이라는 걸 안다.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은 없다. 나라도 그럴 테니까.

나는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타인에게 바라지 않는다. 말없이 멍하니 페델리우스를 바라봤다.

페델리우스가 침대 끝에 걸터앉으며 나와 눈을 마주했다. 그러고도 한참이나 말을 하지 않는다.

고개를 기울이니 페델리우스가 고개를 좌우로 돌려 주변 눈치를 본다. 그리고도 한참 말이 없다가 손톱으로 제 볼을 긁적이더니 입을 열었다.

“음……. 아야! 하시는 곳은 없으십니까.”

‘……예?’

입이 절로 떡 벌어졌다. 페델리우스를 만난 이후에도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이상하게 여기진 않는 듯했다.

조금만 더 벌어졌어도 턱이 바닥으로 떨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경악스러웠다.

“음……. 실례하겠습니다.”

페델리우스가 내 몸을 돌려 등을 꾹꾹 눌렀다. 시야가 돌아가기 전, 마지막으로 보였던 페델리우스의 귓불은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래, 너도 부끄럽지?’

내가 생각해도 부끄럽다. 정말, 눈앞에 이 남자만 없었다면 비명을 지르며 이불을 뻥뻥 차고 다녔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불에 파고들고 싶은 건 나도 마찬가지다.

“아픈 곳은 없으신 것 같습니다. 혹시 모르니 저녁에 메디르 님을 모시고 오겠습니다.”

‘……얘 진짜 바보인가?’

“배고프실 테니, 곧 메리도 불러오겠습니다.”

끊임없이 말을 거는 것이 그의 성격이라고 느껴질 정도다. 기사니까 끈기나 인내심은 제법 있겠지만,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대답도 하지 않고, 멀쩡한 반응도 하지 않고, 하는 거라곤 떼쓰거나 소리 지르는 것밖에 없는 여자에게 저렇게 정중하게 굴고 싶을까?

특히나 여기엔 보는 눈도 없다. 나를 막 대한다고 뭐라고 할 사람이 없다는 거다.

“아, 제 이름은 페델리우스입니다. 페델리우스 윌하튼.”

페델리우스가 일어나다 말고 내게 또박또박 설명했다.

그의 살짝 곱슬곱슬한 군청색 머리카락이 햇살에 비쳐 반짝거렸다. 같은 색 눈동자가 나를 똑바로 바라본다.

선명한 그의 눈동자는 다락방 창살로 보이던 밤하늘과 닮아있었다.

“…….”

“음. 페.델.리.우.스.입니다.”

페델리우스가 코앞까지 다가와 또박또박 입 모양까지 확실히 보여가며 말했다.

얘도 메리한테 뭘 잘못 배워온 모양이다.

황당함에 삐걱거리는 고개를 다시 옆으로 돌리려는데, 고개를 돌리는 순간 그 앞에 페델리우스가 있었다.

‘어?’

방금까지 옆에 있던 사람이 순식간에 코앞에 와있다.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돌리니 페델리우스는 단 한 걸음으로 내 시선을 따라잡았다.

“황녀 전하, 제가 싫으십니까?”

그가 조심스럽게 손을 잡아서 내 몸을 멈추게 하곤 물었다.

굳은살이 가득 박인 손 치고는 힘이 전혀 없는 것이 얼마나 조심하려고 노력하고 있는지 느껴질 정도다.

“아니면 무섭습니까?”

페델리우스가 또 내게 물었다. 일단, 말을 닥치는 대로 따라 해서 빨리 배우는 척이라도 해야 할 듯싶다.

시원하게 대답하지 못하는 내 쪽이 도리어 먼저 숨이 넘어갈 것 같다.

쉼 없이 참고 질문을 던지는 페델리우스가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내가 뭐라도 행동하지 않으면 쉬지 않고 질문을 던질 것 같다.

“페데리스!”

“페델리우스입니다.”

혀 짧은 목소리로 내뱉은 이름에 페델리우스가 조금 커다래진 눈동자로 내 말을 정정했다.

‘뭘 바라는 거야.’

진지한 눈동자가 한층 더 가까워졌다. 메리의 그 반짝거림이 어디서 왔나 했더니 이 남자에게서 온 모양이다.

코앞까지 다가온 얼굴이 부담스럽다. 뒤로 물러나며 겁에 질린 듯 몸을 떠는 척을 했다.

이 남자에겐 이 방법이 제일 효과적인 듯했다.

“아. 죄송합니다.”

그가 급히 뒤로 물러난다. 부드럽게 손을 잡고 있던 온기가 순식간에 멀어졌다. 조금 아쉽다.

‘……아쉽다고?’

문득 든 생각에 도리어 내가 나에게 반문했다. 왜?

“저는 페데리스가 아니라 페델리우스입니다.”

생각이 깊어지기도 전에 페델리우스가 또 말을 했다. 또박또박 말하는 목소리가 책이라도 읽는 것처럼 딱딱하다.

“페데리우스!”

“네,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페델리우스의 무뚝뚝한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죽어있던 꽃이 서서히 피어나듯 번져가는 미소에 나는 난생처음, 타인의 얼굴에서 시선을 먼저 돌릴 수가 없었다.

‘제대로 부른 이름도 아닌데.’

어떻게 들어도 발음 하나가 빠진 모양새다.

이것 또한 배려의 한 가지일까? 생각했지만, 마땅한 대답은 찾을 수 없다. 여전히 나는 그가 친절한 이유를 알 수 없었으니까.

“저는 곧 입궁해야 합니다. 메리를 불러올 테니, 잠시만 여기서 기다리십시오.”

“기다려?”

“네. 기다리시면 됩니다.”

“응!”

대답을 듣고서야 페델리우스는 몸을 돌렸다. 그가 걸음을 옮기다 발걸음을 뚝 멈췄다. 페델리우스가 다시 내게로 돌아왔다.

“황녀 전하, 창문엔 가까이 가시면 안 됩니다.”

“창무운?”

“그러니까……. 저거엔 가까이 가시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페델리우스가 손가락으로 테라스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오픈되어있는 테라스는 어젯밤 날아올랐던 창문보다 훨씬 떨어지기 쉬운 구조였다. 그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 것 같다.

‘어제 어지간히 놀란 모양이네.’

지금은 들킬 확률도 높으니 그럴 마음은 없다. 오늘 밤에 재차 다시 도전하면 모르겠지만.

이곳으로 오는 도중에 듣기론 아마 내일쯤 제국의 사절단은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간다.

‘물을 수입하는 데 한 달이라니.’

그리도 읊어대는 제국의 위상치고는 꽤 우스운 꼴이다.

군사력이 바닥에 곤두박질친 지금 다른 나라에 괜한 시비를 걸 수도 없을 테고, 그나마 무난하게 해결할 수 있는 것이 나를 이용한 거래였다.

“황녀 전하, 안 됩니다.”

“웅!”

어린아이를 달래듯 내뱉는 단호한 말에 손을 번쩍 들며 대답했다.

그제야 그가 조금 다급한 걸음으로 방을 나선다. 나가자마자 메리라도 찾을 모양인 듯하다. 그녀의 입담을 생각하면 달갑지만은 않다.

달칵. 문을 열고 페델리우스가 나갔다. 그제야 들었던 손을 내리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사실 보통 어린아이는 어느 정도 속도로 성장하는지 감이 잡히질 않는다.

“음, 간신히 한 달이나 고생해서 가져간 물통이 황성에 도착해서 텅 비어있으면 재밌겠다.”

키득거리며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당황할 모양새가 뻔히 눈에 보였다. 한 번도 얼굴을 마주한 적 없는, 물거울 속 아비의 얼굴이 어떻게 일그러질지 기대된다.

“아콰.”

<네, 주인님!>

“아, 곧 메리가 올 테니 나오지 않아도 괜찮아.”

<아……. 네에.>

목소리가 금세 풀이 죽었다.

급히 말을 돌렸다. 이건 분명 아콰도 기다렸던 이야기일 테니까.

“아콰, 오늘 밤, 이리나를 보러 가자.”

바라는 것이 한 가지 생겼다. 아무리 생각해도 괘씸해서 봐줄 수 없는 사람을 굳이 눈감아줄 필요는 없지 않은가.

<주인님을 괴롭히던 그 못된 여자 말인가요?>

“응, 역시 이리나를 죽이자. 더 이상 숨길 건 없어졌으니까.”

모든 진실을 알았을 때 경악이 번져갈 그녀의 표정이 궁금했다.

줄곧 움츠렸던 몸을 드디어 펼 수 있게 된 거다.

이 몇 달간은 지난 이십 년의 세월 중에 가장 아팠다.

아직도 몸에 멍이 사라지지 않은 곳이 많이 있다. 통증은 여전히 선연했다.

가차 없이 뺨을 때리며 우월감에 차 있던 이리나의 눈빛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주인님께서 원하신다면, 저는 언제든 해일이 되어 원하시는 것을 집어 삼켜드릴게요.>

나는 물의 잔혹함을 봤다. 꺼져가는 생명의 불꽃 앞에서 처절해지는 여인도 봤다.

이번에 보게 된다면 두 번째가 되겠지만, 그때처럼 역겹지 않을 거라는 확신은 있었다.

“나를 아프게 했으니, 나도 똑같이 돌려줄 권리가 있잖아?”

<네, 그럼요. 세상은 약육강식의 세계인걸요. 약한 자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결국은 주인님이 이기게 될 거예요. 제가 주인님의 검과 방패가 되어, 평생 지켜드릴 테니까요.>

아콰가 조곤조곤 내게 설명했다. 당연한 일이다. 아픔에 따른 대가는 복수뿐이다.

그리고 복수는 결국 죽음으로 끝이 난다. 줄곧 그래왔다.

물거울로 훔쳐본 황성에서도 많은 이들이 그렇게 생명을 잃었다.

약육강식. 세상의 이치는 그 단어 하나로 모두 설명된다고, 아콰는 내게 말했었다.

“그럼 오늘 밤에는 이리나에게 가자. 일단 사절단으로 왔으니 왕궁에 있겠지?”

고개를 숙인 채 손등을 바라보며 물었다. 누가 보면 손등과 대화하는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를 노릇이다. 조금 전까지 떨떠름했던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요?>

“아, 그리고…….”

똑똑. 한창 대화하는 도중에 노크 소리가 들렸다. 페델리우스가 나간 지 오 분도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정말 빠른 방문이었다.

“대화는 나중에 하자.”

작은 목소리로 아콰에게 말했다.

<네에…….>

대답한 아콰의 목소리는 활기가 제법 꺾여있었다. 다락방에 둘만 있을 때도 워낙 활발한 성격이었으니, 당연할 수도 있는 일이다.

똑똑. 또 한 번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황녀님, 메리예요. 들어가겠습니다.”

그냥 벌컥벌컥 열고 들어와도 되는 것을.

가라앉은 눈으로 열리는 문을 바라봤다. 내가 별 반응 없이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니 메리가 포슬포슬 미소를 지으며 내게 다가왔다.

눈이 조금 부어있는 것 같기도 하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어제와 다를 것 없이 보이긴 하지만.

‘어제 운 것 때문인가.’

“어디 아프신 덴 없으시죠?”

메리가 내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포개어진 손 위로 느껴지는 온기에 말없이 메리의 주황빛 눈동자를 마주봤다.

“응.” 짧게 대답하니 메리가 내 손등 위로 얼굴을 묻는다.

“위험하다고 가르쳐드리지 않은 제가 나빴어요.”

쿡, 소리를 내며 심장 부근에 무언가가 날아와 박힌다. 사실 어디까지나 도망치려다가 문제가 생긴 것뿐이었다. 심장이 콕콕 찔리는 것이 이게 양심이라는 건가 싶을 정도였다.

“황녀님을 발견했을 때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어요.”

‘……그러니까 대체 왜.’

어제의 슬픔이 북받쳐 오르는지 메리가 목이 멘 소리로 내게 말했다.

슬픔에 침식당한 눈동자는 어쩐지 어제처럼 반짝이지 않는다.

모른 척 고개를 기울이니 메리가 침대 밑에 꿇어앉은 채 웃는다.

말갛게 빛나는 눈동자는 내 손을 붙잡은 채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황녀님은 죽지 마세요.”

애절한 목소리가 나를 향했다. 저 투명한 눈동자는 나를 통해 누구를 보고 있는 걸까? 물론 내게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다.

“……응.”

그런데도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입술을 달싹였다. 멀쩡하지 않은 멍한 대답에도 메리는 기쁜 듯 웃었다.

나는 그녀가 여전히 왜 슬퍼하고, 기뻐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차, 안녕히 주무셨어요? 황녀님.”

“안녕히! 응!”

“네, 메리도 잘 잤답니다.”

메리가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해맑은 표정 위로 원하는 것이 보였다. 저 3인칭의 지칭은 언제쯤 사라지는 걸까.

‘……제발 좀 그만둬줘.’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돌려도 메리는 방긋방긋 웃으며 몸을 쪼그린 채 옆으로 종종걸음쳐 다가오더니 나와 눈을 맞춘다. 반대쪽으로 돌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하여튼, 그 주인에 그 사용인이라더니!’

하는 짓이 어쩌면 이렇게 똑같은지.

얼굴에 대고 한숨을 쉴 수도 없어서 눈동자만 도르륵 굴리다 결국 마주 웃었다. 하고 싶은 말 못하는 인간이란 대체로 이런 느낌이겠지.

“메리! 잘 자!”

“앗, 잘 잤느냐고요? 그럼요! 메리도 정말 잘 잤어요!”

아니, 자라고. 가서 좀 자. 아니면 반짝반짝한 눈빛이라도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다. 부담스럽다.

페델리우스는 얼굴을 들이대더니 메리는 구멍이라도 뚫을 것처럼 나를 쳐다본다.

“황녀님, 메리랑 같이 씻으러 갈까요?”

메리가 내 손을 붙잡으며 의사를 물었다.

저 말 중에 어떤 단어를 말꼬리로 잡고 늘어져야 하는지 몰라서 입을 다물고 있자 메리가 주먹을 쥐곤 내 팔을 문지르는 시늉을 해 보였다.

“목욕이요, 목욕!”

“모굑?”

“네, 이렇게 씻는 걸 목욕이라고 해요.”

“응!”

설명하는 모습이 가상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메리가 씻겨주는 건 사실 기분이 좋았다. 물도 따뜻했고, 욕조 가득 담긴 거품의 향기도 좋다. 손길이 얼마나 조심스러운지도 모른다.

게다가 메리는 손톱이 길지도 않아서 실수로라도 내 몸을 긁거나 상처 내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어제 했던 목욕은 솔직히 새로운 세계에 발을 디딘 기분이었다.

메리가 쉬지 않고 입을 움직인 걸 제외하면 여태 했던 어떤 목욕보다 편안했다. 긴장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목욕이었다.

‘음……. 뭐, 이것도 좋겠지.’

쫑알쫑알 떠드는 것이 귀를 따갑게 하긴 한다.

하지만, 아콰와 비교하면 메리 쪽이 더 심하다고도 할 수 없다. 그냥 아콰가 두 명이 됐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할지도 모른다.

“그럼 일단 방으로 돌아갈까요?”

“방? 요기?”

“아! 여긴 주인님의 방이에요. 주인님도 어제 많이 놀라신 것 같았어요.”

자기 방이었다고? 근데 왜 소파에서 잤지? 넓은 침대를 두고 소파에서 잘 만한 문제가 있었던 건가.

여태 잠버릇이 심하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없으니 그건 아닐 거다.

물론 증명해줄 존재가 아콰밖에 없긴 하지만 말이다.

‘그럼 뭐지?’

고개를 기울이자 메리가 나를 조심히 잡아끌었다. 씨름할 마음도 없어서 메리에게 손이 잡힌 채 그녀의 뒤를 따라 걸었다.

어쨌거나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집안이다.

집안 분위기로 봐서 다른 가족들은 없는 것 같고…….

저택의 크기나 방 수에 비교하면 사용인 수도 적다. 저택의 넓이에 비해 사람 냄새가 나는 공간이 확연히 정해져 있었다.

“자, 옷을 벗겨드릴게요. 황녀님.”

메리가 그렇게 말하며 부드러운 원피스 형식의 옷을 조심스럽게 벗겨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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