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화 (20/99)

* * *

“다녀왔습니다, 황녀 전하.”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한 페델리우스가 내게 와 인사했다.

씻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모양인지 그의 주변으로 향긋한 냄새가 났다. 그는 한 손에 종이 뭉텅이를 들고 있었는데 연필로 뭔가를 그려놓은 듯했다.

평소보다 훨씬 진하게 느껴지는 기분 좋은 냄새에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저와 같이 식사하시면 어떻습니까?”

“으응?”

“황녀 전하와 밥을 같이 먹고 싶습니다.”

한층 더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모른다. 나는 절대 밥과 식사라는 단어는 모른다.

언젠가 아는 척을 했던 것 같지만 역시 몰랐다. 나보고 이놈 앞에서 입을 벌리라는 말을 하진 않겠지.

내가 모르쇠로 일관하자 페델리우스가 침대에 앉은 내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아주 고정 자세가 됐다. 이렇게 앉으면 페델리우스를 내가 내려다보게 된다. 늘 생각하지만, 기분이 묘하다.

나를 올려다보던 페델리우스가 손에 쥐고 있던 종이 뭉텅이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곤 몇 장을 고르더니 나머지는 옆으로 밀어둔다.

그리곤 이내 빼둔 종이 중에 한 장을 뒤집어 내가 볼 수 있도록 눈앞에 들어 보여줬다.

‘……밥?’

가로로 한 뼘 반 정도 되는 종이에는 식탁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진수성찬이라고 해도 부족할 정도의 화려한 음식들이 놓여있었다. 정말 식탁 다리가 부러질 정도다.

누가 봐도 저건 상차림이었다.

“이게 밥입니다. 황녀 전하.”

‘……아니지?’

페델리우스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내게 그림에 대한 설명을 이어나갔다. 어느 누가 어떻게 봐도 밥이라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그림 솜씨는 뛰어났다.

“이걸 식사라고도 합니다. 이렇게…….”

페델리우스가 급히 다른 종이를 들더니 내 앞에 들이댔다. 그 그림 안에는 왕이 있었다. 정확히는 왕이 식사를 하는 모습인 듯했다.

‘어쩐지 음식이 화려하더라.’

흑백으로 그려진 그림일 뿐인데도 음식이 화려하다는 것이 물씬 느껴졌다.

선이 깔끔해서 알아보는 데 큰 무리도 없었다. 어떤 화가가 그렸는지는 몰라도 단시간에 저렇게 그릴 정도면 제법 실력이 있는 듯했다.

“이렇게 먹는 행위를 ‘식사를 한다’고 표현합니다.”

“식싸를 한다?”

“네. 배가 고플 때는 사용인들에게 식사하자고 말씀하시거나, 배고프다고 말씀하시면 됩니다.”

페델리우스가 진지하게 내게 그림을 보여주며 설명했다. 그러면서 또 다른 종이를 한 장 꺼낸다. 거기엔 여러 사람이 그려져 있었다. 메리도 있는 것을 보니 사용인인 모양이다.

“그리고 여기 이들 외의 다른 사람은 절대 따라가서도, 이야기를 들어서도 안 됩니다. 이상한 사람이 말을 걸면 반드시 저나 다른 사용인들에게 말해주세요.”

이제야 조금 깨달았지만, 이건 교육의 일환인 듯했다. 페델리우스는 내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느린 속도로 말을 했다.

그 배려에 나는 페델리우스가 들고 있는 그림 속의 사람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종이에는 페델리우스를 포함해 총 다섯 명이 그려져 있었다. 넓은 저택에 비해 사람 수는 상당히 적었다.

한 명이 집주인이라고 생각하면 더더욱 말이다.

“이게 누군지 아십니까?”

페델리우스가 돌연 그림에 있는 사람 중 한 명을 가리키며 말했다. 맨날 보는 얼굴인데 모를 리가 있을까. 모르고 싶어도 이미 질리게 각인되어버려 목소리만 들어도 알 것 같은 인물이다.

“누굴까요?”

페델리우스가 그림을 흔들어 보이며 묻는다. 한 톤 높아진 목소리가 소름이 돋을 정도로 그와 어울리지 않는다. 떨떠름함을 지우지 못하고 그림을 보다 입을 열었다.

“메리!”

“맞습니다. 그럼 이 사람은?”

페델리우스가 또 다른 사람을 가리켰다. 이건 이거대로 아주 익숙한 인물이다. 굳이 찾을 필요가 없다.

‘……너잖아.’

바로 눈앞에 있었으니까.

마치 자신을 제삼자 취급하는 듯한 페델리우스의 행태에 입이 떡 벌어졌다.

이번엔 내 동공이 흔들렸다. 떨리는 눈으로 페델리우스를 쳐다보다 고개를 푹 숙였다.

“너!”

손가락으로 페델리우스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페델리우스가 실망한 기색을 내비치며 고개를 젓는다.

“이름. 이름이 뭘까요?”

‘대체 왜 이렇게 이름에 집착해?’

몇 번이고 생각해봐도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

‘너’든, ‘야’든, 그저 누구를 부르는지만 알면 해결될 일이 아닌가. 집착할 필요성이란 조금도 없어 보인다.

‘이름으로 불리면 좋은가.’

내키지 않는 왕과 이리나가 부른 기억밖엔 없다. 그래서 그런지 내 이름은 껄끄럽게 느껴졌다. 문득 의문이 불쑥 고개를 들이민다.

가만히 페델리우스를 쳐다보다 입을 열었다.

“나는?”

“예?”

“내 이름!”

내가 소리를 치자 페델리우스의 눈동자가 한층 커졌다. 페델리우스는 무표정하게 보이는 데 비해 눈동자로는 감정이 제법 쉽게 드러나는 타입인 모양이다.

타인의 눈치를 본 세월이 제법 돼서 그런지 감정을 읽는 덴 이골이 났다.

특히 부정적인 감정을 읽는 건 내게 가장 쉬운 일 중 하나였다.

하지만 지금 그에게 불쾌하거나 못마땅한 기색은 없었다. 그의 눈에 담긴 감정은 놀람과 망설임 같았다.

“황녀 전하의 존함은…….”

낮은 목소리에 살짝 숙였던 고개를 느릿하게 들었다.

페델리우스가 진지한 표정을 한 채 나를 보고 있었다. 페델리우스의 입술이 열리는 것이 느리게만 보였다.

“오시리아.”

쿵, 심장이 바닥에 떨어졌다. 순간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숨 쉬는 법을 잊은 듯, 나는 굳어버렸다.

“오시리아라고 들었습니다.”

페델리우스의 낮은 목소리가 귀에 틀어박혔다.

빠르게 뛰는 심장에 숨을 멈추고 있으니 점점 느려지는 것이 느껴졌다.

“하아…….”

간신히 긴 숨을 내뱉었다.

“……응.”

고개를 주억거리며 대답했다. 누군가 속을 깃털로 간질이고 있는 것 같다. 몽글몽글한 무언가가 한껏 샘솟아 뱃속을 그득히 채워버린다.

“페델리우스.”

감사한 마음을 전하듯, 그의 이름을 또박또박 내뱉었다. 페델리우스의 눈이 두 배는 크게 뜨였다.

누군가에게 이름을 불린다는 건 이런 기분이었구나.

늘 악의에 찬 이들이 부르는 메마른 이름만 들어왔다. 그것은 마땅히 호칭할 것이 없어 상표를 달듯 부르는 이름에 가까웠다.

<오시리아.>

하지만, 페델리우스의 부름은 그것과 달랐다. 그런 부름과는 제법 거리가 있었다. 하나하나 힘을 주어 부르는 이름에는 명백히 어떠한 감정이 담겨있었다.

그가 내 이름을 부르며 무슨 생각을 했는진 알 수 없다. 다만, 나는 이 알 수 없는 감정을 난생처음 느꼈다.

뭔지 몰라 이름을 붙일 수 없는 이 감정에 울컥할 뻔한 것은 이 남자가 어디까지나 매사에 진심을 다하기 때문이겠지.

“잠, 잠깐. 그, 다시 한 번만 말씀해주시겠습니까?”

페델리우스가 더듬거리며 내게 말했다. 여운을 즐기는 도중에 들린 목소리에 한껏 격양되었던 감정이 살짝 가라앉았다.

괘씸함에 눈을 가늘게 떴다.

“말씀?”

“네. 방금 했던 말을 다시 한번 부탁드립니다.”

“페데리우스!”

원하는 건 알겠지만, 두 번은 없다. 괜히 쓸데없는 꼬투리를 잡히고 싶지도 않거니와 조금 더 이곳에 머물러야 하니 사실을 들키면 곤란하다.

처음에는 내 계획 때문이었는데, 지금은 모든 사실이 드러났을 때 그들의 눈이 어떻게 변할까 겁나서라도 들키기 싫었다.

‘내 추태란 추태가 사실은 연기라는 것이 드러나면…….’

생각하는 도중에 몸이 부르르 떨렸다. 끔찍한 상상을 해버렸다. 모두를 위해서 이 연기는 들켜선 안 된다.

“다시 한 번만…….”

“페데리우스!”

“그게 아니었…….”

“페데리우스!”

말을 끊는 내 행동에 페델리우스의 입이 꾹 닫혔다.

어쩐지 불만스러움이 엿보이지만, 알게 뭔가. 그가 먼저 드물게 기분 좋았던 한때를 깨어버렸으니까.

‘그 기분을 만들어준 것도 이 남자지만.’

제대로 된 부름은 아니었지만, 그가 부른 이름은 내게 와 닿았다. 뭔가가 가슴 속을 툭 치고 지나간 기분이었다.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황녀 전하.”

“오시리아!”

“예?”

“오시리아야!”

한 번 이름을 불리고 나니 계속 듣고 싶은 게 사람의 욕심인 모양이다. 어린애처럼 굴며 그에게 의견을 피력했다.

아콰는 곧 죽어도 내 이름을 부르지 않을 거다. 메리도 불러줄 확률은 없다.

황녀님, 황녀님, 하는 모습이 아콰와 똑 닮아있었으니까.

그나마 가능성 있는 것이 이 남자, 페델리우스였다.

왕을 옆에서 모시니 어느 정도 지위도 있을 테고, 이렇게 커다란 집도 있다. 귀족이라면 이름을 부르기 한층 더 편할지 모른다.

“이름으로 불러달라는 말씀입니까?”

“응!”

페델리우스의 무덤덤한 얼굴에 주름이 생겼다. 미간에 힘이 들어간 모양이다. 곤란함이 엿보이는 것이 그에게도 쉬운 일은 아닌 듯했다.

“죄송합니다, 그건 조금 곤란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페델리우스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벽창호 같으니라고!

일말의 고민도 없는 거절에 뚱한 표정을 하니, 그가 급히 그림을 다시 들고 다른 사람을 가리킨다.

“이 남자는 페드로입니다. 집사를 맡고 있습니다.”

“…….”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페델리우스가 옆으로 걸음을 옮겨 내 앞에 또다시 그림을 들이밀었다. 그는 꽤 진지해 보였다.

“혹시 모르니 알아두셔야 합니다.”

식사하자고 권유해놓고, 앉아서 공부를 시키고 있는데 퍽이나 듣고 싶겠다. 뱃가죽이 등가죽에 붙은 기분이다.

최근에는 먹고 자는 것만 반복하니 마치 낙원에라도 온 것처럼 행복했다.

“이 사람은 요리사인 루덴입니다.”

페델리우스가 다른 사람을 가리키며 말했다. 요리사 복장을 하고, 수염을 깔끔하게 민 단정한 생김새의 남자였다.

종이에 꽉 차게 그린 걸 보니 덩치가 제법 있는 듯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원사 실비아입니다. 음, 조금 독특한 사람이지만 제 정원엔 아까울 정도로 솜씨 좋은 장인이죠.”

“……배고파.”

“아, 죄송합니다. 함께 식당에 내려가시죠. 어쨌든 이 사람들 외의 다른 사람들은 조심하셔야 합니다. 경비병도 있긴 한데, 밖으로 나가지 않는 이상 마주치지 않을 테니 다음에 소개해드리겠습니다.”

페델리우스가 답지 않게 길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건 황녀 전하께서 가지고 계십시오.”

그렇게 말하며 그림을 돌돌 말아 내 손에 쥐여 준다. 도대체 다른 사람이 그려져 있는 그림을 어디에다가 쓰라고 하는 건지…….

고개를 끄덕이곤, 협탁에 그림을 올려뒀다.

“다음엔 다른 것도 더 많이 그려오겠습니다.”

‘……뭐?’

“오늘은 일이 조금 바빠서 시간이 부족해 저만큼 그리는 게 한계였었습니다.”

한 손으론 나를 에스코트하며, 다른 손으론 종이 뭉텅이를 다시 집어 드는 페델리우스를 보며 눈을 크게 떴다.

당연하게도 나는 그림을 그린 것은 화가라고 생각했다.

“페데리우스, 그림……?”

“네.”

무뚝뚝하게 고개를 끄덕인 그가 종이 뭉텅이를 옆구리에 챙겨 들었다. 한 손은 나를 챙기고, 다른 손으론 그림을 챙기는 모습이 이상하게도 능숙했다.

떨떠름한 표정을 숨기지 못한 채 그와 함께 방을 나섰다.

“오늘 식사는 식당에서 할 예정입니다.”

페델리우스가 나를 배려해 천천히 걸어가며 말했다.

무뚝뚝한 목소리지만, 어디까지나 부드럽다. 그는 아마도 무의식적으로 강압적인 목소리를 내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는 듯했다.

“식당?”

“네. 식당은 밥을 먹는 공간입니다.”

페델리우스가 천천히 설명했다. 사실 에스코트라기보단 어린아이 손을 붙잡고 가는 것과 비슷했다.

다만 혹시나 넘어질까, 내가 조금만 움찔거려도 긴장한 눈으로 나를 살폈다.

전전긍긍하는 것이 눈에 보일 지경이라 내가 당황스럽다. 뭣보다 밥을 받아먹어야 하는 것이 가장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이번엔 내가 포크를 먼저 잡아야지.’

졸도하든가 말든가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다.

일단 이 이상 밤마다 베개에 얼굴을 묻을 일은 없어야 했다. 매일 밤 한 번씩 생각나는 일 때문에 잠이 들지 못할 때도 있다.

‘아콰가 늦네.’

아침 일찍 나갔는데, 생각보다 늦는다. 늦어도 저녁에는 돌아올 줄 알았는데 계속 오지 않으니 불안하기까지 했다. 아콰가 이렇게 오랜 시간 옆에 없었던 적은 처음이다.

깨닫고 나니 심장박동이 빨라졌다.

‘이러다 돌아오지 않는 건 아니겠지?’

왕이 어떤 사람인지는 몰라도, 아콰는 그를 두려워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싹튼다.

싹트는 불안감에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냐, 밤에는 오겠지.’

무섭지만, 기다리는 거다. 여태까지 아콰가 돌아오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다. 기다리면 반드시 돌아왔다.

내가 밤을 무서워했기 때문에 밤에는 항상 곁에 있어 줬다. 분명 괜한 걱정이다.

애써 속을 삭이며 페델리우스의 뒤를 따라갔다.

“먼저 들어가십시오, 황녀 전하.”

페델리우스가 정중하게 문을 열며 고개를 숙인다.

늘 생각하지만, 페델리우스가 하는 인사는 부담스럽다. 너무 정중하고, 마치 귀한 보석이라도 다루는 듯 군다.

실상 나는 진창에 더럽혀진 아무것도 아닌 존재인데도 불구하고. 익숙하지 않은 대접을 계속 받다 보니 사실은 전부 꿈이 아닐까 싶을 때도 있다.

눈을 뜨면, 또다시 다락방 속에 갇혀있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이것이 꿈이라도 좋다. 영원히 깨지 않으면 된다. 이대로 현실이 되면 좋겠다.

‘실없는 생각이지만.’

여전히 페델리우스의 손을 잡은 채 그를 따라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식당에는 이미 음식이 다 차려져 있었다. 스테이크부터 시작해서 처음 보는 요리들이 식탁에 가득했다.

“여기에 앉으십시오.”

페델리우스가 의자를 빼며 내게 권했다. 아까처럼 느릿하게 의자에 앉았다.

페델리우스가 의자를 밀어 넣어준다. 민망함에 손톱으로 볼을 긁적였다.

“그리고 이것도…….”

그가 식탁 위에 놓여있던 뭔가를 잡더니 내 목에 걸었다. 부드러운 천 같은 것이었다.

손으로 만지작거리다 고개를 숙였다. 뭔지는 몰라도 목에 걸 수 있는 끈이 달린 천이었다.

‘냅……킨은 아닌 것 같은데.’

아콰가 보여줬던 냅킨과는 확연히 차이가 있다.

특히나 가장 차이가 있는 것은 이 천 쪼가리에 달린 끈이다. 어딜 봐도 정상적인 냅킨과는 다르다. 난생처음 보는 물건이다.

상반신을 거의 다 덮을 정도로 커다란 냅킨 따위 본 적이 없다. 게다가 끈이 달린 냅킨은 더더욱 말이다.

물론 아콰가 세상에 있는 냅킨을 다 보여주진 않았겠지만, 어쩐지 등이 싸하다.

‘……병아리?’

눈을 가늘게 뜨고 상반신을 뒤덮은 냅킨을 들어올렸다.

눈앞까지 가져와 자세히 보니 냅킨 한쪽 구석에 병아리 한 마리가 자수로 놓여있다.

귀엽긴 한데, 한층 더 꺼림칙함이 상승했다. 페델리우스가 내 맞은편……에 앉지 않고, 내 옆자리에 앉는다.

‘뭐야, 대체.’

보통 식사는 마주 앉아 하는 것이 정석 아니던가. 물론 식탁이 조금 큰 편이라 팔을 뻗으면 닿을 만큼 짧은 거리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무뚝뚝한 얼굴로 옆에 앉는 것이 영 이상하다.

굳이 두 사람이 먹는데 서로 옆자리에 앉아서 먹을 필요가 있는 것인가. 고개를 숙이자 페델리우스가 허리를 굽혀 내 어깨를 톡톡 쳤다.

“어디 아프신 곳이라도 있습니까? 황녀 전하.”

“…….”

“아야 하시는 곳 있습니까?”

내가 이해하기 쉽도록 그가 저렴한 단어로 내게 묻는다.

정말 저렴한 단어라서 양손에 얼굴을 파묻고 싶어질 정도로 부끄럽다.

고개를 좌우로 저으니 그가 다행이라며 말을 덧붙였다.

“뜨거우니 제가 먹여드리겠습니다.”

페델리우스가 그렇게 말하곤, 내 앞에 놓여있던 스테이크 접시를 가져갔다. 그리곤 포크와 나이프로 스테이크를 능숙하게 썰기 시작한다.

페델리우스가 나이프를 능숙하게 사용하는 건지, 아니면 고기가 부드러운 것인진 모르겠지만 페델리우스의 칼질 한 번에 고기가 쓱쓱 썰려 나간다. 그게 또 신기하게만 보였다.

둥그런 스테이크는 순식간에 조각조각 나서 한 입 크기가 되었다.

페델리우스가 그걸 포크로 찍는다. 그리곤 허공에서 고기조각을 좌우로 흔든다.

새하얀 연기가 이리저리 춤을 추며 하늘로 사라진다.

‘……안 식혀도 된다고!’

턱 끝까지 차오른 말에 발만 동동 굴렀다. 따뜻하게 먹는 고기를 저렇게 식혀버리면 대체 무슨 맛으로 먹느냔 말이다.

말도 하지 못하고, 허공에서 이리저리 춤추는 고기만 뚫어져라 바라봤다.

‘따뜻할 때 먹고 싶은데…….’

“다 식었습니다. 황녀 전하.”

페델리우스가 내 입에 스테이크 조각을 가져다 대며 말했다.

“아, 하세요.” 덧붙이는 말에 멍하니 그를 쳐다봤다.

설마 했는데 역시나. 포크를 먼저 빼앗는다는 걸 깜빡했다.

“내가!”

페델리우스가 잡고 있는 포크를 향해 손을 뻗었다. 페델리우스가 나를 보더니 팔을 뒤로 쓱 뺀다. 졸지에 허공에서 헛손질하는 멍청한 꼴을 보였다.

“직접 드실 겁니까?”

“내가!”

“음…….”

페델리우스가 고민하듯 나를 내려다본다. 어쩐지 눈빛에 아쉬움이 뚝뚝 묻어난다. 내 눈에 보일 정도라 솔직히 당황했다.

‘뭐가 아쉬워?!’

대체 어떤 부분이 아쉬운 걸까. “내가!” 다시 한번 소리치며 손을 뻗었다.

페델리우스가 결국 느린 속도로 내게 포크를 내밀었다. 뻗은 손으로 급히 붙잡았다.

반대쪽 손도 뻗어 페델리우스가 스테이크를 작게 잘라놓은 접시도 가져왔다.

“앗.”

페델리우스가 이상한 소리를 내며 반사적으로 손을 뻗더니 접시를 잡기 전에 멈췄다. 그가 머쓱한 표정으로 손을 도로 거둬갔다.

“맛있게 드십시오.”

“응!”

어쩐지 아쉬워 보이는 페델리우스에게 경쾌하게 대답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이 남자 앞에서 입을 벌리는 짓은 못할 것 같다.

메리 앞에서는 부끄러워도 참을 만했는데 이상할 노릇이다.

포크로 찍어 고기를 입에 집어넣었다. 다 식었다.

그래도 눈이 번쩍 뜨이는 맛이었다. 입에 있는 고기를 다 씹기도 전에 한 조각을 더 찍었다.

“뜨거우니 조심히 드십시오, 황녀 전하.”

‘아니, 다 식어서 하나도 안 뜨겁거든?’

포크를 잡겠다고 실랑이를 벌였으니 이미 미지근하게 식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혼자서도 잘 드시는군요.”

‘그러는 네 목소리에선 아쉬움이 묻어나는구나.’

장담하는데 분명히 메리와 페델리우스 사이에 무슨 이야기가 오갔을 거다. 그러니 메리와 똑같은 행동을 하며 내게 입을 벌리라고 하지.

그건 그렇고, 음식이 매우 맛있다.

오물오물 씹어 먹다가 음료를 마시길 반복했다. 한참을 가만히 있던 페델리우스가 결국 자신도 나이프와 포크를 들었다.

표정에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다.

‘도대체 뭘 기대한 거야.’

지은 죄도 없는데 괜히 죄책감이 고개를 들이민다. 힐끗거리며 눈치를 보다가 한숨을 삼키며 페델리우스에게로 몸을 돌렸다.

“페데리우스! 마시께 머거!”

포크를 잡은 손을 번쩍 치켜들며 혀 짧은 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페델리우스가 스테이크를 썰다 말고 놀란 눈으로 날 쳐다봤다.

“황녀 전하께선 정말 천재이신 것 같습니다.”

페델리우스가 작은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콜록, 콜록.”

언제 들어도 끔찍한 그 말에 음식을 잘못 삼켜 사레가 걸렸다. 답답함에 주먹으로 가슴을 퍽퍽 내려쳤다.

“황녀 전하! 괜찮으십니까?”

페델리우스가 다급한 손길로 음료를 내 손에 쥐여 줬다. 양손으로 받아든 음료를 급히 목으로 넘겼다.

“콜록. 하아…….”

“음식은 천천히 꼭꼭 씹어 드셔야 합니다.”

페델리우스가 내 등을 손으로 천천히 도닥여주며 말했다.

울컥, 제 잘못은 하나도 없다는 여상한 표정에 눈을 부릅떴다.

‘누구 때문인데!’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는 것이 얼마나 당황스러운지 알기나 하는가.

소리치고 싶은 생각을 꾹꾹 목 안으로 삼켜버렸다. 이 답답한 남자와는 대화가 힘들다.

톡톡 조심스레 두들겨주는 등에 긴 숨을 내뱉었다.

“괜찮으십니까?”

“…….”

두 번은 스테이크 못 먹겠다. 이 남자랑은 식사도 같이 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을 해버렸다.

나를 위한다는 건 알겠지만, 나는 이러한 다정함을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좋은 성격을 가지지 못했다.

‘아콰?’

푸른 빛무리가 식당 테라스 밖을 스쳐 지나갔다. 거의 반사적으로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황녀 전하?”

“졸려!”

“식사도 아직 다 못 하셨습니다. 조금만 더 먹고 가십시오.”

“졸려!”

다시 한번 크게 소리쳤다.

아콰를 봐야겠다. 방금까지 불안으로 떨리던 심장이 이번엔 흥분으로 거세게 날뛰기 시작했다.

밥 먹는 내내 한쪽에서는 아콰가 돌아오지 않을까 불안했다.

‘아콰가 맞는지 확인해야겠어.’

식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릴 수 없다. 내 유일한 친구다. 아콰가 없으면 나는 정말 이 저택에 갇히고 만다. 다락방에서처럼 또다시 혼자가 되는 거였다.

밤이 무서워 잠도 들지 못하던 그때와 똑같이.

“황녀 전하, 제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혼자서도 괜찮은데…….’

괜히 아콰를 들킬까 봐 조금 불안한 감이 있다.

“오늘도 제 방에서 잘 텐데 괜찮으십니까?”

‘……뭐?’

떨리는 눈으로 그를 올려다봤다. 페델리우스가 어쩐지 단호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페델리우스의 눈동자에 물가에 내놓은 어린아이를 보는 것 같은 걱정스러움이 엿보인다.

“피곤하실 테니 일단 모시겠습니다.”

‘아니! 난, 내 방에서 자고 싶다고!’

차마 소리치지 못하는 내 손을 붙잡은 페델리우스가 아까와 같은 속도로 느릿하게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마음은 급한데 걸음은 하염없이 느렸다.

내가 아까 이 속도로 걸어왔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망했어!’

생각했던 것이 전부 빗겨나갔다.

아콰를 확인하고, 다음 계획에 대해 상의할 시간이 필요했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하고 싶었다. 잡히지 않은 손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하는 수 없다.

“페데리우스!”

잡힌 손을 흔들며 그를 불렀다. 페델리우스가 우뚝 멈춰 섰다.

“예, 말씀하십시오.”

“내 방!”

“황녀 전하의 방 말입니까?”

“갈래!”

아무것도 모르는 해맑은 표정으로 소리쳤다. 페델리우스가 나를 가만히 쳐다봤다. 반응이 없는 것이 이상해 다시 한번 그의 손을 흔들었다.

“페데리우스! 내 방, 갈래!”

내가 말을 마치는 것과 동시에 페델리우스가 놀라운 표정으로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아무리 저택이라고 해도, 복도 한복판에서 말이다.

‘아, 이게 아닌데…….’

졸지에 내려다보게 된 페델리우스는 한층 커다래진 눈동자로 입까지 살짝 벌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는 내가 원하는 방향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는 듯했다.

이불 속에 몸을 파묻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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