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화 (21/99)

* * *

“아콰!”

방에 들어오자마자 문을 닫으며 작게 소리쳤다. 아콰가 돌아왔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그 자리에 더는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조금 전, 내 말을 들은 페델리우스는 감격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더니 이곳까지 손수 데려다줬다.

그리곤 조금 있다가 다시 오겠다며, 기특한 표정으로 자리를 떠났다.

‘결과적으론 원하는 걸 얻었지만…….’

어쩐지 뒤가 찝찝하다. 뭔가 포상이라도 받은 느낌이 아닌가. 묘한 기분에 머리를 긁적이며 침대 쪽으로 걸어갔다.

<주인님!>

아콰가 책상 뒤에서 뽈뽈거리며 날아왔다. 아무래도 혹시 몰라서 숨어있었던 모양이다.

언제나처럼 두 손을 펼쳐 앞으로 내미니 아콰가 자연스럽게 손 위에 앉았다. 아콰를 손에 든 채 신발을 벗고 침대 위로 올라갔다.

여전히 침대가 푹신하다. 피곤함에 하품하며 침대 헤드에 등을 기댔다.

“아콰, 너무 늦었잖아.”

투정부리듯 말을 툭, 내뱉었다.

거짓말이 아니라 정말로 온종일 신경 쓰여 죽는 줄 알았다. 아콰가 함부로 나를 버리고 가진 않을 줄 알고는 있다.

하지만 내겐 아콰밖에 없다. 아콰가 없으면, 또다시 혼자가 될 밤이 두려웠다. 그러니까 아콰를 신뢰하면서도 한편으론 불안했다.

<죄송해요, 그래도 밤이 되기 전에는 오려고 노력했어요!>

아콰가 콧바람을 훅 내뱉으며 허리춤에 손을 얹었다. 당당한 모습에 웃음이 절로 새어 나왔다. 나는 아콰와 있을 때가 가장 편하다.

아콰에겐 아무것도 숨기지 않아도 되고, 어떤 짓을 해도 나를 버리지 않을 테니까.

“응, 잘했어.”

칭찬하듯 검지로 머리를 톡톡 두드려줬다. 아콰가 포슬포슬한 웃음을 흘렸다. 불안했던 기분이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문득, 아콰에게 너무 의지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역시 혼자는 불안하다.

“그나저나 이리나는 아직 살아있나 보네. 아무런 느낌이 없어.”

<네, 아직 하루밖에 지나지 않은걸요. 주인님.>

아차, 그랬지. 민망함에 볼을 긁적이며 아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여튼 나도 성격이 급한 편이다.

아콰가 허공에서 뱅글뱅글 돌더니 방긋 웃는다. 마주 웃으며 몸에 긴장을 풀며 눈을 감았다.

“자르딘의 왕과는 뭘 하고 온 거야?”

<이야기만 했어요. 장난기가 심하신 분이셔서 조금 오래 붙잡혀있었지만요.>

“으음. 아콰, 있잖아. 왕은 내가 멀쩡하다는 걸 알고 있는 거지?”

감았던 눈을 뜨고, 베개를 끌어당겨 품에 안으며 아콰에게 물었다. 아콰가 내가 끌어안은 베개에 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왕께서 주인님을 보고 싶어 하는 것 같았어요.>

“그러고 보니, 페델리우스도 그런 말을 한 것 같은데…….”

아까 잔뜩 분한 기색으로 말했던 게 생각난다.

왕이 대체 왜 나를 만나고 싶어 하는지 모르겠다. 내게 특이한 점이라곤 아콰를 데리고 있다는 것밖에 없다.

하지만, 왕은 이미 아콰와 독대했다. 그렇다면 내게 더는 흥미가 없어야 맞다. 애초에 그것을 제외하면 나는 정말 아무런 힘도 없는 존재이니까.

“근데 도대체 왜 날 보자는 거야?”

<글쎄요, 듣지를 못했어요. 게다가 저도 그분의 심리는 잘 모르겠답니다.>

아콰가 허공에서 몸을 뱅글뱅글 돌리며 어깨를 으쓱였다. 얼굴엔 물음표가 여러 개 떠다닌다.

아콰의 말에 별생각 없이 수긍했다. 내가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사람이긴 했다.

그 남자가 지니고 태어난 색깔은 도저히 인간의 것이라고 보기엔 힘들었으니까.

“근데 왕한테는 왜 갔다 온 거야?”

<아, 일전에 제 힘이 와해한 적이 있었잖아요?>

“음, 그 추락사건 말이구나.”

<네네!>

내 말에 아콰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그때 일은 제법 아찔했다. 심장이 하늘에서 바닥까지 추락하는 경험을 맛봤으니까 말이다.

그 알 수 없는 물 덩어리가 아니었다면 그대로 뼈가 산산이 조각났을 것이 뻔했다.

“으으, 그건 진짜 무서웠어.”

베개에 얼굴을 비비며 웅얼거렸다.

그날, 뒤늦게 몰려오는 공포감이 무엇인지 뼈저리게 깨달았다.

사람이 다치면 한 박자 늦게 비명을 지르거나 울음을 터뜨리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에 비해 오늘은 기분 좋은 저녁이다. 조용하고, 한적했다.

<그래서 그걸 확인하러 갔어요. 아무래도 그냥 풀린 힘 같지는 않았거든요.>

“그게 왕에게 가면 해결돼?”

<네, 이유를 알았어요. 아무래도 자르딘의 왕께선 주인님이 이 나라를 벗어나는 게 내키지 않으신 것 같았답니다.>

아콰가 고운 미간에 드물게도 주름을 잡으며 말했다.

절로 고개가 기울어졌다. 무슨 소리야? 나로서도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이었다. 몇 번인가 말을 곱씹다 툭, 고개를 떨궜다.

내켜 하지 않는다고? 뭘? 내가 여길 떠나는 걸? 왜?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설마…….’

숙였던 고개를 다시 들어 아콰를 쳐다봤다. 아콰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아까부터 기운이 없어 보이는 이유를 대충 알 것 같다.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설마 네 힘을 와해시킨 게…….”

<……죄송해요.>

차마 말을 끝맺지 못한 내 목소리에 아콰가 고개를 푹 숙인 채 웅얼거리며 대답했다.

명확한 대답은 아니었지만, 유추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애초에 이 일에 아콰가 죄송할 건 없다. 왕이 무슨 존재인지는 몰라도 분명 아콰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상대였을 테니까 말이다. 애초에 아콰가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닌 나로선 왕의 앞에서 고개를 드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을 거다. 턱밑까지 숨이 차오를 정도로 막막해졌다.

‘그러니까 지금 아콰 힘을 써서는 왕국에서 나갈 수 없다는 소리지?’

왕은 아콰의 힘을 없앨 수 있다. 그렇다면 그도 나와 비슷한 신의 문양을 계승한 것이 아닐까?

내가 유추할 수 있는 건 이 정도였다. 그리고 신빙성은 제법 높다.

다만 똑같이 신의 힘을 받았더라도 왕은 아콰보다 더 높은 존재일 수도 있다. 왕에게는 분명 아콰가 어찌할 수 없는 힘이 있다.

“아니, 도통 이해가 안 되네.”

그 왕이 굳이 나한테 집착할 필요가 있던가? 손으로 머리카락을 헤집었다.

처음에는 페델리우스에게 나를 떠넘긴 줄 알았다. 하지만, 이렇게 신경을 쓰는 걸 보면 그건 또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관심이 있었으면 나를 페델리우스에게 보냈을 리가 없고.’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머리를 긁적이며 침대에 드러누웠다.

이 의문은 그 왕을 만나야 해결될 것이 분명하다. 페델리우스에게도 물을 수 없고, 아콰는 명확한 대답을 가져오지 못했으니까.

“만나기 싫어…….”

눈을 마주친 순간 머리부터 발끝까지 샅샅이 벗겨지는 느낌이 들었다.

수 초간의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말이다. 짧디짧은 시간에 꽁꽁 감춰왔던 비밀마저 들켰다.

상당히 껄끄러운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곤란해 하는 아콰를 보내자니 그것도 내키지 않는다.

베개를 끌어안은 채 침대 위에서 이리저리 뒹굴었다. 머리가 아프다.

“그럼 네가 만들어주는 그 물의 통로를 이용해서 다른 지역으로 가는 것도 안 되는 거야?”

<음……. 돌아오시기만 한다면 아마 상관없을 것 같아요.>

영구적으로 떠나는 것은 안 되지만, 다시 돌아오기만 하면 문제없다는 건가.

아마 아콰의 힘을 와해시켰다면, 아콰가 할 수 있는 능력을 다 쓸 수 있다고 보는 것이 맞겠지.

‘그렇다고 물과 평생 떨어져 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아콰부터가 물의 정령이니 내가 물과 떨어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머릿속으로만 생각하기엔 참 복잡한 일이다. 괜찮으면 오늘 저녁에라도 한번 시험해보려고 했는데.

뒷목을 긁적이다 아콰를 쳐다봤다.

아콰도 턱에 손가락을 댄 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밤에 갔다가, 해 뜨기 전에 돌아오는 건 괜찮을까?”

<네!>

“음, 그럼 오늘 가볼까?”

<지금요?>

“아니, 조금 있다가 페델리우스가 온다고 했어. 어제처럼 모두가 잠들면 나갔다 오자.”

<좋아요!>

지친 기색도 없어 보이는 아콰를 보며 마주 웃었다.

아콰가 누워있는 내 배 위로 올라와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런 아콰를 보다가 창문이 있는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아직 어둠이 완연히 내려앉지 않은 늦저녁이다. 밤처럼 무거운 적막이 내려앉기 전이라서, 눈을 감고 있으면 작은 인기척이 확실히 느껴졌다.

다락방에 있을 때와는 다르게 이곳은 달빛이 끝없이 스며든다. 가끔 창문 밖에서 새소리도 들린다.

밤에는 밤새가 울고, 아침에는 낮새가 운다. 펼쳐지는 풍경도 시시각각 바뀐다.

“아콰, 여기는 참 좋은 것 같아.”

작게 중얼거렸다.

좋은 집이라는 생각은 계속했다. 다만 참견쟁이들이 너무 많아서 익숙해지지 않을 뿐이다.

호의는 고맙지만, 그것도 마땅히 받을 사람에게만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들 덕분에 언젠가 나도 돌아갈 장소가 생겼으면 하고 바라게 됐다.

“나 이러다 평생 아콰랑만 사는 거 아닌지 몰라.”

<저는 좋아요, 평생 주인님과 둘이서 살아도.>

“하하하, 아콰는 솔직해서 좋아. 하지만, 나도 마찬가지야.”

내 말을 들은 아콰가 배시시, 입가를 허물며 웃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콰가 내 배 위가 마치 침대인 것처럼 털썩 눕는다. 워낙 공기만큼이나 가벼운 아콰였기 때문에 무겁거나 아프진 않았다.

묘하게 서글퍼 보이는 표정에 쿵, 심장이 큰 소리를 내며 울렸다.

“아콰……?”

<저는 기쁘지만, 주인님은 아닐 거예요.>

아콰가 배 위에서 데굴데굴 굴러 툭, 침대 위로 떨어졌다. 그리곤 다시 데굴데굴 굴러 내 얼굴 옆에 자리를 잡고 눕는다.

이렇게 기운 없는 아콰는 처음 본다.

걱정스러움에 몸을 돌려 아콰의 볼을 손가락으로 쿡 찔렀다.

“무슨 일 있었어?”

<주인님, 인간은 혼자선 살 수 없대요.>

뜬금없이 귓가에 조곤조곤 속삭이는 목소리에 인상을 찌푸렸다. 숨을 크게 들이켜며 보이지 않게 주먹을 쥐었다.

“내가 왜 혼자야, 아콰 네가 줄곧 곁에 있었는데.”

<사실 오늘 자르딘의 왕께 혼이 났어요.>

“아…….”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려 열었던 입을 급히 닫았다.

아콰가 문을 한번 힐끔 보더니 말없이 내 손등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떠올랐던 문장이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오늘 아침에는 아콰가 나가기 전에 숨겨주고 간 덕분에 저들에게 문양을 들키는 불상사는 없었다. 지금은 아콰가 들어가면서 숨겨주었지만 말이다.

‘망할 왕! 대체 아콰한테 무슨 말을 한 거야?!’

묘하게 힘이 없어 보이더니 아예 흐물흐물한 표정으로 사라졌다.

사라져버린 아콰가 눈앞에 아른거리고 신경 쓰였다. 하지만, 문은 노크를 끝내자마자 열렸다.

여는 패턴을 보아 페델리우스인 듯했다. 메리는 보통 두세 번은 노크하고 문을 여니까 말이다.

“황녀 전하.”

‘역시나.’

가만히 누운 채 고개만 슬쩍 돌렸다. 어느새 머리를 다 말린 페델리우스가 단정한 차림새로 방에 들어왔다.

그는 항상 허리춤에 검을 차고 다닌다. 자신의 저택인데도 말이다.

“아직 잠 안 주무셨습니까?”

“웅.”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곤 테라스로 시선을 옮겼다.

아콰 때문에 덩달아 심각해졌다. 페델리우스가 끌고 간다면 결국 왕을 결국 만나게 되겠지만 가서 내가 한마디나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페데리우스, 왜?”

짧게 묻자 페델리우스가 옆구리에 끼고 있던 뭔가를 꺼내 보였다. 네모나고, 푹신푹신하게 생긴…….

‘베개?’

갑자기 웬 베개지? 떨떠름한 얼굴로 누운 채 페델리우스를 올려다봤다. 페델리우스가 코앞까지 성큼 다가왔다.

“황녀 전하, 피곤하지 않으십니까?”

“응.”

“피곤하십니까?”

“응.”

“……안 피곤하십니까?”

“응.”

내 성의 없는 대답에 페델리우스의 입이 닫혔다.

조금 졸리긴 한데, 피곤한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사실 한 일도 없으니 피곤한 게 더 이상하긴 하지만.

그가 나를 잠시 보더니 베개를 구석에 있는 소파에 올려둔다. 누운 채 고개를 치켜들고 미간을 찌푸렸다.

‘왜 저기다 두는 거야?’

떨떠름한 시선으로 페델리우스의 움직임을 쫓았다.

“황녀 전하께서 잠드시면, 저도 자겠습니다.”

“자?”

“네.”

페델리우스가 깔끔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잔다고?!’

다급히 누워있던 자세에서 이불을 끌어당겼다.

“방에서 자고 싶어 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말도 안 돼.

‘……그렇다고 네가 와도 된다는 이야긴 아니었다고!’

맘 같아선 벌떡 일어나서 소리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페델리우스가 아예 침대 구석에 앉으며 자리 잡았다. 정말 잘 때까지 있을 셈이다.

‘조금 있다가 나가려고 했는데!’

생각했던 계획이 산산조각이 났다. 그렇다고 지금 아콰와 대화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안된다고 해? 그렇다고 물러날 심지 약한 인간은 아니겠지만.

‘아니면 자는 척하다가 쟤가 자면 나가야 하나?’

이게 그나마 현실성이 있다. 같은 침대가 아니라면 깰 확률도 낮다. 중간에 깨는 편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들키지 않으면 되는 일이다.

‘아니면 저번처럼 또 어디 주저앉아있으면 되겠지.’

저번에도 별 의심을 하지 않았으니 이번에도 하지 않을 거다. 걱정하는 마음을 이용하는 것 같지만, 별도리가 없다.

페델리우스를 향해 입을 벌렸다 닫았다. 하고 싶은 말은 목까지 차올랐지만, 당장 할 수 있는 말은 몇 마디 없었다.

말없이 그냥 눈을 감았다. 벗어나려면 자는 척을 해야 한다.

꾹 감은 눈꺼풀이 바르르 떨리는 게 느껴졌다. 몸에서 힘을 빼려고 노력했다.

얼굴 위로 시선이 느껴져서 그럴수록 도리어 힘이 들어갔다. 뭐 하나 쉽지가 않다.

“안녕히 주무십시오, 황녀 전하.”

페델리우스가 엉망진창으로 흩어진 내 머리카락을 정리해주며 말했다.

실수로 닿은 손끝에, 순간 심장박동이 조금 빨라졌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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