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화 (22/99)

* * *

<주인님, 주인님!>

“으음…….”

<쉬잇. 주인님, 어서 일어나세요!>

귓가를 간지럽히는 작은 목소리에 몸을 비틀다 느리게 눈을 떴다.

흐릿한 시야에 손등으로 눈을 비볐다. 몸을 옆으로 기울인 채 자고 있었나 보다.

눈을 뜨니 창문이 보였다. 그리고 눈앞에는 이불 속에 파묻혀 얼굴만 쏙 내민 아콰가 있었다. 아마 아콰의 몸에서 자체적으로 나는 빛을 가리려는 듯했다.

얼굴만 쓱 내민 표정이 귀여워 소리 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아콰가 볼을 불퉁하게 부풀린다. 애써 입을 틀어막고 웃음을 참았다.

그래 봐야 어깨가 들썩이는 건 막을 수 없었지만 말이다.

<주인님, 남자 인간이 잠이 들었어요.>

“아! 맞다.”

그러고 보니 자는 척만 한다고 하곤 진짜로 잠이 든 모양이다. 머쓱함에 뒷머리를 긁적이곤 조용히 침대에 앉았다.

고급침대라 그런지 다락방에 있던 것과는 다르게 삐걱거리는 소리는 나지 않는다.

“창문 열면 들킬까?”

작은 목소리로 소곤소곤 말했다. 몇 번이고 페델리우스의 기척을 살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콰가 손가락을 입술에 대어 보이곤 허공에 손을 휘저었다.

투명하고 얇은 물의 장막이 페델리우스의 근처에 펼쳐졌다. 처음 보는 기술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보면 볼수록 신기하고 경이로운 힘이다. 아콰가 가르쳐준다고 했던 것 같은데…….

<이제 창문이 열리는 소리나 바람이 저 인간에게 가지 않을 거랍니다. 물론, 장막이 얇다 보니 큰 소리는 막을 수 없겠지만요.>

“좋아, 얼른 가자. 어디로 가야 해?”

<이곳 뒤뜰에 연못이 있었답니다. 거기로 가서 통로를 만들 거예요!>

아콰가 빠르게 내 소맷자락에 쏙 들어오며 말했다.

아무래도 저 물의 장막은 빛을 막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아니면 아콰가 조심스러운 것이든가.

바닥엔 카펫이 깔려있어서 맨발로 걸으면 발걸음 소리도 나지 않았다. 급히 창문을 열고 그 위에 맨발로 올라섰다. 다행히 바람은 제법 잔잔했다.

“아콰.”

<주인님. 제게 늘 해주시던 것처럼 양 손바닥을 앞으로 모아주시겠어요?>

“이렇게?”

뜬금없는 요구에도 곧바로 아콰의 말대로 손바닥을 펼쳤다. 아콰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대로 공기 중에 있는 수분을 끌어 모아서 물을 만든다고 상상해보세요.>

“공기의 수분을 모아서?”

창문에 올라탄 채 손바닥을 노려보며 끙끙댔지만, 물이 만들어질 기미는 보이질 않는다.

공기에서 수분을 빼 오라는 게 무슨 뜻이지. 나를 보던 아콰가 내 코앞까지 다가온다.

<아, 그러면 눈을 감고, 주변에서 물을 조금씩 모아서 물 덩어리를 만드는 상상을 해보세요!>

“으응, 잠깐만.”

아콰의 말대로 눈을 감았다. 내려앉은 어둠에 푸른 빛이 모이는 상상을 했다.

처음엔 잘 되지 않았지만, 조금 더 눈을 꽉 감고 집중하니 주변이 메마르기 시작하는 느낌이 들었다.

공기가 건조해진다.

<성공이에요! 그 느낌을 유지하면서 천천히 눈을 뜨세요.>

눈앞이 조금 밝아진 기분에 눈꺼풀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손바닥 위에는 아콰만 한 크기의 물 덩어리가 둥실둥실 떠 있었다.

주변이 메마른 느낌이 들었는데, 아무래도 공기 중에서 수분을 빼 온다는 것이 이런 의미인 듯했다.

어쩐지 신기한 기분이 들어 모인 물 덩어리를 요모조모 살폈다.

살짝 혀를 대어 핥았다. 정말 물이었다. 눈이 한층 크게 뜨였다. 제법 시원하기까지 하다.

<이제 손바닥에 물을 모으는 느낌으로 등에 날개를 만든다고 생각해보세요!>

“……복잡하네.”

<대부분 원리는 같으니까 조금만 응용해서 여러 방면으로 이용하시면 된답니다.>

아콰의 말을 들으며 다시 눈을 감았다. 등에 날개가 돋아나는 느낌은 금세 상상할 수 있었다.

아콰가 몇 번이고 해줬고, 그 움직이던 감각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조금만 집중하니 등에서 또 팔이 돋아난 느낌이 들었다. 천천히 눈을 떴다.

<와, 성공하셨어요! 주인님은 역시 대단하세요.>

“칭찬해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아.”

괜히 얼굴이 붉어져 손으로 쓸어내리며 말했다. 페델리우스와 메리도 쓸데없는 걸로 자꾸 칭찬하는데 등줄기에 소름이 돋는다. 이유를 알 수 없이 몸이 부르르 떨렸다.

‘아콰에게는 그 정도까진 아닌데…….’

영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라 그런가. 사실 칭찬이 칭찬같이 들리지도 않았다.

<뒤뜰은 제가 안내할게요.>

“응.”

아콰가 허공에서 한 번 뱅그르르 돌고 부드럽게 날아오른다. 날아가는 내내 물소리가 귓가를 자극했다. 아콰는 금세 뒤뜰로 향했다.

뒤뜰엔 연못이 제법 크게 있었는데, 상당수의 물고기가 유영하고 있었다.

“흐음, 저런 작은 데에도 생선이 사는구나. 생선은 바다나 강에만 사는 거 아니었어?”

“아! 연못에는 인간들이 관상용으로 풀어둔 물고기만 살아요. 보통은 붕어나 잉어로 불리는 화려한 색상의 고기예요.”

아콰의 설명을 들으며 연못 바로 위까지 내려갔다. 물속에서 유영하는 화려한 생선들이 여유로워 보인다.

몇몇은 잠을 자는 듯 미동이 아예 없다.

‘그래서 여기서 어떻게 가면 되지?’

연못 위에 아슬아슬하게 떠있긴 하지만, 연못 안에 길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어딘가와 연결된 것도 아닌 듯했다.

연못이란 그저 구멍을 파서 그 안에 물을 담아놓은 느낌이었다.

“아콰, 이제 어떻게 하면 돼?”

<길은 제가 만들 거랍니다! 주인님께서는 안으로 뛰어들어주시면 돼요.>

“……뭐?”

<연못 속으로 뛰어들어주세요!>

아콰가 소리치는 것과 동시에 연못에서부터 옅은 푸른 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떨리는 시선으로 아콰를 쳐다보니 아콰가 손가락으로 연못을 가리키고 있다.

‘물에 뛰어들라고?’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일이다. 기껏해야 최근 메리의 성화에 못 이겨 욕조에 몸을 담근 것이 물에 가장 깊이 들어가 보았던 순간이다.

빛이 점점 밝아진다. 조금만 더 밝아지면 눈치챌 사람이 있을 거다.

“후읍.”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날개를 없앴다. 풍덩. 그 소리를 마지막으로 온몸이 차가운 물에 휩싸였다. 부드러운 것이 기분 나쁘지 않게 몸을 감쌌다.

<주인님, 눈을 뜨세요!>

눈을 질끈 감고 숨을 멈추고 있으니, 아콰의 목소리가 들렸다.

눈을 뜨라고? 이 상태에서? 아콰의 말이니 문제는 없겠지만…….

‘역시 무섭네.’

앞이 보이지 않는 것도, 언제 쉴 수 있을지 모를 숨도 말이다. 천천히 눈을 떴다.

‘어?’

단숨에 물이 눈으로 들어올 줄 알았는데 눈이 아프지도, 눈에 물이 들어오지도 않았다. 놀라움에 눈을 커다랗게 떴다.

눈앞에는 아콰가 웃는 표정으로 떠 있었다.

<말도 하실 수 있을 거랍니다! 물론 숨도 쉬실 수 있어요. 물은 결코 주인님께 해를 가하지 않을 거예요.>

‘숨을 쉴 수 있다고?’

천천히 숨을 내뱉었다. 등줄기가 뻣뻣하게 굳었다.

‘괜찮아.’

애써 긴장과 두려움을 풀며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당장에라도 숨 쉬는 것을 순식간에 막아버릴 것 같았던 물은 나를 덮치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 거리를 두는 느낌이다.

아콰가 말했던 대로 물은 내 폐를 뚫고 들어오지 않았다.

“아아.”

입을 벌려도 물이 입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놀란 눈으로 아콰를 쳐다보다 몸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물이 몸에 닿는 감각은 확실히 있다.

하지만 숨을 쉬는 데도, 말을 하는 데도 불편함은 없다.

“와, 이 연못 넓기도 하지만 깊기도 엄청 깊구나.”

땅에 발을 디뎠는데도 불구하고, 머리가 수면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몇 번인가 아콰를 통해서 봤던 연못과는 크기부터가 차이 났다.

<주인님, 이 구멍 안으로 한 번 더 뛰어드세요.>

‘이건 또 언제 생겼어?’

연못 바닥에 생긴 커다란 푸른빛 구멍을 떨떠름하게 바라봤다. 아콰가 만들어준 거니 위험하지야 않겠지만…….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구멍 안으로 발을 들이밀었다.

다음 순간 연못에서 빠져나온 푸른 빛 한 줄기가 손목에 팔찌처럼 링을 만들었다.

그것에 의문을 가지기도 전에 나는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후아아아악!”

이상한 비명이 막을 새도 없이 입에서 튀어나갔다.

수직하강이라는 소리는 없었잖아?!

이럴 줄 알았으면 날개 없애지 말걸! 뒤늦은 후회가 고개를 내밀었다.

“으으.”

바닥으로 떨어지다 어느 순간 하늘로 튕겨 오르더니 다시 바닥으로 추락했다. 다행히 아프진 않다.

끙, 숨을 내쉬며 바닥에 앉아 뒷머리를 긁적였다. 몸이 축축하다. 기분 나쁜 감각은 아니었다. 주변 공기가 바싹 메마른 것이, 익숙한 느낌이다.

흙바닥에서 몸을 일으키며 고개를 들었다.

“여긴…….”

눈앞에 펼쳐진 것은 메마른 땅과 죽어가고 있는 작물들. 황량한 토지와 수분기가 느껴지지 않는 뻣뻣한 공기.

아아, 나는 이곳을 알고 있다. 내게는 지독히도 잔혹한 공간이었던 곳.

“트럼프 제국이네.”

<네, 트럼프의 수도 바로 옆 마을 리첼이랍니다. 그나마 물이 있는 공간이 여기밖에 없었어요.>

“물?”

찰박. 물소리에 다시 시선을 내렸다.

물……이라기보단,

“웅덩이?”

새까만 것이 차라리 웅덩이에 가까웠다. 게다가 깨끗하지도 않다. 자세히 보니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다. 거기까지 생각함과 동시에 급히 발을 뒤로 물렸다.

“이런 작은 양으로도 옮겨져?”

<네, 많은 물이 필요한 건 시작점뿐이에요.>

그래도 너무 작다. 손바닥 한 뼘 정도의 물웅덩이였다.

슬쩍 바닥을 보다가 기지개를 켜며 몸을 풀었다. 워낙 더운 곳이라 축축했던 옷이 금세 마르고 있다.

아콰에게 말려달라고 해도 괜찮지만 이대로도 나쁘지 않다.

그나저나…….

“아콰, 아까 구멍에 빠지기 전에 손목에 이상한 게 달렸어. 이거 물로 만든 팔찌인가?”

하필이면 또 문양이 새겨진 오른손이다.

손을 흔들며 아콰에게 보여주니 아콰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콰가 제 양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죄송해요, 주인님……. 얼른 볼 일만 보고 돌아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손에 묻혀 아콰의 목소리가 웅얼거렸다. 아콰의 푸른색 얼굴 위에 붉은 홍조가 떠올랐다.

“뭐가 죄송해. 괜찮아.”

뭔지는 몰라도, 아콰가 한 건 아니라는 거다. 그렇다면 짐작 가는 사람이라곤 한 명뿐이다.

게다가 나 역시 오래 있을 생각도 없었다. 이런 기분 나쁜 나라에는 말이다.

피부가 메마르는 느낌이 든다. 공기가 건조하다.

느릿하게 주변을 둘러봤다. 제법 떨어진 거리니 시차가 조금 있을 거라는 생각은 했다.

이곳은 초저녁이었다. 그리 어둑하지 않은 밤하늘이 내려앉은 공간이었다.

한밤중이던 곳에서 갑자기 초저녁인 곳으로 떨어지니 기분이 영 이상했다.

“여긴 이제 저녁이네.”

아콰와 이동한 곳은 마을 리첼의 한구석인 듯했다.

“수도가 아닌 게 좀 아쉽지만. 가볼까?”

아콰가 만들어준 로브를 뒤집어쓰고 걸음을 옮겼다. 물로 만든 로브는 푸른빛을 띠고 있어서 이 세상의 것 같지 않은 색이었다.

눈에 띄지 않을까 싶지만, 어차피 금방 사라질 테니 상관없는 일이다.

“아콰, 분명히 여기에도 강이 지나가는 길이 있었지?”

<네! 기억하고 계시는군요. 조금 더 북쪽에 있는 마을에서 흘러내려 오는 강은 수도를 지나, 이곳 리첼을 지나고 있답니다.>

기억하지 못할 리가 있나.

아콰가 들려준 이야기들은 모두 머릿속에 들어있다. 다락방에 갇혀서 할 일이라곤 아콰에게 교육을 받는 것뿐이었으니까.

아콰는 정말 다양한 강의를 해줬는데, 종종 제국의 지도를 보여주기도 했다.

“나 마을 구경은 처음이야.”

작게 웃으며 마을 안으로 발을 들였다.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시장이었다. 과일 몇 개가 놓여있거나 했지만, 시장은 한산했다. 손님도 없고, 판매하는 사람들도 몇 없다. 과일도 바싹 말라 쪼글쪼글한 것들뿐이었다.

한창 저녁때인 시간이었는데도 시장은 조용했다. 시장뿐만이 아니다. 몇 안 되는 판매상들의 얼굴도 어둡다.

가격이 적혀있긴 하지만, 어느 정도인지 감도 잡히질 않는다.

페델리우스와 함께 걸었던 왕국의 시장길과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열린 가게도 적다.

생각했던 분위기가 아니라 조금 넋을 잃고 주변을 구경했다.

툭, 다른 곳을 보고 걷다가 사람과 부딪쳤다. 메마른 남자였다.

털썩. 그리 세게 부딪친 것도 아닌데 그는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으며 주저앉았다.

“아, 미안해.”

급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물……. 물을 줘…….”

남자가 반쯤 풀린 눈으로 중얼거렸다. 바싹 말라 퀭한 눈은 당장에라도 죽을 기세였다.

그의 팔은 상처투성이였는데, 몇 번이고 날카로운 것으로 찔러댄 흔적이 있었다. 미간이 절로 좁아졌다.

‘자해?’

치료도 제대로 못 받았는지 고름이 생기고, 벌레까지 붙어있는 곳도 있다. 꿈틀거리는 것이 징그러워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넘어뜨렸으니 일으켜 세워주고 싶지만, 어쩐지 눈이 맛이 갔다.

“저기, 괜찮아? 일어날 수 있어?”

<내버려두시고 얼른 가요, 주인님.>

로브 안쪽에 숨어있던 아콰가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귀 옆에서 바로 속삭인 덕분에 살짝 몸이 떨렸다.

내버려 두라고? 눈동자만 굴려 아콰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아콰가 제법 심드렁한 표정으로 남자를 보고 있다.

<이 인간은 어차피 죽을 거랍니다. 인간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수분조차 몸 안에 남아있지 않아요. 간신히 살아있는 수준이네요. 오늘 밤이 한계겠어요.>

“그래?”

아콰가 그렇게 말하니, 아콰 말대로 하는 게 옳겠지. 여태 아콰의 말은 틀린 적이 없었으니까. 어쩐지 심장박동 소리가 빨라진 것 같다.

이상함에 손을 들어 가슴께를 매만지다 남자를 피해 걸음을 옮겼다.

“물, 제발 물을…….”

남자가 잔뜩 쉬어버린 목소리로, 마치 끊어져 가는 숨을 내뱉듯 말했다.

힐끗, 다시 한번 그를 돌아봤다. 그리고 한 번 더 시장을 훑었다.

아무도 죽어가는 사람에게 신경 쓰지 않는다.

이게 당연한 건가. 하긴 곧 죽을 사람에게 굳이 신경 쓸 필요는 없겠지만.

“아콰, 강은 아직 남아있지 않아?”

<네, 주인님이 떠나신 지 얼마 안 되었으니까요.>

“근데 왜 강에 안 가고 여기서 물을 찾는 거야?”

남자를 힐끗 바라보곤 다시 강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가는 도중 시장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살폈다. 자세히 보니 전부 입술이 메말라 있고, 갈증에 시달리고 있는 듯했다.

아마 내가 바라던 풍경일 거다. 어쩌면 곧 펼쳐질 풍경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왜,

“왜 심장이 이렇게 두근거리는 거야.”

마치 경보를 울리듯 삐삐거리는 이명까지 귀에서 울렸다. 기분 나쁜 심장의 울림이다. 미간을 찌푸리며 걸음을 조금 더 빨리했다.

강에 물이 있는데 못 가는 건 저 남자가 멍청해서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뭔가를 호소하던 메마른 눈동자가 계속해서 눈앞에 어른거린다. 인상을 찌푸렸다.

‘왜지?’

답답함에 뒷목을 긁적였다.

<강은 저쪽이에요, 주인님!>

“아, 응.”

고개를 숙인 채 걷는 내게 아콰가 소리쳤다. 아콰의 손가락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머지않아 물 냄새가 맡아졌다.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걷는 속도를 조금 더 빠르게 했다.

“……아.”

강에 도착했을 때 내 눈앞에 펼쳐진 것은 인간의 또 다른 잔혹한 일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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