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화 (24/99)

* * *

쿵, 어딘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새까만 꿈이다.

이것은 내가 종종 꿔왔던 꿈이었다. 아콰도 없이 그저 새까맣기만 한 세계에 나는 언제나 혼자 서있다.

이것이 꿈이라고 깨닫는 것은 늘 기시감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난 이런 장면을 몇 번이고 경험했다.

눈을 깜빡이면, 나와 똑같은 머리카락 색을 가지고 있는 어머니가 부풀어 오른 배를 쓰다듬고 있다.

한없이 증오스러운 남자의 핏줄일 텐데도 불구하고, 그저 사랑스럽다는 듯이.

‘이번엔 과거부터 시작인가.’

멍하니 생각했다.

이 꿈은 어머니가 죽는 장면만 보여줄 때도 있고, 때때로 그보다 먼 과거로 돌아가기도 하며, 어느 때는 중간부터 시작하기도 했다.

하지만 끝은 언제나 똑같다. 나는 늘 마지막에 죽음을 본다.

이곳에서는 다리가 아프지 않다. 그러니까 얼마든지 서있을 수 있었다. 멍하니 몸에 힘을 빼고, 가만히 어둠 속의 어머니를 바라봤다.

내 어머니는 나를 모르겠지만, 나는 어머니를 알고 있다. 더는 만날 수 없는 존재가 된 어머니를 나는 아콰를 통해 봐왔으니까.

그러니까 이건 어디까지나 단지 일방적인 만남이다.

어머니는 내가 뱃속에 있을 때 다양한 책을 읽어주진 않았지만, 매일 밤 자신이 여행해온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건 때로는 아주 슬픈 이야기이기도 했고, 또는 유쾌한 이야기로 바뀌기도 했다.

집시로서 전 세계를 떠돌아다니며 겪은 이야기를, 어머니는 하나하나 내게 말해주었다.

인간의 형체도 가지지 못했던 내가 과연 그 이야기를 얼마나 알아들었을지는 의문이지만.

어머니를 볼 수 있는 물거울은 아주아주 소중한 보물상자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힘들 때마다 아콰를 통해 과거를 엿보았다.

어머니와 뱃속에서 함께한 십 개월의 일생을 그저 바라만 보는 거다.

다정한 어머니와 사랑스럽다는 듯 내 이마에 입을 맞춘 그 가슴께가 몽글몽글해지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뭔가를 미워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어쩌면 그 분노가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나는 아콰가 그 장면을 보여준 후로 악몽을 자주 꿨다. 계속, 끊이지 않고 꿨다.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는 어머니와 환호하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 가장 끔찍한 것은 찾아갈 무덤조차 없다는 사실이었다.

황제인 아비는 싫다는 어머니를 강제로 안았으며, 어머니를 가두다 질리자 성에서 쫓아냈다.

그리고 종국엔 어머니는 붙잡아 잔인하게 죽이고, 시체조차 짐승에게 뜯어먹게 했다.

죽은 후에도 편안할 수 없는 잔악무도한 행태였다.

단 한 번도, 제대로 말조차 걸어본 적 없는 사람이었다. 지금은 그 온기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물거울을 통해 비치는 과거를 엿볼 뿐이다.

그런데도 오랜 시간 보다 보니 이입해버리고 말았다. 단 삼 일간 행복했던 그 작은 갓난아기에게, 뱃속에서 십 개월간 웅크리고 있었을 나에게 말이다.

툭, 데구르르.

언제나와 똑같이 끝을 보여주듯, 몸과 분리된 목이 내 앞에 굴러왔다. 이건 몇 번째 꿈일까. 지독히도 현실 같고, 꿈속에서조차 나는 이것에 닿을 수 없다.

닿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오늘도 그 감지 못한 눈을 감겨주기 위해 몸을 굽히며 손을 뻗는다.

[물……. 물을 줘…….]

[무, 무우…….]

순간, 어머니의 목 위로 물을 갈구하던 바짝 마른 남자와 화마에 삼켜졌던 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흐아악!”

비명을 지르며 눈을 떴다.

“흐읍. 흐읍.”

한껏 거칠어진 호흡에 가슴께를 움켜쥐고 숨을 내쉬길 반복했다. 불안정한 호흡에 눈앞이 흐릿해지다 돌아오길 반복했다.

“황녀 전하!”

나를 부르는 큰 목소리가 들렸지만, 고개를 들 여력도 없었다.

손바닥은 따끔거리고, 눈앞은 흐릿했다. 몸이 달달 떨렸다. 떨리는 이유를 알 수 없다.

하지만 등에는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어머니가 죽어가는 모습은 자주는 아니지만, 잊을 만하면 늘 꿈으로 보던 것이었다. 그것에도 익숙해져서 이렇게 기겁한 적은 없다. 적어도 최근에는 없었다.

밝아진 시야에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그 사람들은 대체 왜 나온 거야.’

도대체 이유를 알 수 없다. 애착을 가진 사람들도 아니고, 아주 잠깐 마주쳤을 뿐이었다. 꿈에 나와 나를 질겁하게 만들 이유가 없다.

“황녀 전하, 제 목소리 들리십니까?”

힘없이 고개를 들었다.

호흡은 여전히 평소보다 빠르다. 아콰가 필요해. 아콰가 보고 싶어. 아콰와 대화를 하고 싶었다. 이럴 때 나를 진정시킬 수 있는 건 아콰뿐이었으니까.

페델리우스가 나를 유심히 살피더니 조금 다급한 손길로 내 손을 잡았다. 굳은살 박인 커다란 손에서 온기가 느껴졌다.

페델리우스의 손이 뜨거울 정도라는 걸 깨닫고 나서야 내 손이 차가웠다는 걸 깨달았다.

아콰와 대화를 한 것도 아니고, 아콰의 물소리를 들은 것도 아닌데 가쁘던 호흡이 진정되는 것이 느껴졌다.

“괜찮으십니까?”

“……으응.”

고개를 저었다. 괜찮지 않다. 심장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감각은 기분 나빴다. 마주친 눈은 소름 끼쳤고, 털이 곤두설 정도였다.

페델리우스의 어깨에 고개를 숙여 이마를 맞댔다. 천천히 눈을 감았다.

호흡은 이제 거의 정상범위로 돌아온 후였다.

“어디 아프…….”

내 손을 천천히 만지며 말을 하던 페델리우스가 말을 멈추곤 내 손을 뒤집었다.

어제 나무 위에 올라갔다가 베인 상처가 딱지가 진 채 손바닥을 검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따끔거리더니 결국 이런 꼴이다.

“대체 어디서 다치셨습니까?”

페델리우스가 한껏 커다래진 눈으로 내게 묻는다. 말없이 어깨에 묻은 이마를 떼고 슬금슬금 시선을 피했다.

그냥 다쳤다고 변명하기엔 손바닥에 나무 가시가 박혀있다. 도대체 모르고 잔 것이 더 신기할 정도다.

어젯밤에는 그렇게 안 아팠는데…….

“이 근처에 나무도 없는데 도대체…….”

나무인 걸 아는구나. 숨을 삼키며 고개를 푹 숙였다.

하긴, 산전수전 다 겪은 기사가 모르는 게 더 이상하긴 하다.

경악한 목소리에 걱정스러움이 한껏 담겨 있다. 변명하고 싶은데 마땅히 할 변명이 없다. 심심해서 나무에 기어올랐다고 할 수도 없고, 제국을 다녀왔다고 할 수도 없다.

적당한 변명을 찾기 위해 머리를 굴리다 포기했다. 확실히 포기하면 편하다.

“일단, 약을 가져오겠습니다. 잠깐만 기다려주십시오.”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빠르게 뛰던 심장은 어느 정도 정상궤도를 찾았다.

나가는 페델리우스를 보곤, 고개를 숙이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 무엇이 거슬리는지는 몰라도 어쨌든 뭔가 어긋났다는 건 대충 알겠다.

‘너무 빨리 제국에 가본 건가?’

조금 더 시간을 가지는 편이 좋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디가 어긋난 건지 잘 모르겠다.

‘피곤했는데 무리를 한 걸지도 몰라,’

의견을 묻기 위해 아콰를 부르려다가 인기척이 느껴져 그저 헤드에 기댄 채 가만히 있었다.

달칵. 문은 금세 열렸다.

열린 문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들어온 건 페델리우스뿐만이 아니었다. 메리도 함께였다.

페델리우스에게 무슨 얘기라도 들었는지 메리는 토끼만큼이나 동그랗게 뜬 눈으로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하얀 이불 위에 손바닥을 펼쳐 놓고 있으니 붉은 상처가 적나라하게 눈에 들어올 거다.

더 커지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메리의 눈이 한층 더 커졌다.

상처가 보이지 않도록 천천히 손바닥을 뒤집었다.

“황녀님…….”

어느새 눈물이 차오르는 메리의 눈을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큰일 났다. 망했어.

나는 그녀가 우는 걸 감당할 자신이 없다. 손바닥이 아픈 건 둘째 치고, 괜히 들켰다는 생각이 든다.

‘페델리우스, 저 멍청이!’

이런 식으로 울 것이 뻔할 애를 뭐 하러 데려온 건지. 누군가 우는 모습은 자기도 보기 싫을 게 아닌가.

“많이 아프신가요? 지금은 괜찮으세요?”

혼을 내거나 소리를 지를 줄 알았던 메리는 오자마자 내 앞에 꿇어앉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그렇게 물어왔다.

피하듯 창문 쪽으로 돌렸던 고개를 다시 메리에게 향했다. 조금 의외다. 메리의 손이 덜덜 떨린다.

손의 온기가 지독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따뜻했다.

‘누군가 아픈 것에 굉장히 민감한 성격이구나.’

메리는 내가 아픈데도 늘 자신이 더 아픈 것처럼 군다. 그녀는 이상하게도 타인의 삶에 감정이입을 많이 하는 듯했다.

“어떡해. 깊게 베이셨어요.”

인상을 찡그린 채 발을 동동 구르는 메리의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같은 인간일 텐데, 하나밖에 없는 강줄기를 막아두고 물을 팔던 병사들과 메리의 모습은 너무도 다르게 느껴졌다.

어느 부분이 다르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설명하지 못하겠지만.

“메리, 당황한 건 알겠지만 일단 치료를 할 테니 거기서 좀 비키도록.”

“아, 네. 알겠습니다, 주인님.”

메리가 조심스럽게 내 손을 놓으며 뒤로 물러났다. 페델리우스가 주저앉으며 의료도구로 보이는 것들을 침대 위에 쏟아냈다.

뭔지는 몰라도 정말 다양한 약이 있었다. 척 보기에도 쓸모없어 보이는 약품도 말이다.

‘뭘 이렇게 쓸어 담아 온 거야?’

붕대는 그렇다 쳐도 아무리 봐도 부목용으로 보이는 나무막대기는 왜 껴있는 걸까. 손가락이 부러진 것도 아니고 말이다.

페델리우스가 내 손을 조심스레 잡았다. 내 상처를 살피던 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나도 내 상처를 가만히 내려다보다 눈길을 돌렸다. 붉은색을 보니 어제의 그 피 웅덩이가 떠오른다. 고개를 드니 앞에는 메리가 있었다.

메리는 내 시선을 뭐라고 생각했는지 갑자기 소맷자락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짠!”

‘……응?’

“치료를 잘 받으시면 메리가 인형을 드릴게요!”

메리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내 눈앞에 꺼낸 물건을 들이댔다. 고급스러운 천으로 만든 인형이었다.

두 귀가 툭 튀어나와 있는 분홍색 토끼였다.

‘너덜너덜한데……?’

어디서 사왔는지 모르겠지만, 팔다리가 허술하게 붙어있다.

눈은 삐딱하고 저 표정은 웃는 건지 우는 건지도 모르겠다. 한마디로 못생겼다. 게다가 옷도 대충 천을 덧대어놓은 것 같은 느낌이다.

그래도 몸은 성인인 내게 이런 걸 주고 싶을까. 멀뚱히 바라보고 있는데 손바닥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아!”

따끔거림에 몸을 떨었다. 반사적으로 손을 빼기 위해 힘을 줬다. 하지만, 페델리우스의 손이 더 빨랐다.

그가 아프지 않게 내 손목을 꽉 붙잡고 팔을 고정했다.

“금방 끝내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페델리우스가 날카로운 것으로 가시를 빼낸다.

날카로운 통증에 얼굴을 찌푸리며 몸을 파드득 떨었다. 무언가를 뿌리니 따갑다. 그 위에 페델리우스가 붕대를 감았다.

“황녀 전하, 어젯밤에 어디 다른 곳을 가셨습니까?”

페델리우스가 붕대를 잘 여미곤 내게 물었다. 목소리가 제법 서늘하다. 페델리우스의 눈을 피하며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붙잡힌 손을 빼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내 행동에 페델리우스의 눈이 한층 더 구겨졌다. 미간에 생긴 골이 깊다.

차라리 화를 내면 마음이 편할 텐데. 무언의 시선에 메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메리!”

‘어떻게 좀 해봐…….’

메리 쪽으로 슬금슬금 몸을 움직였다. 화를 안 내던 애가 화를 내니까 무섭다.

평소 성격을 봐선 때리지 않겠지만, 저게 연기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접지 않았다.

“……하아. 죄송합니다.”

페델리우스가 커다란 손바닥으로 제 얼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찌푸린 미간은 여전히 그가 기분이 좋지 않다고 말해주었다.

“시간이 되어서, 왕궁에 다녀오겠습니다.”

“응, 잘 가!”

손을 흔들어 인사를 건네니 페델리우스의 입가가 쓱 풀어진다. 직선으로 굳어있던 입매가 풀어지는 것에 순간 시선을 빼앗겼다.

‘웃기도 하는구나.’

저렇게 풀어진 미소는 처음 본다.

“예, 다녀오겠습니다.”

덧붙이는 말에 입을 꾹 다물었다. 고개를 끄덕이곤 손을 내렸다.

문이 닫히자마자, 메리가 인형을 든 채 내게 불쑥 다가왔다.

반짝거리는 눈동자가 부담스럽다.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피로가 몰려오는 기분이 들었다.

[2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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