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황녀님, 메리가 식사를 가져올 테니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어느새 식사시간이 되었나 보다. 메리가 활발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드디어 벗어나는구나.
“응.”
메리의 말에 망설일 것도 없이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내 대답을 들은 메리가 아쉬운 표정을 해 보인다. 모른 척 고개를 돌리니 더는 말을 걸어오진 않는다.
그녀가 품에 인형을 안겨주곤 종종걸음으로 방을 나섰다.
졸지에 인형을 손에 쥐게 됐다. 피곤함에 인형을 안은 모습 그대로 침대에 엎드렸다. 너무 힘들다. 지쳤다. 솔직히 이건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이건 어디서 산 인형이라는 거야.’
뜬금없이 분홍색 토끼 인형이라니.
외로울 때 껴안고 자면 덜 외로울 거라는 설명까지 덧붙인 인형이었다.
메리는 오늘 온종일 연신 밝은 목소리로 생글생글 웃어댔다. 그러면서 눈은 계속 붕대 감긴 내 손에 닿아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훤히 보일 지경이었다.
“진짜 너덜너덜하네.”
인형을 바라보다 툭, 감상을 내뱉었다. 솔직히 조금만 힘을 주면 사지가 분리될 것 같다.
떨어질 것 같은 눈을 꾹 눌러주고 협탁에 조심스럽게 앉혔다.
벽에 기대어 앉혔는데도 분홍색 토끼가 고개를 옆으로 툭 기운다.
목이 떨어질 것 같아 손가락으로 다시 곧추세워줬다. 툭, 이번엔 반대쪽으로 기울어졌다.
‘에이씨.’
인형에서 손을 뗐다. 더 손댔다간 정말 목이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콰, 있어?”
<네, 주인님. 피곤하진 않으신가요?>
“응, 다행히도. 아침에 좀 식겁한 것만 빼면.”
상처를 들켰을 땐 솔직히 무슨 일이라도 나는 줄 알았다. 페델리우스가 추궁하지 않았기에 다행이었지만…….
추궁했으면 솔직히 어떻게 됐을지 장담할 수 없다.
‘다음부턴 절대 다치지 말아야지.’
덕분에 새로운 다짐을 하나 마음속에 새겼다. 다행히 옆에서 계속 조잘거려준 메리 덕분에 쓸데없는 생각은 사라졌다.
이유 모르게 울렁거리던 가슴도 이제는 멀쩡하다.
드디어 제자리를 찾은 느낌이다.
“나 궁금해서. 그 물 왜 못 쓰게 됐다는 거야?”
가슴을 쓸어내리다가 아콰에게 물었다. 어제는 정신이 없어서 결국 아콰에게 묻지 못했다.
오늘도 온종일 페델리우스와 메리에게 시달리느라 아콰와 느긋하게 대화할 시간도 없었다.
<아! 독이에요. 인간의 시체는 죽어서 시간이 흐르면 독이 된답니다. 그게 강 옆에 그만큼 쌓여있었으니 땅을 통해 물을 오염시켰지요. 실제로 그 근처에는 흔한 잡초도 한 포기 없었잖아요.>
독? 그 악취가 독이라면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눈앞이 어지러울 정도로 독한 냄새였다. 그 안에서 멀쩡한 얼굴로 돌아다니던 병사들이 신기할 정도다.
도대체 사람이 얼마나 많이 죽었는지 모르겠지만, 병사들의 말을 빌리자면 그들이 시체의 산을 처음 태운 건 아닐 거다.
아마 그 전에도, 그 전전에도 몇 번이고 시체를 불태웠겠지.
오랜 시간 그런 일을 반복했다면, 말 그대로 독이 됐을 확률도 높다.
<그 병사들도 상당히 중독된 것 같고, 강바닥에도 제법 독이 쌓여있었답니다. 아마 몸 상태가 정상은 아닐 거예요.>
“그럼 내가 봤던 그게…….”
어제, 강바닥에 뛰어드는 순간 보았던 침전물이 생각났다. 그게 독인지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꺼림칙한 느낌이 들었다.
설마 독이라는 생각은 생각지도 못했지만.
<그 물을 지속적으로 섭취했다면, 결과는 뻔하죠. 게다가 그 정도의 악취, 공기 중으로 퍼지는 시독은 인간의 신경계에 그리 좋은 작용을 하지 않아요.>
들려오는 목소리에 엎드린 채 눈을 감았다.
어차피 죽을 사람들이었다는 건가. 그 남자도, 그 아이도. 결론적으로 그렇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우윽…….”
입을 막고 다급히 몸을 일으켰다.
순간, 그 거대하고도 지독했던 악취가 다시 코끝을 자극하는 느낌이 들었다. 속이 울렁거린다.
그때도 코를 힘껏 막고 있었는데도 그 냄새가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했다. 잊히지 않는다.
‘생각보다 후유증이 좀 있네.’
얼굴이 절로 구겨졌다. 시체가 널브러져 있는 장면도 끔찍했지만, 그 냄새도 마찬가지였다.
코를 틀어쥔 채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입맛이 뚝 떨어졌다. 메리가 기껏 밥을 가지러 갔는데.
“속이 울렁거려…….”
이번엔 다른 의미로 울렁거린다. 다락방에서 벗어났는데 점점 몸이 나빠지는 기분이 든다. 한동안 정말 잊지 못할 악취였다. 인간의 시체 썩는 냄새가 그렇게 심할 줄은 몰랐다.
‘확실히 미라로 만드는 게 더 효율적일지도.’
적어도 바싹 말려 죽이면 그런 끔찍한 꼴은 보지 않아도 될 테니까 말이다. 새삼 아콰가 현명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님? 괜찮으세요?>
“응, 속이 조금 울렁거릴 뿐이야.”
달칵.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틀어막았던 코에서 천천히 힘을 뺐다. 또 이런 모습을 봤다간 저 울보 시녀는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 거다. 그땐 달래줄 자신이 없다.
“황녀님, 메리가 식사를 가져왔어요!”
엎드렸던 몸을 일으켰다. 접시에 한가득 먹음직스러운 음식이 담겨 있다. 문제는 그걸 보고도 내 입맛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현실이었지만 말이다.
“앗! 황녀님, 제가 드린 인형은요?”
“여기!”
협탁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아, 싫증나신 줄 알았어요. 인형 마음에 드세요? 사실 아까 말씀드리진 못했는데…….”
메리가 말끝을 늘이며 몸을 배배 꼰다. 그러더니 식탁 위에 접시를 올려두곤 내게 쪼르르 다가와 눈높이를 맞추며 꿇어앉았다.
“이거, 제가 직접 만들었어요.”
숨은 비밀을 고백이라도 하는 듯한 표정이다. 주근깨 진 얼굴 위로 홍조가 떠올랐다.
‘직접 만들었다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의문과 함께 시선을 다시 인형에게 옮겼다.
어쩐지 엉성한 이유가 있었다. 톡 닿으면 툭 떨어질 것 같았던 이음새가 말이다. 손을 뻗어 다시 인형을 조심스럽게 붙잡았다.
“황녀님을 위해서 만들었어요. 처음 만들어봐서 엄청 엉성하지만요.”
‘음, 아니 엉성한 수준이 아니라 팔다리가 곧 떨어질 것 같아, 메리.’
속으로 메리의 말에 반박했다. 분홍색 토끼 인형은 몸통을 조심스럽게 붙잡고 있지 않으면 분명히 떨어질 거다.
메리의 반짝거리는 눈이 부담스러워 슬쩍 시선을 피했다. 시선을 피하는 대로 쫓아오긴 하지만 말이다.
‘나를 위해서.’
엉성한 솜씨지만 내가 받은 첫 선물이다. 입가가 부드럽게 풀어졌다.
“잘했어!”
손을 뻗어 메리의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분명 이렇게 하면 아콰는 좋아했었지.’
사람을 상대로 해본 적은 없었지만 말이다. 조심스럽게 메리의 반응을 살폈다.
내 행동에 메리의 입이 벌어지고, 눈동자가 커다래진다. 굳이 자세히 보지 않아도 제법 놀란 기색이다.
메리의 눈이 한껏 휘어졌다. 그녀가 내 손을 조심스레 쥐곤 미소를 띠었다.
“네, 칭찬 감사해요.”
메리가 잡은 손에 이마를 대며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사실 놀란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설마 저런 식으로 웃을 줄은 몰랐다.
깃털 하나가 가슴에 내려앉아 자리를 잡았다. 파문이 인다. 몰랐어야 할 것들이 점점 하나둘 가슴속에 멋대로 파고들어 자리를 잡는다.
“자, 이제 아 하세요!”
메리가 퍼뜩 고개를 들더니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고기를 찍어 입 앞에 가져왔다.
‘……괜히 해줬나.’
뒤늦은 후회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마주 웃으며 입을 벌렸다.
오늘만큼은 메리의 기분 좋음을 유지해주고 싶었다.
……메리의 기분 좋음은 페델리우스가 집으로 돌아오고도 한동안 계속됐다.
이것 또한 괜한 배려였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