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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안녕, 페데리야!”
“예, 조금 있다가 뵙겠습니다.”
“재상이도 안녕!”
“……재, 재사, 재상……. 네, 들어, 가십시오. 황녀.”
황녀가 들어가는 모습을 보곤 문을 닫았다. 엘레나 재상이 얼굴을 굳힌 채 미동도 하지 않는다. 그녀의 별명이 퍽 당황스러운 모양이었다.
‘하긴, 나도 페데리라는 이름이 처음에는 충격이었지.’
이름을 그런 식으로 자르는 건 나로선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일이었다. 애초에 내 이름을 잘라서 애칭처럼 부르는 사람도 없었다.
“괜찮으십니까? 재상 각하.”
“아, 응. 그래, 괜찮네. 잠깐 좀, 당황한 것뿐이야. 생각보다 밝은 분이시군. 저번엔…… 잔뜩 겁을 먹은 것 같았거든.”
산전수전을 다 겪은 그녀가 뒤늦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그래도 정신을 차리는 게 빠르다.
“엘레나 재상의 기척이 제법 무서웠던 모양입니다. 사람의 분위기에 굉장히 민감하십니다. 제 기색이 조금만 바뀌어도 무섭게 눈치채시거든요.”
“눈치를 많이 보고 자란 거겠지. 게다가 계속 갇혀있었다고 들었어. 감각이 예민해질 만도 해.”
엘레나 재상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녀가 걷기 시작했다. 나도 그 옆을 따라 걸었다. 굳이 내게 그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근데 자네, 좀 많이 변했군. 경이 웃는 걸 보는 건 정말 흔치 않은 일인데. 저 황녀는 손쉽게 해내는군.”
“제가 웃으면 마주 웃어주시거든요.”
“……설마 황녀가 웃는 걸 보고 싶어서 웃는다는 말은 하지 않겠지?”
“맞습니다. 역시 재상이시군요.”
“칭찬하지 마, 그런 거로 칭찬받으면 어쩐지 회의감이 느껴질 것 같으니까 말이야.”
내 대답에 엘레나 재상이 고개를 젓는다. 일그러진 표정에서 질렸다는 기색이 엿보여서 그냥 입을 닫았다.
어차피 엘레나 재상이 하고 싶은 얘기는 이게 아니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 주시겠습니까? 황녀 전하가 연무장에 오시기 전까지는 돌아오고 싶으니까요.”
“……중증이군그래.”
엘레나 재상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말 그대로 살인사건이네. 들어온 보고에 따르면 피해자는 총 넷이야.”
“예.”
“문제는 죽은 이들이야. 신원은 전부 트럼프 제국이라고 생각되네. 쉽게 말하자면 첩자지.”
트럼프 제국, 단어 하나에 눈이 절로 가늘어졌다.
트럼프 제국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사람은 한 명밖에 없다. 황녀다. 그녀는 자신이 지켜야 할 사람이다.
‘안 갈 수가 없는 일이었군.’
만약 다른 누군가에게 배정됐어도 억지로 껴서라도 따라갔어야 할 사안이다.
“그런 거라면 어쩔 수 없죠. 다른 건 뭐 없습니까?”
“아직 병사들만 파견해서 올라온 정보는 없네. 내부 분열 같기도 하고, 습격을 당한 것 같기도 한데. 세 명은 목에 독침이 박혀서 독살을 당했어.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심장 부근에 검으로 찔린 상처가 있다고 들었다.”
독침과 자상. 이상한 수법이다.
보통 암살자라면 독만 쓰는 경우가 많다. 들키지 않게 할 수 있었으면 독만 썼어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싸움이 났었습니까?”
“아니, 전투의 흔적은 없다고 들었어. 일단 자세한 건 자네가 갔다 와서 보고서를 올려줬으면 하는데. 어렵겠나?”
“가겠습니다.”
거절할 이유는 없다. 트럼프 제국에서 사람을 보냈다면 그 이유를 알아야 했다. 간단히 들은 상황만 파악해도 생각나는 이유가 몇 가지 있다.
볼모로 보낸 사람이 있음에도 말없이 첩자를 보냈다면 두 가지 목적을 생각할 수 있다.
첫째는 볼모와 몰래 접촉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제국에서 박대하던 황녀에게 접촉할 가능성은 한없이 0에 가깝다.
둘째는 볼모의 암살이다. 볼모를 지키지 못한 책임을 물어 상대국에게 대가를 요구하거나 전쟁을 일으킬 명분을 얻는 방법이다.
‘하지만, 구태여 제국이 뭐 하러 그러지?’
트럼프 제국은 군사력이 바닥에 가깝다. 전쟁을 하면 어떻게든 지고 말 거다. 그들로선 이렇게 큰 위험을 짊어질 이유가 없다.
“트럼프 제국이 첩자를 보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그건 나도 의문이네. 어딜 어떻게 생각해도 그들에겐 메리트가 없는 짓이야. 그나마 남는 선택지는 뭔가를 확인하려고 했다는 건데…….”
엘레나 재상이 고개를 젓는다. 그녀가 저렇게 고개를 젓는 일은 많지 않다.
그만큼 엘레나 재상은 두세 가지 정보만으로도 숨은 정황을 세세하게 유추해낼 정도로 뛰어난 두뇌의 소유자였다.
“카울란에게 혹시 제가 오지 않으면 황녀 전하를 돌봐주라고 전해주십시오. 쓸데없는 짓을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도요.”
“그러지. 아, 그리고 무기는 발견하지 못했다고 해. 아마도 들고 도망간 것 같네. 그 흔적도 같이 찾아줬으면 한다네.”
“알겠습니다.”
엘레나 재상에게서 몸을 돌렸다. 황녀 전하가 위험에 처할 우려가 있다면 그 원인을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
한 손으로 매만지던 검집을 꽉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