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사실은 그 뒤로도 고생을 좀 했다.
그날 한마디를 했다고, 페델리우스에게 또 잔소리를 들었다. 덕분에 나는 그 이후로 5일을 더 말할 수 없었다.
나는 여행 하루 전에서야 체온이 간신히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은 오매불망 기다리던 여행을 가는 날이다. 아침부터 집 안이 분주했다.
“황녀님! 케이프도 하나 걸치세요. 혹시 모르니까 몸을 따뜻하게 해야 한답니다.”
“더운데.”
“음……. 그럼 따로 챙겨갔다가 조금 쌀쌀해지면 입을까요?”
“응.”
메리의 권유에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다급해 보이는 끄덕임이 웃겼는지 메리가 잔웃음을 흘렸다.
“메리도 가?”
“네, 메리도 가게 됐어요. 가는 김에 저택의 모든 식구가 함께한답니다. 주인님께서 특별히 허락해주셨어요.”
“와아, 정말?!”
“네. 요리사 루덴 씨랑 정원사 실비아 씨, 페드로 씨와 저, 그리고 주인님과 황녀님, 이렇게 갑니다!”
“집은?”
이제는 내가 짧게 물어도 메리는 순식간에 대답을 찾는다. 머릿속에서 번역이라도 하는 모양이다. 아니면 익숙해졌거나.
“사병이 경비와 순찰을 계속 돌고, 저택에는 주인님의 지인분께서 한 번씩 들러주시기로 했다고 들었어요!”
메리의 설명에 고개를 두 번 끄덕였다. 사실 메리와 페드로를 빼면 저택에서 만나본 사람은 없다.
전부 페델리우스가 저번에 그려준 그림으로만 확인했다.
“앗, 시간이 됐네요. 얼른 내려가요.”
메리가 발을 동동 구르며 나를 조심스럽게 끌어당겼다. 못 이긴 척 그녀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머리에는 햇빛을 가린다며 모자를 씌워놓고, 옷은 소매가 긴 원피스다. 거기에 두툼한 양털로 된 케이프까지 썼다면 분명히 가는 내내 땀을 뻘뻘 흘렸을지도 모른다.
‘아콰랑 진득하게 얘기할 시간이 없어.’
아픈 동안에는 옆에서 사람이 한시도 떨어지질 않았다. 게다가 쉬지 않고 말을 시켜서 집중할 시간도 없었다.
그래도 짬이 날 때마다 한 번씩 아콰를 불렀지만 여태 대답도 받지 못했다.
문양이 여전히 가려진 것을 보면 아직 아콰가 숨어있는 것은 분명할 텐데 말이다.
“나오셨습니까? 황녀 전하.”
“페데리야!”
“네, 늦기 전에 출발해야 합니다.”
저택 앞에는 마차가 세 대나 있었다. 두 대는 사람이 타는 마차인 것 같고 하나는 짐마차처럼 보인다.
페델리우스가 앞쪽 마차에 올라가 나를 들었다. 정말 덜렁 들어 올렸다. 덕분에 기어오를 필요도 없이 안전하게 마차 안에 올라탔다.
“황녀님! 메리는 뒤쪽 마차를 타고 따라갈게요!”
“응!”
기사 몇몇이 말을 타고 마차 옆에 선다. 페델리우스의 사병인 모양이다. 페델리우스가 마차 문을 닫는다. 밖에서 분주한 소리가 나더니 이내 마차가 출발했다.
……잠깐.
‘마차?!’
다급히 입을 가렸다. 속이 울렁이진 않지만 조금만 더 움직이면 울렁일 것 같다. 그리고 그다음엔 눈앞이 어지러울 게 뻔하다.
“일단 창문을 열어보겠습니다, 황녀 전하. 너무 긴 여정이라서 말을 타고 가기는 어렵습니다.”
‘까먹고 있던 나도 신기하네.’
“눈을 감으시고, 누우십시오. 주무셔도 괜찮습니다.”
페델리우스가 귓가에 속삭이며 등을 토닥였다. 페델리우스가 옆에 오더니 나를 눕혔다. 졸지에 그의 허벅지를 베고 눕게 됐다.
“눈을 감으십시오.”
입을 막은 채 눈을 감았다. 그의 말대로 하니 확실히 울렁이는 느낌은 없다.
다만 온몸으로 마차의 움직임이 느껴진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쉬십시오.”
낮게 속삭이는 목소리를 따라 숨을 들이쉬고 내뱉길 반복했다.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주는 온기에 몸이 나른해졌다.
토닥임을 받고 있던 어느 순간, 기억이 뚝 끊겼다.
“안녕히 주무십시오.”
귓가에 바짝 붙은 숨결이 그렇게 속삭였다.
[3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