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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왜 아무런 소식도 없는 건가!”
상석에 앉은 황제, 솔루스가 소리쳤다. 그의 앞에는 온통 새까만 복장의 얼굴을 가린 남자가 서있었다.
소식을 기다린 지 일주일이다. 일주일 동안 전령도, 서신도, 아무것도 오지 않았다.
솔루스는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항간에 떠도는 소문에는 그의 심경을 복잡하게 할 만한 것도 충분히 섞여있었다.
“‘그딴 것’이 신의 문양을 받았을 리가 없잖아! 그것만 확인해 오라는 명령이었다. 대체 무슨 문제가 생긴 거야!”
솔루스는 이제 어린아이처럼 굴었다.
목까지 조여오는 상실에 대한 공포가 그의 이지를 점점 앗아가고 있었다. 심심찮게 들려오는 봉기에 관한 이야기는 그를 날카롭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조급해하지 마십시오. 전령을 띄워 그곳에 있는 첩자에게 명령을 내려놓았습니다.”
쇠를 긁는 것 같은 낮은 목소리에 솔루스가 몸을 굳혔다. 일부러 목을 긁는 소리를 내는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늘 들을 때마다 소름이 끼치는 목소리였다.
“둔켈, 정말 문제는 없는 건가?”
“약간의 차질이 있어도 전부 오차 범위 이내이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솔루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소름이 끼치는 목소리를 가졌지만, 그림자 기사단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배반하지 않는다. 그것 하나만이 그의 위안이었다.
“그 사실에 대해선 알아봤나? 쿠스 왕국에 내린 비 말이야.”
“네. 어디서 소문이 발생했는지 알아냈습니다. 상인 하나가 자신이 신을 봤다며, 신께서 비를 내려준다고 약속했다고 떠들고 다닌 모양입니다.”
“바로 어제도 비가 내렸다고 들었어.”
“들은 바로는 그 ‘신’이라는 사람이 2주에 한 번씩 비를 내려주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합니다.”
둔켈이 대답했다. 대답하면서도 그는 눈을 느릿하게 내리깔았다.
2주 전, 쿠스 왕국에 비가 내렸다.
거의 국경과 맞닿은 지역이기 때문에 제국 백성들의 불안함이 한층 커졌다. 항간에 떠도는 소문으론 이 주에 한 번씩 비를 내려주기로 했다고 한다.
그리고 실제로 이 주가 되던 어제, 또 한 번 비가 내렸다. 예언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문제는 그 상인이 말했던 신의 모습이다.
“진홍색 머리카락에 벌꿀색 눈동자. 마치 황녀님을 묘사하는 듯했습니다.”
“그것이 그런 힘을 가지고 있을 리가 없지. 이건 모함일 거다.”
“……황제께서 그러시다면 그런 것이겠죠.”
둔켈이 고개를 깊이 숙였다.
그는 트럼프 제국 황실에 충성하는 사람이었다. 그림자 기사단이란 줄곧 황제를 위해 존재하는 집단이었다.
“넌 나를 배신하지 마라.”
솔루스가 말했다. 둔켈이 가려진 마스크 사이로 미소를 띤다. 그가 한쪽 무릎을 굽히고 부복했다.
“당신이 제국의 황제인 이상 저희 그림자 기사단은 언제나 당신을 따르겠습니다.”
솔루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봉기가 일어날 것 같다는 소문인데, 처리는 했나?”
“예, 필요한 이들은 전부 처형해서 본보기를 보였습니다.”
“반란분자는?”
“백작 가문 두 곳이 수색에 들어갔습니다. 증거가 나오면 바로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본보기를 확실히 보이도록 해라. 목을 잘라 성문 앞에 걸어두고 사지는 잘게 찢어 굶주린 짐승에게 먹이로 주도록 해.”
“명에 따르겠습니다.”
번쩍거리는 황금빛 의자에 몸을 기댄 솔루스가 턱을 괴었다. 일어나는 반란들을 당장 잠재우고 있지만, 이보다 커지면 감당하기가 힘들다.
“차라리 그 망할 것을 죽여버릴 걸 그랬어! 그랬다면 이런 쓸데없는 소문 따위 돌지도 않았을 테지.”
“원하신다면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미 왕국에 볼모로 보낸 물건이다. 그걸 어떻게 처리한단 말이냐. 설사 처리하더라도 외교문제가 생길 수도 있을 텐데.”
그렇게 말하면서도 솔루스의 눈은 뱀처럼 번들거렸다.
그는 다시 평화로운 생활에 안주하고 싶었다. 평화란 곧 그의 부와 명예가 고스란히 주어지는 한가로운 시간이었다.
솔루스는 그것들을 사랑했으며, 품 안에 여인을 끌어안을 수 있는 시간을 즐겼다.
“증거만 남기지 않으면 될 일입니다. 용병이야 그쪽 용병을 고용하면 됩니다.”
“불똥이 튀지 않게 주의하도록 해라.”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건 무언의 수긍이었다.
“그리고, 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했으면 좋겠는가? 둔켈.”
솔루스의 질문에 둔켈의 미간이 좁아졌다. 하지만 아주 잠시였다. 그는 금세 기색을 없애며 고개를 숙였다.
“당장 식량난으로 인해 원성이 더 높아진 것 같습니다. 창고에 있는 식량을 좀 푸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 같습니다.”
“……식량을 나눠주라는 말인가?”
“네, 맞습니다.”
“그렇게 하면 저 원성이 잦아들겠나.”
“적어도 나라가 아직 자신들을 버리지 않았다는 걸 깨닫게 될 겁니다.”
솔루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황궁의 식량창고는 꽉 차 있다. 황제인 그의 식탁은 언제나 진수성찬이었다. 황궁만큼은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다.
“좋다. 그렇게 하도록 해.”
“알겠습니다.”
둔켈이 고개를 숙였다.
‘정말 무능한 황제군.’
그가 지키기엔 턱없이 부족한 존재였다. 둔켈은 표정을 없애며 몸을 돌렸다. 그의 모습이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