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광장에서 사건이 있고, 일주일이 지났다.
페델리우스는 그 사건을 맡은 듯했다. 증언을 얻고, 범인을 찾느라 한껏 바쁜 그에게 쉽게 말도 걸지 못했다.
페델리우스는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듯했으나, 범인이 이그니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명령한 게 나라는 얘기는 더더욱 할 수 없었다.
그날 이후 나는 저택 밖으로 나가는 걸 금지당했다. 문제가 생긴 게 아니라, 페델리우스가 나가는 것을 강경하게 반대해서였다.
‘결국, 그 소문이 안 좋게 퍼진 건가?’
메리는 물론 저택의 누구도 내가 바깥에 나갈 수 없는 이유를 말해주지 않는다.
덕분에 이그니도 밖을 나갈 수 없게 됐다.
페델리우스는 아예 출근도 하지 않고 내 옆에 붙어있게 됐다. 일은 어떻게 하는 건지.
종종 부하들이 찾아와 뭔가 보고서를 주고 가긴 하는데 내가 볼 수는 없었다.
“페델리우스.”
내 부름에 옆에 앉아서 동화책을 펼치던 페델리우스가 눈을 깜빡였다. 퍽 놀란 표정이었지만 그는 순순히 입을 열었다.
“예, 황녀 전하.”
“뭘 숨기고 있어?”
“예?”
“왜 집에서 나갈 수 없어?”
제법 말을 하게 된 나를 페델리우스는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이들이 어린아이를 길러본 적이 없는 게 그나마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내 이상함을 벌써 눈치챘을지도 모른다.
“…….”
페델리우스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자상하고 상냥한 배려다. 그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밖의, 특히나 안 좋은 소문을 쉴 새 없이 전해줬던 시녀들과는 확실히 다르다. 나에 대한 끔찍한 이야기를 하루도 빠짐없이 들었던 때와는, 달랐다.
“나 며칠 전에 광장에 갔어.”
“황녀 전하.”
“나는 페델리우스, 네게 방해가 되고 있어?”
왕의 옆에 항상 붙어있던 페델리우스다. 하루도 빠짐없이 왕궁에 들어갔다. 그런 페델리우스가 이틀째 집에서 움직이질 않았다. 뭔가 문제가 있는 게 분명했다.
“절대 아닙니다.”
“그럼 왜 왕궁에 가지 않아?”
“그건…….”
“페델리우스는 폐하의 검이잖아. 왜 지키지 않아?”
아무리 귀가 막히고, 눈이 가려져도 알 수 있는 건 있다. 공기 중에 퍼지는 스산한 울림. 물에서부터 직접 퍼지는 불길함.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물에서 느껴지는 불안한 감정에 밥 먹는 것조차 편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는 거야?”
“정말 아무것도 아닙니다. 황녀 전하께서 신경 쓸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당신께선 그저 이 생활을 즐겨주시면 됩니다.”
침대에 앉은 내 아래에 무릎을 꿇고 앉은 페델리우스가 말했다. 페델리우스가 말없이 주먹을 쥐는 것이 보였다. 다정함은 좋다. 줄곧 다정함이 필요했으니까.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 페델리우스, 네가 전부 짊어질 필요도 없다.
“내가 저주받은 황녀라서 그래?”
“황녀 전하!”
“내가 이 나라에 불행을 가지고 올 거래?”
페델리우스를 묵묵히 내려다봤다. 상처는 곪으면 결국 터져버린다. 제국은 그것이 터지고 터져서, 어떻게 할 수가 없게 됐다.
나를 희생양으로 삼아 왕국과 거래를 하고 나서도 무엇 하나 바뀌지 않았다.
“아니면, 나 때문에 이곳도 제국처럼 멸망하게 된대?”
“…….”
“나를 봉인해야 한대?”
눈을 크게 뜬 페델리우스에게 물었다. 이렇게 눈을 크게 뜬 페델리우스는 처음 보는 표정이다.
“아니면 날 쫓아내래?”
수십 번은 들어왔던 말을 난생처음 페델리우스에게 물었다. 쫓아낸다고 해도 갈 곳은 없으면서, 물었다.
“페델리우스.”
“……예.”
잔뜩 가라앉은 페델리우스의 목소리가 내게 대답했다.
“……너도 날 가둘 거야?”
만약 그렇다고 하면, 나는 무슨 대답을 내놔야 하는 걸까.
* * *
“……너도 날 가둘 거야?”
상처받고, 또 상처받아, 더는 피할 곳 없는 목소리가 내게 물어왔다.
담담한 표정으로, 담담한 목소리로 물어오는 내용은 그리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아니라고, 대답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작은 한마디 가지고는 도저히 제 마음이 전부 드러날 것 같지 않았다. 연민과 동정에 가깝던 마음이 어느샌가 성장해버렸다.
“……왜.”
오랜 시간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듯 꽉 멘 목소리였다. 내가 듣기에도 내 목소리는 정상적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멈출 수가 없었다. 여기서 한마디라도 실수했다간 손에서 영영 떠나갈 사람 때문이다.
“왜 그런 말을 하십니까.”
아니라고 했다. 소중하다고 얘기했다. 지켜줄 거라고 약속했다. 실제로도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다. 언제나 웃어줬으면 하고 바랐다.
‘언제 이렇게 말을 하게 되신 거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분명 어린아이와 같이 해사한 미소를 짓고 계셨는데.
이런 무표정한 얼굴은 처음에 만났던 그때를 제외하곤 본 적이 없었다.
내게 묻는 목소리에서 느껴졌다. 그 작디작은 공간에 갇혀서 줄곧 눈으로 봐왔을 것들이 소리로 되새겨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를 상처를 그녀는 차곡차곡 속에 쌓아온 것이 분명했다.
연일 광장과 왕궁 앞에서 시위가 벌어지고 있었다. 황녀가 저주받은 인물이라는 것과 함께 그녀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이 수십 개씩 매일 생성되고 있다.
헛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다. 심지어는 제국이 멸망할 위기에 처한 게 황녀의 탓이라는 소문도 있다.
왕궁 내에서도 동조하는 이가 나오기 시작했다. 내게 좋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이도 제법 늘었다.
엘레나 재상이 독자적인 권한으로 휴가를 주며 사태가 잠잠해질 때까지 저택에 있으라고 했다.
마침 잘 됐다고 생각했다. 황녀 전하를 보살펴주고 싶었다.
“왜……”
말을 하면서도 그녀는 한 점 동요도 없었다. 단지 조금 의아한 듯 말끝을 올렸을 뿐이다.
울컥, 하고 속에서 무언가 치밀어 올랐다.
“분명히 지켜드린다고 했습니다.”
“…….”
“무서워하지 말아달라고 했습니다.”
“페델리…….”
“곁에 있어 드리겠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가 손목을 붙잡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내 목소리에 놀란 듯 그녀가 토끼처럼 눈을 동그랗게 뜬다. 벌어진 입이 상당히 놀란 듯 보였다.
“왜.”
잇새를 꽉 깨물었다.
“왜, 믿어주지 않으십니까.”
내 말에도 그녀에게선 여전히 말이 없었다. 열기가 눈으로 몰리는 느낌에 질끈 눈을 감았다 뜨기를 여러 차례 반복했다.
“믿어주십시오.”
손안에 들어온 것을 먼저 놓아버린 적은 없다. 항상, 원치 않는데도 먼저 떠내려갔을 뿐이다.
처음에는 왕께서 원한다면 언제든 검을 뽑으려고 했고, 왕께서 그럴 의사가 없다고 했을 땐 지켜주겠다고 마음먹었다. 언젠가 진심으로 자유로워지기를 바란다.
그래서 떠나겠다고 한다면, 아아……. 당신을 위해서라면 놓아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거, 잘 때 했던 말이잖아.”
웅얼거리는 목소리가 머리 위로 닿았다. 퉁명스러운 목소리에 번쩍 고개를 들었다. 눈가가 발갛게 물든 그녀가 웃고 있었다.
“그건, 주무실 때 한정으로 했던 말이 아닙니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죄송합니다.”
느릿하게 사죄하니 그녀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깊은 상처는 여전히 그녀의 가슴 어딘가에 깊은 자상을 남긴 것이 분명하다.
“페델리우스.”
“예.”
“이름으로 불러줘.”
또다. 또 그녀는 내게 이름으로 불리길 원한다.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오시리아.”
“응.”
그녀가 환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