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밤이 내려앉았다.
아콰는 피곤한지 그 뒤로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다. 성이 이상하다고 했는데, 대체 어떤 게 이상한지 감을 잡지 못했다.
배정받은 방을 이리저리 살폈지만, 이상한 건 없었다. 이그니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 어딘가에 있을 거다.
엘은 잠을 자고 있을 테고 시녀도 잠을 잘 게 분명했다.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 긴장이 되진 않았다.
“이그니.”
“예.”
어디선가 스르륵 나타난 이그니가 대답했다. 대체 어디서 불쑥불쑥 나타나는지 묻고 싶을 정도로 신기하다.
“나 잠깐 어디를 좀 다녀오려고 하는데.”
“함께 가겠습니다.”
“음……. 아니, 제국에 다녀오려고 하거든. 너는 좀 곤란하지 않을까?”
내 말에 이그니가 미간을 찌푸렸다.
제국으로 가면 위험할 확률이 높다고 했다. 나는 잠깐 제국을 둘러보고 아비인 황제를 보러 가는 것뿐이다.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냥 지금 어떤 모습인지 보고 싶었다. 이제 와서 제 앞에서라도 빌기라도 할까 궁금하기도 했다.
“황제를 만나러 갈 건데 너무 성급할까?”
“안 됩니다.”
“……왜?”
“황제의 옆엔 늘 그가 있습니다. 그림자 기사단의 리더. 어떻게 생겼는지도 알 수 없는, 그저 온몸을 망토와 로브로 꽁꽁 감싸 매고 있는 자입니다.”
이그니가 드물게 말을 길게 덧붙였다. 부릅뜬 눈이 결단코 안 된다며 고개를 젓고 있다. 이그니의 눈동자에 공포심이 엿보였다.
“그는 태양을 지키는 그림자입니다. 황제를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하죠.”
“그렇게 위험해?”
“네. 그와 정면으로 맞서는 건 피하셔야 합니다.”
이그니의 설명에 한숨을 삼켰다. 제국은 어차피 망해야 하는 곳이다. 마땅히 있어야 할 곳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악마라도 상대할 자신은 있었다.
‘아콰는 이런 상태고…….’
아콰에게 말도 없이 멋대로 행동했다가 문제를 일으키고 싶진 않다. 문제가 터진다면 그때 가서 해결해도 될 일이다.
“그리고, 원하시는 일을 진행하고 싶으시다면 빠른 편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전쟁이 일어나기 일보 직전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나라가 더 어수선합니다.”
“……그래.”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자꾸 생겨난다. 쉴 새 없이 나오는 한숨을 삼키는 것도 일이었다.
이마를 짚었다가, 한숨을 내쉬었다가, 다시 이마를 짚었다.
“이그니! 나랑 놀러 가지 않을래?”
고개를 저으며 이그니를 올려다봤다.
“놀러…… 말입니까?”
“일전에는 아콰와 쿠스 왕국에 다녀왔어. 그 나라에 주기적으로 비를 내려달라고 했거든. 거기 보석 상인이랑 얘기도 해봤고.”
“쿠스 왕국이라면…….”
“이번엔 다른 데 가보고 싶은데 어디 갈 만한 곳은 없을까?”
지도를 본 적은 있지만, 따로 기억하고 있는 건 없다. 몸과 다리를 함께 흔들며 이그니를 쳐다봤다. 고민하던 이그니가 한숨을 삼켰다.
“그때처럼 그 이상한 힘을 쓰시려는 건가요?”
“응. 그거 나도 할 수 있어. 봐.”
손바닥을 펼쳐 앞으로 내밀었다. 손바닥 위에 물이 모이기를 바라니 공기가 조금 건조해지는 듯하다가 금세 물방울이 생겨났다.
“원래는 못했는데 조금씩 하게 됐어.”
이그니는 제법 놀란 눈으로 내 손바닥 위의 물방울을 살폈다. 그가 손을 뻗어 손가락으로 물방울을 살짝 튕겼다. 주먹만 한 물방울은 잠시 모양이 일그러졌다가도 금세 원래대로 돌아왔다.
“이것 말고도 할 줄 아시는 게 있습니까?”
“음, 물로 날개를 만들어서 날거나 사람 몸에 있는 수분을 증발시키는 것도 가능해.”
“그건…….”
“응. 죽일 수 있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아콰에게 배운 대로 집중해서 등에 날개를 만들었다. 물로 된 날개가 이제는 어렵지 않게 만들어졌다.
‘이그니에게도 달아줄 수 있으려나?’
고민하다가 조심스럽게 이그니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눈을 감고 이그니의 등에 날개가 생기는 상상을 했다.
손에서 빛이 흩뿌려지더니 순식간에 이그니의 등에 날개가 생겨났다.
“음. 좀 작네.”
“작군요.”
내가 쓸 만한 작은 날개였다. 덩치 큰 이그니가 사용하기엔 과부하가 걸릴 것 같은 날개였다.
다시 황급히 이그니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잠, 잠깐만! 다시 키워볼게.”
눈을 질끈 감고 다시 날개가 커다랗게 변하는 상상을 했다.
빠직-! 뭔가가 금이 가는 소리가 났다. 얼른 눈을 뜨는 순간 입이 함께 벌어졌다.
물로 된 날개가 방 안에 가득 차 있었다. 이그니가 곤란한 표정으로 슬쩍 뒤를 돌아본다. 조금만 더 키웠어도 전부 망가질 뻔했다.
“잠……깐만. 다시.”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게! 이그니의 체형에 딱 맞는 크기가 되라고 다시 열심히 빌었다. 아니, 부탁했다. 질끈 감았던 눈을 슬며시 떴다.
‘성공했다.’
다행히 방 안을 가득 채웠던 날개가 줄어들었다.
“어때? 이그니.”
“네, 이 정도면 될 것 같습니다.”
이그니가 제 상반신만 한 물로 된 푸른 날개를 쳐다보며 대답했다. 고개를 끄덕이곤 이그니의 손을 붙잡고 끌어당겼다.
“얼른 갔다 오자.”
왕성에도 호수는 있다.
“잠……! 잠시만, 주군.”
“응?”
“이건 어떻게 사용하면 되는 겁니까?”
이그니가 잡히지 않은 남은 손가락으로 등을 가리키며 말했다. 날개가 뻣뻣하게 서있다. 전혀 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그제야 낮게 탄성을 흘리곤 입술을 달싹였다.
“머릿속으로 날갯짓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돼.”
이그니를 끌어당기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이그니의 날개가 조금씩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날갯짓을 반복하는 횟수가 증가할수록 이그니의 미간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미간의 골이 깊어졌다.
“가자.”
가볍게 하늘로 뛰어오르며 이그니를 끌어당겼다. 이그니의 날개가 이제는 쉬지 않고 퍼덕이고 있었다.
“아…….”
몇 번 시행착오를 반복하던 이그니가 금세 날개를 제 것처럼 움직여 하늘을 날게 됐다. 놀라움에 눈을 크게 떴다.
“쉿, 이쪽.”
물이 있을 법한 장소로 빠르게 자리를 옮겼다. 멀지 않은 곳에 호수가 있었다. 이그니를 붙잡은 채 물속으로 빠져들었다.
‘제국과 가까운 곳이라면 어디든 좋아.’
물속에 새까만 구멍이 생겨났다. 아콰가 없어도 물을 움직이는 게 어렵지 않았다. 이그니와 함께 구멍 속으로 몸을 날렸다.
어두웠던 시야가 금세 밝아졌다.
“푸하……!”
고개를 젓자 동그랗고 밝은 것이 머리 위에 보였다. 사방이 어둡고 좁아서 황급히 좌우로 고개를 저었다. 이그니가 바로 옆에 불쑥 고개를 내민다.
“……우물이군요.”
그가 금세 정신을 차리며 상황을 파악했다.
“아, 우물이었구나.”
혹시 이상한 곳으로 온 건 아닌지 걱정했다. 물에 푹 젖은 몸이 축축하다. 게다가…….
“물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 맛도 이상해.”
역겨울 정도로 끔찍한 냄새였다.
“올라가겠습니다.”
“어? 날개를 만들……흐업!”
이그니가 불쑥 나를 한 손으로 안아 들었다. 괜찮다고 말하기도 전에 이그니가 한 손으로 우물의 틈새에 발을 끼워 박차며 날아올랐다.
숨 막히는 바람이 얼굴을 훅 쓸고 지나갔다.
이그니가 같은 행동을 두어 번 반복했다. 눈을 한 번 깜빡이니 세상이 밝아졌다. 이미 우물 입구에 쌓은 돌 위를 밟고 있었다.
“이그니, 너 대단하다.”
감탄사가 절로 튀어나갔다. 일 분도 되지 않아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놀라웠다.
“여긴 어디지?”
“여긴…… 제국의 수도입니다.”
이그니의 얼굴이 낭패감에 물들었다.
“뭐? 난 분명 제국과 가까운, 나라…….”
입을 열던 머릿속에 문득 아까의 생각이 떠올랐다.
<제국과 가까운 곳이라면 어디든 좋아.>
‘곳’이라고 했다. 나라라고 말한다는 걸 실수한 모양이다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물이 잘못한 건 없다. 제국과 가장 가까운 곳이 수도 말고 또 어디가 있을까.
‘황성에 떨어뜨리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황급히 챙겨온 로브를 뒤집어썼다. 온몸에서 기분 나쁠 정도로 역한 냄새가 났다.
손을 뻗어 내 옷자락을 붙잡았다.
“사라져.”
물과 함께 물에 붙어있던 냄새가 사라지길 바랐다. 축축하던 몸이 순식간에 바싹 말랐다.
이그니의 옷에도 손을 뻗었다. 이그니가 입고 있던 축축한 옷도 순식간에 건조해졌다.
“이건…….”
“물에 관한 거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것 같아.”
몇 번 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깨닫게 됐다. 이런 식으로 이용하면 물은 대답해준다.
단지 머릿속으로 부탁하거나 입으로 내뱉는 것만으로도 물은 알아서 내 생각처럼 움직여줬다.
“이그니, 너도 이거 입어. 챙겨왔거든.”
로브 하나를 이그니의 손에 밀어줬다. 아콰가 없어도 이그니가 있으니 불안한 기분은 없다.
‘페델리우스는 뭘 하고 있으려나.’
아마 이 일이 끝나면 페델리우스와는 다시 볼 수 없을 거다. 해야 할 일이 끝난다면 나 역시 자르딘을 떠날 거다.
애초에 오래 머무를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페델리우스가 그 생각을 전부 뒤바꿔놨다. 들키지 않는다면 그 안식처에 그저 편히 머무르고 싶었다.
‘전부 엉망이 됐지만.’
소문은 언젠가 잠식되더라도 꼬리표는 붙는다. 한 번 찍힌 낙인이 도로 사라지는 일은 없다.
그리고 그 사실은 분명히 페델리우스에게도 폐가 될 거다.
“감사합니다.”
순식간에 말라버린 옷을 이리저리 살피던 이그니가 말했다. 이그니가 받은 로브를 훌쩍 뒤집어썼다.
그래도 키가 제법 있어서 눈에 띄긴 한다.
“수도는 생각보다 엉망이 아니네…….”
죽은 사람도 없어 보이고 시장도 활성화가 되어있다. 힘들어 보이긴 하지만 당장 죽을 것처럼 괴로워 보이지도 않는다.
‘바로 옆 마을인 리첼이랑은 다르네.’
생각하며 발걸음을 뗐다.
그곳에서는 병사들이 물을 독식하고 시체들이 산을 이뤄 그것들을 불로 태웠다. 바로 옆 마을인데도 이곳은 꽤 사람 사는 곳처럼 보였다.
“그래도 황제 폐하의 인심 덕분이야.”
“맞아, 맞아! 의원을 내려주고 음식까지 나눠주시다니…….”
“이게 전부 떠나간 황녀가 저주를 내려서 그런 거라면서?”
“더러운 황녀. 죽어 마땅해. 신도 무심하시지. 우리가 이렇게도 극진히 신을 모시는데 어떻게 이런 시련을 내려주실 수가 있어.”
옹기종기 모인 사람들이 물 대신 술을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자르딘에서 당했을 때는 심장이 아팠는데, 이상하게도 이곳에선 도리어 차분해진다.
기분이 나쁘지도, 화가 나지도 않는다. 그저 그런 이야기가 오가고 있구나 싶은 마음만 들었다.
‘이상하지.’
그저 불쌍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이그니를 데리고 그들의 뒷자리에 앉았다.
“뭘 드릴까요?”
“음. 여기서 가장 좋은 음식과 음료를 줘.”
딱히 음식을 먹을 생각은 없었지만, 기왕 먹는다면 맛있는 쪽이 좋다. 내 주문을 받은 바싹 마른 종업원이 고개를 끄덕이곤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래도 황제께서 해결을 위해 애쓰고 계시다고 들었으니 곧 신께서도 우리를 다시 봐주시겠지.”
“맞아. 그 집시 년의 저주가 아니었다면 황녀도 태어나자마자 죽었을 텐데.”
“뭐, 곧 끝나겠지.”
꿀꺽꿀꺽 넘어가는 술에 남자들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취기가 도는 듯 히끅거리는 소리도 쉬지 않고 났다.
“한 가지만 여쭤도 괜찮겠습니까?”
“응? 응.”
이그니의 물음에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술로 보이는 음료가 두 잔 나왔다.
독한 냄새에 인상을 찌푸리곤 컵을 멀찍이 밀었다.
‘냄새는 별로네.’
여기는 음료가 술밖에 없는 모양이다.
‘하긴, 물이 없으면 술이라도 먹어야지.’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술은 잘 상하지도 않고, 물 대신 먹을 수 있었다. 과일을 짜내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기도 했고 말이다.
‘물에 관해 설명해주던 아콰가 대체재라고 말해준 적이 있었어.’
손가락으로 나무로 된 잔을 톡톡 치며 이그니를 쳐다봤다.
“당신이 황제가 될 생각은 없습니까?”
“황제?”
“네. 당신이라면 분명, 좋은 나라를 만들어주실 겁니다.”
이그니의 말에 웃음이 절로 새어나왔다.
“응, 안 해.”
내가 그런 그릇이 못 된다는 건 스스로도 알고 있다. 수많은 사람을 돌보려면 그 사람들을 책임져야 하고, 사랑할 줄 알아야 하고, 몇 수 앞을 내다봐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게 불가능했다. 나는 엘레나 재상이 아니었다. 자르딘의 왕도 아니었다. 몇 수 앞을 내다보는 일 따위 불가능했다.
“나는 저들을 사랑할 자신이 없어.”
사랑은커녕 평생 원망할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이 황제가 된다? 나라가 제대로 굴러갈 리가 없다. 아비인 황제와 똑같은 전철을 밟게 될 것이 분명했다.
“내가 이 나라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건 하나밖에 없어.”
“음식 나왔습니다.”
“네.”
뭔지 알 수 없는 볶음이 접시에 무더기로 나왔다. 인상이 절로 구겨지는 모양의 음식이었다.
냄새도 별로다. 먹고 싶은 냄새라기보단 썩은 내에 가깝다.
‘대체 뭘 만든 거야?’
끔찍한 냄새에 코를 막았다.
“상했군요.”
“……아, 정말.”
상황이 좋지 않다는 건 알았지만 이런 걸 판다고 내놓을 줄은 몰랐다. 물론 상관은 없었다. 먹을 생각도 없었으니까.
접시를 슬쩍 밀어냈다.
“그러니까, 이 나라에 아무것도 남지 않게 해주는 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일이야. 그 위에 살아남은 놈들이 나라를 다시 건설하든 뭘 하든 내가 상관할 일은 아니고.”
이야기를 들으려고 왔지만, 술에 취한 이들은 더는 말을 할 것 같지가 않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른 데 구경하러 가자.”
“네.”
이그니가 별말을 덧붙이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번에 벌어둔 금화를 대충 한 주먹 쥐어서 탁자 위에 올려뒀다.
‘멀쩡해 보이는 건 겉보기뿐인가 보네.’
자세히 들여다보니 멀쩡하지 않다. 사람들도 정신이 반쯤 나간 것 같고 음식도 멀쩡한 게 없었다.
“돈이다!!”
“음식이야!!”
우당탕탕!! 안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술에 취한 남자들이 내가 앉아있던 자리에 몰려들었다.
그들은 돈과 음식을 서로 빼앗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었다. 그사이에 가게 주인까지 뛰어들었다.
‘…….’
저렇게 될 줄은 몰랐다. 처참하고 처참한 광경에 더는 할 말이 없었다.
바닥에 떨어진 상한 음식을 그들은 개처럼 핥아먹었다.
“……가끔 저런 모습을 보면 말이야.”
걸음을 옮기다가 문득 입을 열었다.
방금까지 내 탓을 하던 이들이 내가 버린 음식을 먹겠다고 죽자사자 달려든다.
내가 죽기를 바라던 이들이 바닥을 구르고 있다.
“무척이나 기분이 좋으면서도.”
원래는 내가 저렇게 떨어진 음식을 개처럼 기어서 먹었다.
썩고 상한 음식이라도 먹겠다며 바닥을 기어 개처럼 핥았다. 그렇게라도 먹어야 살 수 있었으니까.
“동시에 심장 한쪽이 아파져 와.”
아콰는 매우 능력이 있는 아이였지만 내게 음식을 가져다주는 일만은 하지 못했다. 방에서 벗어날 만큼 힘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저 물만큼은 죽지 않을 정도로 먹을 수 있었다.
바닥을 기는 이들을 보면 나를 보는 것 같아서 속이 쓰렸다. 그러나 내가 바라던 모습이기 때문에 동시에 기뻐하고 싶었다.
두 감정이 뒤섞여버려서 결국은 늘 이름도 없는 모호한 감정이 되어버리지만.
“그건 무슨 감정입니까?”
“나도 잘 모르겠어.”
이그니의 덤덤한 물음에 웃으며 대답했다. 감정에 서툰 건 이그니도 마찬가지다. 아콰에게 물어봐도 분명 시원스러운 답변은 얻지 못할 거다.
‘페델리우스에게 물어보면 알까?’
이런 새까만 마음을 보여줄 수는 없겠지만.
“과일들이 전부 말라비틀어져 있어.”
“그렇군요.”
“음식도 다 상하기 직전이고.”
“네.”
이그니는 내 말에 반응 없이 대답했다.
한없이 불타던 분노의 감정도, 증오도, 미움도, 이런 것을 보고 있으면 늘 이상한 기분이 되어버린다.
그때 죽어가며 물을 달라고 했던 아이도, 남자도. 그때도 나는 이상한 기분이었다. 이름을 붙일 수도 없고, 붙일 이름조차 모르는 감정.
“저놈들을 잡아!!”
멀리서 비명 같은 외침이 들렸다.
“저놈들한테 돈이 엄청 많다고! 금화 주머니를 봤어!”
이그니와 동시에 몸을 돌렸다.
식당에 있던 남자들이 한층 더 넝마가 된 옷을 입은 채 우리를 가리키고 있었다.
섬뜩한 느낌에 주변을 살폈다. 무기력하게 있던 사람들의 눈이 위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짙은 살기에 절로 몸이 움츠러들었다. 이렇게 대량의 살기를 한 몸에 받아보는 건 처음 있는 일이다.
‘시녀들은 많아 봐야 대여섯 명이었으니까…….’
수십이 넘는 인파가 우리를 주시하고 있었다. 이그니의 옆에 바싹 붙었다.
“죽여도 됩니까?”
“그 그림자 기사단의 리더라는 사람이랑 만나면 안 된다면서. 소란피우면 눈에 띄지 않을까?”
“그럴 확률이 높습니다. 누구보다 제국의 소식을 가장 빨리 듣는 사람이니까요.”
이그니가 말없이 동의했다. 그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안 된다.
이그니도 제법 실력 있는 사람인데 그가 공포까지 느끼는 사람이라면 분명 평범한 사람은 아닐 거다.
‘아콰의 힘이라면 문제는 없을 것 같지만.’
어쩐지 그것조차 불안하게 느껴졌다.
“조용히 돌아가자. 물이 있는 곳까지만 가면 돼. 아까 그 우물로 갈 수 있을까?”
“알겠습니다. 등에 업히십시오.”
이그니가 몸을 낮추며 내게 말했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응?”
“업히시고 절 꽉 붙잡아야 합니다. 양손이 자유로운 편이 훨씬 더 빠르니까요.”
이그니가 빠르게 설명했다. 거부할 시간이 있을 것 같진 않다. 실랑이를 벌이는 것보다 그의 말에 따르는 편이 더 이득이 분명하다.
‘……뭔가 찝찝한데.’
나중에 나도 검이라도 배우게 해달라고 하고 싶어졌다. 아니면 이그니처럼 지붕을 막 뛰어다니는 능력이라거나.
그러면 쉽게 지치거나 이렇게 도움만 받지 않아도 될 텐데.
생각하며 이그니의 등에 업혀 그를 꽉 붙잡았다.
“꽉 잡으십시오.”
“응.”
내 대답과 동시에 이그니가 아직 뚫린 길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우리를 쳐다보고 있던 시민들이 성난 물소처럼 달려오기 시작했다.
“잡아!!”
“돈이야!!”
“먹을 게 있대!!”
“저놈들을 잡아!”
소 떼처럼 쫓아오는 모습은 물소보다도 더 무서웠다. 멀쩡해 보였던 수도의 진짜 모습이 이제야 눈에 들어왔다.
이그니가 땅을 박차고 건물 사이를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다행히도 이그니의 속도를 따라오는 사람은 없었다.
“……뭐야.”
“누가 쫓아옵니까?”
“아니. 한 명도.”
쫓아오기는커녕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단지 그들도 당황한 듯 제자리에 서서 멍하니 이쪽을 쳐다보는 게 보일 뿐이다.
“너 정말 대단하구나.”
조금 머쓱한 기분으로 기분으로 말하자 이그니가 묵묵히 감사하다며 대답을 해왔다.
칭찬은 칭찬인데, 어쩐지 떨떠름하다.
“저기, 이그니. 이제 내려줘.”
“저 밑에 우물이 있습니다.”
“으, 저거 냄새나.”
“아마도 시체가 있는 모양입니다. 시취가 섞인 것을 보니.”
이그니가 담담하게 내게 대답을 내놨다.
그러니까 저 안에 지금 시체가 있다고? 시체가 있는 우물로 뛰어들어야 해?!
“말하지 말지.”
알고 뛰는 것과 모르고 뛰는 건 천지 차이가 있다. 하지만, 이 근방에 더 이상 물이 모인 곳이 없다는 것도 안다.
“가자.”
이그니와 내게 둘 다 날개를 만들었다. 한 번 만든 날개는 다시 만들기가 간단하다. 이그니의 날개도 한 번에 성공했다.
내가 지붕에서 뛰어내리자 이그니도 곧장 쫓아왔다. 정말 배우는 게 빠른 사람이었다.
썩은 내가 진동하는 우물로 숨을 참으며 빠르게 뛰어내렸다.
‘……헙.’
머릿속으로 돌아갈 곳을 떠올리기만 하면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는데, 그러기도 전에 우물의 바닥이 눈에 들어왔다.
‘시체……더미……?’
한두 구가 아니었다. 우물 바닥 전체가 시체투성이였다. 속이 울렁거리고 역겨웠다. 냄새가 온몸에 밸 것 같았다.
통로를 만들 생각도 하지 못하고 온몸이 굳어 움직일 수가 없었다. 썩어 문드러진 시체들 중에는 채 눈도 감지 못한 것도 있었다.
그것과 눈이 마주치자 몸이 옴짝달싹도 하지 않았다.
그때 굳어있는 몸이 순식간에 위로 당겨졌다.
“푸하! 허억, 허억, 허억.”
숨이 찰 리가 없는데도 호흡이 가빠졌다.
“괜찮으십니까?”
“이그, 이그니…….”
몸이 덜덜 떨렸다. 저건 무슨 끔찍한 모습이란 말인가. 손이 꼼짝도 하질 않았다. 시쳇더미는 리첼이라는 마을에서도 봤다.
그러나 저것만큼 끔찍하진 않았다고 장담한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안광을 본 것 같기도 했다.
“저건 이미 죽은 것들입니다. 천천히 호흡하시고, 눈을 감고 바로 통로를 만드십시오. 제가 이끌겠습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죽이는 것은 괜찮다고 생각했다. 시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저것들은…… 시체라고 하기엔 그 형태가 온전치 못했다.
“눈을 감으십시오.”
이그니의 말대로 눈을 감았다. 이그니가 나를 끌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공기가 달라졌다.
‘왕궁의 호수로 돌아가게 해줘.’
눈을 질끈 감은 채 생각했다.
통로가 제대로 생겼는지 확인하지도 않았다. 단지 이그니가 끌어당기는 느낌이 들었고, 썩은 내로 가득했던 탁한 기운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도착했습니다.”
이그니가 말했다. 깨끗한 물이다. 냄새도 나지 않았다. 이그니가 먼저 올라가고 뒤이어 나를 조심스럽게 끌어올렸다.
“고마워.”
주저앉은 채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옷을 말리는 것은 물론 잊지 않았다.
“호오, 확실히 저건 진짜군.”
어딘가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공기 중에 스며들 것같이 아주 작은 목소리였다.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흐릿하다.
“이만 돌아가시죠.”
“아, 응.”
이그니를 쳐다보니 그는 듣지 못한 듯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잘못 들었나?’
그렇다기엔 귓가에 분명 들린 것 같다. 어떤 목소리냐고 묻는다면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그런 목소리였다. 잠을 자고 일어나면 까먹을 것 같은 그런 목소리였다.
“이그니, 아무 소리도 못 들었어?”
“소리요?”
“응, 누군가 말한 것 같은 소린데…….”
“전 듣지 못했습니다. 주변을 살펴볼까요?”
이그니의 단호한 대답에 주변을 둘러봤다. 인기척도 목소리도 없다. 단지 묘한 느낌만 계속해서 들었다.
‘잘못 들은 것 같기도 하고.’
희미한 목소리였다. 어떤 목소리였냐고 묻는다면, 그저 희미한 목소리였다고만 대답할 수 있을 정도로 특징이 없었다.
남자냐 여자냐 묻는다면 그것조차 망설일 정도다.
“아냐, 잘못 들었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정말 잘못 들은 것 같았다. 이그니를 끌어당겨 순식간에 창문으로 날아올랐다.
‘진짜.’
뭐가 진짜였다는 걸까? 애초에 그 목소리가 정말 들렸나? 생각할수록 머릿속만 복잡해졌다. 말없이 방으로 들어갔다.
“이그니.”
“네.”
“역시 한 번만 둘러보고 와줘. 분명히 목소리를 들은 것 같아.”
“어떤 목소리였습니까?”
“……글쎄. 잘 모르겠어. 그냥, 목소리였어.”
고개를 젓자 이그니가 미간을 찌푸린다. 그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창문에 올라탔다.
“다녀올 테니 절대 아무 데도 가시면 안 됩니다.”
“응, 잘 준비나 하고 있을게.”
순순히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갈 마음도 없고 나갈 필요도 없다. 이불 속에 살금살금 몸을 집어넣었다.
이불은 깨끗하고 폭신했다. 조금 전까지 끔찍한 곳에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천장에 수놓아진 화려한 무늬가 보였다.
자르딘 왕국은 아름답고, 풍족하다. 그런 나라이기 때문에 국민들도 애국심이 더 강한 듯했다.
그들의 입장에서 해악이 될지도 모르는 존재를 배척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푹신한 이불이 제법 무겁게 느껴졌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잠시 몸을 굳혔다가 이곳이 왕성 안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그니인가?’
망설이다가 살며시 입을 열었다.
“이그니?”
“황녀 전하! 엘이에요!”
“엘? 들어와.”
엘이 이 시간에 무슨 일이지?
고개를 기울이자 문이 벌컥 열렸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밝은 표정의 엘이 불쑥 얼굴을 들이밀었다.
“엘! 왜?!”
“그냥 갑자기 뵙고 싶어서요.”
“나를?”
“네! 가까이 가도 될까요?”
순진무구한 얼굴로 묻는 엘에게 고개를 끄덕여줬다. 엘이 빠른 걸음으로 내게 다가왔다. 엘이 내 손을 붙잡는다.
오른쪽 손을 붙잡은 엘이 손등에 입을 맞췄다.
“그거 아세요?”
“그거?”
“곧 전쟁이 벌어질 거라고 하더라고요.”
“아, 응. 이그니가 알려줬어.”
이그니가 말해줬던 것이 생각났다. 엘까지 알 정도면 제법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
내 대답에 엘이 웃었다. 그가 놀란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알고 계셨어요? 트럼프 제국에서도 전쟁을 준비 중이라는 소식도 들으셨나요?”
“트럼프 제국?”
“네, 황녀 전하의 고향이시잖아요. 거기 황제가 전쟁을 선포했대요.”
“……전쟁을?”
“네!”
“왜?”
“으음……. 그것까진 잘 모르겠어요. 저도 나가서 주워들은 거라서.”
엘이 사르르 흘러내릴 것 같은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곤 나도 마주 웃어줬다.
한쪽 무릎을 꿇었던 엘이 사뿐하게 몸을 일으켰다.
“황녀 전하는 제국이 싫으신가요?”
“으음……. 왜?”
“그냥 궁금해서요.”
“응.”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 대화는 숨길 만한 것도 아니다. 싫으냐고 물어서 싫다고 답하는 것뿐이었으니까.
“싫은 이유는 현재 황제 때문인가요?”
엘이 웃으며 다시 물어왔다.
“……엘?”
이상한 분위기에 그의 이름을 불렀다. 엘이 눈을 동그랗게 뜨곤 고개를 기울였다. 다시 분위기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고개를 저었다. 엘이 평소와 다름없는 미소를 얼굴에 띠었다.
‘순간 조금, 기분이 이상했는데.’
멍한 기분이 된 것 같기도 하고…… 눈앞의 엘이 흐릿하게 보인 것 같기도 했다. 손을 들어 눈을 꾹꾹 눌렀다.
“아! 아까 저녁쯤에 재상 각하로부터 전언이 왔어요.”
“전언?”
“네. 폐하가 뵙고 싶어 하신대요. 내일 점심쯤에 오시라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응!”
내가 대답하자 엘이 또다시 웃었다.
원래 자주 웃는 아이였지만, 기분이 묘하다. 밤이라서 그런가? 묘한 느낌을 자아낸다.
“그럼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응? 응. 잘 자.”
“네, 행복한 꿈 꾸십시오.”
엘이 절제된 동작으로 인사를 건넸다. 저런 모습을 보면 그도 기사라는 게 실감이 나곤 한다. 손을 잡았던 엘의 손끝이 제법 차가웠다.
‘추운가?’
멍하니 생각하다 침대 헤드에 기댔다.
“갑자기 그 왕은 또 왜 부르는 거야?”
퉁명스럽게 입을 쭉 내밀었다. 이렇게 가둬두는 것으로도 부족해서 제멋대로 오라 가라 하다니.
‘물론 얹혀사는 신세니 어쩔 수 없지만.’
비죽 웃음이 튀어나왔다.
‘일만 끝나면 사고 치지 않게 아예 나가주겠다고 해야겠네.’
자르딘 왕국에서 나가면 이 시끄러운 소문들도 금세 사라질 거다.
“가기 전에 페델리우스 보고 싶다.”
베개에 얼굴을 묻으며 바람을 내뱉었다. 잔뜩 뭉개진 소리가 귀에도 꽂혀왔다. 페델리우스랑 계속 살고 싶었는데…….
한 번 꼬인 인생이 잘 풀리는 일은 없는 모양이다.
평범한 삶은 광장에서 들은 소문 이후로 포기했다. 어디를 가든 꼬리표처럼 따라오게 될 거다.
“난 뭘 위해서 이러고 있더라.”
처음에는 그저 원망할 곳이 필요했다. 다락방이라는 작은 세계에 갇혀 살면서 그것은 꼭 필요한 요소였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원망이 향할 대상은 한정됐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건 해선 안 되는 일이에요.>
언젠가 이리나에게 들었던 말을 똑같이 읊조렸다.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낯설게 들렸다.
“왜?”
여전히 누구에게서도 듣지 못한 대답이었다.
<너는 누군가를 죽이고 그 위에 선 채 살아가는 방법을 택했나?>
왕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누군가를 죽인다는 건 무게가 무겁다고 했다.
왜? 후회하지 않는 건 잘못된 일인가?
나는 이그니의 심장에 검을 박아 넣는다고 생각했다. 망설였지만 결국은 찔러 넣었다. 나는 앞으로 수많은 사람을 죽이게 될지도 모른다.
전쟁이 벌어지기 전에 일을 터뜨려야 했다.
“아콰의 힘이 돌아오면, 제국으로 가자.”
고민할 필요는 없다. 이 지경이 된 이상 일을 미룰 필요도 없었다. 자르딘 왕국에서 조용히 해결한다는 꿈은 이미 깨어졌다.
고민할 필요도, 망설일 필요도 없다.
‘차라리 페델리우스에게 들키기 전에 제 발로 떠나는 게 낫겠지.’
언젠가 알게 되더라도 내가 모르는 곳에서 알았으면 했다. 페델리우스가 기억하는 나와의 추억은 그저 행복으로 가득했으면 했다.
페델리우스만큼은, 나를 그냥 인간으로 봐줬으면 했다. 다른 건 바라지 않는다.
그저 평범한 황녀 한 명이 옆에 있었구나, 그렇게 생각해줬으면 했다.
아콰가 들어가 있을 손등을 왼손으로 천천히 덮었다. 그 위에 조심스럽게 입을 맞췄다.
“미안해, 아콰.”
늘 고맙고, 미안한 아이였다.
일이 끝나면 아콰와 둘이서 어딘가 좋은 곳에 자리 잡고 함께 살고 싶었다. 사람이 없는 숲 같은 곳에.
“페델리우스. 놀러 오라고 하면 와주려나.”
분명 그때쯤이면 모든 사실을 알게 되겠지만. 원망하거나 화를 내면 어쩔까 싶다가도 그걸 눈앞에서 전부 받아들일 자신은 없었다.
“보고 싶어.”
그 집에 처음 나올 때는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이 이 정도로 꼬였다면 돌아가는 건 무리겠지.
“제대로 보고 끌어안고 대화도 많이 나눌 걸 그랬어.”
물론 그렇다고 해서 헤어짐이 아쉽지 않은 건 아니겠지만.
“내일 왕을 만나면 확실히 얘기해야지.”
그런 다음에 아콰의 상태를 보고 제국에 가는 거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전부 끝내고…….
“응.”
그 전에 가능하다면 아버지라는 사람과 이야기를 해보자.
분명 아무것도 달라지진 않겠지만, 그래도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이다. 물거울로 본 적은 있었지만 대화한 적은 없었다.
“그러자.”
기지개를 켜며 드러누웠다.
“잘 자, 페델리우스.”
닿지 않을 인사를 굳이 입 밖에 내봤다. 당연하게도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