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9화 (59/99)

쭉 치켜 올라간 짤막한 검지가 보기 싫었다.

무거운 돌덩이가 심장에 올려졌다. 사고는 언제나 있는 일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어나는 일까지 내가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나

는 신이 아니고 아콰는 만능이 아니었다.

[안녕하십니까, 황녀 전하. 저는 엘이라고 합니다. 뵙게 돼서 무척 영광입니다. 으아아, 정말 떨려요!]

다만 처음 만난 날 그 화사했던 금발이 잊히질 않았다.

반짝거리는 그것은 분명히 아주 즐거웠던,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추억이었다.

죽음이란, 이런 거구나.

심장이 아프고, 무겁고, 반짝거리던 그 눈동자를 영원히 볼 수 없는 거다. 같은 영혼이어도, 언젠가 다시 땅으로 내려온다고 해도 그게 내가 다시 그를 만날 수 있다는 뜻은 아니었다.

“아콰…….”

<네, 주인님.>

바들바들 떨리는 주먹에 고개가 절로 떨궈졌다. 목까지 차오른 말에 입술이 바들바들 떨렸다.

그거 알아? 아콰.

네가 틀렸어.

내가 내뱉을 다음 말을 기다리듯 아콰가 침대 앞에 붙박이처럼 선 채 기다렸다.

……네가 틀렸어.

동시에 아콰의 몸이 푸른 빛무리에 휩싸였다. 아콰가 놀란 눈으로 푸른 빛무리에 삼켜졌다.

뒤늦게 고개를 들었을 땐 빛무리가 된 아콰가 점점 크기를 키워가며 모습을 변화시키고 있었다.

“아콰?”

부름에도 대답이 없다.

방 안이 온통 새파란 푸른 빛으로 가득 찼다. 바닷속에 들어온 듯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물은 없는데 방 안 가득 물의 기운이 충만했다.

손등의 문양이 이전보다 훨씬 밝고 짙은 빛을 내뿜고 있었다. 이건 언젠가 봤던 장면과 매우 흡사했다.

빛무리가 그때보다 크기를 훨씬 키우고 있다는 것만 제외한다면.

“또 성장하는 건가?”

저번에는 자르딘의 왕이 있을 때였다. 이번엔 뭐가 아이를 성장하게 한 거지? 당황스러움을 숨기지 못한 채 눈을 도르륵 굴렸다.

“아콰, 괜찮니?”

묻는 것과 동시에 빛이 산란하며 터져 나왔다.

‘또 이거야.’

질끈 눈을 감자 한층 더 빛이 밝아졌다가 금세 사그라들었다. 빛이 점멸하는 눈을 애써 꾹꾹 누르며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아콰?”

눈앞에는 벌거벗은 푸른빛의 소년이 서있었다. 적어도 십대 후반은 되어 보이는 소년이.

달칵- 문이 열렸다.

“황녀님! 목 넘김이 편한 수프를 가지고 왔……는…….”

들어오던 메리의 시선이 아콰에게 향했다. 정확히는 아콰의 벌거벗고 있는 몸에.

“꺄아아아악!! 경비병!! 경비병!!”

와장창!

메리가 접시를 집어던지며 나를 끌어당겨 자신의 뒤에 숨겼다. 졸지에 뜨거운 수프를 뒤집어쓴 아콰가 멍하니 나를 쳐다봤다.

“변태가 침입했어요!!”

비명을 지른 메리가 황급히 내 손목을 잡고 방 밖으로 끌어냈다. 저 멀리서 경비병들이 뛰어오고 있었다.

<주인……님……?>

아콰가 멍하니 제 머리에 씌워진 수프 그릇을 바닥에 떨어뜨리며 나를 불렀다.

“하, 하하…….”

메마른 웃음이 입에서 흘러나왔다. 정리할 수도 없을 정도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그러니까…… 이분이 물의 정령이시라는 건가요?”

“응, 아콰라고 해. 아콰, 이쪽은 메리.”

<네에에…….>

아콰가 흥미 없다는 듯 고개를 홱 돌렸다. 사실은 조금 삐진 것 같다.

눈동자를 도르륵 도르륵 굴리다가 말없이 아콰의 어깨를 툭툭 쳤다.

“아콰, 메리는 놀라서 소리를 질렀던 것뿐이야.”

메리를 변호하자 아콰의 입술이 툭 튀어나왔다. 어색하게 웃으며 아콰의 등을 두드려줬다. 댓 발 나온 입술이 들어갈 기미가 없다.

“죄송해요, 정령님. 변태 침입자라고만 생각했어요.”

<무례한 인간!>

아콰가 볼을 한껏 부풀리며 언성을 높였다.

손바닥만 했던 작은 요정은 어디로 갔는지 눈앞에는 열대여섯 살은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담요를 둘둘 만 채 서 있었다.

“그나저나 아콰, 엄청 커졌구나.”

<헤헤헤, 멋져요? 주인님?>

“음……. 응, 뭐.”

조금 징그럽기도 한 것 같다. 그래도 성격은 크게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아서 그것만큼은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시야가 높아져서 신기하네요.>

아콰가 벌떡 일어나 이곳저곳을 걸어 다니며 말했다. 몸놀림이 가벼워서 한 번 점프하면 허리춤까지 훅 떠오르곤 했다.

아콰의 키가 나랑 비슷해지다니. 아직 청소년 시기니까 분명 한 번 더 성장할 것 같은데 그러면 나보다 훨씬 커질 것 같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위대하신 정령께서 입으실 옷을 가지고 왔습니다.”

“아, 들어와.”

고개를 끄덕이자 신전의 시녀들이 고개를 숙인 채 종종걸음으로 들어왔다. 손에는 잘 개인 얇은 옷이 들려 있었다.

<저 옷을 정말 입어야 하나요? 주인님.>

“발가벗고 돌아다닐 순 없잖아?”

<인간들은 정말 이상한 것 같아요.>

아콰가 불만스러운 표정을 하면서도 순순히 옷을 집어 들었다.

살짝 턱짓하니 신전의 시녀들이 우르르 몰려나갔다.

“착하지? 이렇게 걸치는 거야.”

몇 번인가 더 달래주니 아콰가 주섬주섬 서툴게나마 옷을 챙겨 입었다. 매듭을 묶지 못하는 아콰를 보다 못해 내가 끈을 붙잡았다.

“아콰, 이건 이렇게…….”

매듭을 묶기 위해 끈 두 개를 붙잡았다가 손이 멈췄다. 이렇게 하는 게 맞던가. 눈이 절로 가늘어졌다.

‘아, 나도 해본 적 없었지!’

사실 대개 페델리우스나 아니면 메리가 해줬다.

다락방에 있을 때는 옷을 갈아입는 일이 많지도 않았지만, 어쩌다 바꾸어 입을 때도 매듭은 시녀들이 묶었다.

“……하는 게 맞을까? 메리!”

해맑게 웃으며 메리를 쳐다봤다. 나를 보며 웃던 메리가 내 뒤로 오더니 내 손등 위로 손을 겹쳤다. 그리곤 천천히 내 손과 함께 매듭을 묶어나갔다.

“여기에 이렇게 넣고, 이런 식으로 한 번 매듭을 짓는 거예요.”

메리가 조곤조곤 설명을 이어나갔다. 메리의 움직임에 따라 손이 멋대로 움직였다. 금세 그럴듯한 매듭이 완성됐다.

눈을 깜빡이던 아콰가 곧 바지를 입고는 바닥에 털썩 앉았다. 귀여운 아기가 눈 깜짝할 사이에 다 커버린 것 같다.

<불편해요.>

동굴에 울리는 듯한 목소리는 여전했다.

“그럼 계속 손등에 들어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괜찮겠어?”

<그것도 불편할 것 같아요……. 뭔가 이제 너무 좁은 느낌이라서.>

고개를 젓던 아콰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꽤 비싸고 좋은 원단으로 만든 고급 옷인지 굉장히 부드러웠다. 아콰의 푸른 피부까지는 어떻게 되지 않겠지만.

“잘 어울려, 아콰.”

<정말요?>

“물론이지. 굉장히 잘 어울려.”

손을 뻗어 아콰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 넘겨주니 아콰가 포스스 김빠진 웃음을 흘렸다.

다시 메리를 향해 고개를 돌리는 순간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메리가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왜 그래?”

“앗, 아니에요! 어쩐지 너무 포근한 느낌이라 조금 놀랐어요. 황녀님은 늘 어딘가 불안해 보였거든요.”

“내가 불안해 보여?”

“네. 절벽 끝에서 아슬아슬하게 서있는 것 같았어요. 바람이 불면 훅 날아갈 것 같고, 누군가 밀면 툭 떨어질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말하던 메리가 불쑥 다가와 내 손을 붙잡았다. 그리곤 눈꼬리와 입꼬리로 호선을 그리더니 내 어깨에 이마를 묻어왔다.

“지금은 제대로 여기 계시는군요. 황녀님.”

울먹이는 목소리에 잡혀있던 손 하나를 뺐다. 조심스럽게 메리의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겨주며 가만히 볼에 손바닥을 가져다 댔다.

“메리.”

“네.”

“내 이름은 오시리아야. 그러니까 황녀님이라고 부르는 건 이제 그만두자. 너무 멀어 보이잖아. 내게 메리는 소중해.”

숨결이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눈을 마주친 채 입술을 달싹였다.

메리는 내 눈을 피하지 않았고, 내가 기분 나쁘다며 도망가지도 않았다.

단 한 번도 그녀는 내게서 등을 돌린 적이 없었다.

“그러니까 반드시 지켜줄게.”

“황녀님……?”

“혹시나 말이야, 아주아주 만약에 다음에 보게 된다면…….”

“잠시만, 황녀님 무슨 소리를…….”

“그때는 오시리아라고 불러줘. 역시 이름이 불리는 건 기분이 좋으니까.”

손가락 끝에 푸른 기운이 모였다. 그것을 가만히 메리의 눈에 가져다 댔다. 푸른 빛이 메리의 눈으로 천천히 스며들기 시작했다.

“황녀님……! 싫어요!”

메리가 소리를 지르며 내 소매를 꽉 붙잡아왔다.

그녀가 그저 잠들기를 바라자 소매를 꽉 붙잡고 있던 메리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무너지는 몸을 잡아 조심스럽게 침대 위로 옮겼다.

물론, 내 근력으론 도저히 안 됐기 때문에 능력을 썼다.

“나 좀 못된 것 같지? 아콰.”

<주인님이 왜 못됐는데요?>

아콰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은 작은 요정일 때나 어린아이일 때나 지금이나 변화가 없다.

“메리가 싫다는데 잠재웠잖아.”

자리에서 일어나며 대답했다.

<저 인간 여자는 주인님을 모시는 사람이니 어떻게 대해도 상관없지 않을까요?>

“상관없지 않아.”

아콰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내 말에 아콰는 놀란 듯 조금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곤 언제나처럼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인다.

<이유를 물어도 괜찮을까요? 주인님.>

“만약에 내가 아콰가 싫다는데 아콰를 억지로 재워두고 혼자 떠나면 아콰는 기분이 어떨 것 같아?”

<주인님이 제게 그러실 건가요?>

“아니, 만약의 이야기야.”

<……음. 만약의 이야기를 생각해야 하나요?>

“아콰가 메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생각해야 하지.”

아콰의 말에 천천히 대답을 해주자 아콰가 얼굴을 확 구겼다. 기분 나쁜 것을 표현하는 게 아니라 아이의 머리론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저는 저 인간 여자를 이해할 필요가 없는데도 그런가요?>

“아콰가 나를 소중하게 여긴다면, 내 대답은 ‘응’이야.”

<……주인님은 소중해요. 세상 무엇보다도.>

“그렇다면 인간에 대해서 조금씩 알아가자. 나도 모르는 게 많으니까, 함께 알아가면 될 거야.”

더 이상 허리를 굽히지 않아도 아콰와 눈을 마주칠 수 있었다. 아콰는 시선을 내려 내 손을 한 번 바라보다가 곧 양손으로 나를 붙잡았다.

<주인님께서 원하신다면.>

아콰가 양손으로 붙잡은 내 팔을 조심스럽게 끌어당겨 손등 위에 입술을 꾹 맞췄다. 그리곤 눈을 한껏 휘어 웃는다.

“그나저나 이그니는?”

<그 인간이라면, 알아볼 게 있다고 사라진 뒤로 돌아오지 않았어요. 근데 이 인간 여자는 왜 재운 거예요?>

“왕이 선수 치려고 하는 것 같아서. 지금 제국으로 가려고.”

몸이 훨씬 가벼워졌다. 움직임은 물론이고 뻣뻣하게 몸 안을 맴돌던 푸른 기운들이 의지에 따라 더 자연스럽게 움직이게 됐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이상한 자신감마저 샘솟았다.

“이그니를 데리고 가야 할 것 같은데…….”

“여기 있습니다. 주군.”

갑자기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펄쩍 뛰었다.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버릇 좀 고치라는 말이 목까지 차올랐다.

“이제 온 거야?”

“네. 그 문양에 대해서 조금 알아보고 왔습니다. 생각보다 주군께서 빨리 깨어나시질 않아 걱정이 됐습니다.”

이그니가 불쑥 다가와 내 손을 붙잡았다. 그리곤 이곳저곳 살피며 나를 제자리에서 이리저리 돌리기까지 했다.

“……뭐 하는 거야?”

“다치신 곳은 없는지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난 멀쩡해. 그리고 그런 건 말로 좀 해줄래? 당황스러워서.”

“아. 죄송합니다.”

이그니가 순순히 고개를 숙이며 뒤로 물러났다. 그렇다고 또 벌레 피하듯 그렇게 물러날 건 없는데.

‘이그니는 중간이라는 게 없는 것 같아.’

하나를 시키면 그 하나만큼은 완벽하게 끝내는 것이 이그니였다.

“왕국을 떠나실 예정이십니까?”

이그니가 물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메마른 겨울바람 같은 목소리가 담담하게 목에서 흘러나왔다.

“응. 그러니까 너는 이만 네 갈 길 가.”

“절 버리시는 겁니까?”

“버리는 건 아니야. 하지만…….”

“그러면 데려가 주십시오. 당신의 방패라도 될 테니.”

이그니가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갑작스러운 이그니의 부복에 황급히 나도 몸을 쪼그려 앉았다.

“일어나.”

“데려가 주시겠다고 약속해주시면 일어나겠습니다.”

“넌 금방 죽을 것 같단 말이야.”

“저는 약하지 않습니다.”

그런 문제가 아니다. 삶에 의욕이 없는 것이 문제였다. 내가 위험에 처하면 이그니는 나를 위해 몸을 날릴 것 같았다. 나 역시 지킬 힘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 이상한 검에는 또 찔리면 안 될 것 같아.’

불안하다. 이그니의 눈동자를 바라보다 고개를 저었다.

“이그니. 널 버리는 게 아니야. 꼭 데리러 온다고 약속할게.”

“당신과 함께 갈 겁니다.”

“죽지 않겠다고 약속해줄 수 있어?”

“…….”

이그니는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애초에 자신의 죽음을 바라던 이그니였다. 그때는 어떻게든 심장에 검을 박아 넣을 수 있었다.

아니, 그조차 제대로 박아 넣지 못해 이그니는 돌아왔다. 나를 지키다 죽고 싶다고 했다. 전쟁터는 위험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엘의 껍데기를 뒤집어쓴 무언가가 있다.

‘그런 거엔 관심 없지만.’

만약 그것이 엘을 바닥에 쏟아버린 거라면 나도 그것을 바닥에 쏟아줄 의향은 얼마든지 있었다.

“저는 약속할 수 없습니다. 당신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뭐든 할 테니까요.”

“그러니까 안 돼.”

“여기서 계속 이러고 있겠습니다.”

이그니가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숙였다. 정말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겠다는 의지가 엿보일 정도였다.

이그니의 성격을 모르는 바가 아니라 절로 이마에 손이 올라갔다.

“난 네가 죽는 게 싫어.”

“저는 당신의 방패입니다.”

“네가 죽는 게 보기 싫다고.”

미간을 찌푸린 채 다시 한번 대답했다. 이그니 역시 여기서는 절대 물러나지 않는다. 평소라면 물러났을 것이 분명했는데.

“이그니.”

“제게 주군을 두 번 버리게 하지 마십시오.”

“돌아올게.”

“황제는 제 손으로 놓았습니다. 당신은 저를 죽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당신을 모시기로 했습니다.”

“…….”

“난생처음 스스로 정한 주군이 당신입니다.”

부러지지 않을 단단한 떡갈나무라도 보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는 결코 부러지지 않을 것 같았고 내가 할 말은 아마도 정해져 있었다.

“네가 네 목숨을 소중히 하겠다고 약속한다면 같이 가자.”

“주군. 저는…….”

“이그니. 내겐 너도 소중해.”

“…….”

“날 위해서 손에 피를 묻히는 걸 한순간도 고민하지 않았던 네게 미안하고 고마워.”

“그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이그니. 나는 메리와 마찬가지로 너 또한 지켜주고 싶어. 너 또한 소중한 사람이야.”

내 말에 이그니는 뻐끔거리던 입을 꾹 닫은 채 고개를 숙였다.

꽉 쥔 주먹이 그가 고민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듯했다. 이그니는 한참 만에 다시 고개를 들었다.

“노력은, 하겠습니다.”

“좋아. 고마워.”

간신히 받아낸 대답에 쪼그렸던 몸을 일으켰다. 그대로 손을 뻗어 이그니의 등에 날개를 만들었다. 저번에 만들어줬을 때보다 훨씬 더 커다란 날개가 그의 등에 솟아났다.

“멋있지?”

웃으며 묻자 이그니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번 것과 다르게 커 보입니다.”

“어쩐지 힘을 움직이는 게 편해져서.”

고개를 돌려 창문 밖을 쳐다봤다. 새파란 하늘이 눈부실 정도로 머리 위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지금이라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아.”

꽉 막혀있던 무언가가 뻥 뚫린 것 같은 묘한 감각이었다. 내 등에도 날개를 만들었다.

이그니가 곧장 하늘로 날아오르고 내가 그 뒤를 쫓았다. 내 뒤를 따라 아콰가 날개도 없이 하늘을 날아 내 옆으로 쪼르르 다가왔다.

<주인님께선 저 인간도 소중한가요?>

“응.”

<소중하다는 건 뭐예요?>

“죽지 않았으면 좋겠고, 옆에 있어줬으면 좋겠어. 지켜주고 싶어. 내가 아콰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과 같은 거야.”

<주인님께선…… 저 말고도 소중한 게 많이 생기셨군요.>

풀죽은 목소리가 어둑어둑하게 들려왔다. 처음 듣는 낮은 목소리에 날개를 움직이면서도 아콰의 안색을 살폈다.

“아콰?”

<인간들이 주인님을 바꾼 건가요?>

“너도 소중해. 아콰.”

다급하게 걸음을 날갯짓을 멈추고 입을 열었다. 물어오는 아콰의 목소리가 어쩐지 불안정했다. 내 물음에 소년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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