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큰 방해 없이 황성 안으로 들어간 페델리우스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황성은 상당히 넓었고, 다 찾아보려면 시간이 제법 걸릴 것 같았다.
“후우.”
그가 긴 숨을 내뱉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장막이 있다면 그가 찾는 그녀도 이 황성 안 어딘가에 있다는 증거였다.
거기까지 생각한 페델리우스가 곧장 왼쪽으로 향해 걸어갔다.
검을 들고 걸어가던 페델리우스는 곧 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온몸이 검으로 뚫린 경비병의 시체가 바닥에 굴러다녔다.
뇌와 심장은 물론 몸 여기저기 검에 찔린 상처가 많이 있었다.
그런 것에 비해…….
‘주변에 검이 없어.’
페델리우스가 몸을 낮춰 바닥을 살폈다. 검은 없지만, 피도 아닌 물이 흥건하게 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페델리우스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쪽엔 이미 왔다 가신 것 같은데.”
페델리우스가 조금 더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왔다 갔다는 증거를 남겨둔 것처럼 거대한 얼음이 문을 막고 있었다.
꽝꽝 얼어버린 그것은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모르겠으나 한 방울도 녹지 않았다.
“여긴…….”
페델리우스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가 벽에 손을 대고 귀를 기울였다. 안에는 분명히 인기척이 있다. 발광하는 소리가 그의 예민한 청력을 자극했다.
페델리우스가 곧 벽에서 귀를 떼며 먼 곳을 바라봤다. 제법 깊어 보이는 복도는 누군가 지나간 흔적이 없었다.
그저 얼음이 있는 이 문 앞에만 누군가의 신발 자국이 남아있었다. 가벼운 자국이 하나.
그리고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제법 많은 수의 사람들 것이 이어졌다.
‘누군가에게 쫓기고 계신 건가?’
그렇다기엔 걸음에 급박함이 없다. 몸을 숙인 페델리우스가 천천히 물이 묻은 발자국을 따라갔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꼴이 됐지만, 페델리우스는 그녀가 이쪽 복도 끝으로 다시 갔을 거라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발자국도 없었거니와 마치 목표는 이 얼음으로 막힌 문 안의 사람이었다는 듯 망설인 기색도 없이 깔끔하게 끊겨 있었다.
“반대쪽으로 가보자.”
물에 젖은 발자국은 금세 끊겼다.
페델리우스가 죽은 경비병들을 다시 스쳐 지나갔다. 그가 반대쪽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황성에 처음 들어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이곳도 길을 찾기는 쉬웠다.
이곳저곳에 시체가 널브러져있었다. 대개 경비병의 시체뿐이었는데, 거의 비슷한 방식으로 죽어있었다.
날카로운 검에 여러 차례 찔린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대부분 단번에 목숨을 잃었다.
오른쪽 복도 끝까지 걸어갔지만, 그녀는 없었다.
다만 페델리우스는 오시리아가 이 길을 지나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죽은 경비병의 시체도 있었지만, 또 한 가지가 눈에 띄었다.
‘여기도 얼음으로 막힌 문이 있어.’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벽에 귀를 대어보니 역시나 안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페델리우스가 긴 숨을 내뱉고는 이내 복도 끝에 있는 계단을 올라갔다.
황성의 계단은 아치형으로 되어있어서 제법 오래 걸어야만 2층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미 여기도 왔다 가셨어.”
이대로는 끝이 없을 듯했다. 2층 복도를 걸어가던 페델리우스가 다시 몸을 돌려 계단을 향했다. 그가 다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계단이 가파른데 힘들지는 않으셨으려나 모르겠군.”
붙잡았던 가느다란 팔목이 떠올랐다. 다리에 힘도 없어서 금세 휘청거리는 분이었다. 페델리우스의 머릿속에 스멀스멀 걱정이 샘솟았다.
‘얼른 찾아야겠어.’
페델리우스는 3층에서도, 4층에서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쉬지 않고 계단을 올랐다. 꼭대기 층이 나올 때까지. 이윽고 공간이 조금씩 좁아지더니 계단이 사라졌다.
“여기가 끝인가?”
페델리우스가 천천히 계단에서 빠져나왔다.
‘꼭대기인가?’
페델리우스가 보이는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아득할 정도로 높은 장소였다.
페델리우스가 있는 곳은 성의 첨탑으로 방이라곤 하나밖에 없고, 정돈되지 않은 짧은 복도만이 있는 곳이었다.
“여기까지는 아직 오지 않으신 것 같군.”
페델리우스가 복도를 천천히 걸어갔다. 복도는 빛이 잘 들어오지 않아 매우 비좁고 천장은 낮았다. 페델리우스가 허리를 살짝 굽힌 채 복도 끝까지 걸어 들어갔다.
“창고인가?”
페델리우스의 눈이 가늘어졌다.
창고 방 따위는 확인하지 않고 돌아가면 될 텐데. 그는 어쩐지 제 발이 떼어지지 않는 것에 의문을 느꼈다. 페델리우스가 낡은 문손잡이를 붙잡았다.
자물쇠로 잠긴 흔적도 있었다. 방문 틈 사이로 퀴퀴한 곰팡내와 썩은 내가 함께 흘러나왔다.
달칵, 끼이익-
기름칠도 제대로 되지 않은 문이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열렸다. 귀를 긁는 듯한 기분 나쁜 쇳소리에 그의 얼굴이 절로 일그러졌다.
찌직-! 쥐가 비명을 지르듯 재빠르게 구멍 사이로 빠져나갔다.
페델리우스가 한 걸음 방 안으로 들어갔다.
“여긴…….”
방은 창고 따위가 아닌 듯했다. 사람이 생활했던 흔적이 있었다.
침대와 널브러진 이불, 바닥에 버려진 음식물은 분명히 누군가 이곳에 있었다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게다가 자물쇠까지. 페델리우스는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에 입을 다물었다.
“누군가를 여기에 가뒀던 건가?”
황실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기엔 굉장히 격이 떨어진다. 비인간적인 광경에 페델리우스가 숨을 삼켰다.
이 안에 있던 사람이 얼마나 사람대우를 받지 못했는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이불 같지도 않은 이불은 얇디얇아서 천이라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건 마른 빵조각뿐이었고, 방 안에는 침대 외에 아무 가구도 없었다.
창문이라고는 천장에 아주 작게 뚫려 하늘 보이는 구멍이 전부였다. 그나마도 열고 닫을 수가 없어서 겨울에는 분명히 추웠을 게 뻔했다.
“마땅한 벌을 받는 거지.”
눈앞의 풍경은 그만큼 끔찍했다.
불쾌감에 얼굴을 구긴 페델리우스가 몸을 돌리려다 발걸음을 멈췄다.
그가 허리를 굽혀 바닥에 떨어진 걸 주웠다.
“……머리카락?”
아마도 이곳에서 생활했던 주인의 것인 듯했다.
그것은 페델리우스에게는 아주 익숙한 색이었다. 페델리우스의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그의 얼굴이 점점 딱딱하게 굳어갔다.
진홍색에 긴 생머리.
자세히 살피니 청소가 제대로 되지 않아 먼지가 가득한 방에는 같은 색의 머리카락이 제법 굴러다니고 있었다.
좁은 욕실과 화장실은 있었지만, 사람이 살기엔 부적절한 공간이었다.
“미친 새끼들.”
페델리우스의 입에서 기어코 욕설이 튀어나왔다.
이곳을 사용했던 주인이 누구였는지 그는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이 지금 그토록 찾아다니고 있는 사람이었다.
상처받고 상처받아서, 결국은 망가지기 일보 직전인 사람. 페델리우스가 황급히 몸을 돌려 다락방을 빠져나왔다. 그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오시리아.”
페델리우스의 걸음이 급하게 계단을 향했다.
아무것도 없는 방. 자물쇠가 걸려있고, 높은 곳이라 도망칠 수도 없다. 좁은 복도는 공간 자체를 더 협소하게 만들었다.
인간이 지낼 만한 곳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도 없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방이었다. 처음으로 그녀의 분노가 절절하게 와 닿았다.
페델리우스가 주먹을 꽉 쥐며 곧장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계단을 통해 6층에 내려가자 경비병과 마주쳤다.
“넌 뭐냐!”
페델리우스가 곧장 검을 뽑아 두 경비병의 목을 미련 없이 베었다.
가라앉은 시선으로 병사들을 내려다보던 페델리우스가 다시 아래층으로 향했다.
‘5층.’
페델리우스의 눈이 가늘어졌다.
경비병은 없지만, 누군가 들어간 흔적도 없는 것 같다. 혹시 몰라서 곧장 5층 복도로 걸어 들어갔다.
“누구냐!”
“여기도 아니군.”
촤악- 피가 허공에 튀며 소리를 질렀던 경비병의 목과 몸이 분리되어 바닥에 나뒹굴었다.
페델리우스가 어둡게 가라앉은 눈으로 시체를 내려다보다가 곧바로 몸을 돌렸다.
으득, 그가 이를 악물었다.
우연히 보게 된 오시리아의 과거가 속을 아프게 했다.
생각지도 못했다. 학대받았다고는 들었으나 저렇게 비인륜적인 곳에서 자랐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대체 얼마나?’
얼마나 저 좁은 방에서 지낸 거지?
이제야 그녀가 사람의 손길을 무서워하고 움츠리던 이유를 눈앞에서 마주한 것 같았다.
감히 상상도 되지 않았다. 저 안에서 대체 무슨 일이 얼마나 벌어졌는지는.
페델리우스가 곧장 계단을 다시 내려갔다. 4층에 도착했다.
“꺄아아악!! 사, 살려…….”
비명이 들렸다. 페델리우스의 걸음이 한층 빨라졌다. 그가 확 밝아진 얼굴로 소리가 들린 쪽을 향해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