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6화 (66/99)

* * *

쏴아아아아-! 굵은 장대비가 쉼 없이 바닥을 때리고 사막의 나라에 스며들길 반복했다.

“흐어어어……!!”

빗소리에 잠긴 통곡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당장 이들을 치료소로 옮겨라!”

상황을 살피던 페델리우스가 황급히 쓰러진 아이를 안아 들고 명령했다.

페델리우스가 그녀를 눈앞에서 놓친 이후, 자르딘의 왕은 군대를 이끌고 수도까지 곧바로 출진했다.

병에 걸린 이들이 대다수인 제국군은 왕국군의 상대가 되질 않았다. 특히나 황성의 소식까지 전해진 후 전장을 이탈하는 제국군의 수가 늘어났다.

망가진 군을 제압하는 것은 현명한 자르딘 왕에게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엔 스스로 항복 의사를 보인 제국군을 뒤로한 채 자르딘의 왕은 곧장 수도로 향했다.

결코, 제국에 내릴 리 없는 비가 하늘에서 폭우처럼 쏟아졌으니까. 그게 보름 전의 일이었다.

“정말 비가 지독하게 내리지 않습니까, 단장님.”

“보름째다. 이걸 만약 그분께서 내리고 계신 거라면 얼른 찾아야 해.”

“비가 멈추질 않아서 역병이 돌고 있습니다. 몸이 약했던 자들은 벌써 죽어가고 있습니다.”

페델리우스의 미간이 좁아졌다.

‘나는 네가 싫어할 일을 할 거야.’

그렇게 말했던 의미를 그는 비가 오 일이 지나도 그치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나서야 알게 됐다.

비는 멈추지 않고, 그것은 곧 역병을 불러올 터였다. 그리고 그건 오래지 않아 사실이 되어갔다.

단비를 맞이했던 제국민들의 눈이 점점 죽어가고 있었다.

“알아보라는 건 알아봤나?”

“예. 단장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수도에서 멀어질수록 비의 양이 점점 적어지고 있습니다.”

페델리우스의 미간이 좁혀졌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녀의 힘이 점점 약해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거기까지 깨달은 페델리우스가 이를 악물었다.

‘이 비가 멈추면 그 아이의 힘도 다한 게 되겠지.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다. 나는 더는 관여할 수 없다. 나머진 네 역할이다.’

페델리우스가 왕의 말을 떠올리며 숨을 삼켰다.

그는 그 말을 남긴 채 재상과 함께 황성의 점령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그들을 속국으로 만들 생각인 듯했다.

그러나 여전히 단단한 얼음벽만은 깨지 못한 듯했지만.

“오늘도 가십니까? 단장님.”

짐을 챙기는 페델리우스를 보던 카울란이 물었다. 페델리우스가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곳 지휘는 네가 맡아라. 카울란.”

“알겠습니다. 꼭 찾아주십시오, 단장님.”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어.”

페델리우스가 곧장 막사를 나섰다.

쏴아아아, 쉴 새 없이 쏟아져 내리는 빗줄기가 마치 그녀의 울음처럼 들렸다.

어딘가에 숨어서 대체 얼마만큼의 힘을 이곳에 쏟아내고 있는 건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찾지 않은 곳은 북쪽뿐이야.”

지난 보름간 정말 샅샅이 뒤졌다. 수도에 있는 집 하나하나까지 전부. 처음에는 병력을 동원할 정도였지만, 이제 남은 곳이 얼마 없어 어떻게든 혼자 찾아다닐 수 있다.

페델리우스가 걷는 속도를 높였다.

그녀는 멈출 수 없는 거다. 멈출 방법을 모르는 거다.

제 애원에도 멈출 수 없었던 것은 그것을 제외하면 그녀가 더 이상 서있을 방법을 몰랐기 때문일 테고.

“끝에서부터 훑고 내려와야겠어.”

페델리우스의 걸음이 빨라졌다.

성벽 끝에 닿자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사막의 모래가 쌓여있던 곳인지 빗물로 엉망진창이었다. 움푹 팬 채 바닥이 다 드러난 곳도 있었다.

‘여기는 숨을 만한 민가나 폐가가 있는 것도 아니군.’

너무 끝까지 온 건 아닌지 조금 후회됐다. 페델리우스가 혀를 차며 민가 쪽으로 걸음을 옮기려고 했다.

“……?”

멈칫, 다리를 멈춘 페델리우스가 비에 파인 모래를 바라봤다. 약간의 균열이 눈에 들어왔다.

“뭐지? 깨진 건가?”

페델리우스의 눈에 의문이 깃들었다. 이런 것에 시선을 둘 시간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이상하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땅이 비에 깨질 수도 있던가?’

페델리우스가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는 없다. 만약 있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검으로 베어낸 것처럼 반듯할 리는 더욱 없었다.

“아니, 그럴 리가 없지.”

페델리우스가 금이 간 곳에 가까이 다가가 몸을 굽히고 앉았다.

빗물에 눈앞이 흐릿했지만, 금은 보였다. 페델리우스의 손이 모래를 쓸어버렸다.

“……통로군.”

페델리우스의 손가락 끝이 정사각형을 그리는 금을 따라 손가락을 움직였다.

페델리우스가 검을 뽑았다.

은빛의 긴 검에 군청색의 짙은 검기가 피어올랐다. 마치 연기가 피어오르듯 옅은 안개처럼 보이던 그것이 이내 그의 검을 완전히 감싸 안았다.

그가 검을 들어 올려 잘린 틈새로 검을 박아 넣었다.

콰득, 그의 검이 단단한 바닥을 뚫고 순식간에 완전히 부쉈다. 페델리우스가 그 틈새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의 팔에 힘줄이 돋아났다. 콰득, 페델리우스가 무거운 문을 한 손으로 들어 올렸다.

콰앙! 물웅덩이 위로 떨어진 바닥의 돌문이 묵직한 소리를 내며 무너져 내렸다.

페델리우스가 황급히 돌계단을 밟으며 아래로 달려 내려갔다.

‘어두워.’

페델리우스가 미간을 좁혔다. 함부로 움직일 수가 없어 잠시 기다리자 희미하게 새어 들어오는 빛에 눈앞이 조금 밝아졌다.

페델리우스가 황급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누구야!>

통로를 울리는 목소리에 페델리우스의 눈이 크게 뜨였다.

“정령님이십니까?”

<넌…… 그 남자 인간이지?!>

“예!”

<도와줘. 주인님을, 살려줘…….>

쿵쿵. 쿵쿵.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페델리우스가 황급히 입술을 달싹였다.

“어디에 계십니까?”

<일직선의 길이야. 그대로 쭉 들어오면 돼!>

목소리가 들리는 것과 동시에 페델리우스가 앞으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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