Ⅸ
통로는 생각보다 깊고 넓었다.
목소리의 근원지가 훨씬 먼 곳이라는 걸 페델리우스는 제법 달린 후에야 깨달았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자 금방이라도 꺼질 것처럼 흐릿한 푸른 빛이 보였다.
그것은 바람 앞의 촛불보다도 더 위태로워서 페델리우스는 빛이 보이는 순간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달려갔다가 그녀의 생명도 완전히 꺼질 것 같았으니까.
<인간……. 주인님이, 움직이질 않으신다.>
너덜너덜한 옷을 입은 푸른빛의 소년이 바닥에 주저앉은 채 입술을 달싹인다.
망연자실한 표정에는 분명히 체념이 뒤섞여 있었다.
페델리우스가 황급히 다가가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얼음 속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차디찬 손은 이미 인간의 온기를 잃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비 냄새…….>
킁킁거리던 아콰가 숙였던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비는, 아직 그치지 않았구나.>
“네. 아직 내리고 있습니다.”
페델리우스가 대답하며 오시리아를 품에 안았다.
온몸이 얼음장마냥 차가웠다. 눈은 감겨있지 않았으나 제정신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녀는 생기를 잃은 눈동자로 그저 눈만 뜨고 있는 듯했다.
밭은 숨을 내쉬곤 있지만, 그것조차 희미했다.
“오시리아.”
페델리우스의 부름에도 반응이 없었다.
<너와 헤어진 후로 한숨도 주무시질 않았어. 처음엔 대답도 해주셨는데……. 점점 말이 없어지시더니, 이 상태로 움직이질 않으셔…….>
아콰가 울먹임을 담은 목소리로 말했다.
떠나고 싶지만 떠날 수가 없었다.
누군가를 불러오고 싶어도 다녀오면 주인님이 그 자리에 없을 것만 같아서 아콰는 움직이지 못했다.
사람이 떠나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지만, 이 보름간 아콰에겐 공포라는 것이 새겨졌다.
그건 정령인 소년에게는 매우 익숙하지 않은 것이었으나 동시에 그리 생소하지만은 않은 것이었다.
소년이 죽음을 선사했던 인간들의 눈에서 심심찮게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니까.
“오시리아. 약속대로 당신을 찾았습니다.”
그가 귓가에 속삭였다.
“비는 그쳤습니다.”
나지막한 페델리우스의 목소리에 인형처럼 앉아 있던 그녀의 손가락이 움찔 떨렸다.
“이제 해가 뜰 시간입니다. 오시리아.”
그녀의 체온을 녹이듯 힘껏 끌어안은 페델리우스가 쉬지 않고 속삭였다.
오시리아의 텅 빈 눈동자에 물이 차올랐다.
뻣뻣한 목이 천천히 올라가 페델리우스와 눈을 마주친다.
“페델, 리우스…….”
가뭄이 들어 쩍쩍 갈라진 땅보다도 더 메마른 목소리에 페델리우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약속대로 제가 당신을 찾았습니다. 그러니 이제 울지 마십시오.”
그녀의 눈이 크게 뜨였다.
납처럼 무거운 팔을 억지로 들어 올린 그녀가 페델리우스의 목을 끌어안았다.
울먹이는 표정으로 그의 어깨에 얼굴을 묻은 그녀가 느릿하게 이마를 부볐다.
“비를 잘 피하셨습니다.”
페델리우스가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이제 집에 돌아가지 않으시겠습니까?”
나지막한 물음에 그녀가 페델리우스의 옷자락을 꽉 쥐었다.
새하얗게 질린 손가락을 보던 그가 말없이 그녀의 어깨에 제 망토를 둘러줬다.
“나, 싫지 않아?”
울음기 섞인 목소리를 들은 페델리우스가 그녀를 덥석 안아 올렸다.
어린아이를 품에 안듯 허벅지를 받치고 허리를 감싸 안았다.
주저앉아있던 아콰가 냉큼 페델리우스의 뒤를 쫓았다.
“싫지 않습니다.”
“네가 싫어하는 일을 했는데?”
“하늘이 지난 이십 년간 내리지 못했던 비를 한꺼번에 내리느라 조절을 못 한 모양입니다.”
그가 담담하게 이야기하며 오시리아의 등을 느릿하게 쓸어내렸다.
그녀가 페델리우스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쓰다듬어주는 손길이 퍽 다정했다.
“대답, 듣지 못했는데요.”
“아.”
오시리아가 눈동자를 한 번 굴리더니 페델리우스를 끌어안았다.
“그 전에 황성에 가고 싶어.”
“황성에 말입니까?”
“응.”
“알겠습니다. 피곤하시면 조금 주무십시오.”
고개를 끄덕인 그녀가 다시 페델리우스의 어깨에 얼굴을 묻은 채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