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황녀 전하. 도착했습니다.”
몸을 흔드는 느낌에 무거운 눈꺼풀을 간신히 들어 올렸다.
페델리우스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살피고 있었다.
그사이를 버티지 못하고 잠이 든 모양이다.
“황성에는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문이란 문은 전부 얼음으로 틀어막혀서 부서지지 않았습니다.”
“응.”
페델리우스의 품에서 벗어나 느릿하게 바닥에 발을 디뎠다.
붉었던 시야가 어느 정도 정상적인 범위로 돌아온 채였다.
“드디어 둥지에서 벗어난 건가.”
“왕님.”
내 부름에 그가 미간을 좁힌 채 황성을 턱으로 가리켰다.
“왔다면 얼른 저걸 해결하도록 해.”
왕의 목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황성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피곤함은 여전했지만, 몸은 한없이 가벼웠다. 마치 아콰를 품에 안았을 때처럼.
경비병들을 지나쳐 문을 향해 손을 뻗자 단단하게 얼어있던 얼음들이 순식간에 물이 되어 쏟아져 내렸다.
“오오!”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힘껏 밀어 열어젖힌 문 안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따라 들어오려는 경비병들을 막아서며 고개를 저었다. 멀찍이 서 있는 페델리우스가 보였다. 천천히 그에게 손을 뻗었다.
“같이 갈래? 페델리우스.”
“원하신다면, 어디라도.”
페델리우스가 성큼성큼 걸어와 뻗은 내 손을 맞잡았다. 그를 끌어당겨 황성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마지막으로 보인 왕의 얼굴이 퍽 불만스럽게 보이긴 했지만.
“사람을 가둬놨어.”
“가둬두셨다는 말씀입니까?”
“응.”
“……그랬군요.”
눈을 가늘게 뜬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살짝 눈치를 봤지만 나를 탓하는 기색은 없었다.
“전부 죽었을 텐데 굳이 가시는 이유가 있습니까?”
“응. 나도 그러길 바랐는데, 아직 죽지 않았네.”
떨어져있어도 그의 숨결이 느껴졌다. 끊어질 듯 말 듯 이어지는 그것은 끈적거리며 몸에 들러 붙어있다.
그가 아주 불쾌한 생존을 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경비병들의 시체가 썩어서 역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그것들을 지나쳐 얼음으로 단단히 막아놓은 문에 손을 댔다.
이번에도 역시나 물이 되어 바닥으로 쏟아진 것을 한번 쳐다봤다.
문을 열기 위해 손을 뻗는 내 팔목을 페델리우스가 붙잡았다.
“제가 열겠습니다.”
“나도 열 수 있는데…….”
“뭔가 튀어나올 수도 있습니다.”
페델리우스가 두 손을 크게 폈다가 쥐며 덤덤하게 말했다.
그런 것치고는 볼 옆에 대고 했던 고양이를 닮은 손짓이 귀여워서 절로 웃음이 터졌다.
“그럼 부탁할게.”
“네.”
꽤 오랜 시간 꽝꽝 얼어있었던 문치곤 손잡이는 쉽게 돌아갔다.
달칵.
잠금이 풀리는 작은 소리와 함께 페델리우스가 문을 열었다.
페델리우스가 황급히 제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곤 손을 뻗어 내 코와 입도 가려줬다.
내 얼굴도 함께 구겨졌다. 피비린내와 썩은 내가 코를 찌를 듯이 괴롭혔다.
문에서 한 발자국 물러선 채 눈을 가늘게 떴다.
보이는 것은 지독히 처참한 풍경이었다.
두 다리가 없어진 솔루스가 벽에 기댄 채 널브러져 있었다.
그는 뼈가 도드라져 보일 정도로 바싹 말라 있었고, 두 눈과 볼은 푹 파여 퀭해 보였다.
“누, 누구세요? 아니야, 난 당신을……. 알아!!! 오시리아!! 네년이 감히!! ……아니, 아냐! 우리 딸, 사랑스러운 내 딸이 왔구나.”
어린아이처럼 어려졌다가도 다시 이기적인 남자의 것으로 돌아왔다가 다시 부드러운 목소리로 돌아가기도 했다.
그는 마치 반쯤 미쳐버린 것처럼 위태로웠다.
바닥에 널브러진 다리 두 짝은 누군가 뜯어먹은 흔적이 있었다.
누가 먹었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지만.
“아빠가 많이 아파. 얼른 치료해주렴. 괴물이 다리를 뜯어먹었어.”
고개를 저으며 황제가 중얼거렸다.
탁한 황금빛 눈동자가 내게 닿아왔다.
“으음……. 이렇게 미쳐버릴 줄은 생각지도 못했는데.”
볼을 긁적이며 한숨을 삼켰다.
인간의 처참한 모습은 제법 봤다. 개중에는 유모가 그랬듯 제 아들의 피를 먹으려 하는 잔인한 광경도 있었다.
그 기억이 떠올라서 일부러 방에 아무도 남지 않게 했었다.
설마 자신의 다리를 잘라 뜯어먹을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지만.
“기분이 어떠냐고 물을 수도 없게.”
성큼성큼 다가가 몸을 쪼그리고 그와 시선을 마주했다.
텅 빈 눈동자에 순식간에 분노가 차오른다.
아직 정신이 남아있긴 했던 모양이다.
“아바마마. 괜찮아?”
“괴물, 괴물이 있어…….”
그가 공포에 질린 채 중얼거렸다.
“응, 맞아.”
허공에 손을 휘젓자 공기 중에 있던 물이 순식간에 검이 되어 손에 잡혔다.
“그리고 괴물은, 이제 당신이 된 것 같네.”
손을 뻗어 그의 가슴에 가져다 댔다.
미약하지만 여전히 쿵쾅거리며 뛰는 심장 소리가 손끝으로 느껴졌다.
“아바마마. 알아? 당신 아직 살아 숨 쉬고 있어.”
죽어가는 눈동자를 웃으며 쳐다봤다.
흔들리는 그의 눈동자를 보다 쥐고 있던 검을 그의 손에 쥐여 줬다.
“당신이 내게 주지 않았던 선택지야. 곧 자르딘 왕국의 병사가 들이닥칠 테니까.”
그가 떨리는 눈으로 푸르게 빛나는 검을 내려다봤다.
“난 당신이 죽길 바라. 물론 전에도 죽길 바랐고.”
말끝을 흐리며 바닥에 굴러다니는 다리를 쳐다봤다.
정말 이토록 비참하게 살아남을 줄은 예상치도 못했다.
“널 낳는 게 아니었어……. 너 따위를 낳는 게 아니었다고…….”
쥐고 있던 검을 바닥에 떨어뜨리며 그가 중얼거렸다.
“네가 내 인생을 전부 망쳤어.”
제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황제는 쉬지 않고 중얼거렸다.
마치 지금 상황을 누군가에게 떠넘기기라도 하지 않으면 못 견디겠다는 듯.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며 옷깃을 털었다.
“말은 바로 해야지, 아바마마. 날 낳은 건 당신이 아니라 내 어머니야.”
입술을 달싹이다 곧 몸을 돌렸다.
하고 싶은 말이야 많지만, 더는 페델리우스의 앞에서 추태를 보이고 싶진 않았다.
울 만큼 울었고, 상처받을 만큼 받았다.
숨을 삼키며 그의 손을 붙잡았다.
“할 말은 다 하셨습니까?”
“응. 이제 가자.”
“예.”
페델리우스가 황제를 한번 흘겨보더니 나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이곳에 살아있는 사람은 황제뿐만이 아니었다.
한 명 더 인기척이 있다.
황성의 문 앞에 도착했을 때 페델리우스가 문득 걸음을 멈췄다.
“죄송합니다. 황녀 전하.”
“응?”
“생각해보니 아까 그 방에 뭔가 떨어뜨리고 온 것 같습니다.”
페델리우스가 정말 안타깝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눈동자를 느릿하게 굴리다가 미간을 찌푸렸다.
페델리우스가 뭔가를 들고 있었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뭘 떨어뜨렸는데?”
“아, 가지고 있던 게 있었습니다. 금방 가서 가져올 테니 먼저 나가 계십시오.”
페델리우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입술을 달싹였다.
“같이 갈까?”
“아닙니다.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음, 그래. 빨리 와.”
“예.”
페델리우스가 손수 나를 내보내고 다시 문을 닫았다.
어쩐지 반쯤 쫓겨난 듯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어서 멍하니 서있자 경비병들이 다가왔다.
“다친 곳은 없으십니까? 신녀님.”
“나?”
“네, 신녀님.”
어색한 호칭에 떨떠름하게 묻자 경비병들이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자르딘의 왕이 신녀라는 호칭을 내렸다더니 그건 정말이었던 모양이다.
‘난 또 나를 가둬놓으려고 했던 말인 줄 알았는데…….’
슬쩍 눈을 돌리자 왕이 매섭게 뜬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흠흠.”
냉큼 눈을 돌렸다.
“신녀님.”
“응?”
“폐하께서 부르시는 것 같습니다.”
“으응?”
못 들은 척 고개를 돌리고 있으니 경비병이 웃으며 내 앞을 가로막았다.
신녀라면서!
물론 신녀보단 왕이 더 높은 신분이긴 하지만.
“황녀. 당장 이리 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에 숨을 삼켰다.
적당한 변명을 생각하며 열심히 머리를 굴려봐도 딱히 좋은 해답이 나오진 않는다.
어쨌든 나는 하고 싶은 건 다 했으니까.
직접 죽이진 않았지만,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은 삶 정도는 만들어줬다고 확신한다.
“당장.”
“…….”
냉큼 몸을 돌려 왕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한 번 더 말을 안 들으면 그대로 쫓아올 것 같았으니까.
“내가 분명히 거기에 있으라고 했을 텐데.”
“……몰랐어요.”
“거짓말은 싫어해.”
팔짱을 낀 채 입술을 달싹이는 그를 쳐다보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그래서, 일을 치르고 나니 성이 좀 풀리나?”
“모르겠어요.”
손을 들어 가슴께를 꾹 눌렀다.
여전히 텅 빈 것 같고 여전히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무언가 충족시키고 싶은 욕구만 가득했다.
‘다시, 사람을 죽이면…….’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에 흠칫, 몸을 떨었다.
“그래서 말했잖느냐.”
한숨 섞인 목소리로 왕이 말했다.
“웬만해선 그런 형태의 복수는 최후로 생각해두라고.”
마치 내가 한 생각을 다 안다는 듯 말한 왕이 손을 뻗어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부드러운 손가락에 머리카락이 스르륵 빠져나갔다.
“나머진 내가 할 테니 넌 페델리우스와 먼저 돌아가거라.”
대답하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와서 마음 편히 그의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은 만나봤느냐?”
“그것?”
“썩어버린 고대의 것.”
“아. 엘을 뒤집어쓴 기분 나쁜 거라면 만났어요. 그건 서서히 썩어서 사라질 거예요. 기나긴 비에 형체를 유지하지 못하고 다시 땅에 묻혔을 테니까.”
내 말에 왕의 눈이 크게 뜨였다.
“넌 그걸 없애는 방법을 아는군.”
“이유는 모르겠지만…….”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땅이 버려지면 그가 먹는 양식이 사라지니까.”
쿵.
땅을 한 번 발로 구르자 푸른 빛무리가 땅속으로 스며들었다.
잠시 잠깐 땅이 흔들리는 듯하더니 이내 빛무리와 함께 사라졌다.
“또다시 그건 긴 시간 땅에 묶여있게 될 거예요.”
“그 녀석이 굳이 신경 쓰지 않았던 이유가 있었군.”
팔짱을 낀 왕이 허탈한 듯 중얼거렸다.
눈을 동그랗게 뜨자 그가 아무것도 아니라며 고개를 젓곤 황성을 쳐다봤다.
“페델리우스는?”
“뭔가 두고 온 게 있다며 다시 들어갔는데…….”
그러고 보니 뭔갈 찾으러 갔다기엔 시간이 좀 많이 흘렀다.
아직 찾지 못한 건가?
생각하며 문을 돌아보자 시기 좋게 황성의 문이 열렸다. 그가 성에서 나오자마자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페델리우스!”
목소리를 높이자 그가 곧장 내게 시선을 돌리더니 성큼성큼 걸어왔다.
왕이 혀를 차며 한숨을 삼켰다.
“기다리셨습니까?”
“응. 물건은 찾았어?”
“아…….”
페델리우스가 느릿하게 눈을 굴리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뇨, 역시 없었습니다.”
“다시 갔다 올까?”
“아뇨. 아마도 다른 데서 잃어버린 게 분명합니다.”
“……그래?”
잃어버린 물건을 찾으러 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왔다기엔 미련조차 없어 보이는 눈동자였다.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묘한 표정으로 그를 한 번 더 살폈다.
“예.”
“이제 나는 보이지도 않나 보지? 페델리우스 경.”
“아닙니다, 폐하. 위험요소는 확인하고 나왔습니다. 위협이 될 만한 것은 따로 없었으니 병사들을 진입시켜도 될 것 같습니다.”
페델리우스가 뻔뻔한 얼굴로 왕에게 말했다.
마치 애초부터 그걸 위해 들어갔다는 듯한 목소리에 왕이 헛웃음을 삼키며 페델리우스를 내려다봤다.
“아들 키워 봐야 다 소용없다더니…….”
그가 한숨 쉬듯 푸념을 늘어놨다.
“역병이 돌긴 했지만, 그래도 오랜 가뭄으로 메마른 땅에 그 정도의 비는 필요했다. 땅속까지 스며들어 언젠가는 다시 작물이 자랄 수도 있게 되겠지.”
페델리우스에게 기대어 서있는 나를 보며 왕이 말했다.
메말랐던 땅이 제법 축축했다.
고개를 숙여 잠시 땅을 쳐다보다가 시선을 옮겼다.
“모르는 일이에요.”
알고 싶지도 않고 관심도 없다.
더는 이곳에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하고 싶던 일은 이뤘다.
그저, 페델리우스와 내기를 한 것뿐이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죠. 오시리아.”
“응.”
페델리우스에게 끌어안긴 채 그의 어깨에 볼을 비볐다. 그저 이 품 안에 있을 때만큼은 마음이 편했다. 그와 있으면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