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내려오셨습니까?”
식탁에 앉아 있던 페델리우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의자를 끌어내며 자리를 만들었다.
“간단히 식사하고 수도에 나갈 건데 어디 가고 싶은 데는 없으십니까?”
“시장!”
“시장이 가고 싶습니까?”
페델리우스가 퍽 의외라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포크를 손에 쥐며 고개를 끄덕였다.
“메리가 대신 장을 봐오랬어.”
“장을요?”
“응. 이런 게 심부름이지? 부탁한다길래 알았다고 했지.”
고개를 주억이며 말하자 페델리우스가 이해했다는 듯 짧게 대답했다.
슬쩍 고개를 숙여 페델리우스와 눈을 맞췄다.
언제나처럼 그가 묵묵히 나를 마주봤다.
‘……피했어.’
몇 초였지? 이번에도 역시 5초를 넘은 것 같지는 않다.
턱을 괸 채 페델리우스를 지그시 바라봤다.
페델리우스가 시선을 돌린 채 입을 꾹 다물었다.
“페델리우스.”
“예.”
그의 시선이 잠깐 닿았다가 떨어졌다.
“내가 무슨 잘못 했어?”
“아뇨. 그런 거 없습니다.”
“근데 왜 자꾸 눈을 피해?”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며 되묻자 페델리우스의 입술이 더 꽉 다물어졌다.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불쑥 얼굴을 들이밀었다.
“오, 오시리아……?”
한껏 눈동자를 옆으로 굴린 페델리우스가 간신히 입술만 달싹였다.
“날 봐, 페델리우스.”
“아, 알겠습니다! 너무 가까우니 조금만 뒤로…….”
페델리우스의 얼굴이 한층 붉게 달아올랐다. 목소리도 살짝 떨린다.
열이라도 있나 싶어 손을 뻗자 그가 살짝 몸을 움츠렸다.
뻗던 손을 멈췄다가 내렸다.
“네가 날 보지 않으면 기분이 이상해.”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속에서부터 절로 새어나갔다.
늘 나를 쳐다보던 페델리우스가 내 눈을 피한다. 이상하게 배가 당기고 가슴 한편이 찌릿찌릿했다. 마치 온몸에 정전기가 인 기분이었다.
페델리우스의 시선이 천천히 내게 다시 와 닿았다.
“당신과…….”
그가 천천히 입술을 달싹였다. 페델리우스의 손이 천천히 올라가 제 입을 가렸다.
얼굴을 반쯤 가린 그가 느릿하게 고개를 숙여 나와 시선을 마주쳤다.
“오시리아와 눈이 마주치면 숨을 쉬기가 조금 버거워서…….”
그가 눈을 한 번 깜빡였다.
순간 숨이 멎을 것 같은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그래서 그랬습니다. 싫은 건 결단코 아닙니다.”
“아. 응. 싫은 게 아니라면, 응……. 괜찮아.”
얼굴에 열이 몰릴 것 같아 냉큼 고개를 끄덕이곤 쥐고 있던 포크로 잘린 고기를 푹 찔렀다.
“어, 얼른 먹고 가자.”
고개를 숙인 채 고기를 찍은 포크를 위아래로 흔들며 말했다.
“예…….”
페델리우스가 짧게 대답하며 식기를 손에 쥐었다.
어색한 기류가 풀풀 흐르는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당 밖에는 메리가 두툼한 로브를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겨울도 아닌데…….’
눈동자를 도르륵 굴리다가 그냥 순순히 로브를 몸에 걸쳤다.
기껏 준비해온 것을 거절할 용기가 나질 않았다.
“이게 장을 볼 목록이에요.”
메리가 내 손에 쪽지를 쥐여 줬다.
살짝 펼쳐보니 동글동글한 글씨체가 또박또박 적혀있다.
“가게 이름도 적어놨으니 가서 제 이름을 대시고 물건을 사오시면 됩니다.”
“응! 다녀올게.”
“네,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그리고…….”
메리가 조금 곤란하다는 듯 볼을 긁적이며 내 눈치를 살살 살폈다.
어색하게 웃는 표정을 잠시 보다가 고개를 기울였다.
“뭔데? 말해도 돼.”
“정령님 말인데요.”
“아콰? 아콰가 왜?”
“주방 한쪽에 틀어박혀서 웅크리고 앉은 채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으셔서요. 혹시 주방에 물이 많아서 편안해 하시는 건가요?”
메리의 말에 입이 절로 다물어졌다.
최근 아콰가 나를 피하고 있다.
잠시 잠깐의 방황이라고 생각해서 그냥 두고 있었지만, 걱정스러운 건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말을 걸면 고개를 푹 숙인 채 ‘네.’라는 대답만 반복하는 아콰를 계속 붙잡아두기도 힘들었다.
“메리.”
“네?”
“미안하지만 아콰를 잘 부탁해. 왜인지 모르겠지만, 아콰는 나한테 화가 난 것 같기도 해. ……아마도.”
화가 났다곤 표현했지만 그런 격렬한 분노의 눈은 또 아니라는 걸 안다.
그러나 별달리 표현할 말이 없었다. 나 또한 아콰가 어떤 감정인지 이해하질 못했으니까.
애초에 왜 아콰의 심기가 상했는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네! 제게 맡겨주세요!”
“응. 부탁해. 아콰는 물이 많은 곳을 좋아하거든.”
“알겠습니다. 제가 한번 가볼 테니 주인님과 시리 님은 얼른 다녀오세요.”
꾸벅 고개를 숙이는 메리를 바라보다가 손을 흔들었다.
페델리우스가 문 앞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허리춤에 찬 검과 제복이 퍽 잘 어울렸다.
‘맨날 갑옷을 입을 때가 많으니까.’
옷이 바뀔 때면 신선하게 느껴지긴 했다.
“걸어가실 수 있겠습니까?”
“응.”
시장으로 향하는 길은 전부 평평한 길이어서 걷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내 저질스러운 체력을 제외한다면.
슬슬 다리가 아파와 걸음을 뚝 멈췄다. 겨우 십오 분쯤을 쉬지 않고 걸었을 뿐이다.
그것도 아주 느리게!
‘이건 아니야…….’
이러다 정말 걷다가 쓰러진다는 말이 현실이 될 것 같았다.
“페델리우스.”
“예.”
“나 검 배우고 싶어졌어.”
“……예?”
페델리우스의 얼굴이 당황스러움으로 물들었다. 그가 말없이 내 시선을 피했다. 물론 그의 시선을 따라 나도 몸을 움직였지만.
“응?”
“검은 무거워서 안 됩니다.”
“내가 만든 검은 무겁지 않잖아.”
“위험합니다.”
“걷다가 쓰러지는 것도 위험해.”
페델리우스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너무하네.
눈도 마주치지 않을 필요는 없잖아.
떼를 쓸까 생각하다가 한 달 만의 외출이라는 걸 생각하니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페델리우스는 치사해.”
한숨을 푹 내쉬고 멈췄던 걸음을 다시 빨리했다.
조금 숨이 벅찰 정도로 빨리 걷는데도 뒤에서 따라오는 소리는 줄어들지 않는다.
“오시리아.”
“…….”
힘껏 걷는 내 노력을 무시하듯 페델리우스가 옆에 바싹 따라붙었다.
‘이건 좀 짜증이 나는 것 같기도 한데.’
게다가 힘든 기색도 없다.
좀 더 빨리 걸을까 생각하는 도중에 턱, 손목이 붙잡혔다.
그다지 아프지 않게, 부드럽게 붙잡은 손은 누구의 것인지 한 번에 알 수 있었다.
“오시리아.”
“왜?”
조금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튀어나갔다. 생각한 건 이게 아니었는데.
스스로 내뱉은 말에 조금 놀라서 냉큼 입을 닫았다.
물론 그게 조금 더 좋지 않은 효과를 발휘한 것 같지만.
“화나셨습니까?”
“아니.”
“그냥, 저는. 당신이 검을 들 필요가 없다고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페델리우스가 내 앞에 선 채 머뭇거리며 말했다.
“난 애가 아니야.”
그가 자꾸 애 취급하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제 솔직히 말한 지 한 달도 넘었고.
‘슬슬 애 취급하는 것에선 졸업해줬으면 좋겠는데.’
물론 내가 먼저 시작한 일이기 때문에 불평불만을 토할 자격이 없다는 건 알고 있다.
알고는 있지만…….
“알고 있습니다. 다만 검은 위험합니다. 당신이 원하는 거라면 뭐든 도와드리고 싶지만, 누군가를 해치기 위한 도구를 사용하는 방법을 가르쳐드리고 싶진 않습니다.”
몸을 숙인 페델리우스가 최근에는 드물게도 나와 눈을 마주친 채 설명했다.
염려 섞인 눈을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그니한테 독침 쓰는 법을 알려달라고 해볼까.’
눈에도 안 띄고 가볍고 쉬우니까. 생각하다가 혼자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주 괜찮은 생각인 것 같다.
물의 힘은 주변이 시퍼렇게 변해서 솔직히 너무 눈에 띄고…….
‘이그니 오면 물어봐야지.’
물론 페델리우스 몰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