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2화 (72/99)

* * *

“정령님~”

메리가 식당으로 들어서며 아콰를 불렀다. 익숙한 목소리에 아콰의 얼굴이 구겨졌다.

‘귀찮고 무례한 인간.’

식당 구석에 쪼그려 앉은 채 요리하는 모습을 보고 있던 아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콰가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대충 뒤로 넘기며 눈을 치켜떴다.

“뭐야?”

“저랑 호숫가에 가지 않으실래요?”

“내가 인간 따위랑 왜 그래야 해?”

아콰가 날이 선 목소리로 말했다.

분명히 기분 나쁘라고 한 말이었는데도 메리는 별다른 기색 없이 웃어 보였다.

한층 더 기분이 나빠진 아콰가 얼굴을 구겼다.

“굉장히 넓어서 분명 마음에 드실 거예요. 여기에만 계셔도 따로 할 일은 없으시잖아요.”

“……주인님은?”

“제 주인님과 시장에 가셨어요.”

메리의 대답에 아콰가 풀죽은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최근 들어 아콰는 제 주인에게 자신의 필요성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실제로 그녀는 아콰를 찾는 일이 줄어들었다.

‘내가 도움이 안 돼서 그래.’

가장 힘들 때 도와주지 못했다.

아무리 깨워도, 깨워도 제정신을 차리지 않던 제 주인은 인간 남자의 목소리에 눈을 떴다.

그 인간 남자만이 단단하게 자리 잡은 주인의 장막을 뚫고 들어갈 수 있었다.

아콰, 자신조차 밀어내던 그 물의 장막을.

고개 숙인 아콰를 살피던 메리가 냉큼 소년의 손을 붙잡았다.

손에 닿은 온기에 아콰가 고개를 들었다.

“호숫가는 여기서 멀지 않아요. 같이 가요. 정령님.”

“……마음대로 하도록 해.”

아콰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기분전환이 필요한 건 사실이다.

아콰는 최근 자신의 감정이 매우 이상하다는 걸 깨닫는 중이었다.

뭘 해도 의욕이 나지 않고, 뭘 해도 즐겁지 않다.

인간 남자와 즐겁게 노는 주인님을 볼 때마다 속이 울렁거리고 기분이 나빠진다.

이름조차 모를 감정에 아콰는 매우 괴로웠다.

그래서 최대한 마주치지 않기 위해 찾은 곳이 식당이었다.

기분이 조금 나아지면 다시 소중한 주인님의 곁으로 돌아갈 생각이었으니까.

“날 즐겁게 해봐, 인간.”

“저는 메리예요. 메.리.”

“알고 있어.”

아콰가 뭐 그렇게 당연한 걸 묻느냐는 듯 대답했다. 메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메리라고 불러주세요. 저도 아콰 님이라고 불러도 괜찮을까요?”

“내가 왜 네 이름을…….”

“밖에 나가셔서 절 인간이라고 부르시려고요? 분명히 이상하게 볼 거예요.”

메리가 짐짓 단호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아콰가 얼굴을 구기곤 떨떠름한 표정을 짓자 그녀가 확 풀린 얼굴로 웃었다.

“불러주세요. 이름.”

“……메리잖아.”

“네! 아콰 님. 일단 눈에 띄니까 옷을 갈아입으러 갈까요?”

아콰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식사는 하시나요?”

“정령은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괜찮아.”

“먹을 순 있으시죠? 맛을 느끼거나…….”

메리가 아콰의 손목을 붙잡은 채 그를 끌고 2층으로 향했다.

어찌나 힘이 센지 아콰의 눈이 동그랗게 커질 정도였다.

“그거야 뭐…….”

먹지 않아도 상관없지만, 먹어도 괜찮다.

정령 중에는 일부러 인간들의 맛있는 음식을 찾아 유희를 떠나는 이들도 있을 정도였다.

물론, 아콰는 오시리아와 함께하는 내내 그녀가 먹을 식량도 부족했기 때문에 무언가를 먹는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지만 말이다.

“호숫가 근처에 굉장히 맛있는 음료 가게가 있어요.”

“나는 굳이 먹지 않아도…….”

“먹어보시면 분명히 맛있다고 생각하실 거예요.”

메리가 아콰를 방으로 밀어 넣었다.

졸지에 떠밀린 아콰가 방 한가운데에 멀뚱멀뚱하게 서서 메리를 쳐다봤다.

메리가 옷장을 뒤져 뭔가를 이것저것 끄집어냈다.

허공을 날아다니는 옷더미를 바라보며 아콰가 메리를 쳐다봤다.

“뭐하는 거야?”

“옷이요. 피부가 파란색이시니까 눈에 띌 것 같아서요. 그리고 그 옷은…… 솔직히 너무하다고 생각해요.”

메리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허름한 천 쪼가리 옷에 헐렁한 바지만 걸치고 있는 제 꼴을 내려다보던 아콰가 묘한 표정을 했다.

“이상해?”

“꽉 끼이는 옷이 싫다고 하셨는데 그래도 그건 너무 얻어 입은 것 같아요.”

“…….”

메리의 솔직한 말에 아콰가 제 옷을 다시 살폈다.

제법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인간들 눈에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굉장히 귀여우시니까 잘 차려입으면 분명히 인기가 많아지실 거예요. 피부는 색을 바꿀 수 없나요?”

“할 수 있어.”

아콰가 메리의 피부를 눈으로 한 번 훑고는 제 몸을 살짝 터치했다.

아콰의 피부가 순식간에 살짝 탄 피부색으로 바뀌었다.

“와아, 그럼 굳이 몸을 다 가릴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메리가 다시 옷장에 얼굴을 박으며 옷을 고르기 시작했다.

다시 옷이 하늘을 날다 바닥에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했다.

‘이상한 인간.’

아콰가 말없이 주황색 머리를 휘날리며 옷장을 뒤적이는 메리를 쳐다봤다.

‘주인님…….’

아콰의 세상은 오직 오시리아뿐이었다.

속이 허한 기분에 아콰가 침대에 주저앉았다.

“자! 이렇게 입어요. 아콰 님!”

“……이게 뭐야?”

난생처음 보는 이상한 옷에 아콰의 눈이 가늘어졌다.

어떻게 쓰는지도, 입는지도 모르겠는 옷뿐이다.

“앗, 입을 줄 모르시면 제가 도와드려도 괜찮을까요?”

“그러든가.”

아콰가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의 의복이라는 걸 제대로 입어본 적이 없었다.

가죽으로 된 허리띠라든가 구멍이 세 개 난 천을 입어본 적이 있어야지.

“일단 지금 입은 옷을 벗으시겠어요?”

아콰가 바지를 붙잡자 메리가 황급히 아콰의 손을 붙잡았다.

“왜?”

손에 닿은 뜨거운 온기에 아콰가 미묘하게 표정을 구겼다.

되묻는 아콰를 보던 메리가 도르륵 시선을 한 번 굴리곤 옅게 웃었다.

“바지는 입을 줄 아시나요? 여기 이 구멍에 다리를 하나씩 넣어서 바싹 끌어올리시면 돼요. 할 수 있으시겠어요?”

“당연하지! 날 뭐로 보는 거야? 인간.”

“그럼 제가 뒤돌아 있을 테니까 다 갈아입으시면 말씀해주세요.”

“왜?”

“어쨌든요. 부탁드려요.”

메리가 한차례 머리를 숙이자 아콰가 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콰가 낑낑거리며 옷을 벗기 시작했다.

허리춤의 끈을 푸니 바지는 쉽게 풀렸다.

떨어진 바지를 옆에 밀어둔 소년이 새 바지를 손에 쥐었다.

메리가 알려준 대로 바지에 다리를 꿰었다.

서서 하기엔 제법 힘겨워 아콰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다 하셨…….”

꼼지락거리는 소리가 멈춘 듯해서 메리가 몸을 돌렸다.

주저앉은 채 낑낑대고 있는 아콰를 보던 메리가 어색하게 웃었다.

“웃지 마. 인간들의 옷은 불편하단 말이야.”

“입다 보면 편해지실 거예요.”

아콰를 일으켜준 메리가 소년의 바지를 정돈해주며 말했다.

팔짱을 낀 아콰의 윗옷도 벗긴 메리가 이내 허리춤에 허리띠를 매어줬다.

“와, 엄청 잘 어울리시는데요?”

“당연하지. 내가 누군데.”

“위대하신 정령, 아콰 님이시죠.”

“흠흠……. 잘 알고 있네.”

아콰가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살짝 붉어진 귓불을 쳐다보던 메리가 아콰의 머리에 모자를 씌웠다.

“좋아요. 아주 완벽한 것 같아요.”

“으흠…….”

메리의 칭찬에 아콰가 기분 좋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거울에 비치는 제 모습을 이리저리 만져보던 아콰가 메리를 쳐다봤다.

“나가자.”

“아,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어요? 저도 옷을 갈아입어야 해서요.”

“그래? 얼른 입어.”

아콰가 팔짱을 낀 채 말했다.

자리에서 떠날 기색이 없어 보이는 아콰를 보던 메리가 뒷머리를 긁적였다.

“잠깐 밖에서 기다려주시겠어요?”

“왜?”

“아콰 님이 보고 계시면 부끄러우니까요.”

“뭐가 부끄러워? 인간은 옷을 갈아입는 게 부끄러운 일인가?”

아콰가 고개를 기울였다. 겉에 두른 홑껍데기를 갈아입는 것이 뭐가 그리 부끄러운 일이지?

아콰로선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콰는 그녀의 주인이 옷을 갈아입을 때건 씻을 때건 언제나 함께 있었고 그녀가 그것을 부끄럽게 여긴 적은 없었다.

그저 당연한 일이 아니었던가.

“음, 설명해드리긴 조금 어렵지만……. 어쨌든 부탁드려요.”

“복잡한 인간이야.”

아콰가 툴툴거리면서도 순순히 방 밖으로 빠져나갔다.

철컥, 문까지 걸어 잠그는 소리에 아콰의 한쪽 눈썹이 기이하게 쭉 올라갔다.

‘이깟 문 여는 건 일도 아닌데.’

겨우 자물쇠 하나를 걸고서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인간의 아둔함이란.

아콰가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주인님이 좋아하는 인간이니까.”

아콰는 그녀에게 해를 입힐 수 없다.

오히려 아마도 무슨 일이 생기면 메리라는 인간을 지켜줘야 할 확률이 높았다.

아콰가 귀찮음에 한숨을 삼켰다.

‘괜히 간다고 했나.’

호수라고 하니 괜히 가고 싶어져서 마음대로 하라고 했지만.

달칵, 문이 다시 열렸다.

“많이 기다리셨어요?”

메리가 문틈 사이로 빼꼼히 고개를 내밀며 물었다.

많이 기다렸냐니.

정령에게 인간의 시간은 찰나의 순간과 같다.

게다가 몇 분 정도는 소년에겐 시간이라고 하기도 힘들었다.

“인간은 옷을 갈아입는 것만으로도 분위기가 제법 바뀌는구나.”

아콰가 수수한 모습에서 제법 반짝반짝 빛이 나는 모습으로 바뀐 메리를 보며 순순히 감탄사를 흘렸다.

“그거 칭찬이죠?”

“칭찬? 그냥 감상이지.”

“그러니까 좋은 쪽의 감상이잖아요.”

“그건 그래.”

“그런 걸 보통 칭찬이라고 하는 거예요. 감상보다는 그 편이 듣기가 더 좋잖아요.”

활짝 웃으며 덧붙인 메리의 모습에 아콰가 입을 닫았다.

주인님과 비슷할 정도로 반짝반짝 빛이 나는 여자다.

깨끗한 영혼은 분명히 보기 드물 정도로 희귀한 것이었다.

‘우리 주인님만큼은 절대 아니지만.’

아콰가 고개를 주억이며 생각했다.

“호수까지는 걸어가는 방법과 마차를 타고 가는 방법이 있는데 어느 쪽이 더 좋으세요? 아. 마차는 시장에서 타야 하기 때문에 기다리는 사람이 많이 있을 거예요. 걸어가려면 한 삼십 분은 걸어야 하고요.”

“난 상관없어. 넌 괜찮아? 다리가 부러지거나 하지 않나? 인간은 약하잖아.”

아콰가 미간을 좁힌 채 심히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신의 가호를 받은 제 주인도 오래 걸으면 굉장히 힘들어했던 것을 아콰는 기억하고 있었다.

인간도 훈련이라는 것을 받으면 그 인간 남자처럼 강해지기도 하는 모양이지만 아콰가 보기에 메리는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았다.

메리의 눈이 동그래졌다.

“네에? 푸흡…….”

메리가 입을 가리며 웃음을 살짝 터뜨렸다.

아콰의 표정이 뚱해졌다.

“뭐야?”

“물론 정령님보다는 튼튼하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삼십 분 걸어서 다리가 부러지는 사람은 없답니다.”

“……그래?”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가늘게 뜬 아콰가 메리의 주변을 뱅뱅 돌며 그녀를 살폈다.

아콰에게 오시리아는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었다.

다른 인간들과는 결코 다르고, 다른 인간들에 비견할 수 없을 정도로 강인한 사람이기도 했다.

적어도 아콰에겐 그랬다.

그러니까 아콰는 제대로 된 ‘평범하고 연약한 인간’을 제대로 마주하는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툭 치면 부러질 것 같아.’

아콰가 콧바람을 훅 내뿜으며 팔짱을 꼈다.

“그럼 걸어가도 괜찮으세요?”

“인간, 네가 괜찮으면.”

“메리예요.”

“그래. 메리.”

아콰가 생각보다 순순하게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메리가 제법 기쁘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요, 아콰 님.”

꽤 신난 표정의 메리가 앞장서는 것을 아콰가 곧장 따라갔다.

이렇게 인간인 척하고 밖으로 나온 적은 없었기 때문에 아콰의 눈에도 제법 신기한 것들이 많았다.

주인의 손등에 들어가 구경한 적은 있지만 직접 피부로 느껴보는 건 처음이었다.

“너는 뭐가 그렇게 기뻐?”

아콰가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인간이 많아서 그로선 불쾌하기 그지없었다.

그들의 문화는 분명 신기하지만 기쁜 것은 아니었다.

“기쁘죠. 이렇게 어딜 놀러 가려고 작정하고 나온 건 오랜만이니까요.”

“놀러 나온 게 기쁜 거야?”

“물론 그것도 기쁘지만, 아콰 님과 함께 가는 것도 메리는 기뻐요.”

메리가 입을 가렸다.

“아차, 메리가 아니라 ‘저는’이에요. 입에 익어버려서…….”

메리가 배시시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나와 함께 가는 게 기쁘다고? 왜?”

“어어…….”

메리의 눈동자가 도르륵 굴러갔다.

“그냥 기쁨을 느끼는데 무언가 이유가 필요한가요?”

그녀가 도리어 고개를 기울이며 되물었다.

아콰의 미간이 좁아졌다.

“이유가 없는데 기쁘진 않잖아.”

“어, 그러면…… 오랜만에 아름다운 호수를 아콰 님과 보러 가게 돼서 기쁜 걸로 해요.”

메리가 적당한 이유를 붙이며 대답했다.

아콰의 입술이 툭 튀어나왔다.

뚱한 표정의 소년을 보며 메리가 웃었다.

“메리, 너는 이상한 인간이야.”

아콰가 이상하게 구겨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