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4화 (74/99)

* * *

“오늘도 끝나고 데리러 오겠습니다.”

“응.”

고개를 끄덕이다 말고 페델리우스를 조심스럽게 살폈다. 매일매일 신전으로 바래다주고 데리러 오는 것도 벌써 삼 일째다.

문제는…….

‘기분이 엄청 안 좋아 보이는데? 무슨 일 있나?’

페델리우스의 심기가 굉장히 불편해 보인다는 사실이다.

천천히 그의 표정을 살폈다.

얼굴은 여전히 무표정하지만 묘하게 분위기가 날이 서있다.

“페델리우스.”

“예.”

묘하게 말도 짧고, 말수도 확 줄었고. 분위기가 가라앉아있다.

그래도 나랑 눈을 마주치기는 한다.

……3초 정도지만.

“무슨 일 있었어?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데.”

“아뇨. 아무 일도 없습니다.”

대답이 빠르다.

마치 준비해놓은 것처럼 나온 대답은 의심을 한층 더 키웠다.

아콰랑은 아직도 묘하게 어색하고. 페델리우스까지 이러는 게 어딨어.

뚱하게 그를 올려다봐도 페델리우스는 그저 어색하게 웃을 뿐이다.

“정말 아무런 일도 없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한쪽 무릎을 꿇은 페델리우스가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페델리우스가 괜찮다면 괜찮은 거겠지만. 묘하게 요즘 거짓말이 늘어난 것 같단 말이야.

“오시리아. 왔으면 들어오시지 왜 거기에 있어요?”

“라비엘. 아니, 지금 들어가려고 했어.”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대답했다.

페델리우스는 이미 다른 생각에 빠진 듯 초점이 어긋나있다.

‘대체 뭐야?’

가만히 그를 보다가 냉큼 라비엘 쪽으로 다가갔다.

“조심히 다녀와, 페델리우스.”

“네, 다녀오겠습니다.”

평소라면 서운한 표정이든 무슨 표정이든 했을 페델리우스가 순순히 인사만 건네고 다시 말에 올라탔다. 눈이 동그래졌다.

‘저게 뭐야.’

마치 영혼이 반쯤 어딘가로 날아간 것 같다.

“페델리우스 경은 항상 오시리아를 잘 챙겨주는군요. 오시리아를 정말 좋아하는 모양이에요.”

다정하고 부드러운 라비엘의 목소리에 뚱한 기분이 조금 풀렸다.

페델리우스가 나를 소중히 여기고 내게 잘해준다는 것은 알고 있다.

‘알고는 있어.’

그래도 그는 나를 여전히 어린아이처럼 본다.

어린아이처럼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도 그에겐 조금도 효과가 없는 듯했다.

‘얼마나 어른처럼 보여야 내게도 고민을 털어놔줄 거야?’

페델리우스는 내가 힘들 때 물심양면으로 도와줬다.

그것이 여전히 가슴 한쪽을 따뜻하게 해준다.

그러니까 그가 힘들면 언제든, 정말 언제든 도와주고 싶었다.

원하는 게 있다면 내가 가진 힘을 다 발휘해서라도 도와주고 싶었다.

“페델리우스는 비겁해.”

냉큼 몸을 돌리며 신전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 멍청한 소리를 낸 라비엘이 냉큼 내 옆으로 따라붙었다.

“페델리우스 경이 비겁한가요?”

“응, 페델리우스는 비겁해. 내겐 아무런 이야기도 해주지 않는걸.”

“아무런 이야기도요?”

“내가, 연기를 했었다는 건 너도 들었지? 라비엘.”

내 물음에 라비엘은 조금 어색하게 웃으면서도 순순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야 뭐, 황성이나 신전 사람들 사이에는 대충 퍼져 있는 이야기다.

“물론, 내 잘못도 있으니까 나도 참고는 있어.”

뚱하게 말을 이어가는 나를 똑바로 보며 라비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좋은 상담자이자 좋은 대화 상대였다.

덕분에 신전으로 오는 것이 이제는 기대가 될 정도기도 했다.

“알고는 있는데…….”

절로 주먹이 쥐어졌다.

“페델리우스는 내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질 않아.”

“오시리아는 페델리우스 경의 고민이 듣고 싶어요?”

굳이 그의 고민만 듣고 싶다는 건 아니지만…….

그냥 그가 도와줬으니 나 역시 도움이 되고 싶을 뿐이다.

그를 내가 돕고 싶었다.

“페델리우스는 날 도와줬으니까 이번엔 내가 페델리우스를 도와주고 싶어.”

“오시리아도 페델리우스 경을 좋아하는군요.”

맹점을 파고드는 라비엘의 말에 움찔, 몸이 떨렸다.

하지만 라비엘의 말에 틀린 건 없다.

나는 페델리우스가 좋다.

줄곧 함께했던 아콰보다도 어쩌면 조금 더 좋아할지도 모른다.

“오늘 페델리우스 경이 고민이 있는 것 같았나요?”

“응. 이상하게 표정이 어둡고 기운이 없었어.”

“그……랬나요?”

“응.”

내 대답에 라비엘이 슬쩍 고개를 기울였다.

뚱하게 그를 한 번 쳐다보곤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이야.”

“저는 잘 느끼지 못했는데 오시리아는 대단하네요. 아. 페델리우스 경이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면 아마 그 소식을 들은 게 아닐까요?”

라비엘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소문? 아무런 얘기도 못 들었는데.

눈을 도르륵 굴리며 걸음을 멈췄다.

무슨 소문이지?

“무슨 소문인데?”

“명령을 받고 추방되었던 콘니르 백작이 돌아온다는 것 같더라고요.”

“추방?”

내 되물음에 라비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추방을 말하는 거지?

추방이라면 쫓겨난다는 의미라는 걸로 알고 있다.

미간이 절로 좁아졌다.

쫓겨났던 사람이 돌아오는 것과 페델리우스가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야?

라비엘이 푸른 눈동자를 부드럽게 휘며 조곤조곤 입술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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