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라비엘?”
조심스럽게 라비엘의 이름을 부르며 방 안을 슬쩍 들여다봤다.
침대에 앉아있던 라비엘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시리아, 오늘도 이곳으로 곧장 오신 겁니까?”
“응. 기분은 어때? 괜찮아? 아픈 데는?”
어제와는 다르게 날카로운 분위기가 느껴지진 않았다.
냉큼 그에게 다가가며 궁금한 것을 얼른 물었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그를 쳐다보자 라비엘이 부드럽게 웃었다.
“기분도 좋고 아픈 것도 많이 나아졌습니다.”
“다행이다. 걱정 많이 했어. 그, 어제는 있잖아…….”
“제가 너무 민감하게 굴어서 죄송합니다. 아팠던 데다가 그가 내뿜는 죽음의 냄새가 너무 신경을 긁었습니다.”
“아니, 네가 미안할 건 없어.”
이그니가 좋은 일을 하고 다니지 않는다는 것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지만, 라비엘처럼 민감한 사람이 있다는 건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건 어디까지나 라비엘을 배려하지 못한 내 실수가 아닌가 싶다.
“며칠째 수업도 듣지 않고 계시죠?”
“네가 나아야 들을 거야. 지금 나를 가르쳐주는 사람은 누군지도 잘 모른단 말이야.”
어깨를 으쓱이자 라비엘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도 안색이나 표정을 보니 어제보다 나아졌다는 말이 거짓말은 아닌 듯했다.
“밥은 먹었어?”
“네. 알렉 신관이 수프를 가져다줘서 그걸 좀 먹었습니다.”
“다행이네.”
멀뚱하게 앉아있으려니 할 일이 없다.
라비엘은 뭐가 그리 바쁜지 침대에 앉아서도 서류를 넘기느라 바빠 보였고.
“지루하시면 오늘은 일찍 들어가 보시겠어요?”
“으음……. 방해돼?”
“아뇨. 저는 괜찮은데 오늘은 앉아서라도 처리해야 할 서류가 많아서 오시리아가 매우 심심하실 겁니다.”
라비엘이 협탁 한쪽에 잔뜩 쌓여있는 서류 더미를 보며 말했다.
어색하게 웃는 표정에 왜냐고 물을 것도 없었다.
실제로 제법 많은 양의 서류가 잔뜩 쌓여있었으니까.
“그거 다 해야 돼?”
“네, 하루 쉬었다고 일이 너무 늘어났네요.”
“신관도 쉬운 일은 아니구나.”
“세상에 쉬운 일은 없으니까요. 그러니 오늘은 이만 돌아가 보셔도 됩니다.”
그런다고 해도 갈 곳이 없다.
페델리우스가 끝날 시간은 한참 멀었고 저번처럼 문 앞에서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지금 가도 페델리우스를 기다리려면 몇 시간은 신전 밖에 서 있어야 할 텐데.”
“그럼 이번엔 오시리아가 그를 마중 나가면 되겠군요.”
“응?”
“오시리아가 페델리우스 경을 데리러 가보면 되지 않겠습니까?”
라비엘의 말에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그러고 보니 맨날 그가 데리러 와서 그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고개가 푹 숙여졌다.
“정말 그러네. 내가 가도 되는 거겠지?”
“분명 기뻐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라비엘의 말도 일리는 있다.
가서 오랜만에 다른 기사단원들 얼굴도 보고 싶었다.
‘매번 페델리우스가 못 만나게 하니까.’
카울란도, 다른 기사단의 단원들도 걱정을 많이 해줬다고 들었다. 쓰러졌을 때의 이야기지만.
제법 시간이 지났는데 아직 인사 한 번 건네질 못했다.
“그래, 그래야겠다. 오랜만에 카울란도 보고 다른 기사들도 봐야지.”
라비엘의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다.
라비엘은 나와 비슷한 나이인데도 늘 차분한 듯했다.
고민도 많이 하고, 생각도 많이 하고 늘 적절한 의견을 눈앞에 훌쩍 가지고 나타난다.
그러니까 무슨 일이든 라비엘에게 상담하면 안심이 됐다.
‘다음에, 페델리우스랑 콘니르 일도 상담해볼까?’
자리에서 일어나며 생각했다.
“내일이나 모레쯤에는 자리를 털고 일어날 수 있을 테니 다시 마중을 가도록 할게요.”
“응, 네가 없으니까 신전에 오는 길이 심심해.”
내 말에 라비엘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너는 내 첫 번째 친구니까 부탁할 일이 있으면 언제든 해. 정말로.”
“힘든 일이 있으면 오시리아에게 상담할게요. 친구이기도 하고 의지할 신녀이기도 하니까요.”
라비엘의 말을 들으며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라비엘은 좋다. 페델리우스와는 달리 아무렇지도 않게 나를 믿는다고 말해주니까.
‘페델리우스한테도 빨리 저런 말 듣고 싶네.’
그래만 준다면 정말 온 힘을 다해서 페델리우스를 도와줄 수 있을 텐데.
누군가에게 복수해달라는 것도, 누군가를 살려달라는 것도 전부.
‘페델리우스, 네 부탁이라면 전부 들어줄 수 있을 텐데.’
생각하면서도 애써 웃으며 라비엘을 쳐다봤다.
그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는지 그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날 보고 있었다.
“그럼 푹 쉬고! 내일 또 올게, 라비엘.”
“네.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응.”
내일은 아플 때 먹으면 좋다는 약이나 과일을 사와 볼까?
아니면 내 능력을 이용해서 약에 그런 힘을 불어넣을 순 없을까?
고민하며 곧장 페델리우스가 있을 법한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엄청 놀라겠지.’
뭘 하고 있을지는 몰라도 분명 매우 놀랄 거다.
“페델리우스는 왕님을 돌보고 있을 테니 일단 몰래 연무장을 다녀와야겠다.”
방해 없이 카울란을 만나고 왕님이 있는 곳에 가는 거다. 머릿속에 떠오른 계획에 고개를 주억이며 뛰듯이 신전을 빠져나왔다.
“오랜만에 대련하지 않을래? 펠.”
연무장 안, 모퉁이를 돌려고 하는 도중에 목소리가 들렸다. ‘펠.’ 나도 알고 있는 애칭이다.
그리고 그걸 입에 담는 사람은 내가 알기로 한 명뿐이었다.
‘프루니아.’
가늘어진 눈동자가 수줍게 웃고 있는 적갈색 머리의 여자에게 향했다. 나와 비슷한 또래이나 분명히 자신과는 다른 삶을 살아왔을 여자.
“대련?”
“응. 오랫동안 하지 않았으니까. 내 실력도 제법 늘었고. 한번 봐줘.”
프루니아가 그렇게 말하며 검 손잡이를 만지작거렸다. 페델리우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눈이 절로 크게 뜨였다. 페델리우스의 허락에 프루니아가 퍽 기쁜 표정으로 검 두 자루를 뽑았다. 페델리우스가 들고 있는 것보다 훨씬 얇고 가늘었다.
‘……엄청 멋있어.’
이유 모를 짜증이 속을 뒤집는 와중에도 눈을 반짝이는 프루니아는 멋있었다.
주먹을 꽉 쥐다가 고개를 치켜들었다. 프루니아가 검을 한껏 높이 치켜들며 페델리우스에게 달려들었다. 동시에 그녀의 적갈색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프루니아가 놀란 듯 나를 쳐다봤다.
채앵-! 검 두 개가 부딪쳤다.
입술을 꾹 다문 채 그녀와 시선을 마주쳤다. 프루니아가 슬쩍 눈동자를 내리깔고는 몸을 한 바퀴 돌리며 반동을 이용해 검을 다시 내리쳤다.
챙-! 채앵-!
이를 악물며 검을 부딪치는 프루니아를 페델리우스가 무심하게 받아쳤다.
프루니아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나도 하고 싶은데.’
내 눈이 절로 프루니아를 훑었다. 나랑 그다지 다를 것도 없는 몸매다.
온몸에 근육이 잔뜩 붙어있는 것도 아니고.
시선을 슬쩍 내려 내 피부를 꾹 눌렀다. 말랑말랑하다.
구름을 손에 쥐면 이렇게 말랑말랑하려나. 빵만큼이나 폭신폭신했다.
그에 비해 프루니아의 팔은 제법 단단해 보였다. 느릿하게 눈을 굴렸다.
‘만져보고 싶어.’
그녀한테는 검을 배울 수 있을까?
온갖 생각에 머리가 복잡해졌다.
프루니아가 페델리우스에게 향한 감정은 전부 긍정적인 감정뿐이다.
그에게 해가 될 건 없었다.
페델리우스가 다치지 않을 거다.
처음에는 꺼림칙했지만 프루니아에게 악의가 없다는 걸 알게 됐는데…….
‘나는 대체 뭐가 마음에 안 드는 거야.’
정말, 페델리우스와 함께 있으면 모르는 감정만 불쑥불쑥 솟아난다.
‘아콰에게 물어보면 알려나?’
잠시 푸른색의 소년을 떠올렸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콰에게 의지하는 것은 이제 그만두기로 했다. 오랫동안 아콰만을 의지했으니까…….
그러니까…….
‘슬슬 혼자 고민할 때도 됐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홀로 생각하는 것도, 누군가를 위하며 한 걸음을 내딛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묵묵하게 서 있는 나와 프루니아의 눈이 여러 차례 마주쳤다.
타앙-!
거친 금속음을 내며 프루니아의 검 한 개가 허공을 날았다.
그녀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남은 검을 바닥에 콱 소리가 나도록 세게 꽂았다.
“아. 나도 정말 아직 멀었네.”
프루니아의 입가에 쓴웃음이 맺혔다 떨어졌다.
그러나 그녀는 홀가분해 보이기도, 기뻐 보이기도 했다.
‘졌는데 왜 웃는 거야?’
뭐가 기쁜지, 뭐가 홀가분한 건지도 잘 모르겠다.
승부에서 졌다면 분하고 짜증 나는 게 아니던가.
‘아.’
프루니아와 또 눈이 마주쳤다.
페델리우스는 한 번도 제 등을 내어주지 않으니 나와 눈이 마주칠 일도 없었다.
느릿하게 눈을 한 번 깜빡이자 프루니아가 눈꺼풀을 슬쩍 내리깔더니 눈동자를 휙 돌렸다.
어쩐지 표정이 불퉁하게 보인 것 같기도 했다.
‘뭐야?’
뚱하니 그녀를 마주보자 프루니아가 날아간 검을 주우며 허리를 폈다.
“펠, 네가 돌보고 있는 신녀님이 오신 것 같은데.”
“……아.”
프루니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페델리우스가 내 쪽으로 몸을 냉큼 돌렸다.
그가 성큼성큼 큰 보폭으로 내 앞에 훌쩍 다가왔다.
“오시리아. 이 시간에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어제부터 라비엘이 아팠다고 했잖…….”
말을 하는 도중 페델리우스의 등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프루니아가 눈에 들어왔다.
프루니아의 눈동자는 잔잔하던 호수가 바람에 잘게 떨리는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저렇게 힘들면 좋아한다고 말하면 될 텐데.’
페델리우스가 움직이는 대로 따라다니는 시선은 애처롭게까지 보였다.
‘왜,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잘 얘기하지 못하는 거지?’
생각하는 걸 내뱉으면 그것만으로도 감정이 전달되는데.
페델리우스의 어깨 너머로 프루니아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가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푹 숙였다.
꽉 쥔 주먹이 잘게 떨렸다.
“대신관께서 아직도 아프십니까?”
“어? 아, 응. 금방 낫진 않나 봐. 그래서 오늘은 일찍 들어가 보랬어.”
페델리우스의 말에 뒤늦게 그를 쳐다보며 말을 마쳤다.
놀란 듯 커진 페델리우스의 눈을 보며 작게 웃었다.
“걱정하지 마. 오늘은 많이 나은 것 같았어. 하루 이틀만 더 있으면 괜찮아질 거라고 라비엘도 호언장담을 했고.”
웃으며 말하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오늘은 내가 널 마중 나왔지.”
내 말에 페델리우스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부드럽게 끌어올린 입꼬리가 언제나처럼 상냥했다.
“그러고 보니 소개해드릴 사람이 있었습니다.”
“소개? 누굴?”
“저번에 저택으로 찾아왔던 자를 기억하십니까?”
굳이 기억할 필요도 없이 네 뒤쪽에서 널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데 무슨.
대꾸하려다가 그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선을 떼려야 떼지도 못한다는 듯 그저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여자를 비꼴 만큼 내 심성은 고약하지 않았다.
“제 오래전…… 친우입니다만, 일전에 여자인 친구가 필요하다고 하셔서 그녀를 소개해드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요.”
“나를 소개해주겠다고?”
“네. 귀족가의 자제이기도 하고 워낙 호탕한 성격이니 어울리는 데 어려움은 없으실 겁니다. 물론, 오시리아가 괜찮다고 할 경우입니다만.”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호기심이 일었던 것도 사실이고 왜 그녀가 페델리우스랑 붙어있으면 기분이 나쁜지도 신경이 쓰였다.
무엇보다…….
‘왜, 아파 죽겠다는 표정을 하면서도 페델리우스에게 웃어 보이는지도 모르겠고.’
가능하면 그녀에게 검술을 배워도 좋을 것 같았다.
같은 여자니까 분명 내가 조금 힘이 부족해도 요령 있게 가르쳐줄지도 모르고.
이그니의 독침보다는 검을 들고 화려하게 움직이는 쪽이 더 멋있어 보이기도 했다.
페델리우스가 슬쩍 몸을 비켜서며 눈짓을 하자 프루니아가 제법 큰 보폭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처음 뵙겠습니다, 신녀님. 프루니아 리제리오라고 합니다.”
“오시리아라고 해.”
자연스러운 미소를 입가에 띠는 프루니아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웃는 모습이 콘니르와 똑같았다.
“나랑 친구 할래?”
손을 쭉 뻗으며 물었다. 프루니아가 내 손과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상당히 당황한 표정이었다.
탐색하는 듯했지만, 이상하게도 기분 나쁜 느낌은 없었다.
라비엘만큼 선하고 눈부신 천사님 같은 느낌도 없었지만, 싫은 느낌도 아니다.
프루니아가 한참 만에 더듬더듬 손을 들어서 내게 뻗어왔다.
거북이보다도 더 느리게 다가오는 손에 내가 그녀의 손을 냉큼 붙잡았다.
“잘 부탁해.”
두 번째 친구가 생겼다.
붙잡은 손을 위아래로 붕붕 흔들며 대답했다.
어색하게 웃던 프루니아가 페델리우스의 눈치를 살폈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에……. 잘, 부탁드립니다.”
대답하는 것과는 다르게 프루니아의 눈동자는 떨떠름함으로 잘게 흔들리고 있었다.
“페델리우스, 카울란네 봐주려고 온 거지? 나 그럼 프루니아랑 놀고 있어도 돼?”
“……예?”
“네?”
프루니아를 끌어당기며 묻자 페델리우스가 멍청하게 되물었다. 물론 당사자인 프루니아도 마찬가지였지만.
‘어떻게 강해졌는지 궁금하고.’
친구라곤 해도 페델리우스가 프루니아와 둘만 있게 해줄 것 같지 않아서 내가 먼저 말해버렸다.
물론 내가 말하면 들어주기야 하겠지만.
“나 프루니아랑 놀다가 집에 들어갈게.”
“……예?”
“네?”
두 사람의 반응이 똑같다.
같은 표정으로 같은 말을 내뱉으니 이래서 친구라고 하는구나 싶기도 하고.
“집에서 봐!”
“잠깐, 오시리아!”
냉큼 프루니아의 손을 꽉 쥔 채 하늘로 날아올랐다.
달려서 도망치다간 백 퍼센트 페델리우스에게 잡힐 게 뻔하니까.
‘능력이 있어서 다행이야.’
하늘로 날아오르면 잡을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까 말이다.
“잠, 자, 잠……!”
“조금만 참아. 프루니아.”
프루니아의 얼굴이 점점 새하얗게 질려가기 시작했다.
왜 저러지? 잠시 고민하는 사이 사람들이 작게 보일 때까지 높이 올라왔다.
“흐으…….”
“프루니아?”
“꺄아아아아아아악!!”
휘청, 프루니아가 발버둥치는 것과 동시에 반동에 손을 놓칠 뻔했다.
팔이 아팠다.
빠질 것 같아! 너무 흔들리잖아!
“꺄악! 꺅! 자, 잠, 잠까……. 야!”
“……?”
눈이 절로 크게 뜨였다.
프루니아가 내뱉은 말에 적당한 집의 지붕 위에 프루니아를 내려주었다.
지붕에 납작 엎드린 프루니아가 바들바들 몸을 떨며 고개를 치켜들었다.
“프루니아. 한 번만 더 불러봐.”
“뭐, 뭘…….”
“아까 나 마지막에 부른 거.”
프루니아의 눈이 크게 벌어졌다.
‘야’라고 불렀던 것을 그제야 떠올린 모양이다. 너무 생소하고 정겨운 부름이었다.
단 한 번도 누군가 그렇게 불러준 적이 없었으니까.
맨날 신녀님 아니면 오시리아 님 아니면 시리 님, 주인님, 주군 등등 나를 높여주는 말밖에 없었다.
“아, 그건 제가…….”
“혼내려는 거 아니니까. 얼른.”
프루니아가 여전히 지붕에 찰싹 엎드린 채 눈동자를 굴렸다.
거칠게 호흡을 내쉬던 프루니아의 시선이 지붕 밑으로 향했다.
그녀의 입술이 바들바들 떨렸다.
“……야!”
“와아.”
짝, 손뼉을 쳤다.
“내려, 당장 나 내려줘요…….”
순식간에 다시 존댓말로 돌아왔다. 시퍼렇게 질린 입술을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이곤 그녀를 붙잡고 다시 지붕에서 뛰어내렸다.
“감사, 합니다…….”
프루니아가 다시금 고개를 숙였다. 조금 전에는 ‘야’라고 했으면서.
‘그 말 다시 듣고 싶은데.’
눈동자가 절로 굴러갔다.
“아!”
‘야’라는 소리를 다시 들으려면 하늘을 날게 하면 되겠구나.
바들거리는 다리를 간신히 일으키는 프루니아를 쳐다보며 환하게 웃었다.
진짜 친구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