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5화 (95/99)

외전 1. 어느 날의 두 사람

[아이를 훌륭하게 키우는 법]

페델리우스가 눈앞에 책을 둔 채 고민했다. 최근 오시리아와 조금 더 친해지기 위해 추천받은 책이다.

‘폐하께서 추천해주신 책인데…….’

과연 이 책이 그녀에게 통할지 의문이다. 하지만 그녀와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질 수 있다면 뭐든 해보고 싶었다.

그가 숨을 깊게 들이쉬고 첫 장을 넘겼다.

<아이를 훌륭하게 키우는 그 첫 번째 방법.>

아이에게 어린이를 위한 책을 많이 읽어주세요. 이때, 여러 사람이 각자 역할을 맡아 연기를 해주면 정서 발달에 더욱 좋습니다.

페델리우스는 그 한 줄을 오랫동안 뚫어져라 쳐다봤다. 한참 만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책을 책꽂이에 잘 꽂아둔 그가 곧장 시장으로 향했다.

“주인, 이 책과 이 책 중에 어느 게 더 어린아이에게 인기가 많습니까.”

서점 주인이 콧잔등을 긁으며 두 책을 살폈다. 그리곤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한창 잘 팔리는 동화책이었다.

‘젊은 아빠군.’

주인이 입을 열었다.

“모두 최근 나온 거라 우열을 가릴 수 없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저는 둘 다 권해드리고 싶네요. 분명히 아이가 좋아할 거예요.”

“그럼 둘 다 주십시오.”

둘 다 좋다는 말에 페델리우스는 망설임 없이 계산대에 내려놓으며 값을 치렀다.

기분이 좋은 듯 금화를 내밀고 거스름돈도 받지 않은 페델리우스가 뿌듯한 얼굴로 종이봉투에 담긴 책을 손에 쥐고 저택으로 향했다.

안으로 들어가자 페드로가 그를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황녀 전하께서는?”

“위층에서 쉬고 계십니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곤 곧장 계단을 올랐다.

“황녀 전하.”

페델리우스는 제복을 벗을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오시리아가 있는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녀는 뭘 하는지 침대에 가만히 걸터앉아 있었다.

“페데리우스?”

이제는 익숙해진, 받침 빠진 이름을 오시리아가 부르자 페델리우스가 성큼성큼 다가갔다.

“잘 계셨습니까?”

“응!”

“오늘은 선물을 사 왔습니다.”

오시리아의 눈이 가늘어졌다. 방긋방긋 웃고 있지만, 사실 그렇게 달갑진 않다.

‘……뭔 놈의 선물을 맨날 사와. 그래놓고 오늘만 사 온 것처럼 이야기하지 말라고.’

품에 들고 있는 종이봉투를 노려보던 오시리아가 고개를 숙였다. 새어 나온 한숨은 덤이다.

어제의 선물은 인형이었고, 그 전에는 사과였다.

오늘은 또 뭘까 아주 기대된다. 오시리아가 한참 식어버린 눈으로 페델리우스를 다시 쳐다봤다.

“그 전에, 실례하겠습니다.”

페델리우스가 침대에 올라와 헤드에 기대앉는다. 그리고는 손을 뻗어 오시리아를 무릎에 앉혔다.

졸지에 페델리우스의 무릎에 앉혀진 오시리아는 눈만 동그래졌다. 그녀가 당황한 듯 눈만 굴리자 페델리우스가 종이봉투에서 책을 꺼냈다.

그는 오시리아를 무릎에 앉힌 채 뒤에서 끌어안은 모양새로 오시리아에게 잘 보이도록 책을 펼쳤다.

“……?”

“옛날 옛적에…….”

오시리아의 표정이 굳었다. 그가 뭘 하는 건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미친놈!’

오시리아가 페델리우스의 책을 손으로 붙잡았다.

“시러어어어!!”

그녀가 비명을 지르며 책을 힘껏 내던졌다. 페델리우스가 기껏 사 온 책이 하늘을 날아 문 앞에 떨어졌다.

‘대체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생각지도 못한 반응에 그의 표정이 충격에 젖었다.

“나가!”

오시리아가 소리치자 페델리우스는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부들부들 떠는 오시리아를 보던 페델리우스가 급히 그녀에게서 물러났다.

“저녁에 다시 오겠습니다.”

페델리우스가 문 앞에서 굴러다니는 책을 집어 든 채 말했다. 뒤돌아 나가는 모습이 애처로웠다.

페델리우스가 나가자마자 오시리아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제발 누가 날 이 집에서 빼내줘.’

이제는 감당할 수 없는 과거가 됐다. 도망쳐서 이 집을 불태워도 해결되지 않을 과거였다. 오시리아가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그녀 옆에는 페델리우스가 미처 들고 나가지 못한 또 다른 책이 봉투에 담긴 채 그대로 있었다.

한편, 페델리우스는 깊은 고민에 잠겼다.

“뭐가 잘못된 거지?”

그는 제 방으로 돌아와 다시 책의 첫 페이지를 넘겼다.

<아이를 훌륭하게 키우는 그 첫 번째 방법.>

아이에게 어린이를 위한 책을 많이 읽어주세요. 이때, 여러 사람이 각자 역할을 맡아 연기를 해주면 더욱 정서적인 발달에 좋습니다.

추신! 이때 아이를 무릎에 앉혀놓고 읽어주면, 더욱 진한 정서적인 교감이 가능합니다.

‘제대로 했는데…’

페델리우스의 고개가 기울어졌다.

<아이를 훌륭하게 키우는 그 첫 번째 방법.>

아이에게 어린이를 위한 책을 많이 읽어주세요. 이때, 여러 사람이 각자 역할을 맡아 연기를 해주면 정서 발달에 더욱 좋습니다.

추신! 이때 아이를 무릎에 앉혀놓고 읽어주면, 더욱 진한 교감이 가능합니다.

그가 천천히 곱씹듯 여러 차례 첫 번째 방법을 읽었다. 페델리우스의 눈동자가 문제점을 찾는 듯 무척이나 바빠 보였다.

그러다 문득 한 곳에서 멈췄다.

<이때, 여러 사람이 각자 역할을 맡아 연기를 해주면 정서 발달에 더욱 좋습니다.>

<여러 사람이 각자 역할을 맡아 연기를 해주면 정서 발달에 더욱 좋습니다.>

<여러 사람이 각자 역할을 맡아…….>

페델리우스는 그 문장을 한참 동안 쳐다봤다. 그의 입가에 둥근 호선이 그려졌다.

그날 저녁.

“황녀님! 메리가 왔어요!”

“…….”

침대에 앉아 있던 오시리아가 뚱한 표정으로 갑작스럽게 쳐들어온 세 사람을 바라봤다. 무척이나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다.

낮에 받은 충격이 아직 가시지 않았다.

불안한 기분에 오시리아가 한껏 그들을 경계했다.

보통 페드로는 오시리아의 방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메리와 페델리우스에 페드로까지 한꺼번에 들어오다니. 분명 무슨 일이 있는 거다.

오시리아가 페델리우스를 샅샅이 살폈다.

그녀의 시선이 한 곳에 멈췄다. 아까 던진 책이 그의 손에 들려 있었다.

오시리아는 금세 표정이 굳었다.

“나가!”

“황녀 전하, 이번엔 셋이서…….”

“페델리우스, 너 나가!”

침대 위에 있던 또 다른 책을 집어던지며 소리쳤다. 페드로가 날아가는 책을 유연하게 잡아챘다.

‘쟨 또 뭐야?!’

웃는 얼굴은 전형적인 집사인데 몸놀림은 집사 수준을 훌쩍 넘어섰다. 오시리아가 인상을 팍 구기며 페델리우스를 쳐다봤다.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다시 한 번만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나가!”

“아니요. 그 전의….”

페델리우스는 오시리아의 짜증 따윈 아무렇지 않은 듯 보였다.

“답답이.”

“예?”

“둔탱이.”

“……?”

“당장 나가.”

손가락으로 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메리와 페드로가 페델리우스의 눈치를 보더니 슬금슬금 방에서 나갔다. 페델리우스의 얼굴이 충격에 굳어 있다.

“그런, 그런 말을 어디서…….”

왠지 귀찮은 거 둘을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에 오시리아가 환하게 웃었다.

“왕!”

“예?”

“폐하! 폐하가 알려줘써. 페데리우스는 답답이!”

대답을 들은 페델리우스의 손에서 책이 곤두박질쳤다. 페델리우스가 급히 몸을 돌렸다.

“잠시 볼일이 생각나서 다녀오겠습니다.”

“응, 잘 가!”

한 번씩 심심하면 불러서 귀찮게 하는 왕을 떠올리며, 오시리아는 환하게 웃었다. 문까지 닫히고 나서야 오시리아가 침대에서 내려왔다.

‘도대체 무슨 책이야?’

페델리우스가 떨어뜨리고 간 책을 들어 올린 오시리아가 내용을 펼쳤다. 그림이 있는 걸 보니 어린아이를 위한 그림책인 듯했다.

“심심한데 읽어야지.”

그리고, 그날 오시리아는 책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 * *

훌륭한 아이를 키우고 싶어 하는 당신을 위한 육아 애독서!

[아이를 훌륭하게 키우는 법]

<아이를 훌륭하게 키우는 그 두 번째 방법.>

하루에 한 시간! 아이에게 투자하세요.

아이를 위해 시간을 내어주세요. 그 시간 동안 아이와 함께 각종 놀이를 함께 해주세요.

인형극이나 공놀이, 인형 놀이나 흔들 목마 등은 아이에게 아주 좋은 경험이 된답니다.

추신! 아이는 함께 놀아주는 사람을 훨씬 더 친근하게 느끼는 경향이 있답니다. 아이와 서먹하다면 무엇보다도 이 두 번째 방법을 강력히 추천합니다!

페델리우스는 오늘도 한 페이지에서 멈춘 채 글자를 곱씹듯 찬찬히 읽었다.

<페데리우스, 나가!>

<페데리우스는 답답이.>

<둔탱이!>

<잘 가!>

페델리우스가 침울한 표정으로 책을 덮었다.

최근 서먹해진 것은 분명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가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오시리아가 매우 까칠해졌다.

말을 할 수 있게 된 뒤로는 더더욱 말이다.

메리를 대할 때와 페델리우스를 대할 때 온도 차가 확연했다. 덕분에 페델리우스는 최근 메리에게 자신의 자리를 위협받는 기분마저 느끼고 있었다.

“인형극이라.”

페델리우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종이 뭉텅이를 챙겨 들었다. 그러고 보니 곧 퇴근 시간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분명히 가게가 있었어.’

오늘은 가게를 들렀다가 곧장 집에 가야 할 듯했다. 마침 퇴근 시간이다. 페델리우스는 걸음을 한층 빨리했다.

* * *

“어서 오십시오.”

“인형극에 사용할 만한 인형을 추천해주십시오.”

아기자기한 핑크빛으로 꾸민 가게에 페델리우스가 무표정한 얼굴로 들어섰다.

들어서자마자 페델리우스가 주인에게 말했다.

곱게 차려입은 여주인이 그 모습에 작게 웃으며 안으로 안내했다.

“귀여운 따님이 계신가 보군요. 이쪽이 최근 가장 잘나가는 일곱 용사 인형극 세트입니다.”

페델리우스가 눈을 가늘게 뜨며 곱게 나열된 인형들을 살폈다. 천으로 만든 인형들은 제법 고급스럽고 아기자기했다.

‘좋아하시겠지.’

값은 제법 높아 보였으나 기사단장인 그의 수입으로는 타격을 입지 않을 정도다. 페델리우스는 주인이 비싼 쪽으로 안내했다는 걸 대충 눈치챘으나, 모른 척했다.

이외에도 페델리우스가 오시리아에게 해주는 것들 모두 최고급품이었으니까.

“주십시오.”

페델리우스가 망설임 없이 지갑을 열었다.

여주인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깎지도 않고 제 값을 치른 페델리우스가 곧바로 몸을 돌렸다.

집으로 가는 페델리우스의 발걸음이 출근 때와 비교해 두 배는 빨라졌다.

집에 도착한 페델리우스가 <일곱 용사 인형극 세트>를 오시리아의 품에 고이 안겨줬다.

인형극 세트가 하늘을 날고, 베개가 하늘을 날았다.

“페델리우스, 너……! 선물 들고 오지 마!!”

그동안 멀쩡한 폭풍 성장을 할 거다. 오시리아가 으르렁거리며 그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한동안 싸늘한 냉기가 오시리아의 방에 흉흉하게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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