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2. 알콩달콩 데이트
“페델리우스, 나 심심해.”
페델리우스의 허벅지에 머리를 대고 누운 오시리아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페델리우스가 오랜만에 휴가를 받은 건 좋은데 어째서인지 저택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질 않는다.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종이와 펜이…….”
그는 오늘도 종이와 펜을 찾았다.
펜과 종이 페티시가 있나. 아니면 전생에 펜과 종이 때문에 죽기라도 했나. 혹시 펜과 종이가 그에게 무슨 짓을 한 건 아닌지 걱정될 지경이다.
일주일의 휴가 중에 삼 일이 침대 위에서 굴러가고 있다. 왜인지 큰 일이 끝난 후 페델리우스는 그녀를 내보내기가 조금 불안한 모양이다.
‘아니, 그때부턴가.’
오시리아는 자르딘 왕국이 제국으로 승격하는 식에서 사람들 앞에 얼굴을 보였다. 신녀로서 처음 축복을 내린다는 명목이었다.
그 뒤부터 신전에 출근할 때마다 그녀에게 접근하는 인물이 늘었다. 한 번은 몸을 만져대는 미친놈도 만나서 차마 죽이진 못하고 라비엘에게 상담을 했다.
심각한 얼굴을 한 그가 페델리우스에게 얘기를 전했고, 그 뒤로 계속 이 상태다.
‘죽일 걸 그랬나.’
하지만, 신녀가 된 이상 살생은 하지 말라고 라비엘에게도, 페델리우스에게도 그리고 왕에게도 당부를 받았다.
그래서 기분이 더럽지만 참고 넘겼다.
‘그게 더 문제였던 것 같아.’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져서 돌아다니기도 어려워졌다. 그래도 이렇게 집에만 갇혀 있고 싶지는 않다.
말없이 저를 끌어안는 페델리우스를 보며 오시리아가 얼굴을 굳혔다.
“너 도대체 얼마나 그 종이와 펜에 집착하는 거야? 장래희망이 화가야? 화가로 전직 준비 중이야?”
오시리아가 한층 가라앉은 시선으로 페델리우스를 쳐다보며 말했다. 신랄하게 비판하는 오시리아의 시선이 한심함을 담고 있다.
페델리우스가 놀란 표정으로 입을 벙긋거리다 고개를 저었다.
그도 그럴 게 페델리우스는 오시리아가 말만 꺼내면 펜과 종이부터 내밀고 본다. 그림에 소질이라곤 조금도 없다는 걸 깨달은 뒤론 손도 대지 않는 줄 알면서 말이다.
“나는 나가고 싶어. 네가 휴가를 받아온 건 좋은데 이렇게 집에만 있고 싶지 않다고.”
오시리아가 제대로 의견을 표출했다.
“죄송합니다.”
“사과도 필요 없으니까 해결책을 줘. 난 너랑 뭔가 즐거운 일을 하고 싶어. 연인 사이는 그런 거잖아.”
“하아.”
페델리우스가 오시리아를 끌어안은 채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오시리아가 손을 뻗어 페델리우스의 등을 느리게 토닥였다.
“난 괜찮아. 다음부터 그런 놈들 있으면 죽일게.”
“죽이면 안 됩니다.”
페델리우스는 또 이런 데선 강경하다. 오시리아가 그를 불만스럽게 쳐다봤다.
고민하던 그가 졌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초옥-
그의 입술이 오시리아의 입술에 살짝 닿았다가 떨어졌다. 페델리우스가 입을 맞추고 거리낌 없이 몸을 만져온다.
허벅지 사이를 쓸어내리며 비부를 느릿하게 훑어 올린다. 페델리우스가 그녀의 가슴을 느릿하게 매만지며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하아…….”
오시리아가 낮게 숨을 뱉었다. 페델리우스가 그녀의 입술을 다시 한번 맞췄다가 떨어졌다. 페델리우스는 제 물건이 꼿꼿하게 기립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당장이라도 그녀를 넘어뜨리고 침대 위에서 질펀하게 뒹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그러나, 최근 그런 일만 너무 많이 해서 양심에 조금 찔렸다.
페델리우스는 늘 그녀를 다정하고 사랑스럽게 만져와서 오시리아는 그가 입을 맞출 때마다 늘 비부가 무척 간질간질했다.
떨어져나간 페델리우스의 입술을 생각하며 오시리아가 손가락으로 제 입술을 만졌다.
“너무 짧아.”
오시리아가 페델리우스의 멱살을 두 손으로 붙잡고 끌어당겼다. 페델리우스의 상반신이 앞으로 기울었다.
오시리아가 페델리우스의 입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
“오시……!”
“얼굴 빨개졌다, 페델리우스.”
오시리아는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활짝 웃었다. 페델리우스가 벌게진 얼굴을 손바닥으로 쓸어내리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심심하십니까?”
“응.”
“그럼 그곳에 가보시겠습니까?”
“그곳?”
“네, 오늘 수도에 연극단이 온다고 합니다.”
“연극?”
오시리아가 미간을 찌푸렸다. 좋지 않은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페델리우스가 새겨준 기억이었다.
조그마한 인형을 손가락에 끼워 꼼지락거리려고 했던 기억 말이다.
오시리아의 얼굴이 구겨졌다.
“난 손 넣어서 하는 인형극은 안 봐.”
“예? 당연히 그런 인형극은 아닙니다.”
이번엔 페델리우스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오시리아는 입을 꾹 닫았다. 너무 많이 낚여서 솔직히 믿기진 않지만…….
“정말?”
“예.”
페델리우스가 순순히 대답했다. 오시리아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그럼 갈래.”
그녀가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예, 준비하고 오겠습니다. 메리를 불러드릴까요?”
“음……. 아니, 드레스 입을 게 아니니까 괜찮아.”
메리가 오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장신구로 꾸며야 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페델리우스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죠, 오시리아.”
“응.”
오시리아가 곱게 눈을 접어 웃었다. 페델리우스가 팔을 뻗어 오시리아의 손을 맞잡았다.
제 손을 꽉 쥐어오는 손길에 그녀가 작게 웃었다.
“페델리우스, 내가 좋아?”
“……예, 좋아합니다.”
“솔직하네.”
“당신이 솔직한 게 좋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페델리우스가 대답했다. 오시리아가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와 페델리우스가 곧장 저택을 나섰다.
“왕님은 요즘 뭐 해?”
“집무실에서 두문불출합니다. 저도 출입을 막아서 곤란할 정도예요.”
“그 여자, 재상이는 정말 나간 거야?”
“예, 승격식이 끝난 날 깔끔하게 다 정리하고 인수인계 자료를 남겨두고 홀연히 사라졌습니다.”
페델리우스의 말에 오시리아가 입을 다물었다. 정말 멋진 여자다. 자신이 생각한 대로 고스란히 행동한 것이 아닌가.
존경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저는 이 정도로 저기압인 폐하를 본 적이 없습니다.”
“괜찮아. 그래서 휴가 냈잖아.”
“예, 위가 아파서 이대론 안 될 것 같았습니다.”
짜증이 나면 그를 불러놓고 아무 일도 하지 않겠다며 고집을 부렸다. 그러면서도 아침에 가보면 일은 다 처리해놓은 후다.
도대체 잠은 자긴 하는지 의문이었다. 일을 할 때 빼고는 매일 소파에 늘어진 채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다가 식사도 거르기 일쑤다.
오죽하면 측근인 페델리우스가 스트레스를 받을 정도다. 왕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다른 인간들이 어떻게 좀 해보라며 페델리우스를 괴롭히기 때문이었다.
“아, 좋다. 날도 좋고 너도 있고. 얼마나 좋아.”
로브를 써야 하는 게 불만이라면 불만이지만.
곧 죽어도 나갈 땐 로브를 둘러달라고 간청하는 페델리우스를 무시할 순 없었다.
“자주 나오자, 페델리우스.”
“당신이 원하신다면 그러겠습니다.”
“나만 원하는 게 아니라 너도 원해야지.”
“저는 오시리아와 방 안에만 있고 싶어요. 어떤 위험에도 처하게 않도록 말입니다. 어디도 가지 말고 저만 봤으면 좋겠습니다.”
“그거 너무 집착이 심한 거 아냐? 언제 그렇게 집착남이 됐어…? 우리 페델리우스…”
오시리아의 달래는 듯한 목소리에 페델리우스가 얼굴을 왈칵 구겼다.
“집착남은 또 어디서 배운 단어입니까?”
“우음…”
오시리아가 눈울 도르륵 굴렸다.
“…메리군요.”
움찔, 오시리아의 몸이 떨렸다. 그녀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휘파람을 부는 척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녀가 또 그런 삼류 그림책을 가져다 줬습니까?”
“아니?”
“그럼 소설?”
“…….”
“소설이군요.”
오시리아가 곤란한 표정으로 페델리우스를 슬쩍 쳐다봤다. 그녀가 헤실헤실 웃으며 고개를 휙 돌렸다.
페델리우스가 이마를 짚었다. 한 번 그런 야설집을 보여준 것이 문제였을까? 정확히 말하자면 아콰가 구경하고 있는 걸 오시리아가 빼앗은 것뿐이다.
그 뒤로 오시리아의 조름에 못 이겨 메리가 한 번씩 몰래 가져다주고 있는 모양이다. 왜 보냐고 했더니 새로운 공부를 위해서란다.
그리곤 배운 것을 서툴게 밤마다 하려는 걸 보고 페델리우스는 여러 차례 욕망에 패배했다.
“제발, 그거 보지 좀 마십시오.”
“왜, 기왕 하는 거 같이 즐기면 좋잖아.”
“저는…… 그저 당신만 행복하게 해주면 충분합니다.”
페델리우스의 말에 오시리아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녀가 페델리우스를 한번 흘겨봤다.
“그러면서 매번 짐승처럼 달려들던데.”
“또 그런 말을…….”
페델리우스가 거리 한복판에서 벌겋게 물든 얼굴을 손바닥에 묻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요즘 오시리아에게서 이런 말을 자주 들었다. 오죽하면 슬슬 익숙해지려는 제 멱살을 휘어잡고 싶을 정도였다.
“페델리우스, 그래서 어딘데?”
“저기 천막이 쳐진 곳입니다.”
페델리우스가 멀찍이 있는 천막을 가리켰다. 근처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 몰려 있다. 오시리아가 활짝 웃었다.
“그래도 다른 사람이랑은 안 할 거니까 걱정하지 마.”
“당연히 그러셔야 합니다!”
페델리우스가 버럭 언성을 높였다. 오시리아가 놀란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오, 이렇게 소리를 높일 일이야?”
“아니, 죄송합니다. 그러니까…….”
“알겠어. 나는 페델리우스 거잖아.”
까치발을 든 오시리아가 페델리우스의 볼에 입을 살짝 맞추고 떨어졌다. 그리곤 손을 붙잡고 천막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페델리우스가 놀란 눈으로 그녀의 뒤를 쫓았다.
“연극은 처음 봐. 기대된다.”
“저도 저런 연극은 처음입니다.”
페델리우스와 오시리아가 천막 안으로 발을 들였다. 오시리아의 걸음이 멈췄다.
“…….”
“오시리아? 안 들어가십니까?”
“페델리우스.”
“예.”
“헤어져.”
오시리아가 이글이글 불타는 눈으로 페델리우스를 노려보며 낮은 목소리로 선언했다. 그녀가 순식간에 날개를 만들어 천막 밖으로 날아 사라졌다.
“오시……!”
촤아악-!
페델리우스의 머리 위로 물이 쏟아졌다. 오시리아의 눈이 매섭게 빛났다. 물 덩어리를 날린 오시리아가 쏜살같이 날아가 사라졌다.
페델리우스가 황급히 그녀가 사라진 방향으로 달렸다.
“저게 무슨 연극이야!”
분명 인형 옷 같은 천 쪼가리를 뒤집어쓴 사람들이 무대에 올라와 있었다. 페델리우스의 말대로 ‘손으로 하는 인형극’만 아니었을 뿐이다.
“오시리아, 죄송합니다.”
“들어오지 마.”
문을 부수고 들어올 기세에 오시리아가 침대 위에 공처럼 둥근 공간을 만들었다. 그녀가 그 안으로 들어가 벌러덩 누웠다.
“잘못했습니다.”
무릎을 꿇은 페델리우스가 사과를 건넸다.
그녀가 화를 풀기까지 무려 일주일하고도 삼 일이 더 걸렸다는 이야기가 오랫동안 저택 사용인들 사이에서 회자됐다.
그사이 페델리우스의 무릎이 낙타처럼 굽어졌다는 건 비밀 아닌 비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