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화 (99/99)

외전 5. 못다 한 이야기

으아앙-! 으아앙-!

들려오는 울음소리에 페델리우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안으로 들어간 메디르와 메리가 페델리우스를 분만실에 들어올 수 없게 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페델리우스가 아파하는 오시리아를 보며 미쳐 날뛰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축객령을 받고 분만실 앞을 서성여야 했다.

그리고 지금 기다리던 아이가 태어났다.

페델리우스가 초조하게 자리에서 문이 열리길 기다렸다. 이윽고 문이 열리고 메디르가 나왔다.

“메디르 님! 어떻게 됐습니까? 오시리아는요?”

“귀청 떨어지겠네.”

메디르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그가 분만실 안을 가리켰다. 들어가 보라는 몸짓에 페델리우스가 곧장 뛰어 들어갔다.

메디르가 흐르는 땀을 소맷자락으로 닦으며 긴 한숨을 뱉었다.

‘드디어 끝났네.’

안에는 작은 핏덩이를 안고 있는 오시리아가 있었다.

기력이 쇠한 듯 힘이 없어 보였다. 몸이 축 늘어져 고개를 제대로 까딱이지도 못했다.

소리를 들었음에도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오시리아의 모습에 페델리우스가 황급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괜찮습니까?”

“아파 죽을 것 같아. 두 번은 안 해.”

오시리아가 퉁명스럽게 말하면서도 품에 안은 핏덩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너무 작아서 조금만 힘을 주면 부서져 죽어버릴 것 같은 연약한 존재다.

그러나 살아있었다. 새끼 고양이나 강아지처럼 눈도 제대로 뜨지 못했지만 분명히 숨 쉬고 있었다.

심장이 뛰는 게 느껴졌다.

“페델리우스, 이게 아기래.”

만삭이었던 배가 어느새 홀쭉해져 있다. 아파 죽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태어나 겪었던 수많은 고통 중에서도 단연코 손에 꼽을 정도로 극심한 고통이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아이를 안는 순간 모든 감각이 차단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저 눈앞의 아기에게 모든 감각이 집중됐다.

“아들이군요.”

“응.”

“수고하셨습니다.”

페델리우스가 오시리아의 볼에 입술을 맞추곤 조심스럽게 아기를 안아 들었다. 페델리우스의 눈이 커졌다.

품에 안긴 아이는 깃털만큼이나 가볍다. 힘이 센 그가 들기에는 깃털보다도 더 가벼웠다.

“당신을 닮았습니다.”

“피밖에 안 보이는데……?”

“당신을 닮은 진홍빛 머리카락입니다.”

“눈동자는 무슨 색일지 궁금하네.”

엉엉 울어 젖히다가 아기는 잠이 들어버렸다. 오시리아도 느리게 눈을 감았다. 온몸에 힘이 빠져서 졸리다.

커다란 손이 오시리아의 볼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푹 쉬십시오. 곁에 있겠습니다.”

“응…….”

가라앉은 목소리로 간신히 대답하며 눈을 감았다. 시야는 빠르게 어두워졌다.

* * *

“시리우스는?”

“자고 있습니다.”

“설마 메리와 아콰가 이름을 지어준 대모와 대부가 되어줄 줄은 몰랐는데.”

“명목상일 뿐이지만 말입니다.”

오시리아와 페델리우스의 이름을 섞어서 나름대로 지어온 이름이었다. 아콰가 나름대로 작은 주인님을 위해 힘껏 고민했던 모양이다.

아콰와 메리의 마음을 봐서 두 사람의 말대로 아기 이름을 시리우스로 정했다.

물론, 처음에는 ‘오시리우스’라는 이상한 이름을 가져와서 조금 수정해야 했지만 말이다. 게다가 아직은 입에 달라붙지 않을 정도로 어색하기까지 하다.

아이가 태어난 지 한 달째. 두 사람은 부모 노릇이 얼마나 힘든지 뼈저리게 배우고 있었다.

밤에도 잠을 제대로 잘 수 없고 아기는 시도 때도 없이 배고파했다.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우는 것밖에 없으니 우는 일도 잦았다.

“오늘은 조용하네.”

“그러게요. 오늘은 속 안 썩이고 푹 자려는 모양입니다.”

오시리아가 페델리우스의 품에 안겨 눈을 감았다. 아이는 아기 침대에 눕혀 재워둔 참이었다. 너무 작아서 사이에 끼고 자기엔 불안했기 때문이다.

“페디야.”

“……그 곰 인형 같은 별명 그만둬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응, 안 돼. 아무리 생각해도 페델리우스는 기니까.”

페델리우스가 오시리아를 품에 안은 채 앓는 소리를 냈다. 싫다는데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괜히 심기를 상하게 하고 싶지도 않다.

오시리아가 화났을 때 겪을 법한 일은 이미 다 겪었고 적어도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는 않다.

“나 궁금한 거 하나 있어.”

오시리아가 입을 열었다. 줄곧 궁금하지만, 굳이 캐묻지 않았던 것이다. 오시리아의 물음에 페델리우스가 감았던 눈을 다시 떴다.

“그 사람은 어떻게 됐어?”

“그 사람이라뇨?”

“트럼프 제국의 황제.”

오시리아의 질문에 페델리우스가 그녀를 쳐다본다. 슬쩍 비틀어지는 입꼬리를 보던 오시리아가 어깨를 으쓱였다.

“제국은 멸망했고 황제도 당연히 죽었습니다.”

오시리아가 페델리우스의 입술을 삼켰다. 눈을 크게 뜬 그가 곧 오시리아의 입술을 탐했다. 오시리아가 천천히 입술을 뗐다.

“그거 알아? 페델리우스.”

“네?”

“넌 거짓말을 할 때면 내 눈을 보지 않아.”

오시리아가 웃어 보이곤 곧장 눈을 감았다. 페델리우스가 조금 곤란한 표정으로 오시리아를 내려다본다. 그가 오시리아를 끌어안은 채 눈을 감았다.

여전히 대답은 없었다.

‘고집 세기는.’

오시리아가 한숨을 삼켰다. 그 사람이 느껴진다고 말해봐야 긁어 부스럼일 테니 굳이 따지고 들 생각은 없지만.

‘숨기는 이유는 모르겠네.’

오시리아가 눈을 감았다. 따뜻하고 단단한 품 안에서는 안심하고 잘 수 있다. 그녀는 몰려오는 수마를 거부하지 않았다.

잠이 든 오시리아를 내려다보던 페델리우스가 그녀의 등을 느릿하게 쓸어내렸다. 페델리우스의 눈빛이 겨울밤 내려앉은 서리보다도 더 시리게 가라앉았다.

“글쎄요, 뭘 하고 살고 있을까요?”

웃음기를 머금은 페델리우스가 오시리아를 끌어안은 채 속삭였다.

* * *

“오랜만입니다. 그건 어딨습니까?”

“지하에. 왜? 다시 데려가려고 왔나?”

“아닙니다.”

로브에 달린 후드를 깊게 눌러쓴 페델리우스가 웃었다. 설마 데려갈 리가 있는가. 이곳에 평생 가둬놔도 혹시나 언제 만나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인데.

“어떻게 지냅니까?”

“장난감이 할 게 뭐가 있나? 가끔 취향 특이한 놈들한테 돌리고 분풀이용으로 쓰고 좁고 어두운 지하실에 가둬둔 채로 하루에 먹다 남은 빵 한 조각씩 던져주고 있는데.”

근육이 가득한 민소매의 남자가 말하며 아래로 깊이 내려갔다.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퀴퀴한 냄새에 인상이 찌푸려진다.

페델리우스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건 좋네요.”

“뭐래, 자네가 시킨 일 아닌가? 그렇게 돈을 많이 챙겨줬으니 짐 덩어리 하나 맡는 거야 일도 아니지.”

어깨를 으쓱이는 남자의 말에 페델리우스가 지하실로 발을 디뎠다. 어둡고 좁고 작은 틈밖에 없는, 빛조차 제대로 새어 들어오지 않는 방이다.

문을 열자 바깥의 빛이 그제야 조금 스며들었다. 페델리우스가 시선을 내렸다.

위대한 황제였던 이가 지금은 바닥을 구르고 있다. 오래전 그녀가 이렇게 갇혀 지냈을 법한 모양새로.

인대를 잘라냈으니 도망가지도 못할 것이다. 손목의 힘줄은 자르지 않았지만, 끝없이 가해지는 폭력에 그가 도망갈 길은 없다.

물론 혀가 잘려 죽는 것조차도 할 수 없는 산송장이었다.

그렇다고 제 머리를 벽에 박아 죽을 정도의 강단도 없는 사람이었다. 알기에 이런 곳에 가둬둔 것이다.

“오랜만이군.”

페델리우스가 그에게 말을 건넸다. 헤- 벌린 입에서 침을 뚝뚝 떨어뜨리는 남자는 이미 제정신도 아니었다. 그저 소리가 나는 쪽으로 눈동자를 굴릴 뿐이다.

“어제 고문 실험을 한다고 좀 가지고 놀아서 꼴이 별로야.”

“아, 괜찮습니다. 대화를 나누러 온 건 아니니까.”

페델리우스가 시리게 웃어 보였다. 그가 품에 넣어 가져온 검을 바닥에 던졌다. 챙! 날카로운 소리가 지하실을 울렸다.

예전에 오시리아가 그에게 던져줬던 검이었다. 그녀의 배려를 무시한 그는 결국 페델리우스에게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받게 됐다.

직접 그의 인대를 잘라내고 혀를 잘라냈다. 그리고 그를 다른 곳에 빼돌려놨다가 이곳에 던져줬다.

오시리아에겐 차마 진실을 말해주진 못했지만.

“이제는 그녀의 배려를 받아줄 마음이 좀 생겼나?”

만약, 그가 스스로 제 목숨줄을 끊었다면 페델리우스는 그에게 손을 댈 새도 없었을 거다. 그러나 황제는 이 꼴이 되기 전까지도 죽음을 두려워했다.

걷지도 못하는 그가 기어서 검을 붙잡았다. 침이 뚝뚝 떨어지는 입을 바라보던 페델리우스가 불쾌한 표정으로 몸을 돌렸다.

황제가 검을 붙잡는다.

그러나 검 끝이 향한 곳은 페델리우스도, 지금껏 그를 끔찍한 고통 속에서 헤매게 했던 남자도 아니었다.

푸욱-

검 끝이 황제 자신에게 향했다. 그것은 곧장 그의 목을 파고들었다. 페델리우스가 몸을 돌렸다.

“그러게 그녀가 선택지를 줬을 때 선택했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페델리우스가 웃었다.

“뭐야, 죽은 거야? 그래도 돈은 못 돌려주니까.”

“가지십시오. 저 시체를 갈가리 찢어 들개 밥으로 던져주는 게 마지막 일일 테니까요.”

그가 몸을 돌렸다.

어둑한 지하실을 빠져나와 올라오며 페델리우스가 느릿하게 로브를 들어 올렸다.

‘거짓말은 아니지.’

조금 뒤늦게 사실로 만들었을 뿐이다. 약속대로 놈은 죽었다. 다시는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다. 그 육신은 뼛가루 하나라도 남는 일이 없을 거다.

페델리우스가 빠른 걸음으로 더러운 뒷골목을 벗어났다.

* * *

“다녀왔습니다.”

페델리우스가 가벼운 목소리로 말하며 저택으로 들어섰다. 그가 오자마자 로브를 벗어버리고 손을 씻고서 오시리아에게 향했다.

마침 오시리아의 방에서 나오는 아콰와 메리를 마주쳤다.

“오셨어요? 주인님.”

“그래, 오시리아는?”

“도련님과 쉬고 계세요. 들어가 보세요.”

메리가 할 일이 있는 듯 고개를 숙였다. 그녀가 자연스럽게 아콰를 바라봤지만, 아콰는 메리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할 얘기 있으니까 먼저 가 있어도 돼. 금방 따라갈게.”

“네.”

메리가 궁금한 표정을 하면서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콰의 앞에 선 페델리우스가 의아한 눈으로 그를 보았다.

“인간……. 음, 아니 페델리우스?”

“예, 아콰 님.”

“드디어 죽었네. 잘했어.”

손을 뻗은 아콰가 페델리우스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생각지도 못한 손짓에 그가 놀란 눈을 했다.

물론 놀란 것에는 다른 이유도 있었지만.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야 느껴지니까? 그리고…….”

아콰가 페델리우스에게 바싹 다가왔다. 페델리우스의 목덜미에 코를 묻은 아콰가 킁킁거렸다.

“너 피 냄새 나. 주인님도 느낄 거야. 조용히 욕실 가서 씻고 들어가.”

“아…….”

“아니면 주인님께 혼나도 되고.”

아콰가 가볍게 손을 흔들곤 2층 난간에서 그대로 뛰어내렸다. 능력을 써서 착지했는지 별다른 소동은 없다.

페델리우스가 입맛을 다시며 오시리아의 방이 아닌 다른 방의 욕실로 향했다.

혹시나 피 냄새가 남을까 봐 몸을 벅벅 씻고서야 다시 오시리아의 방으로 향했다. 오시리아는 작은 아이를 품에 안고 의자에 앉아있었다.

“오시리아.”

“왔어?”

“네.”

옅게 느껴지는 피 냄새와 드디어 죽어버린 저의 질긴 인연을 생각하며 오시리아가 모른 척 웃었다.

“다녀왔습니다.”

“응, 고생했어.”

오시리아가 페델리우스에게 말했다. 페델리우스가 웃으며 허리를 숙여 그녀의 아랫입술을 가볍게 빨아당긴다.

“사랑합니다.”

“으응……. 나도.”

오시리아의 말끝이 살짝 떨린다.

살짝 풀린 눈으로 하는 대답에 페델리우스가 조급하게 손을 뻗어 오시리아의 허리를 당기며 조금 더 깊게 혀를 넣었다.

질척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지려는 찰나,

“흐앙!”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조금 더 밀착해오는 페델리우스를 느낀 모양이다. 두 사람이 냉큼 서로에게서 물러났다.

“울지 마.”

오시리아가 서툴게 아기를 달랬다. 달빛이 내려앉은 늦은 저녁의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아마도.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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