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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첫 시작 (7/203)


7화 첫 시작
2021.10.08.


“암만 봐도 정상적인 외형은 아닌데.”

이른 새벽, 던전을 향해 걸어가며 문득 클라이드가 준 무기를 떠올린 스테치가 검을 꺼내 보며 중얼거렸다.

길이는 한손검과 단검의 중간쯤에, 얼핏 보면 검보다는 하늘에 날리는 작은 연이 연상될 정도로 넓은 면을 가진 독특한 외형.

농담이 아니라 세우면 소형 방패로 써도 될 것 같은 생김새에다, 검 손잡이 옆에는 갈고리 형태의 작은 장전쇠와 스위치가 달려 있었다.

『사용법은 잘 기억하고 있지?』

“이거 쓰고 나면 팔이 너무 아프단 말야.”

던전 진입 전날, 클라이드와 함께 무기를 사용해 보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스테치가 툴툴거렸다.

클라이드는 스테치가 고른 무기를 자기 공방으로 가져가 급하게 조정 작업을 거친 뒤, 딱 한 번 스테치의 앞에서 시범으로 검을 사용해 보였다.

그리고 스테치 본인이 또 한 번. 그 ‘위력’은 절륜했지만, 여러 이유 때문에 스테치는 막상 검을 뽑아들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자 메멘토 모템이 머뭇거리는 스테치에게 말했다.

『너의 단점이 바로 이거야. 강력한 한 방이 없다는 것. 모종의 이유로 내 스킬이 봉인된다거나, 마력이 고갈되면 상황을 역전시킬 능력이 없는 거지.』

“그렇게 따지자면 너 없을 적엔 내가 어떻게 살아남았겠냐? 그렇게까지 무능력하진 않아.”

스테치의 항변에 메멘토 모템은 노골적으로 꾸며낸 듯한 코웃음을 치며 반박했다.

『전략과 전술, 테크닉과 트릭이 힘의 차이를 이겨내는 일도 있겠지. 하지만 적도 너와 수준이 같다면, 거기서부터는 어느 쪽이 우위인지를 가리는 순수한 무력 대 무력의 충돌만 남을 뿐이야. 그걸 모른다면 넌 아직도 한참 멀었어.』

스테치는 말없이 얼굴만 찌푸리며 던전 입구에 들어섰다.

이 던전의 공식적인 등급은 B등급. 아티팩트를 얻기엔 만만하며, 던전이 무너지더라도 제라드의 관심을 끌기 힘들 정도의 쉬운 던전을 일부러 고른 것이었다.

‘그러니 얼마나 어렵겠어, 지금의 난 그때완 다르다고.’

* * *

“으아아아아아!”

스테치가 눈앞에서 덤벼오는 라타토스크를 향해 발길질을 날린 뒤 왼손에 낀 반지를 전면으로 내밀자, 강렬한 녹색 빛이 뿜어져 나왔다.

빛으로 밝혀진 던전의 안쪽에서 수많은 붉은 빛 안광이 스테치를 노려보고 있었다.

“쏴!”

투쾅!

대포와 같은 발사음을 내뿜으며, 공기의 탄이 라타토스크 무리를 뚫고 지나갔다. 탄환에 직접 맞지 않은 몬스터들은 에어 불렛이 일으킨 풍압에 의해 바닥을 굴렀다.

“한 번 더!”

퍼엉!

한바탕 폭풍이 몬스터 무리를 뒤섞고 난 직후, 순식간에 원형조차 알아보기 힘든 꼴로 으깨지거나 박살 난 라타토스크 떼의 시체만이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커스 이팅!”

그리고 커스 이팅 스킬로 전부 흡수.

보이는 모든 몬스터들이 곧 마력 덩어리이니 스테치로선 강력한 스킬들을 난사할 수 있었다.

신중한 성격과 더불어 반지의 사용이 익숙지 않은 탓인지 무의식중에 직접 싸우고 있었지만, 그런데도 전투는 이전보다 매우 수월해진 상태였다.

『마력이 아주 차고 넘치네, 아주 좋아. 나중에 성장에 도움이 되겠어.』

아무래도 초과한 만큼의 에너지는 전부 메멘토 모템이 ‘업그레이드’ 되는 것에 사용되는 모양이다. 스테치는 흥얼거리며 앞으로 걸어갔다.

스테치의 현재 상태는 지명 수배.

계좌는 정지되고, 현재 그의 수중엔 땡전 한 푼조차 없었다.

하지만 달튼의 도움으로 그는 클라이드로부터 장비를 지원받고, 부족했던 마력을 전부 보충한 데다가 곳곳에 굴러다니는 보물까지 잔뜩 주워 주머니가 터져나갈 지경이었다.

‘오, 이건 진짜 청금석이네. 기념으로 조금 캐 갈까.’

히히덕거리는 스테치는 배낭을 뒤적여 주먹만 한 사이즈의 곡괭이를 꺼내 벽을 긁어 냈다.

던전은 주변의 지형지물을 찰흙처럼 끌어당겨 빚어지는 것이라, 대부분은 생성된 위치의 자연환경을 기반으로 만들어진다고도 볼 수 있다.

광맥이 있는 걸 보아하니 아마 누구든 이 주변에 광산을 개발한다면 크게 벌릴 것이다.

끼리릭-.

소름 끼치는 감각에 스테치가 뻗었던 발과 몸을 쭉 빼자, 발목에 걸려 쭉 당겨진 와이어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어이쿠, 와이어 트랩.’

전형적인 함정이다.

스테치는 장치가 자극되지 않도록 곡괭이로 조심스레 주변 벽과 포장된 바닥 벽돌 일부를 들어내기 시작했다.

드러난 구멍으로는 와이어와 기름 카트리지, 화염 사출구가 드러났다.

대부분의 함정은 던전이 생성하지만 구조가 복잡한 트랩은 보통 지능이 높은 몬스터, 또는 던전을 거주지로 삼은 인간이 설치해 두기도 한다.

하지만, 스테치의 생각은 온통 다른 곳으로 쏠려 있었다.

‘이건 내가 잘 써 주마…… 흐흐.’

사출형 트랩에 세트된 카트리지 케이스에는 무엇을 뿜어낼지에 따라 다양한 조합 물질이 들어가 있다.

그리고 와이어는 어지간한 드워프 세공사가 아니면 뽑아내기 힘든 장력과 두께를 자랑했다.

스테치에게 있어서는 그냥저냥 한 보석들보다는 이런 것들이 실질적인 예산을 아끼게 해 주는 진짜 보물들이기도 했다.

옷가지나 최소한의 장비만 들어가 있던 탓에 텅 비어 있던 그의 배낭은 서서히 새로운 잡동사니들로 채워져 가기 시작했다.

“브와아악!”

던전 진입 후 얼마나 지났을까? 하강형 통로의 어두운 곳 저 멀리에서부터 무언가가 괴성을 지르며 접근해 오자, 스테치는 두 눈을 찌푸린 채 반지를 앞으로 내밀어 전방을 비췄다.

“……미네랄 리저드?”

푸확!

스테치가 상대를 확인하는 순간,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기습 타이밍을 기다리던 미네랄 리저드는 입에서 끈적한 액체를 뿜어냈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옆으로 꺾은 스테치의 귓가로 스쳐 지나간 액체는, 스테치의 어깨와 볼에 기다란 화상 자국을 남긴 채 바닥으로 떨어졌다.

비명이 절로 터져 나온다.

“흐그아아아악!”

살짝 닿았을 뿐인데 살이 녹아내린다.

미네랄 리저드는 주로 광산에 사는 몬스터로, 이름처럼 광물을 부식성 체액으로 녹여 먹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광물조차 전부 녹이는 특수한 체액 때문에, 미량조차도 스테치에겐 치명적일 수 있었다.

『정신 바짝 차려! 아무리 부활 어빌리티가 있다고 해서 막 죽어도 되는 건 아니잖아?』

《액티브 스킬 : 리쥬버네이션.

체력과 상해를 자동으로 회복합니다.》

반지에서 뿜어져 나온 은은한 빛이 상처를 덮자, 스테치의 반쯤 녹은 부위로부터 거품이 일며 새 살이 돋아났다.

저 몬스터는 광물을 먹어 비늘과 가죽을 단단히 만들기 때문에 전기나 불, 물리 데미지는 통하지 않는다. 유일한 대처법은 앞서 말한 것들 이외의 수단으로 공격하거나, 아니면 역으로 상성을 무시한 채 힘으로 찍어 누르는 것.

‘썩을, 성가신 놈을 만나버렸구먼.’

스테치가 반지를 겨누자, 예상했다는 듯 곧바로 메멘토 모템의 목소리가 스테치의 머릿속에 울렸다.

『이런 장소에서 《에어 불렛》을 사용하면 이 통로 전체가 무너진다!』

“우왓!”

푸확!

또다시 물총처럼 쏘아져 날아오는 부식액.

미리 경계하고 있던 탓에 이번엔 피할 수 있었지만, 통로를 가로막고 선 이상 몰래 지나친다든가 하는 방법은 없는 듯 보였다.

메멘토 모템이 말했다.

『지금이 클라이드 녀석의 무기를 시험해 볼 좋은 때인 것 같군.』

그 말을 들은 스테치는 조심스럽게 거리를 벌린 뒤 등 뒤로 돌려 멘 검집으로부터 검을 꺼냈다. 스테치가 물었다.

“정말 지금이 적절한 타이밍일까?”

『꼴랑 바위한테나 시험해 본 주제에 다음엔 던전 수호자한테나 써 볼 거야? 단단한 중형 몬스터를 상대로 먹혀드는지 확인해 볼 절호의 기회라고.』

검을 완전히 뽑아 든 스테치는, 이를 악물고 검끝을 미네랄 리저드에게 향했다.

“……간다!”

철컹!

스테치가 장전쇠를 당기자 검신의 끝부분 절반이 손잡이 쪽 절반으로 빨려 들어가며, 안 그래도 짧은 검이 더 짧게 줄어들었다. 그와 동시에 허리춤에 두른 파우치에서 원통형의 실린더를 꺼낸 스테치는, 힐트를 돌려 뚜껑을 열고 손잡이 안에 그것을 ‘장전’했다.

“크와아악!”

준비 중이던 차에 일직선으로 뿜어져 나온 산성액을 말없이 차분하게 피한 스테치는, 장전된 검을 앞으로 내민 채 미네랄 리저드의 머리통에 박아 넣었다.

하지만 두텁고 강건한 비늘 탓인지, 양미간을 겨냥하여 찔러 넣은 검은 단 1mm도 박히지 않은 채 돌덩이를 두들기는 듯한 소리만 일으켰다.

『걱정 마.』

메멘토 모템이 말함과 동시에 스테치는 스위치를 눌렀다.

『이 검은 찌르기를 위해 만들어진 무기가 아니니까.』

콰캉!!

크로스 가드의 분사구로부터 소모되고 배출된 고압가스가 뿜어져 나옴과 동시에,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검신이 초고속으로 다시 늘어나며 미네랄 리저드의 두개골을 박살 내며 파고 들어갔다.

소리조차 못 내뱉고 일격에 절명해 버린 미네랄 리저드는, 피와 뇌수가 섞인 피거품을 줄줄 흘리며 스테치의 검에 박힌 채 축 늘어졌다.

“끙-.”

상대가 무력화된 것을 확인한 스테치는 한쪽 발을 들어, 검에 의해 박살 나다 못해 꿰뚫린 미네랄 리저드의 몸뚱이를 밀어냈다.

쿵-!

『원래는 깨부숴야 맞는 건데, 너무 세서 아예 꽂혀 버렸군.』

내부의 스프링과 케이블 와이어로 한계까지 당긴 검신의 일부를, 고압가스의 폭발력과 동시에 제자리로 밀어내어 대상을 일점 파괴하는 무기.

그것이 클라이드가 준비해 준 무기의 정체였다. 찌르기보단 상대의 파괴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탓에 날이 제대로 서 있는 건 양날 부분뿐이며, 물리 에너지를 집중할 수 있도록 검 끝의 팁이 특수 합금으로 되어 있었다.

“아야야…… 재수 없는 도마뱀 새끼.”

스테치가 충격으로 저릿한 팔을 두어 번 흔들며 말했다. 전날 클라이드로부터 사용법을 전해 들으며 바위를 상대로 시험해 봤을 때만큼이나 부담이 심하다.

“아무리 실전에서 통하는지 확인하는 게 목적이라곤 해도 역시 아까운데…… 이제 겨우 네 개 남았어.”

파우치 안을 흘끗 들여다본 스테치는 걱정스러운 듯 중얼거렸다. 스테치가 검의 사용을 최대한 미루었던 이유는 단순한 신체적 부담 이외에도 두 가지가 더 있었다.

첫째는 물리력을 배가시켜 줄 가스 실린더의 수에 제한이 있다는 것. 애초에 정말 누군가 이런 괴상한 무기를 사용하리라 생각하지 않은 데다, 사용된 가스 자체도 희귀하여 일회용 실린더가 많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였다.

둘째는 단순한 검이 아닌 복잡한 내부의 기계 장치와 기믹 탓에 예상 내구도가 낮다는 것. 특유의 널찍한 형태 덕분에 충격 흡수율은 매우 높지만, 휘두르는 데 주의하지 않으면 제대로 써 보기도 전에 검이 먼저 산산조각 날 우려가 있었다.

스테치가 한숨을 쉬며 커스 이팅을 사용해 미네랄 리저드의 사체를 마력으로 흡수하자, 메멘토 모템은 마치 맛을 음미하듯 쩝쩝거리며 의아해했다.

『으음…… 이거 뭔가 좀 이상한데.』

“뭐가?”

스테치가 얼굴을 찌푸렸다. 외형상으로는 영락없는 미네랄 리저드였는데, 이상한 점이 있었나? 스테치의 의구심과는 별개로 혼자 무언가를 생각하던 메멘토 모템이 말했다.

『그냥…… 딱 집어서 말할 수가 없어. 일반적인 미네랄 리저드와는 다른 이질감 같은 것이 느껴지는데.』

“그렇게 말해도 잘 모르겠는데. 장애가 있다는 말인가?”

이놈의 반지는 같은 말도 항상 어렵게 하는 게 문제다. 조금은 자기 수준을 배려해 줬으면 좋겠는데…… 스테치가 그런 생각을 하자, 목소리가 재차 말했다.

『여하튼 조심해. 아직 뭐가 문제인지 정확히 파악되지 않은 상태니까 교전은 금물이야.』

“그…….”

“크와아악!”

스테치가 더 질문하려고 입을 여는 순간, 그가 있던 통로의 반대편으로부터 익숙한 괴성이 또 들려오기 시작했다. 스테치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너한테 한눈파는 사이에 다른 놈이 또 왔잖아. 똑같은 방법을 또 쓸 수는 없는데.”

반지의 빛으로 비춰보자, 아까와 똑같은 미네랄 리저드이다.

날뛰면서 달려오는 모습을 보니 아까 전에 스테치가 처리한 놈보다도 성미가 거칠어 보인다.

스테치는 검의 힐트를 열어 텅 빈 실린더를 꺼낸 뒤 장전쇠만 당겼다.

스프링 장치의 장력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타격은 줄 수 있을 것이다.

‘이 정도 위력이면 최소한 기절은 시킬 수 있겠지!’

『95%의 비정상적 신체 조직 감지…… 잠깐만!』

“하!”

메멘토 모템의 말을 뒷전으로 넘긴 스테치가 스위치를 누르자, 튀어나온 검의 타격을 받은 미네랄 리저드의 신체는 섬광과 함께 폭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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