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작은 해프닝
(10/203)
10화 작은 해프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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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작은 해프닝
2021.10.11.
팅깡- 땡!
팅깡- 땡!
모루를 두들기는 소리가 한창인 어느 공방. 후드를 두른 남성이 낡은 문을 두들기니, 후두둑 하고 문이 경첩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 소리에 문을 두들긴 남자와 안에서 망치를 휘두르던 드워프 모두, 서로를 황망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이게 뭔…….”
“클라이드 너 거지냐? 자기 공방 문짝 하나 제대로 못 붙여 놔?”
태연하게 악담을 퍼부은 스테치는 한숨을 푹 쉬며 나무문을 일으켜 세운 뒤 벽에 기대어 두었다.
반쯤 농담이었지만, 클라이드의 눈에 눈물이 핑 감도는 모습을 보며 스테치는 할 말을 잃었다.
“그래, 무슨 일이지?”
넝마 조각으로 눈가를 훔쳐낸 클라이드가 묻자, 스테치는 말없이 등에 둘러맨 소드벨트와 검을 풀어내려 그의 앞에 내려놓았다.
클라이드가 스테치에게 제공했었던 검의 상태는 최악이었다.
규격 사이즈의 실린더뿐만 아니라 웬 폭발하는 돌멩이까지 쑤셔 넣고 강제 격발한 데다, 날아드는 돌덩이들을 대놓고 막아 낸 탓에 검날은 여기저기 푹 들어가 찌그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입을 쩍 벌리는 클라이드의 모습에, 스테치는 머쓱해진 나머지 뒤통수만 긁어내렸다.
검의 조임쇠를 풀고 분해해 본 클라이드는 차분히 상태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케이블은 너덜너덜…… 스프링과 토크, 풀리는 박살 나기 일보 직전에, 실린더 체임버는 아예 융해하다 말았군.”
“……오해는 하지 마, 몰골은 이래도 이 녀석 때문에 목숨을 구했다고.”
스테치는 변명하듯 말했지만, 사실이었다.
이 강력한 물리 타격 수단 덕분에 진을 이긴 것이지, 이마저도 없었다면 그는 첫 번째 던전에서부터 도망치지도 못한 채 사망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 말을 들은 클라이드는 의외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맙다.”고 말했다.
애초에 그가 준 검은 테스트도 안 한 미완성품이었던 데다, 실전에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평가를 들은 것도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검은 새로 고치면 돼. 더 강하고 더 튼튼하게 만들어 줄게.”
자신 있게 말하는 클라이드를 본 스테치는 배낭을 풀어 안의 내용물을 꺼내 보였다.
“던전에서 가져온 트랩의 와이어야. 그리고 내가 팔다 남은 몬스터들의 소재도 있고.”
스테치는 그렇게 말한 뒤 돈주머니를 꺼내 내밀었다.
가져온 전리품들을 처분하고 남은 돈의 일부였지만, 클라이드 입장에서는 그마저도 처음 받아보는 거금이었다.
“100크라운짜리 동전이 30닢 들어있어. 이걸로 이 무기의 수리 및 강화, 그리고 실린더의 보충을 부탁할게.”
그 이후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클라이드는 무엇보다도 자신을 믿어준 스테치에게 고마움을 느꼈기 때문에, 전에 없던 의욕을 불태우며 작업에 임했다.
클라이드가 부족한 부품 발주를 위해서 다른 공방을 방문하러 나가는 것을 보며, 스테치는 후드를 다시 뒤집어쓰고 시장으로 이동했다.
“이제 오냐.”
해가 저물 무렵, 이것저것 구경하면서 시간을 보내다 달튼의 술집에 들어온 스테치는 반갑게 맞이하는 달튼에게 말없이 손만 흔들어 보였다.
“지쳤어. 위에 가서 좀 쉴게.”
“그래.”
달튼은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사실 스테치가 막 던전을 털고 나왔을 때의 달튼은 지금과 영 딴 반응을 보였었다.
처음엔 기겁했으며, 그다음엔 화를 냈다. 흔해 빠진 저급 던전이라고는 해도, 주변 마을의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데에 이바지한 노다지가 무너진 꼴이기 때문이었다.
암시장 관리인인 달튼이 속상해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굳이 아티팩트까지 취하여 던전을 무너뜨린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던 스테치는, 정보료를 받긴 했지만, 그 대신 달튼에게 어마어마한 지하 광물이 매장된 포인트를 알려주었다.
탐험가로서 정확한 위치 설명은 누워서 떡먹기였고, 달튼은 그 정보를 바탕으로 광산을 개발할 재력과 머리가 있었다.
광맥의 규모를 전해 듣고 샘플까지 건네받은 달튼은 당연히 스테치에게 친절해질 수밖에 없었다.
당연하지만, 아티팩트에 대해서는 별 좋을 게 없는 쓰레기였기에 그대로 파괴해 버렸다는 핑계로 대충 답변을 피했다.
달튼이 운영하는 주점은 1층이 일반 주점, 지하가 암시장이었으며, 2층은 숙박 시설이었다. 방을 하나 얻은 스테치는 계단을 올라가 방 입구 쪽에 나머지 짐을 내려놓은 뒤, 침대 위에 드러누웠다.
“야.”
『음.』
허공에 대고 부르자, 차분한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들려왔다.
던전 탈출 후, 마을로 복귀할 때까지 무의식 상태였던 메멘토 모템은 다음날이 되어서야 정신을 차렸다.
스테치는 자신이 보았던 어빌리티 명칭을 쭉 읊으며 설명을 요구했지만, 메멘토 모템은 답변을 거부했다.
아티팩트인 자기 자신조차도, 스테치가 어빌리티를 활성화시키기 전까진 아무것도 알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게 이유였다.
『이유는 나도 몰라.』
메멘토 모템이 말했다.
『너와 만나는 순간 나는 한 번 ‘리셋’ 되었어. 그 리셋으로 인해 그 많던 대부분의 스킬들과 어빌리티가 봉인되었지. 그런데 어제 아티팩트를 처음 흡수하면서야 눈치챈 사실이 있어.』
그 말에 스테치는 첫 만남에서 메멘토 모템이 했던 발언을 떠올렸다. 분명히 사용할 수 있는 잠정적 스킬은 40개가량이라고 했었던 메멘토 모템이었다.
『하나 예를 들어 말해볼까? 《에어 불렛》은 사실 아무런 진화형도, 후기 파생형도 없는 정말 단순한 기본 스킬이야. 그런데 내가 업그레이드되는 과정에서, 파트너인 너의 성향에 맞춰 스킬 자체가 전에 없던 형태로 새롭게 진화한 거야. 너에게 최적화된, 너만의 스킬로서.』
“그럼 이제부터 새로 해금되는 스킬과 어빌리티에 대해서는 너 자신도 미리 알려준다거나 할 수 없단 뜻이야?”
스테치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짓자, 메멘토 모템은 평소답지 않게 난처한 기색을 보였다.
『그런 셈이지. 하지만 어떤 어빌리티나 스킬도 한 번 익히고 나면 나 또한 원래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자유자재로 쓸 수 있어. 이건…… 말로 표현하기 힘들어. 이건 마치 잊어먹고 있던 무언가를 비로소 떠올리는 듯한 감각이라고나 할까.』
자신도 설명하기 힘든지 석연찮아하는 모습에, 스테치는 말없이 침대에 드러누우며 어제의 일들을 떠올렸다. 새로운 어빌리티를 습득한 순간, 스테치는 본능적으로 그것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알 수 있었다.
저주받은 아이템.
던전에 버려진 장비들은 사기에 오랫동안 노출되면 '저주'를 받게 된다. 던전의 사기를 잔뜩 머금게 된 이 아이템들을 오랫동안 소지하고 있을 경우, 신체 능력 저하 등의 악영향을 일으켰다. 때문에 던전을 연구하는 사람 이외에는 건드리지도 않는 물건이었다.
메멘토 모템의 힘이 저주받은 아이템들의 사기를 억제해 주기 때문에 단순 착용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커스 아우라》는 그 억제력을 해제하고 저주받은 아이템의 사기를 증폭시키는 어빌리티였다.
그야말로 양날의 검.
'도대체 이 아티팩트는 뭐지?'
지금껏 스테치는 아티팩트가 단순히 사용자를 강하게 해 준다거나, 무언가를 쏴 날려 보낼 뿐이라는 막연한 인식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메멘토 모템은 아무런 지식도 없는 스테치조차 이상하다고 여길 만큼, 이질적인 특성들을 여럿 가지고 있었다.
생각에 빠져 있던 스테치에게 메멘토 모템이 물었다.
『그런 것 보다 너, 다음 계획은 뭐야?』
스테치는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말했다.
“뭐긴. 가능하면 빨리 다음 던전으로 이동해야지.”
스테치는 제라드의 말을 분명히 들었다.
던전에 오기까지 일주일이 걸렸으며, 왕복 2주일의 기간이면 그사이 다른 두 형님이 술수를 부려놓을지도 모른다고.
이 말은 즉, 제라드에겐 왕도 이외의 장소에 들를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소리였다.
그의 예상이 맞는다면, 스테치가 아티팩트를 얻은 날을 기준으로 제라드와 수도까지 남은 거리는 넉넉히 3~4일 정도.
“아무리 이름도 없는 소규모 던전이라고 해도, 아티팩트 때문에 죄다 무너뜨리고 다니면 언젠가는 소문이 퍼질 수밖에 없어. 처음 내가 널 만났던 그 던전을 기준으로 수도 알렌테는 북서쪽에 있었으니, 털어먹더라도 같은 경로 상에 있는 던전들은 피해서 소문이 수도에 닿는 속도를 늦추는 수밖에.”
스테치가 맡긴 무기의 수리는 빠르면 이틀이 걸린다고 한다.
본인이 장담했으니 그 부분에 대해선 신뢰할 수 있다. 현재로선, 장비를 회수하는 즉시 서쪽에 있는 던전을 향해 이동하는 것이 스테치의 계획이었다.
“일단은…… 피곤하니까 좀…… 자야겠어.”
천천히 중얼거리던 스테치는 눈을 감았다.
* * *
쾅쾅쾅!
“으악!”
갑작스럽게 단잠을 깨는 소음에, 스테치는 놀란 가슴을 부여잡으며 일어섰다. 창문 바깥을 보니 어둑어둑한 새벽이었다. 투덜거리며 일어선 스테치가 외쳤다.
“거기 누구야?”
“큰일 났어, 일어나 봐!”
다급하게 스테치를 부르는 목소리의 주인은 달튼.
어지간해선 당황할 일이 없는 달튼이 심상찮은 목소리로 부르는 것을 들으니, 불안해진 스테치는 후다닥 문을 열어주었다.
어두운 통로 안에서 랜턴의 불빛을 받아 드러난 달튼이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스테치에게 말했다.
“클라이드가 두들겨 맞았어!”
“뭐야?!”
황급히 계단을 타고 달튼을 따라 내려간 스테치는, 지하에서 옹기종기 모인 채 무언가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무리를 파고들은 스테치는 곧 피떡이 되어 정신을 잃은 클라이드를 발견할 수 있었다. 달튼이 말했다.
“좀 전에 골목에서 누군가가 발견해 왔어. 애쉬! 내가 시킨 물건은 가져왔어?”
“받아!”
사람 하나가 플라스크 병 하나를 던지자, 곧바로 그것을 받아 들은 달튼은 코르크를 뽑고 상처 부위에 내용물을 부었다.
붉은 액체가 상처 위로 쏟아지고, 그 후에 남는 것은 전부 클라이드가 삼키게 했다.
다행히 물약이 잘 들었는지, 붓기가 눈에 보이는 속도로 빠짐과 동시에 찢어진 상처들이 아물기 시작했다.
“포션 효과 좋네. 얼마야?”
“싼 가격은 아니야. 하지만 이런 때 아니면 언제 쓰겠냐?”
사람들끼리 수근 거리는 와중에, 몇 분 뒤 클라이드가 눈을 떴다.
자기가 왜 달튼의 술집에 있는 것인지 순간 어리둥절해 하는 모습이었으나, 곧 자기가 멀쩡해졌다는 걸 깨달았는지 몸 이곳저곳을 더듬기 시작했다. 잔뜩 흥분한 이들이 물었다.
“정신이 들었어.”
“대체 누가 이런 짓을 벌인 건데?”
암시장 이용자이기 이전에 대부분은 마을 거주민이다. 최소한 서로 안면이 있는 마을 사람들 특징상 대놓고 이렇게 폭력을 휘두를 놈은 없었다.
클라이드는 뒤통수를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데릭 패거리랑 연관이 있을 거야. 날 덮친 놈들 중 하나가 그 자식 부하였어.”
“또 그놈이야?”
여기저기에서 탄식 섞인 목소리가 터져 나오자, 스테치는 달튼을 쳐다보며 물어보았다.
“누군데 대체?”
“그냥 멍청이야. 성격이 쓰레기라 여러 사람들이랑 투닥거리긴 했어도 큰 사고는 안 치니까 그냥 놔뒀는데…….”
듣자 하니, 예전에 데릭과 다른 이가 싸우는 것을 달튼이 말리는 과정에서 데릭이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하는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인망도 낮았으니 사실 자업자득인 셈인데, 아마도 이번 사건은 그것의 앙갚음으로서 평소 달튼과 친하던 클라이드를 노린 듯했다.
사실 암시장이 얼마나 철저하게 굴러가는지를 생각해보면 정말 멍청한 짓이긴 하다.
“그, 그리고 한 가지 더 있어.”
클라이드가 말하자, 사람들의 시선이 다시 그에게로 집중되었다. 그는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스테치가 준 돈을 놈이 뺏어가면서 하는 말을 내가 똑똑히 들었거든. ‘그 새끼 친구 녀석도 신고해서 빵에 처넣지 않으면 분이 안 풀려.’라고…….”
스테치는 순간 피가 거꾸로 치솟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