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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화 작전 실패 (37/203)


37화 작전 실패
2021.11.07.


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제대로 쏜 화살조차 빗나가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렇다면 자신은 끊임없는 오차 수정과 보정으로 그것을 커버할 뿐이었다.

퓩!

보정 스킬이 중첩 적용된 화살이 다시 발사되었지만, 무언가에 가로막히기라도 한 마냥 스테치에게 닿기도 전에 꺾이는 화살. 하지만 레이먼드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차분히 다음 화살을 활대 위에 올려놓았다.

‘서둘러……!’

에머릭이 헐떡이며 속으로 외쳤다.

레이먼드의 화살은 날아가는 족족 스테치의 《크로스 윈드》 스킬에 막혀 엉뚱한 방향으로 비켜 나갔지만, 착실하게 정확도가 높아지고 있었다.

“으악!”

기어이 화살 하나가 뺨을 스치며 붉은 선혈을 남기고 지나가자, 스테치는 기겁했다.

단순히 열심히 화살을 쏴댄다고 해서 뚫을 수 있는 스킬이 아닐 텐데?

“방해하지, 마!”

다급해진 스테치는 《에어 버스트》가 끝끝내 축전 방패를 뚫지 못하고 사라지자, 두 검을 양손으로 꽉 다잡고선 소리 질렀다.

지금 여기서 최우선으로 해야 될 일은 아티팩트를 손에 넣는 것. 아귀를 쓰러뜨릴 만큼의 마력마저 전부 소모해 버린다면 뒷심이 빠져 죽도 밥도 안 될 것이었다.

한편, 아귀가 가운데 면상으로부터 뿜어대는 화염을 사이에 두고 각각 반대편에 선 엘레나와 밀러. 한 손에는 클럽을, 또 다른 한 손에는 어디서 가져왔는지도 모르는 시클을 꺼내 들고서 아귀는 천천히 그녀들을 향해 걸어갔다.

쾅!

클럽과 시클이 동시에 내리쳐지자, 엘레나는 뒤쪽으로 백덤블링을 하며 주문을 외웠다.

“《거스트 윈드》!”

갑자기 일어난 돌풍에 아귀의 화염이 밀려나, 그 건너편에 있던 밀러 쪽으로 밀려왔다. 밀러가 사복검을 올무처럼 꼬아 화염을 막아 내는 사이, 옆으로 빙 돌아온 엘레나가 그녀의 옆구리에 킥을 먹였다.

“윽!”

“내가 활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근접전에 약할 거라고 생각한 모양인데, 너무 안이한 판단 아닌가?”

엘레나는 그렇게 툭 내뱉으며 밀러의 복부에 연달아 왼손 잽을 꽂아 넣었다.

엘프들이 타고난 눈을 이용하여 활쏘기에 능한 것은 맞았지만, 엘레나는 그중에서도 최고라고 불린 스트라이더. 근접전투 훈련을 못 받았을 리가 없었다.

그러자 밀러는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서는 척 하더니, 사복검을 휘둘러 아귀의 목을 한 바퀴 휘감고선 맹수를 조련하듯 앞으로 잡아당겼다. 칼날 조각 하나하나가 목살을 파고들자, 피를 흘리며 고통스러워하던 아귀는 자기도 모르게 끌려가 불을 내뱉던 방향을 엘레나에게로 향했다.

“으…….”

엘레나가 화염의 범위 밖으로 벗어나려고 뒷걸음질 치는 순간, 밀러가 검을 다시 조작했다.

아귀의 목둘레에 앵커처럼 박힌 사복검이 다시 원래의 길이로 되돌아가는 과정에서, 검을 쥐고 있던 밀러가 아귀의 머리통 쪽으로 끌려 올라갔다.

휙!

그대로 아귀의 목을 한 바퀴 돌며 원심력을 만들어낸 밀러는, 붕 날아가 깔끔한 드롭킥을 엘레나의 흉곽에 먹였다.

“아악!”

밀러와 엘레나가 뒤엉키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남자면서 검과 방패까지 쓰는 에머릭보다도 밀러가 근접전에서 강하다고 평가받는 이유는, 바로 그녀의 예측 불가능한 검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입체 기동 능력 때문이었다.

엘레나가 제아무리 대인 격투에 능해도, 트리키한 전법까지 섞어 쓰는 밀러에게는 상성 상 맞지 않는 감이 없잖아 있었다.

“그어어억-.”

목에 난 상처를 벅벅 긁으며 짜증을 부리던 아귀는, 자신을 옭아매던 밀러에게 쥐고 있던 클럽을 냅다 집어던졌다. 제대로 노리고 던진 게 아니었던 터라 직격은 면했지만, 날아온 클럽이 지면을 박살 내며 크고 작은 바위 파편들이 튀어 올랐다.

파괴의 여파로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지는 엘레나와 밀러. 두 사람 모두 생채기는 우스운 수준이고, 전신이 어디 성한 곳이 없을 정도로 아파왔다.

그러나 조금도 쉴 틈을 줄 생각이 없는지, 널브러진 두 사람을 향해 터덜거리며 걸어온 아귀가 허리를 숙여 떨어져 있던 클럽을 집어 들었다.

다시금 화염을 토해 낼 생각인지 살짝 벌린 입 주변으로 불똥이 아른거렸다.

멀리에서도 확연하게 느껴지는 열기에 밀러와 엘레나는 눈을 번쩍 떴다.

엘레나가 활을 회수하려 들자 밀러는 그것을 저 멀리 걷어차 버렸다.

“어림도 없……?”

때마침 반짝이는 빛에 시선이 끌려 고개를 돌린 밀러는, 에머릭의 방패를 상대로 힘겨루기를 하는 와중에 다른 손으로 더 큰 주문을 준비하는 스테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왼손에 낀 반지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 빛과 번쩍이는 스파크는 그다지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빠르게 상황 판단을 마친 밀러는 사복검을 휘둘러 천장의 종유석 하나를 휘감은 뒤 날아올랐다.

“에머릭! 녀석을 밀어내!”

“하아!”

밀러의 외침에 에머릭은 기합을 한 번 내뱉더니 스테치를 온몸으로 힘차게 밀어붙였다.

체급 차에 의해 스테치가 질질 뒤로 밀려나자, 밀러는 아귀의 머리위에 착지한 채 길게 늘린 검을 말 재갈처럼 물리고선 강하게 잡아당겼다.

입꼬리가 강제로 잡아 당겨지는 고통에 아귀는 쥐고 있던 무기들을 모두 떨어뜨리고선 당황하여 양손을 휘적였다.

푸화아악!

고삐처럼 검을 이리저리 흔들어 아귀의 입을 스테치의 뒤통수로 조준시키자, 타이밍 좋게 아귀 입에서 기다란 불꽃 숨결이 쏟아졌다.

에머릭은 마지막으로 크게 그를 한 번 떨쳐 낸 뒤 방패를 내세워 열기에 대비했고, 스테치는 이를 악물었다.

‘《에어 버스트》!’

『《크로스 윈드》!』

눈부신 빛과 함께 작열하는 화염을 향하여, 스테치가 발동한 두 개의 스킬.

난기류의 공기 폭탄이 화염과 뒤섞이자, 역으로 불을 뿜는 쪽이었던 아귀에게로 그 여파가 전부 되돌아갔다.

바로 머리 위에 있던 밀러도 그것을 온전히 피해낼 수는 없었다.

“꺄아아악!”

비명과 함께 불덩이가 되어 땅으로 떨어지는 밀러. 폭발의 후폭풍을 《크로스 윈드》로 손쉽게 막아 낸 스테치는 모두가 당황하여 멈춰선 사이, 귀가 떨어져 나갈 정도의 큰소리로 엘레나에게 외쳤다.

“지금이야!”

일찌감치 활을 회수하여 상황을 지켜보던 엘레나는 미리 당겨두고 있던 활시위를 놓았다.

활대가 큰 폭으로 요동치며 쏘아 낸 화살은 다른 누구도 아닌 레이먼드를 노리고 날아가고 있었다.

“으헉!”

“레이먼드?!”

불을 피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레이먼드는, 아무런 대책 없이 엘레나의 일격으로 이마로부터 관자놀이까지 이어지는 긴 열상을 입었다.

울컥거리며 터져 나온 피에 왼쪽 눈이 물들여지기 시작하자 레이먼드로선 활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태론 조준은 커녕 눈을 뜰 수도 없다.

“으…… 아…….”

눈 깜짝할 사이에 뒤집힌 상황에 에머릭이 당황해하자, 레이먼드는 쥐어 짜내 힘겹게 입을 열었다.

“에머릭…… 밀러를…… 밀러를 구해!”

“무…… 뭐?”

멍청히 되묻는 에머릭에게 레이먼드는 평소 그답지 않게 호통쳤다.

“어서!”

구해라.

그 말을 채찍질 삼아 자기도 모르게 뛰쳐나간 에머릭은 축전 방패를 활활 타오르던 밀러에게로 내밀었다. 다행히도 아귀의 신통력으로 생성된 화염은 축전 방패에 서서히 빨려 들어갔고, 그 모습을 보던 스테치는 실린더를 꺼내 페네트레이터에 장전하며 아귀를 노려보았다.

지금 이 타이밍을 놓칠 수는 없었다.

“받아라……!”

아귀 자신은 화염의 영향을 받지 않았지만, 입을 구속하던 사복검을 풀어헤치느라 마침 여념이 없던 차였다. 스테치는 그 기회를 노려 꿇고 있던 녀석의 무릎을 박차고 높이 도약했다.

“?”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아귀의 목살을 무자비하게 페네트레이터가 파고들자, 격발 스위치를 누르는 스테치.

투콱!

고깃덩이를 망치로 후려갈기는 듯한 광경과 더불어, 충격으로 터져나간 살점들과 대가리가 후두둑-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흩뿌려졌다.

7m에 달하는 거체가 먼지로 화하여 허물어지는 모습은 장관이 따로 없었다.

“《커스 이팅》!”

아귀의 육편과 피 한 방울까지 전부 흡수한 스테치는 엘레나를 손짓으로 부른 뒤, 가까이 다가온 그녀에게 밀러 일행을 가리키며 조용히 말했다.

“난 지금 여기서 저 녀석들을 끝장내고 갈게. 넌 먼저 아티팩트가 있는 방을 확보하고 기다려.”

그 말에 엘레나가 고개를 돌리자 죽은 건지 산 건지 알 수 없는 수준으로 타다 남은 밀러의 신체, 그리고 그것을 수습하는 에머릭의 모습이 보였다.

엘레나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아티팩트를 회수하면 그 과정에서 던전이 저 자들을 알아서 처리해 줄 텐데.”

스테치는 엘레나의 의견을 단호히 일축했다.

“내가 이전에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너도 들었잖아? 그때의 제라드가 방심했기에 지금의 내가 살아 있는 거라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해서 후환을 남겨 두는 리스크를 감수하진 않겠어.”

스테치는 그렇게 말한 뒤, 검을 뽑아 들어 몇 번 허공에 휘둘러 보이며 천천히 에머릭에게로 다가갔다.

밀러를 태우던 그 끔찍한 불꽃은 거의 다 사라진 지 오래였으나, 이미 늦었던 모양인지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너희들이 자초한 일이다.”

자비심이라곤 일절 없는 목소리로 한 마디 툭 던진 스테치가 검을 치켜올린 뒤 내려치기 직전, 새까맣게 타들어 간 밀러의 손이 옆구리에 찬 주머니 속으로 쑥 들어가는 순간이 그의 눈으로 들어왔다.

“어?”

퍼엉!

밀러의 목을 베어 내자마자 그녀의 주머니가 크게 부풀어 오르더니, 메멘토 모템이 발하는 빛조차 덮어 버릴 정도의 짙고 검은 안개가 터져 나왔다.

“에머릭, 달려!”

어둠속에서 들려오는 레이먼드의 목소리.

그들의 눈은 스킬 《캣츠 아이》에 덕분에 어둠 속에서도 완벽한 시야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했지만, 스테치나 엘레나는 아니었다.

지속 시간이 짧고 일회성이라 도주용 수단으로 남겨두었던 연막탄을, 그들은 반격의 기회로 삼은 것이었다.

“아티팩트를 지켜! 놈들이 노리는 건 그거다!”

엘레나에게 소리 지르던 스테치는 황소처럼 돌진하는 에머릭에게 부딪혀 땅바닥을 나뒹굴었고, 레이먼드는 스테치를 끝장내기 위해 화살을 뽑아 활대에 올려두었다.

출혈이 심해 어지러울 지경이라 발을 뗄 수는 없었지만, 미약하게나마 에머릭을 보조하는 건 가능했다.

‘최적의 몸 상태는 아니지만 지금이라면……!’

퍼억!

레이먼드의 몸이 크게 흔들리더니, 이윽고 천천히 고꾸라졌다. 화살로 깔끔하게 관통당한 양 미간 사이의 구멍으로 피와 뇌수가 섞인 분홍빛 액체가 울컥울컥 흘러나왔다.

“…….”

엘레나는 활을 천천히 늘어뜨린 후 곧장 뒤돌아 아티팩트가 있는 방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연막이 터지기 전부터 같은 궁수인 레이먼드를 경계하고 있었던 엘레나는, 시야가 가려지자마자 주저 없이 화살을 발사했던 것이다.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던 레이먼드가 어떻게 되었을지는 확인해 보지 않아도 뻔한 일이었다.

“절대 빼앗기지 않겠다!”

불과 몇 미터 차이로 엘레나보다 앞서가고 있던 에머릭.

주어진 임무를 달성하기 위해, 동료들까지 모두 희생하고 달려가는 그의 모습은 짐짓 처절해 보이기까지 했다.

목표인 방의 문 너머로 밝게 빛나는 아티팩트가 보이기 시작할 때 즈음, 엘레나가 긴 심호흡을 들이키며 스킬을 발동했다.

《액티브 스킬 : 스트라이드.
보폭을 늘려 먼 거리를 빠른 속도로 주파할 수 있는 힘을 부여합니다.》

안 그래도 얼마 안 되는 거리 차가 쭉쭉 줄어들더니, 엘레나는 인간으로선 추월 불가능한 스피드로 에머릭을 제치고 순식간에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

“방해된다.”

엘레나는 그녀의 뒤에서 달리던 에머릭에게 짧게 깎아두었던 투척용 다트를 던졌다.

쿠당탕!

기습적인 엘레나의 공격에 발을 헛딛고 땅바닥을 구른 에머릭의 뒤에서, 메멘토 모템의 지시 덕택에 방향을 바로잡은 스테치가 검은 안개를 뚫고 모습을 드러냈다.

“아티팩트를 잡아! 바로 탈출한다!”

엘레나가 아티팩트로 손을 뻗는 한편 스테치는 품 안에서 스크롤을 꺼내 펼쳤다.

“개자식! 너만큼은!”

에머릭이 도저히 그 덩치에서 나왔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기민함을 발휘하여 방패를 앞세우고 돌진해오자, 스테치는 온몸을 날려 그것을 막아섰다.

‘포기하고 뒈져라, 좀!’

이런 상태에서 스크롤을 썼다간 상대와 함께 던전 밖으로 날아갈 가능성이 있었기에, 스테치는 바로 스크롤을 사용할 수 없었다.

쿠르릉-.

엘레나가 아티팩트를 붙잡은 탓에 던전 전체가 진동으로 흔들거리자, 스테치는 균형을 잃고 주춤거리는 에머릭의 방패를 있는 힘껏 걷어찼다.

“나이스!”

일단 던전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 이상 탈출을 지체할 수는 없는 일.

가드가 풀린 에머릭을 향해 왼손을 내밀고, 오른손과 이빨로는 스크롤을 찢으며 뒤에 서 있던 엘레나에게 몸을 날린 스테치는 메멘토 모템에게 말했다.

‘쏴!’

『《파이어볼》!』

화염구를 직격으로 얻어맞아 고통으로 몸을 비트는 에머릭을 뒤로 하고서, 스테치와 엘레나는 탈출 스크롤의 효과에 의하여 허공 속으로 소용돌이치며 사라졌다.

“젠자아아앙!”

에머릭의 절규가 무너져 내리는 던전의 굉음과 함께 묻혀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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