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센티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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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화 센티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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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화 센티그마
2021.11.09.
스테치와 엘레나는 마차에서 일어나며 감각을 유린하는 듯한 악취에 코를 비틀어 잡았다.
눈을 부시게 했던 빛은 상인이 들고 있던 랜턴에서 나오고 있었는데, 그렇다면 냄새는 어디서부터 나오고 있단 말인가?
“여기는…….”
스테치가 주변을 둘러보자 거센 물소리를 내며 흘러가는 폐수가 눈에 띄었다.
벽돌과 석회를 사용하여 깔끔하게 정돈된 이 하수도 시설은, 외견과 어울리지 않게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역겨운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이것부터 써라.”
상인이 주는 마스크를 뒤집어 쓴 스테치와 엘레나.
숨을 쉬기 한층 편해지긴 했지만,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스테치에게 상인은 말했다.
“이 냄새? 채굴생산수 때문이야. 설마 라크샤 산맥에서 광석만 나온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이 하수도를 통해서 갱도에서 나온 온갖 가스랑 오일 찌꺼기가 뒤섞여 내려간다고. 당연히 악취가 나지.”
상인은 랜턴을 흔들거리며 하수로를 따라 길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마차를 놔두고 걷기 시작한 지 몇 분 지나자, 틈새로 빛이 새어 나오는 거대한 나무문 하나가 하수도 내벽에 붙여져 있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가기 꺼려하는 위치야말로 블랙 마켓을 차려놓기엔 최적이지 않겠어?”
상인이 문을 열자, 상쾌한 공기가 바람처럼 흘러나와 스테치와 엘레나를 반겨주었다.
하수도의 역하고 습한 공기와는 다르게, 문을 열자 나타난 술집은 건조하고 시원했다.
오염된 폐수가 흐르는 곳 바로 옆에 술집이 있다는 점에서 스테치는 왠지 모를 위화감을 느끼며, 상인에게 감사를 표한 뒤 안으로 들어섰다.
“휴, 좀 낫네.”
마스크를 벗은 스테치가 바텐더 앞 테이블에 앉자, 엘레나도 총총거리며 걸어와 그 옆에 따라 앉았다.
한편 몇 번이나 썼는지 거뭇거뭇 때가 탄 낡은 헝겊으로 파인트를 닦던 드워프, 그리고 다른 테이블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모두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의 등장에 미심쩍다는 듯한 눈초리를 쏘아 보냈다.
“어…….”
“못 보던 얼굴이네.”
드워프가 툭 내뱉으며 닦던 파인트에 거품이 이는 맥주를 가득 담아 건넸다.
머리카락을 깔끔하게 밀어낸 두부를 가로질러 새겨진 거대한 흉터, 드워프인 걸 감안하더라도 굵직한 팔근육 등 꽤나 연륜 있으면서도 위압적인 사람이었다.
초면부터 밉보이고 싶지는 않았지만, 건네준 음료가 영 마시기 꺼림칙했던 스테치는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드워프에게 말했다.
“아, 그게…… 혹시 달튼에게서 온 편지가 없었나요? 저에 대한 내용이 언급되어 있을 텐데…….”
“네가 누군데?”
“스테치 아텔리어라고 합니다.”
스테치의 말에 잠시 가만히 생각하던 그 드워프는, 찬장을 뒤적이며 무언가를 찾더니 종이 하나를 꺼내서 그것을 살펴보았다.
어느 샌가 입에 물린 담뱃대를 잘근거리던 그는 눈알만 굴려 시선을 손에 든 종이와 스테치로 번갈아 옮기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흠. 일단 마셔라.”
결국, 마셔야 되는 건가!
스테치는 속으로 구역질을 하며 마지못해 맥주를 살짝 입에 머금었으나, 파인트의 위생 상태와는 별개로 생각보다 괜찮은 맛에 놀라워하며 잔을 내려두었다.
“그래, 네가 그 스테치라는 놈이로군. 내 이름은 발타자르다. 평소라면 환대를 해 주겠지만 하필이면 정말 좋지 못한 타이밍에 오고 말았군 그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스테치가 묻자, 발타자르가 말했다.
“안 그래도 채굴 작업이 한창인 와중에 갱도 주변에서 몬스터 출몰 사고가 늘어나기 시작했거든. 덕분에 주변 마을이나 도시에 있던 주둔군들이 토벌을 위해 모여들기 시작했어. 지상에 나가볼 생각은 당분간 하지도 않는 편이 좋을 거다.”
달튼의 편지를 통해 스테치가 모종의 이유로 신분을 감추려 한다는 것을 파악한 발타자르가 말했고, 과연 그 말을 듣자마자 스테치는 똥 씹은 표정이 되었다.
“거참 구리네요. 왜 요즘은 하는 일마다 이렇게 운이 안 따라주는지 원…….”
“무슨 볼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조심해라. 지난주엔 여기서 영업하던 연금술사 하나가 위쪽을 거닐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잡혀갔다고.”
일반적으로 왕국은 왕가에서 인가하지 않은 마법사나 연금술사들의 활동을 엄격히 규제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걸 알면서도 많은 이들이 여전히 블랙 마켓에서의 장사를 선호했는데, 왕가에 속하게 되는 즉시 거의 모든 수입 활동이나 움직임에 큰 제약이 걸리기 때문이었다.
발타자르가 거듭 강조하는 것을 보면, 확실히 마을 전체의 경계도가 비정상적으로 올라간 것이 분명해 보였다.
“걱정 마세요. 이쪽도 오래 머무르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까요. 블랙마켓 소속의 대장장이나 연금술사들은 이곳엔 언제 오죠?”
그 말에 발타자르는 얼굴을 손으로 덮으며 중얼거렸다.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한 것 같구나, 꼬맹아.”
“예?”
“센티그마는 대륙 내에서도 손에 꼽히는 수의 광산과 작업장을 두고 있는 도시다. 예전이라면 몰라도, 이제 이곳의 대장장이나 연금술사들은 전부 하루에도 몇 백 개씩 밀려오는 채굴 장비들의 수리나 시약 주문에 차여 산다고.”
“……아.”
그제서야 스테치는 발타자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눈치챘다.
모든 대장장이나 연금술사들이 상시 풀 동원되고 있는 이 도시에서, 한가롭게 스테치의 맞춤 제작이나 수리 주문을 따로 받아줄 이는 거의 없다는 뜻이었다.
“자, 잠깐만요. 그럼 제가 여기서 구할 수 있는 물건은 대체 뭐죠? 여기 계신 분들은 지금 다들 뭘 팔고 계신 거예요?”
“빼돌린 폭약이나 동굴 탐험용 장비들.”
태연한 발타자르의 말투에 스테치는 속이 뒤집어지는 감각과 함께 테이블 위에 털썩 엎어졌다.
상황이 스테치가 알고 듣던 때랑 이렇게나 뒤바뀌어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봐, 원래대로라면 대장장이들도 당연히 돈 안 되는 대량 발주보다 커스텀 장비 제작 여러 건 해치우고 싶겠지. 하지만 지금 같은 때엔 싫어도 조용히 몸 사리고 시키는 일만 해야 되는 상황이란 말이야.”
“이해는 하는데 저도 상황이…… 돈은 최대한 쳐 줄 테니 적당한 업자들 좀 소개시켜 주실 순 없나요?”
현재 스테치에게 필요한 것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페네트레이터를 통해 소모해 버린 가스 실린더의 재보급, 그리고 또 하나는 밀러 일행과의 전투로 인해서 너덜너덜해진 방어구를 새것으로 교체하는 것. 어느 쪽이건 간에 당장 대장장이나 연금술사의 도움이 절실했다.
발타자르는 새 글라스들을 꺼내며 말했다.
“수배는 해 보겠다만 크게 기대는 하지 말아라. 어쩌면 이런 상황을 틈타서 돈 이상의 터무니없는 무언가를 요구해오는 놈이 있을지도 몰라.”
* * *
아니나 다를까, 발타자르의 말은 현실로 드러났다.
하수도 옆 지하 숙박 시설 치고는 훌륭했던 침대 덕분에, 야영으로 누적된 피로를 한껏 푼 스테치가 늘어지는 하품과 함께 발타자르의 술집을 다시 방문하던 때였다.
“잠은 잘 자셨나요?”
이른 아침인데도 흐트러지는 일 없이 깔끔한 차림으로 먼저 일어난 엘레나는, 테이블에 앉아 잔의 물을 홀짝이며 기다리고 있다 스테치를 반겼다.
주문을 받는 여급은 음료도 시키지 않고 줄창 물만 마시는 엘레나가 영 아니꼬운 듯 옆에 서서 콧방귀를 뀌고 있었다.
“응…… 일찍 일어났네.”
“이봐, 아텔리어! 좋은 소식이 있다.”
바 테이블에서 술을 따라주던 어제와는 달리 술집 구석의 원형 탁자에 앉아 스테치를 부르는 발타자르. 잠이 덜 깬 스테치가 비틀거리며 다가서자, 다른 테이블에 앉아 있던 두 사람이 일어서더니 그들과 동석했다.
반면 엘레나는 자리에 그대로 앉아 곁눈질로 그들을 훔쳐보았다.
“바쁜 와중임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씩이나 널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나중에 술 한 잔씩 사드려라.”
“감사합니다…….”
스테치의 말에 두 사람은 뒤집어쓰고 있던 후드를 벗었다.
대장장이 쪽은 근육질의 여성, 연금술사 쪽은 놀랍게도 남성 드워프였다.
생각지도 못한 조합에 스테치가 눈썹 끝을 치켜세우자, 연금술사 측이 먼저 헛기침과 함께 말을 꺼냈다.
“반갑군. 난 캐스퍼, 이쪽은 레티라고 하네.”
“스테치 아텔리어입니다.”
“……그래, 아텔리어. 이미 들었겠지만 지금 이쪽 상황은 최악이야. 수많은 업자들이 밀린 주문을 처리하느라 밤낮없이 일하는 중이고, 병사들이 몰려든 탓에 암시장도 분위기가 상당히 위축된 상태지. 그래도 누군가는 이쪽 일도 처리를 해 줘야 시장 경제가 돌아가는 법 아니겠나?”
캐스퍼의 말에 스테치가 발타자르의 표정을 살피자, 그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눈앞의 두 사람이 나타난 데에는 그의 뒷배도 어느 정도 작용한 모양이었다.
“일단 무엇이 필요한지 말해 보게. 나머지는 들어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으니.”
“네. 일단…… 이걸 봐주세요.”
스테치는 클라이드가 적어준 가스 배합식을 캐스퍼에게 넘겼다.
그가 코를 긁적이며 그것을 확인하는 사이 스테치가 소드 벨트에 걸어둔 페네트레이터를 테이블 위로 올려두자, 레티와 캐스퍼 모두 시선이 그쪽으로 쏠렸다.
“이건 검인가? 난생 처음 보는 물건인데.”
“제 친구가 만들어준 검입니다.”
페네트레이터의 작동 원리와 특징에 대한 스테치의 설명을 듣던 레티는 감탄스러운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 수준의 기계 장치를 겸한 검을 만드는 것이 보통 재능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세밀한 부품이 가미될수록 검 자체의 내구도는 필연적으로 떨어지거든. 그런데도 이 정도의 튼튼함을 유지하고 있을 줄이야…….”
“가스 폭발력을 검에 응용할 생각을 하다니, 나로서는 상상조차 못했다네.”
클라이드가 그렇게 굉장한 놈이었나? 연금술사인 캐스퍼도 놀라워하는 모습에 스테치는 살짝 어리둥절했지만, 일단은 수긍했다.
한참 동안 무기를 살피던 캐스퍼와 레티에게, 스테치는 말했다.
“일단 첫 번째로, 이 무기에 사용될 배합 가스가 필요합니다. 제가 아는 게 맞다면 센티그마는 이것의 원료가 되는 온갖 천연 가스가 매장되어 있을 텐데요.”
스테치의 말을 듣고도 한참을 고민하던 캐스퍼는 잠시 배합식을 바라보더니, 검을 스테치에게로 밀어내며 말했다.
“조건은 아니고, 제안이 있네.”
“네, 부디.”
캐스퍼는 종이를 꺼내 빠른 속도로 스테치가 알지 못하는 공식을 끄적이며 설명을 시작했다.
“지금 자네가 봉착한 문제는 바로 이걸세. 센티그마에서 나오는 모든 자원은 채굴 사업에 참여중인 남부 왕국들의 엄격한 통제를 받는다는 것이지.”
철광석 등의 주요 광물이나 가스는 왕국을 운영하는 데에 있어 식량만큼이나 중요한 자원이다.
고로 누군가 빼돌릴 여지를 남기지 않도록 엄중히 관리하는 것이 당연했다.
즉, 원재료가 가장 많이 나오는 곳에서 그 원재료를 이용한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여기서부터가 본론인데, 나는 개인적으로 이번 기회에 이 무기에 사용되는 연소재를 화약식으로 바꿀 것을 추천하네.”
캐스퍼가 말했다.
“배합 가스를 쓰는 것도 좋긴 하지만, 재료가 워낙 희귀한 데다 지금과 같은 무기의 작동 방식엔 어울리지 않는 부분이 있네. 자네도 그걸 느끼지 않았나?”
그의 질문에 스테치도 어느 정도는 동의를 표했다. 다른 건 몰라도 실린더에 채워 넣을 가스는 희소성이 너무 높아 구하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화약식으로 바꾸면 가스 방식보다 더 강력한 위력을 내면서, 지금의 실린더보다 사이즈가 작은 연소재를 많이 들고 다닐 수 있지. 게다가 화약은 암시장에서도 쉽게 흘러들어오는 물건이니 보급도 훨씬 쉬워지지 않겠는가?”
“얘기만 들어보면 꽤나 좋아 보이는데요.”
“다만 이 경우, 화약 성분을 제공하는 나 이외에도 무기 자체를 개조하는 레티의 도움이 동반되어야 하네. 따라서 가격이 따로 들어가지.”
돈 문제라서 그런가 캐스퍼의 말투는 상당히 조심스러웠다. 혹여라도 상대가 역정을 부릴까 걱정이 되는 눈치였으나, 정작 스테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어차피 돈은 많이 모아두었으니까요. 그리고 두 번째 의뢰는 이겁니다.”
스테치는 엘레나를 불러 그녀를 옆에 세우고는 말했다.
“저와 제 동료가 착용하던 방어구가 손상되었는데…… 이참에 눈에 잘 띄지 않고, 움직임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내구력도 보장되는 새로운 방어구를 제작해 주었으면 합니다.”
이 문제는 전적으로 레티가 처리해 줘야 할 문제였기에, 스테치와 엘레나는 그녀의 대답에 귀를 기울였다.
“캐스퍼 아저씨가 말씀한 거 잘 알아들었지? 대부분의 원자재는 용도가 확실히 정해진 탓에 우리들 마음대로 반출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
레티가 말했다.
“제시해온 요구에 걸맞는 방어구는 가죽으로 된 방어구겠지. 만약 너희들이 용도가 할당되지 않은 전혀 새로운 재료를 독자적으로 구해온다면, 이쪽도 작업하는 데에 전혀 문제가 없어.”
스테치와 엘레나는 동시에 서로를 돌아보았다.
“어, 그러니까 그 말은…….”
“재주껏 가죽을 구해와 봐. 자는 시간을 쪼개서라도 만들어 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