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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화 만티코어 (41/203)


41화 만티코어
2021.11.11.


‘냄새가 아주…… 《크로스 윈드》!’

선두의 스테치가 스킬의 풍압으로 조금이나마 폐수를 밀어낸 덕분에, 뒤따라가는 엘레나는 조금이나마 편하게 수로를 거슬러 올라갈 수 있었다.

어둡고 축축한 데다 냄새까지 역한 좁은 통로를 메멘토 모템의 빛 하나에 의존하여 기어 올라간 스테치와 엘레나는, 무려 한 시간이 지나서야 간신히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물 거름망을 걷어차며 갱도 안에 들어선 스테치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거뭇거뭇해진 옷가지 끝을 쥐어짰다.

도중에 길을 헤매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조금만 더 이동 중에 시간이 걸렸다면 도착도 하기 전에 둘 다 탈진했을 것이다.

반지로 불을 밝히고 주변을 살피자, 지난 사고 이후로 남아 있던 흔적들이 고스란히 스테치의 시야 안으로 들어왔다.

사방에 떨어진 채 나뒹굴고 있는 채굴 장비들부터, 신체 어디에서부터 떨어져 나왔는지도 모를 육편과 핏덩이까지. 그 괴물 녀석이 좁은 갱도 안에서 어찌나 난장판을 부렸는지, 광산 통로를 지지하던 빔이 거의 부서져 흔들거릴 지경이었다.

‘이런.’

스테치는 황급히 반지를 오른손으로 덮어 빛을 완전히 꺼 버렸다. 만티코어가 이 어둠속 어딘가에 숨어 있을지도 모르는데, 멍청하게 불을 밝히다니. 그는 엘레나가 있는 방향으로 소곤거렸다.

“불은 켜지 않을 생각인데, 너는 괜찮아?”

“엘프들의 눈이 뛰어나긴 해도 어둠을 꿰뚫어볼 수 있는 건 아니라서요. 손을 건네주시겠어요?”

스테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허공을 몇 번 더듬다 엘레나의 손을 붙잡는 데에 성공했다.

“《애니멀 인스팅트》.”

감각이 강화된 비강으로 비릿한 피냄새가 흘러들어오자 스테치는 자기도 모르게 얼굴을 찡그렸다.

스킬을 발동하고서야 눈치챈 사실이지만, 공기 중에 섞여 있는 냄새는 단순한 광산 폐수의 것만이 아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시큼한 냄새부터, 터진 내장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위액에 이르기까지 온갖 것들이…….

“웁…….”

스테치는 목구멍 너머까지 넘어오려던 것을 간신히 진정시키며 어둠속을 천천히 걸어갔다.

악취가 난다는 사실 자체보다, 자신이 그 냄새들을 분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구역질이 났다. 또한 무엇보다도, 이 만티코어가 벌여 놓은 난장판은 인간으로서 차마 무시하고 넘어가기가 힘든 수준이었다.

『참아.』

메멘토 모템이 말했다.

『만티코어는 몬스터 중에서도 극단적으로 식인을 즐기는 놈들이야. 이 정도 수준이면 그네들 입장에선 소식(小食)한 거라고.』

‘알아, 나도 알아. 그냥…… 가축의 입장에서 보는 인간이란 이런 느낌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야.’

애써 토하려던 것을 참고, 본격적으로 탐색에 나선 스테치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발자국을 찾는 것이었다.

만티코어같이 거대한 녀석이 발자국을 남기지 않을 리가 없었으니, 그는 조심조심 바닥을 손끝으로 훑어보았다.

도망치던 사람들의 발자국이 뒤섞여 있긴 했지만, 스테치는 그것을 구분해낼 감각이 있었다.

‘발바닥 패드 형태로 짓눌려 굳은 흙바닥…… 규칙적으로 난 네 개의 발자국…… 이거로군. 발자국 방향이 한 쪽으로만 향해 있는 것을 보니 이 통로를 지나간 지는 꽤 된 모양이야.’

“적어도 이 주변은 안전한 것 같아. 다시 불을 켤게.”

이동 경로를 알아낸 스테치는 마치 스스로가 동물이라도 된 마냥, 상반신을 코가 땅에 닿을 정도로 낮추고선 기어갔다.

봐주기에 좋은 꼴은 아니었지만, 흔적에 남아 있는 희미한 체취가 추적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었다.

『이야, X새끼네 이거?』

‘닥쳐 좀.’

거의 외길에 가까운 터널을 이동하며 만티코어가 남긴 족적을 뒤쫓던 그와 엘레나는 바닥에 떨어져 있던 손을 발견했다.

피와 알 수 없는 액체로 뒤덮인 채 반쯤 뼈가 드러난 그 손에는 반지 하나가 끼워져 있었고, 엘레나는 그것을 천천히 뽑아 주머니 안에 집어넣고선 말했다.

“이게 다는 아닐 거예요. 계속 찾아봅시다.”

“설마 그 많은 유품들이 만티코어의 뱃속으로 고스란히 들어간 건 아니겠지? 전부 소화돼서 없어진 것만 아니라면 좋겠는데…….”

몬스터 위장까지 헤집어야 하나 하는 생각에 심란한 마음으로 앞으로 나아가던 스테치는, 좁은 통로가 갑자기 확 넓어지자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보았다.

지지대가 필요 없을 정도로 높아진 천장과 넓직한 공간, 그리고 현 장소로부터 여러 갈래로 이어진 수많은 다른 통로들.

“흐읍-.”

스테치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만티코어의 발자국은 보이는 온갖 곳에 죄다 찍혀 있었지만, 체취만큼은 달랐다.

진하게 농축된 만티코어의 냄새는 개미의 페로몬처럼 길을 이루어, 녀석이 오가는 데에 자주 사용했던 루트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위로 올라가야겠어.”

스테치는 바닥에 떨어진 작은 곡괭이를 집어 벽에 강하게 박아 넣은 뒤, 만티코어의 이동경로를 따라 등반을 시작했고, 엘레나도 그를 뒤따라 올라갔다.

‘말해 봐.’

『응?』

‘만티코어말야. 난 만티코어에 대해 어느 정도 들은 바가 있을 뿐이지, 실제로 어떤 놈인지는 잘 모르니까. 뭔가 조언이라도 있냐? 넌 나보다 그런 쪽에 빠삭하잖아.’

스테치의 질문에 메멘토 모템은 입을 열었다.

『……만티코어의 피부는 워낙 두텁고 질긴 탓에 어지간한 날붙이는 통하지도 않고, 마법에도 100퍼센트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내성이 있지.』

스테치가 알고 있는 만티코어의 위상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지금은 거의 멸종 취급당하는 드래곤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그래도 드레이크나 린드블룸 등의 유사 드래곤형 몬스터와 비견될 정도로 강력한 몬스터 중 하나였다.

꼬리의 독침은 강철판도 뚫어 버릴 정도의 위력을 지니고 있다고 하니, 그야말로 창과 방패를 한 몸에 품은 괴물이었다.

문제는 그 개체 수가 너무 적은 탓에 출현 빈도도 낮은 데다, 알려진 정보라곤 거의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만티코어만 출현했다 하면 퇴치 기록은 근 200년 동안 꼴랑 세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에, 무수한 사상자만 남겨놓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테치가 이 위험천만한 몬스터를 잡으러 굳이 온 이유는, 단순히 소재가 탐난 것보다도 환상종이나 다름없는 만티코어를 직접 보고 싶은 욕망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성장한 그의 능력이 이 괴물을 상대로는 어디까지 먹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물론 녀석이라고 약점이 없는 건 아니야. 예를 들어 만티코어 날개의 피막과 어깻죽지 부분은 가장 구조가 얇고 빈약해서, 다른 부위에 비해 물리 공격이 아주 잘 들거든.』

‘참고하지.’

콱!

능숙하게 곡괭이를 찍어가며 수직암벽을 끝까지 등반해 올라간 스테치는, 엘레나를 잡아 끌어올려준 뒤 흘러내리는 땀을 훔쳐내곤 다시 이어지는 흔적을 따라 이동했다.

“저게 뭐죠?”

“나, 나도 모르겠는데.”

기묘한 구조물이다, 라는 것이 스테치의 첫인상이었다.

광산 내부에 뚫려 있는 길이라기엔 너무나도 이질적으로 거대하게 난 통로. 곡괭이와 손수레, 또 작업원들이 쓰는 보호구에 이르기까지, 광산 내부에서라면 얼마든지 볼 수 있는 도구들이 죄다 모여 그 통로의 입구를 장식하고 있었다.

간간이 그 틈새로 끼어 있는 시체의 파편들만 아니었다면, 그저 그런 잡동사니들의 집합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만티코어가 만든 걸까요?”

“음.”

‘역시 이건 만티코어가 한 짓이겠지? 딱히 이 주변에 이딴 걸 만들어 놓을 다른 몬스터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겠지. 하지만 왜…….』

어쩐지 석연찮아 하는 말투에 스테치가 의문을 표하자, 저 멀리 통로의 안쪽으로부터 소름 끼칠 정도의 기괴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귓구멍을 날카로운 칼로 후벼 파는 듯한 특유의 찢어지는 소리는 멀리서 듣고 있던 스테치와 엘레나조차 소름이 돋게 만들었다.

『이쪽을 눈치챘군. 네가 자기 영역 안으로 깊숙이 들어오는 걸 기다리고 있는 거야.』

“젠장.”

스테치는 벌벌 떨리기 시작한 한쪽 팔을 움켜쥐며 심호흡을 했다.

던전 탐험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으로서 어둠을 두려워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 그러나 지금은 미지의 괴물을 상대한다는 공포에 휩싸인 나머지, 완전 초짜였던 시절로 되돌아간 것 같은 기분까지 들었다.

“할머니께서 시켰던 ‘공포의 8시간’ 수련 때도 이것보단 덜 했는데요…….”

분위기를 환기시키려는 듯 엘레나가 중얼거렸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감각이 인간보다 예민한 탓인지, 엘레나는 말하는 것과는 달리 동공이 미묘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아냐!”

쾅!

스테치가 시커멓게 입을 벌리고 있는 통로 안을 노려보며 벽면을 맨주먹으로 후려치자, 엘레나도 퍼뜩 정신을 차렸다.

이건 시련이다. 보다 철저하고 완벽한 자신으로 탈바꿈하기 위하여 스스로에게 내린 시련.

복수를 명목으로 사실상 왕국 전체에게 싸움을 건 주제에, 잠시나마 두려움에 떨었다는 점이 부끄러워질 지경이었다.

『팔이나 다리 한 짝이 날아가도, 싸우다 죽더라도 넌 내가 살려내잖아. 만티코어 같은 놈한테 질 리가 있겠냐?』

메멘토 모템의 말까지 듣자, 초조함이 옅어지고 머릿속이 차갑게 식어갔다.

“걱정하지 마, 엘레나. 여기서 죽는 일 따윈 내 계획에 없으니까.”

어차피 상대도 자신이 오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면, 이 이상 모습을 감추는 건 무의미. 그렇게 판단한 스테치는 반지의 빛을 강하게 뿜어냈다.

칠흑같은 어둠이 조금이나마 걷히자, 그 아래로 무언가가 질질 끌려가면서 남긴 것 같은 핏자국이 통로 안쪽까지 이어져 있었다. 만티코어의 지능이 얼마나 뛰어난지는 알 수 없었지만, 스테치는 괜히 방심하다 당할 생각은 없었다.

‘누가 이기나 한 번 해 보자.’

스테치는 벨트에 달린 포켓 중 하나에 손을 집어넣어 와이어를 길게 뽑아내, 통로 입구 쪽 테두리 장식물을 지탱하는 두 개의 축에 각각 묶어 두었다.

이것으로 녀석의 죽일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발을 묶을 수는 있을 것이다.

트랩을 설치한 스테치는 엘레나에게 말했다.

“엘레나, 녀석을 이쪽으로 유인해야겠어. 미리 이 근처에서 포인트를 잡고 있다가, 때가 되면 엄호해 줘.”

“……알겠습니다. 조심하세요.”

그녀가 보유한 위협 감지 스킬 《디텍트 호스틸리티》로도 만티코어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대상이 공격하기 직전의 순간이 아닐 경우, 그리고 자신과 대상의 무력 차이가 심할수록 탐지가 어려워지기 때문이었다.

스테치를 혼자 보내는 것이 불안하긴 했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여 보인 그녀는, 만티코어 소굴의 입구로부터 멀리 떨어진 수레차 하나를 벽처럼 세운 후 그 뒤에 엄폐했다.

와이어가 설치된 입구를 지나 통로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스테치. 이전의 길들이 복잡하게 이리저리 꺾였던 것과는 달리 일직선으로 곧게 뻗어진 3m 높이의 통로가 계속 이어졌다.

“어디냐…….”

주위에 대한 경계도를 한계까지 끌어올린 스테치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망고슈를 천천히 뽑아들었다. 개조를 위하여 페네트레이터를 공방에 넘긴 탓에 무기가 없었던 그는, 최소한의 방어를 위해 엘레나로부터 그것을 빌려온 것이었다.

우웅-.

아티팩트 ‘바라크’를 찬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자, 망고슈의 칼날 위로 얇은 전기의 막이 씌워지기 시작했다.

손에 쥘 수 있는 무기라면 가리지 않고 마법 능력을 부여해 주는 바라크의 능력이 있다면, 만티코어와의 접전에서도 어느 정도 견뎌 낼 수 있을 터였다.

『저게 뭐지?』

“어?”

채굴 작업을 위해 정돈되어 있던 일반적인 길과는 달리, 통로는 무언가가 직접 파헤쳐 뚫은 듯한 거친 느낌이 엿보였다.

결국, 그 끝에 도달할 때까지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 스테치는, 메멘토 모템의 말에 시선을 집중했다.

통로를 지나 도달한 장소는 직경 5m 쯤 되는 구체 형태의 공간. 온갖 광산 폐품을 긁어모아 만들어진 작은 탑 모양의 구조물 위로, 타원형의 무언가가 위치해 있었다.

“설마 했는데 저거 알이야?”

『진짜네. 만티코어가 알을 낳을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해지려면 최소한 50년은 나이를 먹어야 하는데…… 운 좋은 줄 알아라.』

순간 긴장감이라곤 온데간데없이, 스테치는 자기도 모르게 알의 값어치를 가늠하고 있었다. 정해진 가격이 없더라도 일단 가지고 나가는 데에만 성공한다면 큰돈을 벌 수 있으리라.

‘병이다 병이야…….’

직업병에 가까운 자신의 사고방식에 스스로 어처구니없어하며 스테치는 고개를 휘휘 젓다가, 무심코 천장을 바라보았다.

“?”

광산의 암벽이라고 생각했던 돌출물이, 천천히 양쪽으로 갈라졌다.

천막 같은 무언가가 펼쳐지며 드러난 것은, 사자의 머리통에 기괴한 입꼬리를 한 네 발의 괴물이 천장에 매달려 스테치를 내려다보는 모습이었다.

“어…….”

멍하니 바라보는 스테치의 시야 전체를, 코앞까지 다가온 만티코어의 벌려진 주둥이가 가득 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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