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불안감
(42/203)
42화 불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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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화 불안감
2021.11.12.
《오토매틱 리플렉스》에 의해 가속된 인지능력을 십분 발휘하여, 스테치는 재빨리 머리를 뒤로 뺐다.
텁!
허공을 깨물은 만티코어의 머리통 뒤에서, 2차 공격인 꼬리 독침이 스테치의 흉곽을 노리며 찌르고 들어왔다.
역수로 쥔 망고슈의 칼등으로 흘려보낸 독침이 벽에 박히자, 그 끝에서부터 끈적하고 독특한 냄새를 풍기는 산성액이 흘러나오며 메멘토 모템의 빛으로 반짝였다.
소중한 알을 미끼로 써가면서까지 상대를 유인하다니.
날개로 몸을 가렸던 은신 능력과 목표물을 꿰어 내는 능력까지, 천장을 보는 것이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안면이 통째로 뜯겨져 나갔을 것이다.
『만티코어는 알도 단단해. 녀석은 어지간한 수단으론 자기 알에 흠집 하나 못 낼 거란 사실을 알고 있었던 거야.』
기습이 실패하자 더 이상 모습을 감출 생각도 없는 모양인지, 만티코어는 낮게 으르렁거리며 천장으로부터 내려와 스테치의 앞에 우뚝 내려섰다.
넓적한 두 장의 날개를 몸에 바짝 접어 붙인 채로 다가오는 녀석의 모습에, 스테치는 방어 자세를 취하고선 슬금슬금 물러섰다.
‘큰일이네.’
스테치는 빠른 속도로 머리를 굴려 당장 눈에 보이는 만티코어의 공격 수단을 나열해 보았다.
‘꼬리 독침, 산성액, 입, 면도날 같은 앞발톱. 일직선 통로인 이 장소에서 저것들을 전부 상대하기엔 너무 불리해. 그렇다면…….’
“어디 한 번 따라와 봐라!”
스테치가 일부러 소리를 지르며 만티코어의 반대편으로 뛰어가자, 녀석은 크게 한번 울부짖더니 그런 그를 추격해왔다.
인간의 움직임이 아무리 빨라 봤자 전속력으로 달리는 만티코어를 이겨 먹을 수는 없을 테니, 스테치는 조금이나마 녀석의 주의를 분산시키기 위해 가능한 모든 스킬을 난사했다.
“《아크》! 《파이어볼》! 으아아악?!”
『조심해!』
자신이 날린 스파크와 불덩어리 틈새를 비집고 날아온 독침이 뺨과 귓불 부근을 아슬아슬하게 스쳐지나가자, 스테치는 비명을 내질렀다.
저 전갈 같은 꼬리 끝에 달린 독침은 발사도 되는 것인가?
날붙이에 비해 마법에 대한 내성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메멘토 모템의 말에 따라 닥치는 대로 마법을 날려 보았지만, 중갑보병처럼 꿋꿋하게 다 맞아가면서 돌진해오는 만티코어의 모습에 스테치는 내심 혀를 찼다.
『계속해! 쌓여가는 데미지를 언제까지고 무시할 순 없을걸!』
도망치던 스테치가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주문을 준비하려 들자, 뒤에서 맹렬히 쫓아오던 만티코어가 등짝 너머로부터 독침 꼬리를 찔러왔다.
콰캉!
달리던 속도를 유지한 채 공중으로 살짝 뛰어올라, 상반신을 비틀어 독침을 받아치는 스테치.
금속으로 금속을 두들기는 것 같은 충격에, 바닥에 착지한 스테치는 욱신거리는 손을 털어대며 다시 움직였다.
무기를 미리 인챈트 해 두지 않았더라면 망고슈는 물론이고 그걸 쥐고 있던 손까지 같이 녹아 버렸으리라.
“놈이 나왔다! 지금이야!”
피융!
신호를 보내자마자 스테치의 뺨을 지나 날아가는 화살이 만티코어의 양 미간 사이에 적중하곤 부러졌다. 어차피 화살 하나로 죽일 수 있을 거란 기대는 하지도 않았는지, 엘레나는 조그맣게 한숨을 내쉬고선 빠른 속도로 다음 화살을 발사했다.
그 사이 녀석의 둥지에서 완전히 빠져나온 스테치는, 미리 설치해 둔 와이어를 훌쩍 뛰어넘으며 바닥을 미끄러졌다.
쉴 새 없이 날아오는 화살비에 정신이 팔린 만티코어가 감속 없이 그대로 둥지 안에서 밖을 향해 뛰쳐나오는 순간, 입구 장식물의 지지축과 연결되어 있던 와이어가 팽팽하게 당겨지며 녀석의 살가죽을 깊숙이 파고들었다.
와이어와 연결된 축이 뽑히자 잡동사니로 이루어진 장식물은 고스란히 만티코어의 몸뚱이 위로 쏟아져 내렸고, 스테치는 그런 녀석을 향해 주문을 날렸다.
“《파이어볼》!”
펑!
불덩이에 직격당한 것도 모자라 불붙은 장식물에 깔린 만티코어를 향해, 스테치는 물론이고 엘레나도 연달아 공격을 퍼부었다.
“《아크》!”
손바닥으로부터 뿜어져 나온 전기 스파크가 만티코어의 주둥이를 강타하자, 녀석은 날개를 활짝 펼치며 전갈 꼬리를 풍차처럼 크게 돌려 몸을 깔아뭉개고 있던 잔해를 치워 냈다.
“근접전은 내가 맡을 테니 거리를 유지해!”
“네!”
만티코어의 바로 옆까지 접근해온 스테치는, 역수로 쥔 망고슈를 만티코어의 상완골과 왼쪽 날개가 연결된 뿌리 부분에 찍어 넣었다.
인챈트 된 무기의 배가된 절삭력이 부드러운 약점을 찌르고 들어가자, 만티코어는 흥분해 날뛰는 황소같이 몸을 퍼덕였다.
스테치는 그런 놈의 몸에서부터 떨어지지 않기 위해 박힌 단검을 필사적으로 붙잡으며 매달려 있었다.
“캬아아아악!”
퍼억!
미친 듯이 몸을 비틀던 만티코어가 채찍처럼 휘두른 꼬리에 가슴팍을 얻어맞은 스테치는 저 멀리 날아가 바닥을 굴렀다.
그 힘이 어찌나 셌는지 갈비가 죄다 박살 나고 잠깐이지만 호흡이 멈출 지경이었다.
“아텔리어 씨?!”
『《리커버리》!』
즉시 스테치를 회복시키는 메멘토 모템. 부러진 뼈가 조금이라도 어긋나 폐를 관통해서 기흉이라도 일으킨다면, 스테치는 몇 분 이내로 사망했을 것이다.
충격으로 정신이 일순간 날아갔던 스테치는 허둥대며 벌떡 일어나서는 몸을 더듬었다.
“콜록…… 걱정하지 마! 아직 살아 있어!”
『앞을 봐! 무기가 저 새끼 몸에 박혀 있다!』
그제서야 스테치는 망고슈가 자신의 손에서 벗어나 만티코어의 날개 뿌리에 박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법을 제외하면 사실상 유일한 전투 수단을 빼앗긴 셈인데…….
“찬스다!”
스테치는 두말하지 않고 즉시 손을 뻗어 《아크》를 발사했다. 이리저리 구부러지며 날아간 전류의 가지는 박혀 있던 단검을 그대로 타고 흘러가, 만티코어의 부드러운 피하층을 사정없이 휘저으며 유린했다.
《아크》 자체의 위력이 강력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마법 내성을 가진 피부를 지나 신체 내부로 데미지를 직접 전달할 수 있는 직통라인이 뚫린 지금, 만티코어에게는 그 정도로도 충분했다.
“부탁이니까 쓰러져라!”
다시금 주문을 쏴 날리며 스테치는 마른침만 연신 삼켰다. 애초에 그 강력하다는 만티코어를 상대로 가볍게 이길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스테치에게 싸움을 장기적으로 이끌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현재 스테치의 최대 마력 한도는 수치화해서 850. 마력을 흡수할 몬스터도 없는 상황에 전투가 길어진다면 그에게 불리할 건 뻔했다.
“키이이이이-!”
몇 차례의 전기 쇼크를 그대로 얻어맞은 만티코어는, 처음 스테치가 놈과 마주치기 전에 들었던 그 괴이하고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토해 냈다.
멀리서 들었을 때에도 그닥 유쾌한 소리는 아니었는데, 가까이에서 들은 소리는 고막을 거의 찢어 버릴 기세로 울려왔다.
“아아악!”
“꺄아아악!”
귀를 부여잡으며 바닥에 주저앉은 스테치와 엘레나를 향해, 만티코어는 꼬리 끝에 장전되어 있던 기다란 독침을 연달아 쏘았다.
『《크로스 윈드》!』
“《에어 버스트》!”
스테치는 발사한 공기 구체로 엘레나에게 날아들던 독침을 날려 버림과 동시에, 《크로스 윈드》로 자신의 몸을 지켰다. 그러자 만티코어는 울음을 멈춘 뒤 무방비 상태의 스테치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코앞까지 거리를 좁혀온 만티코어의 면도날 같은 앞발톱이 날아들자, 스테치는 옆으로 굴러 그것을 피했다.
그 뒤로는 일방적인 공격의 연속.
가까이 다가가면 바위 따위는 우습게 박살 내는 이빨과 발톱이, 거리를 어느 정도 벌려 놓으면 기다렸다는 듯 독침이 날아왔다. 거기에 잊을만하면 꼬리 끝으로 뿜어내는 산성액까지.
만티코어가 매번 결정타를 먹이려는 순간에 날아든 엘레나의 화살이 절묘하게 타이밍을 끊어 스테치를 구해 주었으나, 상황이 나아지진 않았다.
인간의 발을 피하려고 애쓰는 개미가 이런 심정일까? 한참을 구르느라 흙과 땀이 엉겨 붙어 얼굴이 새까맣게 뒤덮인 스테치는, 전방위를 꼬리 하나로 모두 커버하는 만티코어의 모습에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화살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엘레나의 외침에 스테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젠장…… 분명히 체내에 데미지는 누적되어 있을 텐데 어째서 아직도 멀쩡한 거지?”
『착각하지 마, 분명히 효과는 있었어. 다만 이것도 저것도 죄다 치명타는 아니었을 뿐이야.』
메멘토 모템의 생각처럼, 사실 만티코어의 상태는 전에 없을 정도로 만신창이였다.
한쪽 날개는 뿌리부터 너덜거려 떨어져 나갈 지경에, 심장을 비롯한 온갖 장기와 신경들을 압박하는 수차례의 전격까지. 최강의 방패인 피부가 뚫려 버린 이상 그 강력하다는 만티코어도 괴롭기는 매한가지였다.
하지만 제아무리 《아크》를 써도 만티코어의 숨통을 확실히 끊어놓기엔 미묘하게 부족한 감이 없잖아 있었다.
스테치는 하필 이 타이밍에 페네트레이터를 맡겨두고 온 자신이 아주 살짝 원망스러워졌다.
“크윽!”
스테치는 각오를 다지며 이를 악물은 뒤, 스피드를 점차 늘려가며 그대로 달려오는 만티코어를 향해 왼팔을 크게 휘둘렀다.
파지직!
번뜩이는 빛 줄기 한 가닥이 흙먼지를 튀기며 땅바닥을 긁고 뻗어 나가 망고슈를 적중시키자, 앞발을 휘두르려던 만티코어는 그대로 바닥에 엎어졌다.
박혀 있던 단검을 잽싸게 붙잡고 등 뒤에 올라타자, 만티코어는 꼬리를 놀려 스테치의 등 뒤로 독침을 찌르고 들어왔다.
“갸오오오!”
스테치가 있는 힘껏 망고슈를 잡고 돌리자 강렬한 통각이 만티코어를 집어삼켰고, 독침은 타이밍을 노리고 있던 엘레나의 화살에 맞부딪쳐 튕겨 나갔다.
“그렇게 놔두진 않습니다!”
그리고 그때 마침 천장을 향해 번쩍 치켜 올린 스테치의 손에 쥐어져 있던 것은, 등반이 끝난 뒤에도 버리지 않고 줄곧 챙겨 두었던 작은 곡괭이였다.
“죽어라아아아아!”
콱!
망고슈가 박혀 있던 자리에 우악스레 곡괭이 날을 찍어 넣은 다음, 단검과 함께 지렛대마냥 비틀어 꺾어 상처를 벌리는 스테치의 모습에는 악이 서려 있었다.
우지직!
뼈와 살이 분리되는 끔찍한 소리와 함께 기어이 왼쪽 날개를 통째로 뽑아낸 스테치의 얼굴로, 분수처럼 뿜어져 나온 새빨간 피가 끼얹어졌다.
땅에 쓰러진 채 경련을 일으키는 만티코어를 짓밟고 일어선 스테치는 뽑은 날개를 발로 걷어차 밀어낸 뒤, 날개가 뽑혀 드러난 구멍으로 왼 주먹을 처넣었다.
“《파이어볼》!”
콰광!
“《파이어볼》! 《파이어볼》!!”
고기 타는 냄새와 함께 만티코어와 스테치의 주변으로 회색빛의 연기가 가득 차올랐다.
스테치가 화염으로 자기 왼손이 상하는 것도 개의치 않고 초근접거리에서 《파이어볼》을 연달아 발사할 때마다, 만티코어의 어깨와 등허리 부분이 풍선처럼 크게 부풀어 올랐다가 다시 쪼그라들었다.
세 발 째에 이르자 만티코어는 확실하게 절명했는지 미동조차 하지 않았고, 잔뜩 흥분한 탓에 헉헉거리던 스테치는 확인사살이 끝나고서도 한참이 지나서야 구멍으로부터 손을 뽑았다.
“아텔리어 씨! 괜찮으세요?”
끈적-.
눌어붙은 피와 화상으로 걸레짝이 된 손을 아무 말 없이 바라보고 있자니, 뒤늦게 찾아온 통증으로 인해 스테치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기 시작했다.
“으으…….”
“여기요, 쭉 들이키세요.”
황급히 엄폐물 뒤에서 나온 엘레나가 가방에서 약병을 꺼내 건네자, 스테치는 고개를 까딱인 뒤 허겁지겁 병의 내용물을 들이키기 시작했다.
“헉…… 헉…….”
『……나쁘지 않았어. 심지어 마지막 부분은 꽤 인상 깊었다고.』
회복되어 가는 팔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스테치에게 메멘토 모템이 말했다.
상대가 상대였던 탓인지, 스테치가 이 정도로 악에 받쳐 싸우는 모습을 본 건 처음이었다.
게다가 아티팩트를 사용하긴 했지만 어쨌거나 단독으로 만티코어와 싸워 이기다니, 승리를 의심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분명 놀라운 전과임엔 틀림없었다.
“이, 이긴 거지?”
“네…… 믿겨지진 않지만요.”
『이제 가죽만 벗겨서 나가면 돼. 수고했어.』
스테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망고슈를 엘레나에게 건네준 뒤, 가죽을 벗기기 위한 전용칼을 뽑아 들었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지만, 차라리 일을 빨리 마치고 돌아가서 쉬는 편이 나으리라.
만티코어로부터 뽑아낼 수 있는 소재는 매우 귀중하고 용도도 다양했다. 꼬리의 키틴질 껍질은 견갑 보호대의 베이스가 되기도 하고, 날개의 피막은 망토, 가죽은 방어구로 쓰인다.
해부 과정에서 실수만 안 한다면 만티코어의 독샘도 또한 훌륭한 연금술의 재료가 되지만, 이만한 덩치를 끌고 블랙 마켓까지 돌아갈 자신은 없었기에 스테치는 현장에서 직접 해체 작업을 진행하기로 결심했다.
죽은 만티코어의 시체를 옆으로 굴려 복부를 세로로 가르자 아직 뜨끈한 내장이 모락모락 김을 내며 흘러나왔다.
숲에서 숱하게 사냥을 해 온 엘레나의 도움 덕분에 작업은 생각보다 순조롭게 진행됐다.
속 내용물을 긁어내기 위해 눈을 딱 감고 손을 집어넣은 스테치는, 안을 휘적이던 도중 이상한 느낌이 들어 눈을 부릅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