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7화 보급마차 강탈 작전 (67/203)


67화 보급마차 강탈 작전
2021.12.07.


이른 아침.

새벽의 찬 공기가 채 가시기도 전에, 어슴푸레한 아침 햇살을 받으며 나아가는 마차 무리가 있었다.

장장 35대나 되는 마차들의 대행렬이 좁은 숲길을 헤치고 지나가는 과정에서 거대한 흙먼지가 안개처럼 뿌옇게 일어났다.

“지겹나?”

말을 탄 베네딕트 경이 바짝 옆에 붙어 따라오던 자신의 부관 톨에게 묻자, 그는 손가락으로 입술을 톡톡 두들기며 깊은 생각에 빠졌다.

그들의 스케줄은 수도에서의 보급을 제외하면 왕국 남부에서 북부까지 거의 논스탑으로 이동하는, 그야말로 초 강행군이 따로 없었다.

당연히 그동안 톨과 다른 병사들, 심지어는 기사들마저 단 한 번도 몸을 제대로 씻을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몸에서는 거름이라도 한 통 뒤집어쓴 듯한 악취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더군다나 그들은 말단 병사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갑옷과 무기로 완전무장한 상황.

하루 안에 이동하는 거리와 시간을 생각해 보면 실제 체감되는 무게는 장정들도 견디기 힘들 정도였다.

이 모든 불만거리들을 단 3초 만에 곱씹은 톨은 말없이 고개만 살짝 까딱였고, 베네딕트는 쓴웃음을 지었다.

하루 종일 말을 타고 가는 그도 엉덩이가 아플 지경인데, 발로 직접 걸어가는 부관이야 그 고통이 자신보다 덜하진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북부 전선까지는 이제 조금이다. 마차의 내용물만 내려놓고 나면 우리 임무는 끝이니까, 조금만 참고 버텨 보자.”

이 세상에 명예와 근성론을 강요하는 수많은 귀족들을 생각해 본다면 베네딕트는 상대적으로 매우 너그러운 사람이었다.

기사의 말에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인 톨은, 때마침 독수리같이 생긴 거대한 생물이 땅에서 손짓하는 조련사를 향해 내리꽂히듯 날아오는 장면을 보며 연신 감탄사를 쏟아냈다.

“언제 봐도 멋진 생물이로군요.”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나? 사육 난이도가 높은 게 좀 흠이긴 해도, 충성심이 강한 데다 사냥 능력도 탁월하다더군.”

멋과 유용함을 모두 갖췄다니, 애완동물로서는 최고가 아닌가. 베네딕트가 탐을 낼만도 했다. 조련사가 아큐라사스를 다시 한번 하늘로 날려 보내자, 녀석은 병사들의 머리 위를 빙빙 돌며 정찰 비행을 시작했다.

퓩!

“꽤액!”

갑자기 닭 울음소리와도 같은 짤막한 외마디 비명과 함께, 무언가에 적중당한 아큐라사스는 비상하는 것보다 빠른 속도로 추락하더니 쿵 소리를 내며 지면에 충돌했다.

어지간한 맹금류 이상의 크기와 무게를 자랑하는 몬스터였던지라, 그 진동을 주변에 있던 병사들 모두가 감지할 수 있을 정도였다.

“어?”

사방으로 흩날리는 깃털과 모래흙을 멍하니 바라보는 조련사.

이 갑작스러운 해프닝에 병사와 마차가 일제히 이동을 멈추고선 아큐라사스의 사체에게로 다가갔다.

근처에 있던 병사 하나가 창끝을 들이밀어 아큐라사스의 몸뚱이를 뒤집어보자, 녀석의 목을 깔끔하게 관통한 화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이게 무슨…….”

“적습이다!”

베네딕트의 말꼬리를 잘라먹은 병사의 외침이 행렬의 뒤쪽에 선 이들에게까지 들릴 정도로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수풀 속에서 튀어나온 복면의 괴한들이 빠른 속도로 선두의 마차까지 접근하는 모습은, 멀리 떨어져 있던 톨과 베네딕트를 포함한 모든 이들의 눈에도 들어올 정도로 대담무쌍했다.

“대체 어떤 멍청한 놈들이 아침부터 왕국의 수송단을 덮치려는 게지?”

베네딕트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보급 마차를 지키고 있는 병력은 어지간한 무장 집단에게 당할 정도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단순한 기술적 우위 이외에도, 기사와 병사들의 장비에는 디스펠륨이 도금되어 있어 대 마법전에서도 절대 꿀리지 않는 강함을 자랑했다.

그러나 상대는 단순한 도적 떼가 아니었다.

괴한들과 맞서 싸우고 있던 기사의 옆에서 홀연히 등장한 망토의 남자가, 갑옷의 플레이트들이 서로 맞닿은 틈새를 노려 단검을 깊숙이 찔러넣는 것이었다.

“으아악!”

그러나 쓰러지던 기사가 바닥에 채 드러눕기도 전에 또다시 사라진 남자는, 이후로도 농락하듯 신출귀몰하게 병사들 사이를 오갔다.

빠각!

다른 병사의 뒤에서 나타난 남자는 병사의 오금을 부츠 굽으로 걷어차 강제로 무릎 꿇렸고, 그사이 복면 괴한이 도끼로 머리통을 내리찍었다.

“아티팩트 유저……?!”

남자가 뒤를 쳐 빈틈을 만들어 내면 괴한들이 마무리 짓는 식으로 아군의 수를 빠르게 줄여 나가자, 베네딕트를 포함한 다른 이들은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했다.

아티팩트의 어빌리티는 마력이 아닌 사기를 베이스로 발동되는 기술이었기에, 디스펠륨으로 방지할 수 있을 턱이 없었다.

베네딕트는 황급히 지시를 내렸다.

“병사들은 나를 따라 전열의 병사들을 지원한다! 만일을 대비해 후열은 그 자리에서 경계를 강화…….”

“크, 큰일입니다!”

“또! 또 뭔가!”

베네딕트는 또다시 자신의 말이 묻히자 험악한 얼굴이 되어 마구 소리를 질렀다. 상황이 급박해진만큼 평소의 사람 좋던 성격은 이미 온데간데없었다.

“후열 쪽에서도 누군가가 접근 중이라고 합니다! 상대는 마법사로 추정!”

그 말을 들은 베네딕트와 톨의 시선이 뒤로 향하자, 그제야 난리가 난 뒤쪽의 상황이 보였다.

휘익!

날아간 화살이 크게 방향을 틀어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자, 사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아까부터 병사들이 활이란 활은 죄다 동원하여 화살 세례를 퍼붓고 있건만, 타겟인 남성에게 도달한 화살은 손에 꼽을 지경이었다.

『멍청하기는.』

들릴 리 없는 악담을 뱉어 내는 메멘토 모템의 목소리에 스테치는 한숨을 쉬었다.

《크로스 윈드》의 기류로 투사체들을 족족 날려 버리며 접근해오는 그의 모습에 병사들은 알 수 없는 위압감을 느꼈다.

한편 후열의 경계를 책임지던 기사, 글라디우스는 자신과 병사들을 정면으로 무시하며 다가오는 스테치를 보곤 이를 갈며 앞으로 나섰다.

상대가 마법사라면 디스펠륨 장비를 든 자신이 먼저 접근하는 게 유리하다는 판단이 있어서였다.

글라디우스의 판단은 정확했다. 그가 조금이라도 가까이 온다면 《크로스 윈드》의 효과는 사라지고, 스테치는 삽시간에 화살에 꿰여 벌집이 될 터였다. 하지만 ‘마법’은 오직 메멘토 모템의 수많은 능력 중 하나일 뿐, 아티팩트로서의 고유 능력은 아직 사용조차 하지 않았다.

‘한 시간이랬던가?’

『5분이면 충분해.』

메멘토 모템의 말에 스테치는 말없이 반지를 전면에 내세웠다.

항상 녹색으로 빛나던 메멘토 모템이 황금색으로 뒤바뀐 순간, 반지로부터 방출된 얇은 빛줄기가 글라디우스의 뒤쪽에 선 사수의 미간을 정확히 관통했다.

충격을 받은 듯 상반신을 크게 뒤로 재낀 사수가 몸을 덜덜 떨자, 옆에서 함께 화살을 쏘던 그의 동료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그에게 말을 걸었다.

“야, 너 갑자기 왜…….”

푸욱!

화끈, 하고 타오르는 열기와 함께 동료였던 병사의 오른쪽 시야가 검게 물들었다. 움직일 여유조차 주지 않고 다짜고짜 화살촉으로 동료의 눈알을 찍어 낸 사수는 광기에 찬 웃음을 터뜨리며 외쳤다.

“『해 볼 테면 해봐라, 버러지들아!』”

이건 또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병사들은 물론이고 스테치에게 다가가려던 글라디우스까지 모두 경악에 찬 나머지 입을 다물지 못하자, 사수는 즉시 들고 있던 화살의 촉으로 자기 목을 그었다.

털썩!

그 자리에서 즉사한 사수가 쓰러지는 순간, 이번엔 또 다른 병사가 창으로 다른 사람의 심장을 꿰뚫었다.

주위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해 버린 탓에 글라디우스가 아무런 대응을 못하는 사이, 스테치는 갑자기 폭발적인 힘으로 지면을 박차고 돌진했다.

검은 오브를 흡수하고 조건을 충족하여 새롭게 발현된 메멘토 모템의 어빌리티, ‘시져(Seizure)’.

메멘토 모템의 의사를 반지로부터 분리하여 다른 이의 몸으로 전사시켜 마음대로 조종하는 능력.

단지 그것뿐이었지만, 무서운 점은 제한 시간인 1시간 이내라면 일반인을 상대로 몸을 드나드는 데에 아무런 제약이 없다는 점이었다.

슈콱!

어느새 바로 지척까지 온 스테치의 검이 너무나도 간단히 갑옷을 뚫고 들어가자, 글라디우스는 헛숨을 들이켰다.

인챈트의 효과에 의해 스테치의 검은 글라디우스에게 찔러넣은 순간부터 그가 죽기 직전까지 계속해서 쇼크 에너지를 흘려보냈다.

글라디우스를 끝장낸 스테치는 수많은 병사들 사이를 넘나들며 휘젓고 다니던 메멘토 모템과 합류했다.

“『이거 좋은데? 몸을 가지는 게 이렇게 편한 줄 누가 알았겠어?』”

“그럼 이전에는 그런 생각을 한 번도 안 해 봤단 말이야?”

스테치가 메멘토 모템이 빙의된 병사와 등을 맞댄 채 검을 앞으로 겨누며 묻자, 그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가끔 네가 답답해 보일 땐 네 몸을 조종하는 상상을 하긴 했지.』”

푹!

태연하게 그런 말을 하며 복부에 검을 밀어 넣은 메멘토 모템은 금세 다른 병사의 몸으로 들어가 다른 적들을 도륙했고, 스테치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기괴함에 질려 버린 나머지 싸우는 데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한편, 마차 행렬의 중간에 있던 베네딕트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앞에는 웬 유령 같은 놈이 있질 않나, 뒤에는 병사들이 자기들끼리 싸우고 있질 않나…… 어느 쪽으로 지원을 가도 유의미한 결과를 일으키긴 힘들어 보였다.

“베네딕트 님, 어서 지시를!”

“이러다간 마차들을 전부 빼앗기겠습니다!”

병사들의 말대로 행렬의 양 끝에 위치한 마차들은 수비 병력이 무력화되는 족족, 습격자들에 의해 탈취당하고 있었다.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그들을 쫓아가고 싶었으나, 지금 이 자리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들을 그대로 놔둔 채 자리를 비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베네딕트는 급기야 소리를 질렀다.

“빌어먹을 도둑놈들, 이건 전선으로 갈 귀중한 보급품이란 말이다! 나라가 망하든 말든 약탈은 해야겠다 이거냐? 톨, 전열부터 정리한다!”

탁!

그는 등자를 힘 있게 밟으며 말을 몰아 가렛이 있는 방향으로 돌진했다.

병사들을 처리하느라 한 템포 늦게 말발굽 소리를 들은 가렛은 베네딕트가 휘두른 검을 보며 소스라치게 놀랐다.

“우왁!”

옆 구르기로 공격을 피했으나 일시적으로 무방비 상태가 된 가렛을 본 베네딕트는 미리 준비를 하고 있다가 타이밍을 맞춰 뛰어내렸다.

갑옷을 입었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부드러운 동작으로 한 바퀴 구른 그는 곧장 검을 휘둘러 가렛의 목을 노렸다.

“죽어라!”

가렛이 단검 두개를 열십자로 겹쳐 방어 동작을 취했지만, 그가 검격을 받아내기가 무섭게 베네딕트의 발차기가 가렛의 옆구리로 작렬했다.

타격당한 부위를 부여잡으며 뒤로 빠지는 가렛과, 곧바로 능숙하게 거리를 좁히는 베네딕트. 타른카페를 발동시키기 위해선 아주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이 베네딕트란 작자는 가렛에게 쉴 새 없이 연격을 가했다.

분노한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기사라는 타이틀이 무색하지 않은 실력자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가렛이 한 손에 쥔 단검의 크로스가드로 검을 막아 낸 후 반대쪽 손의 단검을 내지르자, 베네딕트는 건틀렛으로 그것을 튕겨 내고선 가렛의 정강이에 또다시 로우킥을 먹였다.

‘이 자식, 또……!’

첫 타를 허용한 것이 지금의 가렛에겐 너무나도 치명적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그의 부하들은 마차들을 빼돌리는 데에 동원되어야 하기 때문에 전혀 도움을 줄 수 없었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가렛이 베네딕트에게 깔려 힘겨루기를 하는 사이, 톨과 나머지 병사들이 도착하고 말았다.

“지금이다! 녀석을 죽…….”

톨이 베네딕트를 대신하여 명령을 내리던 도중, 돌연 말을 멈추고선 눈깔을 새하얗게 까뒤집으며 몸을 파르르 떨었다.

톨의 이상을 감지한 병사들이 그에게 미심쩍은 눈길을 보내고 있는데, 잠시 후 톨은 어울리지 않는 미소를 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안녕.』”

촤악!

톨의 몸으로 빙의한 메멘토 모템과, 그를 가림막 삼아 돌진해 온 스테치가 각각 휘두른 검이 두 명의 병사를 베어 넘겼다.

가렛은 베네딕트의 집중이 흐트러진 틈을 타 타른카페를 발동하여 은신했다.

“어어?!”

갑작스런 상황역전에 당황한 베네딕트의 목으로, 깔끔한 궤도를 그린 스테치의 검이 날아들었다.

16564295126643.png

16564295126651.jpg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