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9화 외부인 (79/203)


79화 외부인
2021.12.19.


폭발음에 가까운 총성이 요새를 뒤흔들었다. 총구로부터 뿜어져 나온 화염과 동시에 니콜라스의 몸이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

발사된 산탄은 갑옷판과 살을 뚫고 들어가 내장을 헤집었고, 니콜라스는 눈앞이 새하얗게 변하는 듯한 감각을 느끼며 땅으로 떨어졌다.

쿵!

사방으로 튀는 피.

모든 것을 처음부터 지켜보고 있던 병사들 중 어느 누구도 이 난데없는 상황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었다. 머릿속으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를 헤아릴 때 즈음엔, 이미 마차에 숨어 있던 괴한들이 튀어나온 직후였다.

“무…….”

막 손가락질을 하려던 병사의 미간에 화살이 꽂혔을 때, 엘레나는 이미 다음 타겟을 겨누고 있었다.

연달아 날아간 화살이 정확히 한 명씩 고꾸라뜨리자, 그제야 병사들은 비명에 가까운 소리로 외쳐댔다.

“적습이다!”

『커스드 클록.』

스테치가 등 뒤로 펼쳐진 사기의 망토를 머플러처럼 만들어 한 바퀴 크게 돌리자, 그를 중심으로 퍼져나간 검은 파장이 요새의 병사들을 한 차례 휩쓸었다.

실체화 될 정도로 농후한 사기의 이질적인 감각에 병사들은 토악질을 하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브웨엑!”

적들을 일시적으로 무력화시킨 스테치는 손바닥으로 마력을 응축시켜 공중으로 던져올렸다.

공전 현상으로 번쩍이는 《테슬라》의 마력 에너지체가 사방으로 전류를 뿜어내 병사들을 감전시켰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야!”

“닥쳐, 쓰레기 놈아.”

벽 뒤에 몸을 숨긴 채로 악을 써대던 젊은 병사의 목으로 쥐도 새도 모르게 접근해 온 스카이가 단검을 박아 넣었다.

꺽꺽대는 그를 내려다보는 스카이의 눈빛은 전에 없이 싸늘하고 혐오감에 가득 차 있었다.

빛을 잃고 텅 빈 눈알 위로 침을 뱉은 스카이가 뒤를 돌아보니, 엄폐물 뒤에 숨어 있던 병사 하나가 활시위를 바짝 당기며 그를 겨누고 있었다.

파악!

관자놀이를 뚫고 들어간 화살에 몸이 덜컥 흔들린 병사가 그대로 엎어졌다.

다음 화살을 생성하며 활시위를 당기는 엘레나가 스카이에게 말했다.

“뒤 좀 보고 사시죠!”

“……하하! 고맙군!”

스카이는 정신 나간 놈처럼 웃어대며, 다른 곳에서 몰려오는 병사들을 향해 화기를 겨눴다.

콰앙!

한꺼번에 2~3명을 날려 보낸 스카이는 탄피를 뽑아내고 새 탄을 장전하며 호기롭게 외쳤다.

“자아, 더 와라!”

한 번 침입을 허용한 감비니 요새의 병사들은 폭발적으로 몰아붙이는 스테치 일행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쓸려나갔다.

가장 큰 문제는 자신들을 진두지휘해 주어야 할 상관이 없다는 점이었다. 그나마 베테랑들을 제외한 젊은이들은 패닉에 빠졌고, 우왕좌왕하는 이들을 제거하는 건 누워서 떡먹기였다.

“저 새끼부터 조져!”

《테슬라》의 효력이 다하자마자 스테치에게로 공격을 집중하는 병사들.

화살과 창대가 한 사람에게 향하는 순간, 난기류에 꺾인 화살들이 절묘하게 궤도를 틀어 다가오던 병사들의 몸이나 몸에 꽂혔다.

“으아악!”

“이 괴물 놈아!”

기어이 살아남은 병사들이 들고 있던 창을 찔러 넣었고, 스테치는 손을 휘둘러 부채꼴 형태로 퍼지는 냉기 장판을 깔아 병사들을 모조리 얼음으로 묶어 두었다.

“《에어 불렛》!”

옴짝달싹 못 하던 병사 하나가 풍압에 날아가 성벽과 충돌했다.

전신의 뼈가 으스러지고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지경으로 짓뭉개진 병사가 땅으로 떨어지자, 그것을 모두 지켜보고 있던 나머지 병사들이 공포에 질려 스테치를 쳐다보았다.

“지금부터 항복하는 놈은 죽이지 않고 살려두겠다! 괜히 날뛰지 말고 투항해!”

화살에 맞아 바닥을 기는 병사에게 스테치가 검을 겨누며 소리치자, 도저히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몇몇 병사들은 들고 있던 검이나 활을 떨어뜨렸다.

몇 십분 뒤 아수라장이 된 요새가 잠잠해지고, 대부분의 병사들은 스카이의 부하들에 의해 숨통이 끊어지거나 생포되고 말았다.

안 그래도 밥을 제대로 못 먹어 체력이 바닥을 기는 데다, 수비 병력 절반 이상이 던전에 들어간 탓에 병사들을 제압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작전 성공이다.”

“막상 해 놓고 보니 너무 간단하네.”

스테치와 스카이는 답답하게 얼굴을 감싸고 있던 후드를 벗어 버렸다.

요새의 안채에는 포박당한 병사들과 지하로 내려가는 둥근 입구가 있었다. 분명 던전으로 들어가는 입구일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할 거지?”

“나랑 내 동료는 던전으로 내려가서 나머지 놈들을 처리할게. 그동안 너는…….”

“바깥으로 미끼를 던지라 이거지? 잘 알고 있어.”

스카이의 말에 스테치는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부터 친한 두 사람이었으니 서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었다.

스테치는 던전의 입구를 덮고 있던 쇠창살을 주문으로 간단히 박살 낸 뒤 엘레나와 함께 안으로 뛰어 들어갔고, 스카이는 부하들에게 지시했다.

“갑옷이랑 무기를 전부 수거해. 그리고 생포한 놈들은 저쪽 구석으로 옮겨놔! 캐내야 될 정보가 수두룩하니까.”

* * *

미리아드는 스테치에게 말했다.

감비니 요새의 던전으로부터 몬스터가 재생성 되는 주기는 일반적인 던전보다도 훨씬 빠르며, 그 이유는 던전의 핵인 아티팩트가 그만큼 강력하기 때문이라고.

메멘토 모템이 강력한 아티팩트인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마력으로서 흡수할 수 있는 몬스터가 아닌 인간을 상대로는 장기전을 치르기에 다소 무리가 있었다.

최악의 경우엔 마력이 고갈되는 일이 벌어질지도 몰랐다.

때문에 그는 던전에 들어간 토벌대들을 처리할 겸, 제라드와의 일전에 앞서 보험용의 강력한 아티팩트를 하나 더 획득해 둘 생각이었다.

『엄청난 격전이 있었나 보군.』

던전으로 들어간 스테치는 벽면 여기저기에 튄 핏자국과 뭔지 모를 자국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던전에서 들끓는 몬스터들을 억제하느라 오랜 세월에 걸쳐 새겨진 것들이 분명해 보였다.

수직으로 내려가는 계단통을 한참 내려간 스테치와 엘레나는 곧 닫혀 있던 커다란 문 하나와 맞닥뜨렸다.

쾅!

발로 걷어차 열어젖힌 문의 저편으로부터 그동안 공기 중에 누적되어 온 진한 피와 부패한 사체의 냄새가 뒤섞여 나왔다. 코가 비틀어질 정도의 악취에 스테치도 엘레나도 오만상을 구겼다.

“얼마나 묵혀 둬야 이런 터무니없는 냄새가 나는 거지?”

스테치는 바닥에 널브러진 뼈 더미를 훌쩍 뛰어넘었다.

던전은 기본적으로 몬스터나 인간의 사체를 온전히 남겨놓지 않는다.

간혹 몇몇은 스켈레톤 같은 몬스터가 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던전으로 흡수되어 새로운 몬스터를 만들어 내기 위한 양분으로 쓰인다.

그런데도 이렇게 많은 흔적이 남아 있다는 것은, 감비니 요새의 병사들이 이제까지 죽여 온 몬스터의 수가 어마어마하다는 증거였다.

‘트랩은 보이지 않는군. 먼저 앞질러간 병사들이 해체해 둔건가?’

통로에는 횃불이 걸려 있어 시야 확보에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하지만 깊숙한 곳으로 걸어들어 갈수록, 던전의 통로는 점점 더 넓고 커졌다.

“병사들은 어디에 있는 걸까요?”

엘레나가 중얼거리는 순간, 그녀는 이동을 멈추고선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기다란 귀를 쫑긋거리는 걸 보아하니 스테치가 듣지 못하는 희미한 소리를 포착한 모양이었다. 그녀는 입을 벙긋거리며 말했다.

“앞에서 누군가가 전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먼저 들어갔던 병사들이겠지. 가자!”

달리기 시작한 스테치와 엘레나가 통로 끝에 도착하자, 아치형 구조물들이 높은 천장을 떠받치고 있는 거대한 방이 나타났다.

고대의 무덤을 연상시키게 만드는 웅장한 분위기에 감탄할 틈도 없이, 그들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전투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저건…….”

오밀조밀 모여선 병사들의 방패 벽.

두 사람은 방패 벽 너머에 있는 몬스터를 보곤 놀라고 말았다. 수십 명에 달하는 장정들과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녀석은, 다름 아닌 스켈레톤이었다.

‘고작 스켈레톤 따위 하나를 상대로 모든 병사들이 일제히 매달리고 있다고?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그 순간, 스켈레톤으로 보이는 몬스터에게로 주변에 흩어져 있던 뼈와 파편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인간의 뼈도 있었지만, 오크를 비롯한 다른 인간형 몬스터의 것으로 보이는 굵직한 뼈도 있었다.

“뒤로 빠져라! 이 녀석은 다른 몬스터들과는 뭔가 달라!”

수많은 뼈가 뭉쳐 비대해진 해골이 주먹 쥔 팔을 뒤로 당기자, 그에 맞서 한 남자가 외치며 앞으로 나섰다.

장비의 수준과 화려한 장식으로 그가 토벌대의 지휘관이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흥!”

앙겔라가 손을 휘두르자 해골의 굵직한 팔뼈가 한순간에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방금 저 녀석이 무슨 짓을 한 거지? 스테치가 눈살을 찌푸리며 병사들을 보호하는 앙겔라를 살펴보고 있는 사이, 메멘토 모템이 말했다.

『역시 스켈레톤이 아니었어! 골렘의 핵이 뼈를 두르고 있었던 거야!』

“골렘?!”

몸으로서 쓸 수만 있다면 그 어떤 물질이든 핵으로 끌어 모으기 때문에, 골렘에게는 정형화 된 형태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뼈로 만들어진 골렘을 본 것은 이례적인지라, 스테치가 스켈레톤과 착각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무…… 네놈들은 누구냐! 어째서 여기에…….”

한창 병사들이 감당할 수 없는 공격을 대신 받아 내던 앙겔라는 뒤늦게서야 스테치 일행을 발견하곤 깜짝 놀라 외쳤다.

그와 동시에 주변에서 모래알갱이처럼 수많은 뼈들이 모이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4m 높이의 본(Bone) 골렘으로 화했다.

콰광!

본 골렘의 발길질이 병사들을 쳐 날리기 직전, 스테치의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또다시 골렘의 정강이 부분을 날려 버렸다. 어중간한 대응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앙겔라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다리를 잃고 채 쓰러지기도 전에 본 골렘의 전신으로 쏟아지는 연격.

망치 같은 물리력이 본 골렘의 뼈로 된 신체를 두들겨 가루로 만들어 버리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뼈 심장처럼 힘차게 맥동하고 있는 녀석의 핵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앙겔라가 손아귀를 비틀어 쥐자, 무형의 힘에 의해 푸른 체액을 토해 내고 터지는 골렘의 핵. 그러나 목전의 상황이 정리되었나 싶어 잠시 숨을 헐떡이던 앙겔라의 뒤에서, 난데없이 거대한 화염구가 날아왔다.

푸확!

스테치가 예상했던 대로, 《파이어볼》은 앙겔라가 손끝을 휘젓자 닿기도 전에 무언가에 부딪혀 사라지고 말았다. 메멘토 모템이 중얼거렸다.

『바람 계열 마법인가 싶었는데 그건 아닌 것 같고…… 아티팩트를 쓰는 것 같군.』

“그래서…… 네놈들은 역시 침입자로군. 어떻게 요새의 경비를 뚫고 들어온 거지?”

앙겔라는 이를 악물며 물었다.

이곳은 외부인의 출입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는 요새. 정상적이라면 군 관계자가 아닌 사람을 던전 안까지 들여보냈을 리가 없었다.

“그쪽한테 할 말 없으니까 질질 끌지 말고 한꺼번에 덤벼.”

스테치가 검을 뽑아 들고 말했다.

“난 지금 여기서 낭비할 시간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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