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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화 알 수 없는 음모 (113/203)


113화 알 수 없는 음모
2022.01.22.


스테치는 쓰러져 있던 드워프의 재갈과 포박을 풀어 주었다. 그는 꽤 오랫동안 제대로 된 빛을 보지 못했는지, 스테치의 검과 반지에서 뿜어져 나오는 밝은 빛에 눈을 가리며 괴로워했다.

“……엘, 아니, 세레나. 찰리 씨를 좀 진정시켜 줘. 난 잠깐만 주변을 둘러보고 올게.”

“네?”

갑작스런 스테치의 부탁이 좀 이상하게 들리긴 했지만, 바통을 넘겨받은 엘레나는 부들부들 떠는 찰리의 어깨를 두들기며 다독였다. 그사이, 스테치는 찰리와 엘레나를 지나 어두운 공간의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주변에는 기다란 테이블과 침낭, 그리고 무엇이 담겨 있는지도 모를 자루들이 놓여 있었다.

“이건…….”

스테치는 눈살을 찌푸리며 반지를 더 내밀어 앞을 비췄다.

원형을 그리며 배치된 거대한 나무 기둥들. 그리고 그 중앙에 놓인 주먹만 한 보석과 나무 기둥으로부터 뻗어져 나와 보석을 꽁꽁 묶어 놓은 쇠사슬들.

모든 것이 리퍼의 던전에서 봤던 그 구조물과 똑같았다.

“이 자식들 대체 취향이 왜 이래? 뭘 꾸미고 있는 거지?”

살펴볼 필요도 없이 보석이 아티팩트라는 것은 분명했다. 스테치는 쇠사슬을 끊어 버리고, 바닥에 떨어진 보석을 집어 들었다.

‘응?’

보석과 닿은 손가락 끝이 이상할 만치 차갑다. 그러나 잠깐 손을 뗀 스테치가 다시 만져 보았을 때 즈음엔, 이미 아무렇지도 않게 되었다.

고개를 갸웃거린 스테치는 아티팩트를 흡수했다.

《액티브 스킬 : 아이스 웨이브 → 아이스 니들로 진화하였습니다.》

《패시브 스킬 : 아크로바트를 포함한 신규 스킬 두 개가 해금되었습니다.》

《메멘토 모템의 추가 어빌리티 해제 프로세스가 진행 중입니다. 조건을 만족시키면 해금 가능합니다.》

《현재 흡수한 아티팩트의 개수 : 5》

《현재 저장된 마력량 : 67503》

《잠금된 어빌리티의 목록 :

1 . 어빌리티 “싱크로”

- 아티팩트 4, 마력 45000

2 . 어빌리티 “아바타”

- 아티팩트 9, 마력 90000

3 . 어빌리티 “???????”

- 아티팩트 ??, 마력 ??????

4 . 어빌리티 “????”

- 아티팩트 ??, 마력 ???????》

‘한동안 바빠서 제대로 안 살펴봤더니…….’

새로운 스킬을 얻은 지도 정말 오래간만이었다. 마력 한도는 처음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까마득히 높은 1만 5천으로 고정되어 있었고, 흡수한 아티팩트들도 다음 어빌리티를 해금하기에 충분해져 있었다.

스테치는 어빌리티 싱크로를 해금한 뒤, 손을 나무와 금속이 뒤섞여 만들어진 기둥에 뻗었다.

“《파이어볼》!”

퍼엉!

기둥들을 차례로 박살 낸 스테치는, 그제야 만족했는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엘레나와 찰리가 있는 곳으로 되돌아갔다.

“뭐 하신 거예요?”

“뒤처리.”

스테치는 대충 대답한 뒤, 축 늘어진 찰리를 어깨에 둘러업고 왔던 계단을 다시 올라갔다. 다시 한번 먼 길을 걸어 공방까지 가야 한다는 사실에 벌써부터 발걸음이 살짝 무거워지는 기분이었다.

“상태는 어때?”

“자세한 건 침상에 눕혀 놓고 제대로 확인해 봐야 알 것 같아요. 물약도 먹이고 회복 주문도 걸어 줬으니 아마 곧 괜찮아질 거예요.”

엘레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스테치는 걷는 속도를 더더욱 높였다.

* * *

채드는 갑자기 자신의 아버지를 등에 업고 나타난 스테치의 모습에 놀라서 뒤집어질 뻔했다.

무려 한 달 만에 다시 보게 된 그의 아버지는 천만다행으로 상처 하나 없었다. 다만 지속적인 영양 부족과 정신적 스트레스가 누적된 탓에 크게 지쳐 있었다.

스테치는 찰리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자신의 추리를 곁들여 대략적으로 설명해 준 뒤, 재방문을 기약하며 일단 공방을 떠났다. 스테치도 찰리에게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지만, 당사자가 잠들어 버리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다음 날, 채드는 점심때쯤 공방을 찾은 스테치와 엘레나를 반갑게 맞이하며 재차 감사를 표했다.

“정말 고맙습니다. 두 분께는 제가 큰 빚을 졌습니다.”

“찰리 씨는 좀 어떠세요?”

“상당히 많이 나아졌습니다. 고작 하루 지났을 뿐인데, 벌써 말도 곧잘 하실 정돕니다.”

채드는 두 사람을 작은 방으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막 점심을 마쳤는지, 빈 접시와 그릇을 옆에다 쌓아 둔 채 책을 읽고 있던 찰리가 있었다. 몸은 여전히 침상에 있었지만, 정신은 멀쩡해 보였다.

“안녕하세요.”

스테치의 인사에 책을 덮은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에겐…… 정말 뭐라고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군. 꼼짝없이 어둡고 축축한 곳에서 혼자서 죽는 줄 알았건만…….”

그는 지금도 자신이 살아 돌아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듯, 가만히 자신의 손바닥을 한참 동안이나 들여다보았다. 스테치는 찰리가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잠시 뜸을 들인 뒤 질문을 던졌다.

“정확히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스테치의 질문에 채드도 의자를 당겨 앉고 귀를 기울였다. 찰리는 떠올리기도 싫은지 입술을 깨물었지만, 언제까지고 입을 다물 수도 없는 노릇이라 천천히 말을 꺼냈다.

“……내가 그 괴한들에게서 의뢰를 받았다는 이야기는 이미 들었겠지?”

“네.”

“작업을 진행하기 전, 녀석들은 내가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지가 적힌 구상안과 참고 자료들을 넘겨주었지. 아마도 최소한의 정보만 제공함으로써 물건의 용도를 눈치채지 못하게 만들 심산이었겠지만, 나 정도 되는 사람에게 그런 눈속임 따윈 부질없는 짓이지.”

찰리는 말했다.

“그들이 부탁한 물건을 만들어 가면서, 자료에 적혀 있던 숫자들과 이론들이 점점 의미를 가지게 되었어. 그제야 난 생각한 거지. 어쩌면 난 끼어들어선 안 되는 일에 발을 들여놓은 건 아닐까? 하고.”

그에게 주어진 목표는 간단했다. 주어진 자료들을 토대로 어느 물건의 시작품을 만드는 것.

“인젝터(Injector, 주입기)야.”

“인젝터?”

찰리는 눈을 감고 기억을 되새겨 보았다.

어딘지도 모를 지하 공간으로 납치당한 직후, 아들을 인질로 삼은 협박에 못 이겨 완성시킨 인젝터의 시작품. 거대한 앰플에 검은색 액체를 가득 채워 넣은 광신도들은, 어디서 가져왔는지도 모를 아이의 시체에 그것을 주입했다.

“몇 시간 뒤, 시체였던 그 아이는 부활했다. 광신도들 손에 금방 제거되긴 했지만, 분명히 살아 있었어.”

“엑?!”

상상했던 것 이상의 이야기가 튀어나오자 스테치는 자기도 모르게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자를 부활시키는 건 그 어떤 마법으로도 불가능하다.

최소한 스테치가 아는 한 그런 게 가능한 녀석은 이 세상에서 메멘토 모템 하나뿐. 세계의 법칙에 반하는 일을 고작 이상한 액체 따위로 해내다니, 대체 어떻게?

충격을 받은 것은 스테치뿐만이 아니었는지,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로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오직 하나를 제외하고.

『‘흠…….’』

스테치가 충격의 여운을 헤집고 나오는 사이, 메멘토 모템은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그게 과연 정말로 부활한 것이었을까?’』

“그, 그럼 그 인젝터는 지금 어디로?”

“……최종 테스트를 마치고, 엘프들의 왕국인 케일럼으로 보내졌다고 들었지. 세계수가 있는 곳까지 간다고 하더군. 놈들이 거기서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는 감도 안 잡히네만, 뭐가 되었건 그닥 좋은 일은 아닐 것 같네.”

스테치의 얼굴이 구겨진 종잇조각처럼 일그러졌다. 한발 늦었다. 그런 스테치의 반응을 지켜보던 찰리가 말했다.

“자네들은 그래서, 뭐지? 어째서 이 광신도 놈들의 뒤를 캐고 있는 건가?”

“……거기엔 조금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요. 죄송하지만 잠깐 자리를 비워도 될까요? 금방 돌아오겠습니다.”

스테치는 양해를 구한 뒤 엘레나와 함께 공방 밖으로 나왔고, 곧장 배낭에서 카시아의 통신 수정구를 꺼냈다. 먼저 상대로부터 연락이 오길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지만,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여유 부릴 틈이 없었다.

[여보세요……. 브라이언?]

“안녕. 꼭 지금 당장 말해 줘야 할 소식이 있어서 말야.”

물론 카시아를 공격한 집단이 직·간접적으로 메멘토 모템과 연관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만큼, 전부 설명할 수는 없었다. 스테치는 최대한 리퍼니 레이스니 하는 초자연적 부분들을 배제하고선,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쭉 나열했다.

꽤나 긴 이야기였던지라 한참을 듣기만 하던 카시아가 말했다.

[그러니까 정리해 보자면……. 배후자가 부리는 사병 집단이 케일럼 왕국으로 갔다, 이 말이군요?]

“그렇지. 슬슬 거의 다 잡았다는 생각이 들어. 최대한 빨리 케일럼으로 놈들을 추격해 보려고 하는데, 가장 빠른 이동 수단은 뭐가 있을까?”

[역시 말이나 마차겠죠. 하지만 알고 계시죠? 케일럼까지 가는 길은 정말 먼 길이에요. 말을 타고도 몇 개월 이상을 이동해야 할지도 모르고요.]

수정구 너머에서 카시아의 한숨 소리와 함께 사그락사그락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언가를 종이에 적고 있는 듯했다.

[지금 계신 곳은 어디죠?]

“드워프 왕국 사일라스의 도시, 코그니테야.”

[목적지가 북쪽이라면 마침 잘됐네요. 남은 상인 한 명의 위치가 파악됐어요. 그의 마지막 행선지가 마침 딱 케일럼 왕국이랍니다. 되게 수상쩍지 않나요?]

카시아의 말에 스테치가 물었다.

“이름이 뭐지?”

[실베스틴 그레이스입니다. 만약 그자가 이 모든 일의 흑막이라면 이번 기회에 뭘 꾸미고 있었는지도 캐물어 볼 좋은 기회가 되겠군요.]

“확인했어. 갔을 때 알아보도록 하지.”

스테치의 말을 들은 카시아가 말했다.

[코그니테에 있는 드워프 은행 지부장이 저와 개인적으로 친분이 깊습니다. 은행 창구에서 암호를 대면 제 계좌에서 돈을 인출할 수 있을 겁니다. 경비가 부족하면 필요한 만큼 그곳에서 뽑아 가세요. 그리고…….]

카시아는 잠시 생각해 보더니 이윽고 말을 이어 나갔다.

[마차는 속도에 한계가 있으니 그다지 추천해 드리지 않습니다. 그 대신 아칸서스 품종의 말을 추천해 드립니다. 지구력이 높고, 추위에 강하며, 적은 먹이로도 큰 힘을 내죠. 빠른 속도로 장기간 이동할 계획이라면 이만한 이동 수단이 없습니다.]

그 외에도 이런저런 도움을 준 카시아에게 스테치는 고맙다는 뜻을 표시했다.

“한 가지 더. 혹시 코그니테에 쓸 만한 은신처가 없을까? 숨겨 줘야 할 사람들이 있는데.”

[그쪽에 저희 상회 사람들이 몇 명 있어요. 물어보면 금고라도 내줄 겁니다.]

행방을 모르게 하여 추적을 막는 것이 관건이다. 스테치는 OK 사인을 보낸 다음 통신을 종료했다.

공방으로 되돌아가 사정을 설명하니, 채드와 찰리는 몸을 숨겨야 한다는 스테치의 주장에 동의했다. 특히 찰리는 본의가 아니었어도 광신도들과 깊게 연관된 몸이기 때문에, 더더욱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모쪼록 광신도들과 관련된 이야기는 언급하지 말아 주세요.”

“여러모로 신경 써 줘서 고맙네. 그래서 말인데……. 자네 혹시 도시는 언제 떠날 계획인가?”

“가기 전에 여러모로 준비가 필요해서요. 적어도 2~3일 뒤엔 출발할 생각입니다.”

그러자 찰리가 말했다.

“기술 시연회가 끝나면 자네에게 뭔가 보답으로 만들어 주고 싶어서 그러네. 혹시 부족하거나 필요한 거 없나?”

“지금 이런 상황에서 기술 시연회를 참석하신다니, 너무 위험하지 않나요?”

“당연히 이번 시연회에 난 나갈 수 없지. 광신도들 눈에 띄는 일은 사양이라고. 시연회 쪽 프로젝트는 함께 마치고, 참석은 내 아들이 대신할 거야. 그사이 난 자네가 필요로 하는 물건을 만들어 주지. 어때?”

스테치는 그의 말을 듣곤 깊은 고민에 빠졌다. 나한테 필요한 것? 그러던 도중, 무언가를 그는 배낭 안에 손을 집어넣었다가 꺼냈다. 페네트레이터에 대한 작동 원리가 담긴 대략의 설명서와 미처 쓰지 못하고 남은 탄들이었다.

“이건?”

“제가 예전에 쓰던 무기입니다. 하지만 사고를 겪으면서 완전히 박살 나 버렸죠.”

“이 검을 다시 벼려 달라 이 말인가?”

“검은 이미 새것으로 얻었습니다. 다만 이 화약탄은 그냥 쓰고 버리기엔 너무 아깝더라고요. 이걸 써먹을 수 있는 간단한 보조 무장으로 뭔가 없을까요?”

스테치의 질문에 찰리는 잠시 이것저것을 생각해 보더니,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내게 맡겨 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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