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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화 의외로 잘 어울리는 한 쌍 (117/203)


117화 의외로 잘 어울리는 한 쌍
2022.01.26.


마르크 맥도웰의 카운터 어택은 데스나이트의 실체화된 육체조차 일시적으로 무력화시킬 정도로 강력했다. 그러나 그것도 효과는 고작 1분 정도. 이윽고 제정신을 차린 데스나이트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땅에 떨어져 있던 검을 집었다.

“아~ 짜증 난다, 짜증 나.”

데스나이트는 말없이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노골적으로 싫은 티를 팍팍 내는 스테치와 묵묵하게 그 뒤를 따르며 회복 물약을 들이켜는 마르크가 있었다.

“…….”

쨍그랑!

마르크는 텅 빈 약병을 아무렇게나 던지고, 방패 끈을 단단히 조여 맸다.

어쩌다 보니 스테치와 함께 싸우게 된 마르크였으나, 사실 생각해 보면 두 사람만큼 최악의 상성을 자랑하는 콤비도 따로 없었다.

각각 방패와 검을 쓰는 스테치와 마르크는 장비의 특성상 근접전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마르크의 방패에 도금된 디스펠륨 때문에 스테치의 공격 수단은 극히 제한된다. 그 말은 즉, 상대가 스테치의 다음 행동을 예측하기 쉬워졌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게다가 스테치는 마르크에 대한 악감정이 여전히 남아 있는 상태. 과연 그가 순순히 마르크와 손발을 맞추려 들까?

“내가 앞, 네가 뒤! 이 기본적인 룰에 따를 생각 없으면 꺼지든가.”

틱틱대는 스테치에게 마르크가 물었다.

“굳이 그런 ‘룰’을 제안한 이유가 뭐지?”

그러자 스테치는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마르크에게 무어라 한두 마디를 던졌고, 마르크는 그 말에 납득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이해했다.”

스윽.

검을 든 스테치가 앞으로, 방패를 든 마르크가 뒤에 서는 독특한 포메이션. 그 모습을 본 데스나이트는 스테치의 꿍꿍이를 가늠해 보려는 듯, 검을 앞으로 내밀며 자세를 살짝 낮췄다.

잠시 동안 말없이 서로를 노려보던 스테치와 데스나이트는, 누가 뭐라 할 것도 없이 거의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흐앗!”

캉!

그림자 검과 인챈트 된 할로우 블레이드가 격돌하며 스파크가 튀었다.

근접 전투에 더 능숙한 쪽은 스테치가 아닌 마르크.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테치는 데스나이트와 직접 무기를 맞대며 싸우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

데스나이트가 찔러 넣은 창날이 뺨 위를 훑고 지나갔다. 하지만 스테치는 거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검을 든 팔을 바삐 놀려 댔다. 스킬들도 제대로 동작하여 스테치의 움직임을 보조하고 있었다.

신경 쓰이는군. 데스나이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마르크 맥도웰은 스테치가 정신없이 싸우는 내내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았다. 그저 스테치의 뒤에 바짝 붙어서 따라다니기만 할 뿐.

휘익!

전반적으로 스테치가 밀리는 분위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승부가 나질 않자, 결국 데스나이트는 창을 할버드로 바꾸어 횡으로 휘둘렀다.

그러자 스테치는 기다렸다는 듯이 백스텝을 밟아 뒤로 물러섰다.

“흡!”

동시에 줄곧 방패를 들고 스테치의 뒤에 바짝 붙어 있던 마르크가 앞으로 튀어나왔다.

이미 공격을 멈출 순 없는 상황. 데스나이트가 휘두른 도끼날이 자리 배치를 바꾼 마르크의 방패 표면을 두들기자, 충격을 흡수한 사자의 입에서 에너지 파동이 뿜어져 나왔다.

투쾅!

데스나이트의 몸을 감싸고 일렁이던 검은 기운이 일순 날아가 버릴 정도로 강력한 일격. 주춤거리는 데스나이트를 향해, 이번엔 마르크가 빠지고 스테치가 달려들었다.

“으아아아아!”

푸욱!

할로우 블레이드가 데스나이트의 갑옷 이음매 사이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자, 줄곧 입을 다물고 있던 데스나이트에게서 사람 같지 않은 절규가 흘러나왔다.

“어억!”

붉은 피 대신 끈적하고 검은 액체가 갑옷 아래로 줄줄 새어 나왔다. 스테치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다른 손에 쥐고 있던 너클을 휘둘러 데스나이트의 머리통을 후려갈겼다.

투쾅!

플라즈마 제트를 동반한 강력한 한 방에 데스나이트의 머리가 회까닥 돌아갔다. 처음으로 제대로 된 유효타를,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씩이나 연달아 성공시킨 스테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좋았어, 생각대로다!’

마르크 맥도웰은 아티팩트의 특성상 카운터 공격에 특화되어 있다. 그러나 카운터가 날아올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파악하고 있는 이상, 데스나이트는 마르크와의 싸움에 가능한 얽히려 들지 않을 것이다.

이에 대응하여 스테치는 마르크를 자신의 바로 뒤쪽에 배치했다.

데스나이트가 뒤쪽의 마르크를 신경 쓰느라 정신이 팔려 있는 동안, 스테치는 할로우 블레이드의 빛으로 상대의 능력을 봉인해 두는 한편 힘을 반감시키며 공격. 결정타가 날아오면 곧바로 공수 교대로 마르크가 방어 후 카운터.

서로의 능력을 최대한 살린 전술이라 할 수 있겠다.

“지금이다!”

철컥!

스테치가 손목을 꺾자, 너클의 배출구가 열리면서 뜨겁게 달궈진 탄피가 튀어나왔다. 그는 발로 데스나이트를 밀어 차 검으로부터 떼어 낸 뒤, 즉시 새 탄을 장전했다.

흔들거리는 데스나이트의 몸으로 꽂히는 스테치의 주먹과 뒤이어 날아든 마르크의 방패.

신음하는 데스나이트의 복부에 너클 낀 스테치의 주먹이 꽂히자, 그의 몸이 ‘ㄱ’ 자로 꺾였다. 본디 아스트랄의 에너지를 품은 데스나이트의 몸은, 물질계로부터 가해지는 충격 대부분을 막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할로우 블레이드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이러한 이점을 완전히 무력화시키고 있었다.

“하아!”

어느새 데스나이트의 뒤로 넘어간 스테치가 등허리로 주먹을 꽂자, 앞으로 쏠린 그의 몸뚱이를 마르크가 방패로 받아 냈다. 충격을 흡수한 방패가 에너지 파동을 발사하면서, 데스나이트는 다시 한번 힘없이 날아가 바닥을 굴러야만 했다.

“으극-.”

설마 이 상황에서 자신이 밀릴 거라고는 조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데스나이트였다. 쏟아지는 협공에 꼼짝없이 두들겨 맞던 데스나이트는, 곧 무언가를 결심했는지 들고 있던 대검을 방패로 바꾸어 스테치와 마르크의 공격을 막아 냈다.

스스로의 목숨을 대가로 바치는 한이 있더라도, 대적자를 세계수까지 가게 놔둘 수는 없다. 데스나이트는 자신의 정수를 쥐어짜기 시작했다.

“으오오옷!”

할로우 블레이드의 빛에 억눌려 있던 검은 기운이 전신으로부터 다시금 피어오르며, 차츰 그 크기를 더해 갔다.

쩌저적-.

검을 방패에 들이대고 있던 스테치의 팔뚝에 새하얀 서리가 끼기 시작했다. 스테치가 잠시 주춤거리는 사이, 데스나이트는 방패를 크게 휘둘러 스테치와 마르크를 밀어냈다.

콰캉!

거칠기 짝이 없는 공격. 검을 들어 데스나이트의 검은 방패를 막아 낸 스테치의 귓가에 분노로 절절 끓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렁이에! 힘도, 자격도 없는 쓰레기가! 잘도 우리를 방해하고 나선단 말이냐!”

그에 호응하듯 데스나이트의 방패는 한층 더 진한 그림자로 뒤덮였다. 묵직한 일격을 가까스로 흘려 넘긴 스테치가 마르크와 다시금 자리를 바꾸자, 데스나이트가 들고 있던 방패의 형상이 변화했다.

“?!”

흑수.

그림자로 녹아내린 방패는 데스나이트의 몸을 휘감았다. 검은 기운이 일렁이는 손을 뻗어 미처 피하지 못한 마르크의 어깨를 붙잡은 순간, 아스트랄체 특유의 한기가 그의 피부로 파고들었다.

“느으윽!”

맷집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마르크다. 페네트레이터에 의해 눈알이 꿰뚫렸을 때조차 아무 소리 내지 않던 그가, 고통스러워하며 얼어붙기 시작했다.

꾸드득!

마르크의 몸 전체를 완전히 얼려 버린 데스나이트는 타깃을 스테치로 바꾸고선 달려들었다.

“젠장! 갑자기 뭐야?”

『죽기 살기로 해 보겠다 이거지!』

그 증거로 데스나이트의 몸은 검은빛으로 휘감겨 맹렬히 타오르고 있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당장이라도 꺼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스테치의 검이 발하는 빛에 노출되는 것도 감수하면서, 속전속결로 끝을 볼 심산이었다.

마르크와 거리를 벌려 디스펠륨의 영향권 밖으로 빠져나온 스테치는, 공중에 다섯 개가 넘는 《테슬라》 오브를 띄웠다. 마력 소모를 아까워할 때가 아니었다. 빠른 속도로 접근해 오는 데스나이트의 머리 위로 수많은 스파크가 떨어져 내렸다.

그러나 데스나이트는 손끝을 휘저어 날려 보낸 파동으로 마법들을 간단히 지워 버린 뒤, 곧장 스테치의 목을 붙잡아 땅바닥으로 강하게 메다꽂아 버렸다.

“커어억-.”

쩍 벌어진 입으로 숨을 토해 내는 스테치. 까딱 잘못하면 충격으로 목이 부러지게 생겼다.

데스나이트가 움켜쥔 목둘레에서 송골송골 핏방울이 맺혀 흘러내리던 그때, 바람을 가르며 날아든 화살 하나가 데스나이트의 옆구리 깊숙이 박혔다.

털썩!

손아귀에서 벗어난 스테치는 콜록거리면서 뒤로 주춤거렸다.

옆을 돌아보자, 저 멀리에서 활시위를 막 놓은 엘레나가 심호흡을 깊게 내뱉고 있었다.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한 방임에도 불구하고 대미지는 그다지 크진 않았지만, 기습으로써의 효과는 훌륭했다.

“빌어먹을 엘프년!”

지면의 그림자로 주먹을 꽂아 넣자, 검은 촉수가 엘레나의 발밑으로부터 자라났다. 한발 늦게 대응한 엘레나가 그대로 찢어 발겨지기 일보 직전, 스테치가 악을 써 대며 달려들었다.

“으아아아!”

엘레나에게 정신이 팔린 데스나이트에게 할로우 블레이드를 찔러 넣는 스테치. 깔끔하고 정확한 궤도로 날아든 검이 투구와 갑옷 사이를 긁으며 불똥을 튀기고 들어가, 그 너머의 목덜미까지 깊숙이 쑤셔 넣어졌다.

“?!”

데스나이트의 체조직을 구성하던 그림자가 갈기갈기 찢어지면서, 붉은 피 대신 타르처럼 끈끈한 액체가 울컥거리며 쏟아져 나왔다.

“한 번,”

촤악!

뿜어져 나온 검은 피가 스테치의 안면과 몸을 적시고 내려갔다.

“더어어어어!”

검을 뽑아낸 스테치는 지면으로 《에어 불렛》을 발사해, 그 풍압으로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최고점까지 도달한 그는 데스나이트의 머리 위로 떨어지면서, 무거워진 검을 그대로 정수리에 찍어 눌렀다.

콰앙!

투구를 쪼개고, 영혼의 정수까지 완전히 베어 갈라 버린 할로우 블레이드가 그 빛을 더해 갔다. 좌우로 양분된 데스나이트의 몸 여기저기에서 연기가 나더니, 이윽고 불이 붙어 재 한 줌 남기지 않고 타 버렸다.

흙먼지가 잦아들 무렵, 스테치는 부들부들 떨리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허억, 허억.”

할로우 블레이드의 도움도 없이 폰두스를 남용했더니 몸이 엉망진창이다. 부러진 팔뼈가 살을 뚫고 나와 있는 것을 본 스테치가 고통으로 눈을 꾹 감자, 메멘토 모템이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

“…….”

다시 뜬 눈앞에는 상처 하나 없이 말끔해진 스테치의 양팔이 있었다. 하지만 회복된 것은 상처뿐, 기력까지 되돌아온 것은 아니었다.

터덜- 터덜-

빨리 엘레나도 살펴보러 가 봐야 하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스테치의 뒤로, 얼음 가루들을 후드득 떨구며 마르크 맥도웰이 다가왔다. 데스나이트가 사라지자 냉기의 구속으로부터 풀려난 것이다.

“……아나, 좀 봐주라.”

스테치가 투덜거리자, 마르크 맥도웰이 쩍 벌린 손아귀를 그에게로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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