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3화 사면초가 (2) (183/203)


183화 사면초가 (2)
2022.04.02.


쐐액- 콰과광!

폭발 능력이 부여된 라이플 탄이 다시금 성벽을 강타했다. 박살 난 바위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고, 엄폐 중이던 병사 몇 명은 큰 상처를 입은 채 굴러갔다.

혹시라도 맞을세라 몸을 바짝 낮추고 있던 남문 지휘관 ‘터커’는, 막 장전 중이던 또 다른 대포가 폭발에 의해 망가진 것을 보고는 이를 악물었다. 이대로 가다간 모두 당하고 만다.

“마법사! 마법사 어디 있나!”

악을 써 대며 마법사를 부르짖는 터커. 그러자 뒤쪽에 움츠리고 있던 마법사 하나가 바닥을 기어 그가 있는 근처까지로 다가왔다. 그 꼴이 제법 우스꽝스럽긴 했지만, 상황이 상황이었던지라 차마 비웃을 수도 없었다.

“부, 부르셨습니까?”

“신호탄 마법을 써라! 북문에 지원 요청을 보내라고, 어서!”

현재 수도의 병력은 북부 전선에서 나타나기로 예고된 적들의 영향으로 북문에 집중된 상태. 그쪽의 병력들이 남문으로 와 준다면 조금은 해 볼 만한 싸움이 될 터.

“알겠습니다!”

마법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손아귀를 벌렸다. 그는 손바닥 위로 떠오른 붉은 스파크를 위로 쏴 올렸다.

퍼어엉-.

수도의 하늘 높이 날아오른 스파크가 섬광을 일으키며 터졌다. 환한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눈에 확 들어올 정도로 밝은 빛. 터커와 다른 병사들은 그것을 초조하게 올려다보며 북문에서의 반응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피융!

알렌테의 북쪽에서 뒤이어 날아오른 또 하나의 섬광. 소리가 들리자마자 고개를 홱 돌렸던 터커는 이내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엉?”

남문에서 쏘아 올린 신호는 상황 시급 및 지원 요청을 의미하는 붉은색을 띠고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그에 응한다는 답변인 노란색 불빛이 터졌어야 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북문 측의 답신은 붉은색. 즉, 북문에서도 똑같이 도움을 요청했다는 소리가 된다. 어리둥절하여 자기네들끼리 수군거리는 병사들의 목소리가 터커의 귀로 들어왔다.

“야, 저거 봐 봐.”

“북쪽에서 지원 요청이라고?”

문득 불길한 예감이 터커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설마?’

* * *

“아아악!”

콰광!

수도 알렌테의 북문.

마법사가 신호탄 마법을 올려 보내기가 무섭게, 성벽 쪽으로 포격이 날아들었다. 박살 난 파편에 얻어맞거나 큰 상처를 입은 병사들의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북문 지휘관 ‘개리슨’은 병사 하나가 기절하는 모습을 보고선 혀를 찼다. 기껏 물약까지 써 가며 상처 입은 것을 회복시켜 놨더니, 또 얻어맞고 기절까지 하면 어쩌자는 건가?

“귀한 약물을 함부로 쓰지 마라!”

쾅!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두번째로 날아드는 포격, 그리고 비처럼 떨어지는 성벽의 파편 조각들. 개리슨은 위험을 무릅쓰고 다시 고개를 들어 올려 성벽 바깥을 살펴보았지만, 역시나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빌어먹을 새끼……!’

불과 30분 전의 일이었다. 성벽로 위를 거닐던 병사들을 갑작스레 날아든 포탄이 덮친 것이다. 예고는커녕, 별다른 전조조차도 없었다.

선제공격을 허용한 대가는 너무나도 컸다. 병사들은 갑작스러운 기습으로 크게 당황한 나머지 반격할 타이밍을 완전히 놓쳐 버렸다. 덕분에 처음부터 지금까지 아군은 방어만 하고, 적은 마음껏 포탄을 퍼부어 대는 일방적인 구도가 이어지고 있었다.

‘썩을.’

개리슨은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대포를 쓰려고 할 때마다, 교묘한 각도로 날아온 포탄이 이쪽을 방해한다. 정말이지 놀라울 정도로 정밀한 공격이었다.

포탄이 북문으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북쪽 숲에서 날아오고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그 이외에 적의 규모라든가, 정체에 대해서는 알 방법이 없었다.

‘대놓고 북문으로 나가면 위험해. 일단 남문 쪽으로 병사들을 몰래 내보내서…… 숲을 우회하고 역기습을 걸면…….’

빠른 속도로 전략을 강구하는 개리슨. 그때, 무언가가 빠른 속도로 날아와 그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피융!

화끈, 하고 달아오르는 듯한 감각. 멍한 표정으로 뺨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 보니, 새빨간 피가 후두둑 묻어 나왔다.

옆에서 그 모습을 보다 못한 병사가 개리슨을 잡아서 바닥에 쓰러뜨리자마자, 그의 머리가 있던 자리로 화살 두어 개가 더 날아왔다.

“괜찮으십니까!?”

그러나 개리슨의 귀에는 옆에서 말을 거는 병사들의 목소리가 전혀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저…… 저거!’

그는 방금의 일격을 통해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상대는 자신들을 가지고 놀고 있다는 것을.

화살이 날아온 방향과 위치도 대포와 마찬가지인 북쪽 숲. 그러나 알렌테의 북문에서 북쪽 숲까지는 약 1km. 대포는 아슬아슬하게 닿을 수 있을 만한 거리지만, 화살이라면 이야기는 다르다.

‘발리스타용 화살도 아니었다고! 이 세상의 어느 누가 1km도 넘는 거리에서 화살을 쏴 날릴 수 있다는 거야?!’

그 정도 거리에서 화살이 날아왔는데 그저 뺨을 스치는 정도로 끝났다니, 단순히 빗나갔던 것일 수도 있겠지만 개리슨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으아아악!”

개리슨을 포함한 나머지 병사들의 시선이 비명이 들려온 방향으로 돌아갔다. 한창 마법포에 마력을 주입하며 준비 중이던 마법사의 어깨가, 화살의 관통상으로 거의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마법사가 쓰러지자 다른 병사가 상처 위로 회복 물약을 부어 치료해 주었다.

그것을 본 개리슨은 확신했다.

‘역시 이건 빗맞은 게 아니야. 일부러 빗맞힌 거지! 애초에 1km 거리에서 화살을 쏴 명중시킬 정도의 신기다. 그 정도의 재주가 있다면 스치게 만드는 것쯤이야 일도 아닐 터.’

꿀꺽.

마른침을 삼키는 개리슨의 등골을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대체 적의 정체는 뭐지? 어째서 베네지아를 상대로 이딴 미친 짓을 벌이는 걸까?

* * *

한편, 북문과 남문 측에서 쏘아 올린 두 개의 붉은 신호탄을 멍하니 쳐다보던 엘레나의 귓가로 데스트라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훌륭하다.』

칭찬을 들은 엘레나는 어색하게 웃음을 내비쳤다.

『말로만 가르쳐 준 기술을 용케도 훌륭하게 체득했구나. 구세대 엘프들에게서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굉장한 재능이야. 가슴을 펴고 자랑스러워해도 된단다.』

“그, 그 정도인가요?”

활시위를 당긴 자세 그대로 굳어 있던 엘레나는 살짝 부끄러워졌는지 몸을 배배 꼬다가, 자신이 무심코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말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헛기침을 내뱉었다.

현재의 데스트라는 몸을 잃고 의식만 남은 상황. 전성기 때에 비하면 사실상 신이라고 부르기조차 민망할 수준이다. 하지만 그녀의 기억 속에는 사람으로선 범접할 수 없을 정도의 숙련도와 경험이 축적되어 있었다.

엘레나는 그런 데스트라의 조언을 바탕으로 스스로의 능력을 한층 더 높은 단계까지 끌어올렸다. 그리고, 그 결과는 지금과 같았다.

단순히 활을 쏘는 자세의 교정부터 시작해서, 사격을 보조해 주는 온갖 어시스트용 스킬 등등. 데스트라의 조언과 도움이 없었다면 화살 따위로 1km가 넘는 거리에서 저격하는 미친 짓거리는 할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야, 저 누님 왜 저래?”

“글세…….”

옆에서 이를 쳐다보던 가렛의 부하들은 갑작스럽게 이상한 태도를 보이는 엘레나의 모습에 어리둥절해했다. 데스트라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그들에게는 엘레나의 혼잣말이 이상하게 보였으리라.

『어쨌든, 다시 집중해야겠구나. 아직 싸움은 끝난 게 아니니까.』

“예.”

엘레나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스피라투스를 포격 모드로 변형시켰고, 가렛의 부하들은 포신을 밑에서 받쳐 주었다. 그들이 별동대로서 엘레나와 함께하게 된 이유는 바로 이를 위해서였다.

철커덕!

특별히 제작한 양각대와 지지대를 지면에 단단히 고정시킨 엘레나는, 신중하게 조준한 뒤 방아쇠를 당겼다.

퍼엉!

“으윽……!”

포신을 지탱하고 있던 가렛의 부하들이 휘청거릴 만큼 어마어마한 반동이었다. 그렇게 해서 발사된 포탄은,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리더니 이윽고 알렌테의 성벽 위를 강타했다.

“착탄을 확인. 제대로 적중했군요.”

아므리타의 능력을 발동하느라 눈의 흰자위가 까맣게 물든 엘레나가 중얼거렸다. 사람이 점으로 보일 정도로 까마득히 먼 거리였지만, 그녀의 눈에는 돋보기를 쓰는 것처럼 똑똑히 보이고 있었다.

“음?”

엘레나는 북문의 양쪽 끝 성벽에서 열심히 화약을 채워 넣고 있던 병사들을 확인했다. 묵혀 두던 마법포에도 마력 공급을 시작했는지, 마력을 내뿜는 과정에서 발하는 푸른 빛 또한 그녀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렇겐 안 되지.’

스피라투스를 다시금 활과 결합한 그녀는 천천히 활시위를 당겼다. 바람의 영향을 받아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지 않도록, 그리고 부족한 힘을 채워 넣기 위해 엘레나는 여러 가지 스킬들을 겹쳐서 화살에 부여했다.

퓻!

침착하게 화살을 생성하고, 발사하기를 반복한다. 날아간 화살들은 그대로 마법사와 병사의 어깨나 다리에 꽂히고, 상대는 그대로 무력화. 회복 물약으로 상처를 치료하는가 싶으면 다시 공격.

『작전대로로구나.』

북문을 지키고 있을 베네지아 병사들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는 안 봐도 뻔했다.

남문과 북문이 동시에 공격당하는 지금 상황에서, 적의 정체는커녕 목적조차 불명. 거기다 적의 숨통을 단숨에 끊지 않음으로써 자원을 소모시키고, 정신을 피로하게 만든다.

살상을 최대한 줄이면서 수비 병력의 주의를 끌 수 있는 일거양득의 전술이었다.

『이 정도면 충분한 시간 벌이가 됐을까?』

‘그러길 빌어야죠.’

엘레나가 말했다.

‘모든 작전의 핵심은 그 사람에게 달려 있으니까요.’

* * *

“우웨에에엑!”

수도 알렌테의 으슥한 골목길.

스테치는 위장에 들어 있던 것을 그대로 게워 내서 바닥에 팬케이크를 굽고 있었다. 등을 두들겨 주던 가렛은 내심 미안했는지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내밀었다.

“……고마워.”

입가를 훔쳐 낸 스테치가 헉헉거리며 손수건을 되돌려주려 하자, 가렛이 말했다.

“더러우니까 그냥 버려.”

“이딴 거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아.”

스테치는 투덜거렸다.

둘로 나눠진 아군이 각각 남문과 북문 측 병사들의 시선을 끄는 동안, 스테치는 가렛의 도움을 받아 성벽을 뚫고 도약하는 데에 성공했다. 하지만 아스트랄 차원을 경유할 때 발생하는 현기증과 구토감 탓에 스테치는 그는 한동안 제정신을 차리기 힘들 지경이었다.

“어쩔 수 없지. 아티팩트를 직접 사용하는 나를 제외하면 이 감각에 절대 익숙해질 수 없을 테니까. 자, 그것보다도…….”

가렛이 스테치를 일으켜 세웠다. 그의 두 눈은 저 멀리 우뚝 서 있는 베네지아의 왕성, 브랜든에 집중되어 있었다.

“목표는 바로 앞이다. 서두르자.”

“그래.”

고개를 끄덕인 스테치는 가렛과 함께 골목길을 따라 왕성으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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