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답장을 주세요,왕자님-22화 (22/56)

#22.

나의 영민한 벗 코델리아께.

물론 플로리안이 세실의 귓가에 어떤 은밀한 말을 속삭였는지 저도 그 다음날 바로 찾아가 물어봤습니다.

그애가 무슨 말을 했길래 치유술사를 부르지 말라고 하고 그냥 떠났냐,

서둘러 그애를 들쳐엎고 가서 그날 대체 어떤 대화를 나눈거냐,

무슨 사연을 들었길래 그날 이후로 줄곧 감싸고 돌기만 하는거냐,

..등등을 묻고 싶었지만 세실은 무인답게 말이 짧은 걸 좋아하니 간단히 줄여 이렇게만 말했지요.

“미쳐서 그래?”

답은 이렇게 돌아왔습니다.

“꺼져.”

그래도 저는 바지를 물고 늘어지는 새끼 강아지처럼 끈질기게 세실을 졸라보았습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물었어요.

“돌았냐고, 세실.”

그러나 이어지는 대답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꺼지라고, 아치. 이 모자란 놈아.”

갑작스럽게 당한 저의 인격과 지능에 대한 심각한 모독에 당황한 표정을 지었더니 세실은 절 더 모욕하고 싶은지 이렇게 덧붙이더군요.

“왕실 행사고 뭐고 다 빼먹고 책을 읽고 여자를 만나며 배운 게 대체 뭐야? 넌 정말 한심한 놈이야.”

그보다 더 저를 상심하게 만든 것은 제게는 그런 폭언을 내뱉어놓고는 바로 플로리안을 보고 상냥한 척 미소짓는 세실의 얼굴이었어요.

“푹 쉬어, 겁먹지 않아도 되니까.”

이쯤하면 정말 세실과 내가 친남매가 맞긴 한 건지를 의심하고 싶지만 그러기엔 우리가 공유하는 금발과 푸른색 눈이 혈통의 증명서처럼 날 옥죄어 오네요.

세실이 왜 저러는 지는 며칠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이제와 생각하니 코코, 당신의 고견을 듣는다면 조금 도움이 될까 싶기도 하지만 당신의 연애사를 방해하고 싶진 않군요.

며칠 당신이 준 책 〈햄릿〉 을 읽으며 집필실에서의 저녁시간을 때우고 있을테니, 돌아와서 답장을 주세요, 나의 친애하는 벗.

내가 당신을 얼마나 의지하는 지 알면 당신은 갑자기 어깨가 무거워질지도 몰라요.

연초록달의 막바지에.

-혼란 속에서, 당신의 아치

* * *

나와는 달리 달콤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코코에게.

언제나 사랑스러운 당신이지만, 내게 이런 책을 줄 때면 정말 상자를 뚫고 가 천 번의 키스라도 날리고 싶은 심정이 됩니다. 참 이상한 일이에요. 어떻게 당신은 이렇게 늘 시의적절하게 내게 걸맞는 책을 줄까요?

혹시 앤 셀린 작가의 원고에 ‘이 시기에 아치볼트 왕자는 먼 타국의 햄릿 왕자처럼 죽느냐 사느냐보다 더 심한 고뇌를 시작한다’ 라고 적혀있기라도 합니까?

사실 요즘 난 머릿 속이 꽤 복잡했었거든요. 엉킨 실타래를 책상 위에 던져두고, 언젠가는 풀어야하는게 분명한데 지금은 풀고싶지 않다고 말해놓고서는 계속해서 쳐다보고 있는 심정이었지요.

이런 때에 함께 고뇌하는 벗을 만나는 것은 참으로 기쁜 일입니다. 세상에 나와 같은 사람이 나 혼자만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지요.

그 벗이 나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를 끌어안고 처절할 정도로 우유부단하게 구는 꼴을 보는 것은 더더욱 위안이 되고요.(네, 햄릿 왕자는 좀 한심해요. 그래서 더 인간적이긴 하지만요.)

이 말만 들어도 내가 코코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악의 하나 없이 착한 사람은 아니란 걸 알겠죠?

날 이렇게 만든 것은 당연히 에드위나 공주의 아들, 플로리안 녀석입니다

요즘 전 플로리안 때문에 계속해서 세실과 긴장을 유지하며 대치 상태예요.

밝은 면을 바라보자면 우리가 처음에 그렇게 우려하던 세실이 붉은 머리 남자애를 죽이려고 기를 쓰는 일은 절대로 벌어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오늘만 해도 그래요.

오늘은 세실이 처음으로 플로리안을 데리고 검술을 가르치기로 한 날입니다.

플로리안은 세실의 사슬갑옷을 빌려입고 온 모양인데, 세실보다는 훌쩍 키가 크고, 사내녀석이 근육 하나 없이 마르기만 한 터라 헐렁한 것이 귀엽긴 참 귀엽더군요.

전 당신이 권하신대로 유심히 그를 관찰하기 위해 연무장에 나가 그들이 검술 수업을 하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런데 이건 검술훈련이 아니라 거의 연애더군요. 나와 겨룰 때는 틈만 나면 땅바닥에 나를 꽂아넣곤 하던 세실이 그애에게는 어쩜 그렇게 살랑살랑 산들바람처럼 부드럽게 가르쳐주던지, 세실이 말 한 마디를 던질 때마다 꺄르르 웃으면서 초롱초롱한 눈으로 내 누이를 쳐다보는 플로리안의 얼굴은 또 왜 그렇게 정겹던지 살짝 질투가 날 정도였어요.

참 이상한 일이죠. 세실이 누구와 친하다고 그것을 질투한 적은 단 한번도 없는데 말예요. 어쨌든 그렇게 그들을 두시간여 지켜보았을까, 이제 슬슬 훈련이 끝나고 그애의 흰꽃처럼 창백하던 얼굴이 붉어지고 머리카락에 대롱대롱 땀방울이 고일 무렵, 전 그애에게 물이라도 끼얹어주러 갔죠.

가끔, 이렇게 더운 여름 세실은 제게 호통을 치며 하는 일이 없으면 물이나 가져오라고 말하며 사슬갑옷을 집어던지거든요.

그래서 평소처럼 아무렇지 않게 물을 끼얹으려고 하는데, 세실이 저를 확 밀치는 거예요.

그 바람에 물은 땅에 엎어졌고, 뭘 또 놀란건지 플로리안은 꺄악 하고 징그러운 벌레라도 본 것처럼 소리를 지르고 땅바닥에 엎어지더라고요. 세실은 또 얼른 다가가 괜찮냐고 그 애 엉덩이를 털어주고손바닥을 살펴봐주고 유난도 그런 유난이 없더군요.

아니, 아무리 검술 스승과 제자 사이라고 해도 그렇지 다 큰 남자애의 엉덩이를 털어주는 건 좀 그런 것 아닙니까? 보다 못한 제가 내가 해주겠다며 다가가 털어주려 다가갔습니다.

그런데 그애는 내게 뭐 싫은 감정이라도 있는 것인지 또 경기를 일으키며 뒷걸음질을 치는 겁니다. 세실은 또 저를 보고 ‘꺼져, 아치. 이 한심한 놈.’ 하고 버럭 소리를 지르고요.

코코, 사실 전 태어나서 이런 취급은 처음 받아봐요. 당신이 언젠가 말했듯 난 행운을 타고났죠. 나도 알아요. 그래서인지 남자든 여자든 언제나 내겐 친절하게만 대해줬습니다. 나 역시도 그들에게 그만큼 친절을 되돌려주려 노력했고요.

당신이 세실처럼 나를 한심에 하셔도 할 수 없지만, 그땐 갑자기 인생에 깊은 회의감이 들더라고요. 내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셔츠를 벗기려 하다 저애를 창문에서 떨어뜨린 게 그렇게 큰 상처를 주었나 하고요. 그래서 내딴에는 좀 더 잘해주려고 해봤습니다.

그애가 변변찮은 사슬갑옷 하나 없는 것이 안타까워 옷을 맞춰보려고 했지만 또 기겁을 하고 저를 피했고요,

숲속보다 훨씬 더울 아를리궁의 날씨에 힘들어하진 않을까 하여 윈저튼 왕가만 즐길 수 있는 호수로 데려가 수영을 즐기려 했더니 그것 역시 고개를 도리질 치며 절대 안된다고 하지 뭡니까?

그래도 재밌을 것이라고, 가자고 손을 잡으니 ‘세실리아 공주님!’ 하고 벌벌 떨면서 내 누이를 부르는데, 누이는 뭐 아시죠. 또 이렇게 말했죠.

“꺼져, 아치. 이 한심한 놈아.”

전 이제 제 이름이 아치 앨버트 윌리엄 뭐시기인지 꺼져 아치 이 한심한 놈아 인지 헷갈릴 정도입니다. 문제는 이 녀석이 더 이상 밉지 않다는 거예요. 소리지르며 도망가는 모습도, 그러다가도 얼른 다가와 당신과 나의 마법상자가 있는 집필실에 들어와보려 빼곰히 고개를 들이미는 꼴도 보기 싫지가 않아요.

그저 궁금할 뿐이죠. 내 이성은 계속해서 그애를 비밀을 파헤쳐야 한다고 하며, 다른 한 쪽의 나는 그냥, 어서 그애의 마음을 얻어내라고 말합니다. 내 옆에 선 시종장 에드문드는 비실비실 웃음을 흘리며 말을 보태지요.

“왕자님, 모든 사람이 왕자님을 사랑할 수는 없다는 걸 얼른 인정하세요. 저를 포함해서 말입니다.”

네, 코델리아. 재수없게 들리겠지만 난 세실을 제외한 누군가에게 이렇게 미움을 받아본 것은 처음이에요!

연초록달의 마지막날에

-총 세 사람에게 미움받는 아치가.

* * *

한심한 나의 왕자님.

당신이 늘 내게 영민한 나의 벗이라고 말씀하셨죠?

하지만 날 추켜세워올려주시는 그 말에 붕 떠서도 난 알고 있어요.

당신이 나보다도 훨씬 똑똑한 분이시라는걸요.

네, 아는데요. 지금은 약간 그 사실이 의심스러워지는 순간입니다.

앤 셀린 작가님의 원고까지 가지 않고 당신의 편지만 보아도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너무도 잘 알겠는데, 왜 왕자님만 모르세요?

바로 알려드리면 재미없으니 저는 그저 입을 꾹 다물고 아치,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한심한 순간을 지켜보겠습니다.

자주 편지해주세요. 플로리안과 있는 모든 일을 빼먹지 말고 제게 고하시고요.

연초록달의 마지막 날,

-친구란 가끔은 서로를 약올리는 맛도 있어야한다고 믿는 코델리아.

추신: 리암과의 여행은 마크와 달리 즐거웠어요. 〈햄릿〉을 보고 나오자 마자 그는 내게 물었죠. “무슨 장면이 제일 좋았어요?” 전 바로 대답하는 대신 하나, 둘, 셋 하면 이야기해보자고 했어요. 물론 우리는 같은 장면을 꼽았죠. 그 장면을 저와 리암만의 비밀로 하는 대신, 왕자님께는 다시 햄릿의 대사 한 줄을 보내드릴게요. “가슴이 미어터져도 입을 다물어야 할때가 있다.”

네, 저도 지금 그런 심정이랍니다! 노력해서 직접 답을 찾아봐요, 나의 영민한 아치.

* * *

나의 친애하는 조언자 코델리아 양께.

자, 나도 거리를 두려 이렇게 불러봅니다.

우리의 우정에 기대는 대신, 사무적으로 부탁해본다면 당신이 내 청을 들어주실까봐요.

당신이 눈치챘다는 플로리안의 비밀이 대체 뭡니까?

오늘 전 결국 그애를 울려버리고 말았어요.

어제까지만 해도 일은 잘 돌아가고 있었는데 말이에요.

그애는 참으로 신기한 것이 매일같이 나를 졸졸 따라다녀요. 꼭 노엘이 어렸을 때처럼 ‘아치 왕자님, 아치 왕자님’ 하고요. 그러다가 갑자기 기겁하며 나를 피할 때만 빼고는 그렇게 살갑게 굴 수가 없지요.

내가 아주 사소한 것을 가르쳐주거나 말할 때에도 그애는 초록색 눈을 빛내며 이렇게 말합니다.

'아치 왕자님, 저 왕자님이랑 이런게 꼭 하고 싶었어요. 꿈만 같아요.’

그저 정원을 안내하거나 나의 말 셜록에게 먹이를 주고, 차를 마시는 일일 뿐인데도 그렇게 좋아하는 표정을 지으니...

그런 그애를 보면 괜히 가슴이 저려올때도 있습니다. 아주 작은 새끼 강아지가 낑낑거리는 것을 볼때처럼, 내가 그애의 세상 전부가 된 기분이 들지요.

오늘도 그렇게 좋은 기분으로 플로리안을 관찰해 당신께 서신을 쓰려한 참이었습니다.

오늘부터는 춤을 가르쳐주기로 약속했거든요. 너무 더운 날씨 탓에 맥이 빠질까, 우린 궁에서 나와 좀 먼 곳까지 말을 타고 갔습니다.

수도원 반대방향으로 이어지는 숲으로 가는 길에, 작은 동굴이 하나 있는데, 그곳은 한 여름에 가도 선선한 바람이 불어 가끔은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거든요.

아무도 알지 못하는 고요한 동굴 속으로 휑하니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그곳에 서서 그애와 나는 한참을 같이 춤을 췄어요. 코코 당신도 알다시피 어려서 신부수업 때 세실과 배운 스텝은 여자들의 것이었기에 전 플로리안의 춤선생으로서는 아주 안성맞춤이었지요.

하지만 여자 역을 해주겠노라 남자 스텝을 밟으라 했더니 그애는 괜찮다고 자기가 여자 쪽 스텝을 배우겠다고 했습니다. 지난번에 세실에게 검을 배우겠다고 할 때도 그렇지만 참으로 쓸데없는 고집이 없는 좋은 녀석이에요.

저는 그런 흐뭇한 마음으로 한참 플로리안의 손을 잡고 춤을 가르쳐주었죠. 초록색 눈이 동굴 밖의 이파리들을 담을 때는 정말이지 이 세상이 온통 초록인 것 같아 참 예쁘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코델리아, 당신의 초록빛이라는 눈도 이렇게 틈 하나 없는 녹색으로 채워지곤 할까요? 그런 것들을 궁금해하고 있자니 절로 부드러운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그렇게 한 두시간이 지났을까, 바깥에선 갑자기 폭우가 내렸죠. 지나가는 비라 여기고 한참을 기다려봤지만 밖은 어둑해지고 세차게 내리는 비는 그칠 줄을 모르더군요.

으슬으슬하는 몸을 덮쳐오는 싸늘함에 저는 곁눈질로 플로리안의 상태를 확인했습니다. 가벼운 흰 셔츠 한장만 걸친데다 그렇게 말랐으니 나보다 훨씬 더 추위에 민감할 것이 분명했으니까요.

“춥습니까?”

“괜찮아요.”

뭐 그런 예의바른 대화가 이어지고 나서 아무래도 그애 몸이 떨려오는 것 같아 저는 그애를 얼른 끌어안았지요.

그애는 주인에게 잘못 안긴 고양이처럼 잠깐 버둥거리더니 이내 잠잠해지더군요.

“남자끼리 끌어안는다고 싫어하실 성격은 아니란 걸 압니다, 플로리안.”

제가 이렇게 말하니 플로리안이 말없이 저를 빤히 쳐다보다가 갑자기 더 안겨오더군요. 어미 품을 파고는 새끼 양처럼요.

코델리아, 당신은 웃고 계실지도 모르겠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그러지 않다간 감기라도 걸려버릴 싸늘함이 동굴 전체에 감돌고 있었거든요.

그렇게 한참을 있었을까 그애가 먼저 말을 꺼내더군요.

“이제 가요, 왕자님. 비가 멈추지 않겠어요. 더 지체하면 어두워질 거예요.”

코코, 당신 말대로 사실 제가 바보는 아니니, 저 역시도 그간 플로리안을 관찰하며 열심히 추리한 바가 있답니다.

물을 끼얹으려고 할때에도 호수에 들어가려 할때에도 그애는 무서워하며 뒷걸음질을 쳤죠.

무언가 숨기고 싶은 것이 있을 것이다, 그게 물에 관한 것일 거라는 게 내 결론이었고요.

그래서 난 조심스럽게 그래도 되겠냐고 물었습니다.

그애는 내 속마음이라도 들여다보겠다는 듯이 가만히 저를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더군요.

“네, 왕자님. 그냥 말을 타고 달려요. 그리고 아를리 궁에 멈추면 나를 쳐다보지 마세요.”

정말이지 물을 맞으면 발현되는 흑마법이라도 걸린 걸까 하는 생각을 하며 나는 그저 알겠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플로리안의 표정이 제법 결연했으니까요.

그래서 우린 비를 맞으며 말을 타고 달렸죠. 플로리안은 빗길에 미끄러질까 싶어 나를 꽉 끌어안으라는 주문에 성실히도 응해, 내 등은 차가울 새도 없었어요.

그렇게 무사히 궁에 도착하고 나서, 나는 약속대로 그애를 보지 않았습니다.

그저 종종걸음으로 걸어, 자기 방으로 들어가는 소리만 들었지요.

그 날은 그렇게 아무 탈 없이 끝나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다음날 바로 난 또 내 새로운 풀네임을 들었죠. 네, 세실이 찾아와서 저를 꾸짖었던 겁니다.

“아치 이 한심한 놈아.”

...라고 말하면서요. 오늘은 또 대체 왜 그러냐고 묻자 세실은 몸도 약한 녀석을 왜 비오는 데 멀리까지 데려간 거냐고 저를 타박하더라고요.

플로리안 얘기라는 걸 깨닫고 그애가 몸이 약한지 강한지 내가 어떻게 아냐고 묻자, 세실은 말을 좀 더듬다가 그냥 보면 모르냐고 말합니다. 그리고 또 나의 이름을 부르지요.

“꺼져, 아치 이 한심한 놈아.”

“..세실, 여긴 내 방인데?”

세실은 얼굴이 욹그락 붉그락 해지더니, 다시 제게 소리를 치더라고요.

“그래도, 꺼져, 이 한심한 놈아.”

내 누이에게 욕에 관한 창의성을 길러주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착한 남동생 답게 원하는 대로 내 방에서 나왔습니다. 그때까지도 내리고 있던 비를 보고, 빗물에 흠뻑 젖어 오들오들 떨던 플로리안의 모습을 생각했지요.

한 번 괜찮은지 살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그애 방에 갔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시종 하나 붙어있지 않은 그애는 땀에 흠뻑 젖어 끙끙대며 잠들어 있더라고요.

이마가 불덩이 같았고 입고 있던 옷은 벌써 축축해져 있었습니다. 얼른 뽀송한 옷으로 갈아입히고 물수건이라도 얹어주어야 겠다 싶어 그애의 셔츠를 위로 올리려했어요.

그런데 그애가 그러는 겁니다.

“제발 그러지마요. 아치, 왜 이렇게 나를 괴롭게 해요?”

...그애는 울먹이면서 그렇게 말하더군요.

난 그냥 조용히 방문을 닫고 나왔어요. 다시 세실을 찾아 사정을 설명하고, 물수건을 대령하고 이럴 때 필요한 치유마법 주문을 써주었지요.

그게 다입니다, 코델리아.

플로리안은 대체 왜 그렇게 나를 싫어할까요?

나는 뭘 잘못한거죠?

아픈 그애가 울면서 나를 보는데, 그것이 왜 이렇게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겁니까?

코델리아, 부디 대답해주세요.

초열달의 첫 날,

-조금 쓸쓸해진 당신의 벗, 아치

========== 작품 후기 ==========

독자님들께.

여러분은 1분 전에 가필이 완성된 쌩 초고를 보고계세요.....

수정이 서툴어도 눈이 어두운 작가를 너무 탓하지 마시고 오타와 오류 지적은 감사히 받겠습니다.

부디 꺼져, 이 한심한 놈아 라고는 하지 말아주시길 바라며,

추신: 선작과 추천, 코멘트 모두 정말 감사합니다.

추신2: 드디어 작중 7월이 왔네요. 7월의 또 다른 이름은 초열달이라고 초열달이 끝난 지 하루 지나 말하게 되는 것이 괜히 안타까워요. 독자님들은 모두 줄거운 열매달의 시작이 되시길 바랍니다!

<--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