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내일 다시 하자니, 대체 무엇을 하자는 것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공주님, 그게 무슨 이야기냐 호통도 치지 않고 물끄러미 황자님 얼굴만 바라보시더군요. 답답한 내가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무슨 소리예요, 황자님? 무엇을 다시 해요?”
“불타는 황성이 보이지 않니? 아버지가, 병사들이 언제 여기 닥칠지 모른단다. 너희를 죽이겠지. 죽이거나, 욕보이거나. 오늘뿐이다. 이제 그냥 하자꾸나.”
라이너 황자님은 나를 바라보고 그렇게 말씀하셨지만, 대답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에드위나 공주님인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공주님은 여전히 말없이 서 계시기만 했기에 이번에도 내가 다시 나섰습니다.
“커다란 서책 보관함이라도 만든 거세요? 저희를 어디로 보내주시려고요?”
황자님은 고개를 좌우로 흔드셨습니다.
“아니면 다시 과거로 돌려보내 주실 거예요? 그래요! 제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죠? 우리 그때로 가요. 우리가 다 살아있던 때로요. 힐다 할멈도 틸버트도 멀쩡하던 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에드위나 공주님이 내 어깨를 붙잡으셨습니다. 그만하라는 뜻이었어요. 황자님이 힘없이 웃고 대답하셨습니다.
“둘다 아니란다. 조세핀아.”
“둘다 맞겠지, 라이너.”
“그래에, 내 공간을 바꿀 힘이 있다. 시간을 돌릴 힘도 있고. 그것을 분리하여 시간을 건드리지 않고 너희를 윈저튼으로 옮기기만 할 수 있는 것이 힘들어 이리 지체 했지. 그래도, 그래도 여기 있는 것보다는 낫지 않니? 하자, 하자아 에드위나야.”
그 말이 무슨 뜻인지를 열심히 해석하고 있는 데, 우리 에드위나 공주님, 갑자기 뜬금없이 이런 말을 하시더군요.
“너, 밥은 먹었어?”
“으응?”
“얼굴은 왜 이래? 또 맞았어?”
“아니란다, 원래 좀 이렇게 울긋 불긋 아름답게 생겼지이, 내가아.”
“우리를 보내고, 그럼 넌 어떻게 할거야?”
그제야 에드위나 공주님의 뜬금없는 물음들이 자신을 걱정하는 소리라는 걸 깨달은 황자님께서는 씁쓸히 웃으시며 대답하셨습니다.
“잘 먹고 잘 살겠지 않겠느냐. 에드위나야. 나는 제국의 황자잖니이?”
“그 이야기가 아니잖아. 이걸 해도 너 괜찮겠냐고.”
공주님이 염려하고 계신 건 라이너 황자님의 몸이 이것을 얼마나 오래 버틸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 무렵, 로이틀링엔 인 답게 훌쩍 큰 키의 라이너 황자님은 소년의 티를 벗고 남자가 되어가고 있지만 휘청이는 걸음은 예전보다 더 심하면 심해졌지 나아지질 않았습니다.
그것이 여러번 시간을 돌려댄 탓이라는 건 저도 알 수 있었어요.
아서 길런과 기네비어 이야기를 하던 날, 에드위나 공주님 불호령에 겨우, 시간이 세 번이나 돌아간 것을 알았던 그 때, 제 정신마저 어질어질하여 어쩔 줄을 몰랐었는데, 그런 것을 스무 번을 넘게 경험하시고 잊을만 하면 한번 씩 미친 황제와 1황자의 매질까지 견뎌야하니 황자님의 몸은 건강해질 틈이 없었지요.
그러나 여전히 황자님은 딴청을 부리며 해맑게 웃고만 계실 뿐이었습니다.
공주님은 그분을 한참 노려본 후에야 졌다는 듯이 한숨을 푹 쉬고 물으셨습니다.
“그러니까 라이너 네가 다치지 않는 방식으로 할 수 있다는 거지?”
“그래에, 시간을 함부로 돌리지는 않을거라 너에게 말하지 않았니?”
“그러고도 돌렸잖아. 세 번씩이나.”
“그것은 돌릴 만 하지 않았니? 목숨을 담보로 걸고 너의 입맞춤을 세 번이나 받았으니 되었다. ”
“그것 말고도 또 한참을 돌렸지.”
“그건…. 그건 에드위나야아.”
“알아, 내가 하자고 그랬어. 그땐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으니까.”
“돌리고도 소용이 없을 줄은 나도 몰랐단다. 하지만 우리가 무얼 하든 틸버트는 여전히 혀가 없구나. 여전히 26명은 죽어야 일이 끝나고 말이다. 그게 최선이라는 걸 두 번 돌려보고나서야 안 것은 에드위나, 네 탓이 아니란다.”
“네가 더 아파진 건 내 탓이지.”
영민한 에드위나 공주님과 천재 라이너 황자님의 따님,
기지 넘치는 찰스 웰즐리와 모범생 아델의 아드님,
두 분은 모두 제 서신을 읽는 순간 일이 어떻게 돌아갔는지를 이해하셨겠지요.
네, 우리 공주님은 라이너 황자님과 함께 시간을 돌렸던 겁니다.
이 조세핀이 보지 않는 곳에서 단 둘이서만 은밀히,
모두가 살아있는 세상을 가라며 시계축을 붙잡고 힘겹게도요.
에드위나 공주님이 감자알을 줍지 않았던 세상,
알피어스 경이 레미가 공주님이 아니란 것을 눈치채기 전,
틸버트가 아직 빠른 입으로 말재간을 부리던 시절로 말입니다.
그러나 두 사람이 어떻게 한 들 우리의 불행은 계속되었으며 라이너 황자님이 에드위나 공주님을 살린 것같은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레미는 죽었고, 26명의 윈저튼 사람들도 죽었습니다. 어떤 때에는 그보다 더 많은 사람이 죽었고, 더 큰 비극이 우리를 찾아왔습니다.
그 일을 두 번이나 함께 하신 후에야 두 분은 결심하셨지요. 그냥 처음처럼, 감자를 줍고, 목이 잘리는 레미를 울며 지켜보고, 그외에 모든 사람들이 겪는 참극의 목격자가 되기로요.
그렇게 해서 저와 몇몇 사람들은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습니다. 운명을 가지고 놀아보려 했던 우리 공주님과 라이너 황자님에게는 목숨 여럿을 두고 저울질을 해보았다는 죄책감이 천형처럼 따라붙었고요.
둔하기 짝이 없는 저는 또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그 말을 듣고나서야 밀려오는 기억들에 정신이 아득해졌습니다. 지독한 비극들이 내 머리를 비집고 들어오는 것에 놀러 그만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지요.
에드위나 공주님이 얼른 와서 나를 부축하셨습니다. 그리고 라이너 황자님을 보고 말했습니다.
“네 목숨이 더 깎일 일은 없을거야, 그렇지?”
“그럼, 내 오래 살아 윈저튼의 왕좌에 오른 너에게도 찾아가보마. 시간의 축을 건들지 않고 너희를 옮겨보마.”
“내가 왕좌에 오를 일은 없어 이 멍청아. 그리고 너, 제대로 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해?”
“공간이 움직이면 시간의 축도 돈단다. 어쩌면 조금은 더 먼 미래로 갈 수도, 아니면 과거로 돌아갈 수도 있겠지. 그러나 너희들은 어쨌든 윈저튼에 떨어질 것이란다. 내게 있을 손실은 기껏해야 하루이틀일게다. 그걸로 충분하지 않겠니?”
에드위나 공주님이 그 말을 곱씹어보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어차피 지금 이 상황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없었으니까요.
“언제 할거야?”
“빠르면 빠를 수록 좋겠구나. 그렇지 않니?”
“다음 주쯤?”
“내일, 아니 오늘밤으로 하자.”
“...괜찮겠어?”
“그러엄, 에드위나야. 내 내세울 것은 빛나는 미모와 시공을 다루는 능력 뿐이란다.””
“바로 죽어버리는 건 아니겠지?”
라이너 황자님이 피식 웃으셨습니다. 그 모습이 전에 없이 어른스러워보였습니다.
“내가 설마 너를 죽일 짓을 하겠니?”
“아니, 나 말고 라이너 폰 로이틀링엔, 너. 지금 상태가 별로 안 좋아보여서 그래. 뭣하면 며칠 미뤄도 괜찮아.”
라이너 황자님이 웃으며 대답하셨습니다.
“며칠? 그 사이에 네가 죽으면, 네가 여기서 죽으면 나는 죽는다. 에드위나야. 이러든 저러든...”
거기까지 말하고 정말이지 죽을 듯이 기침을 하시더니, 숨을 몰아쉬고 라이너 황자님이 말을 계속 하셨습니다.
“이러든 저러든 죽겠구나. 그러니 해보자.”
“라이너-”
“에드위나야, 나는 말이다.”
좀처럼 우리 공주님의 말을 끊으시는 법이 없는 라이너 황자님께서 말을 가로채어 말하다 말고 주저앉았습니다.
“나는.. 나는 너를 귀애한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네가 없이는 내가 못살겠다.”
그 절절한 고백을 보고도 우리 공주님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으시고 입술만 깨무셨지요.
“그런데 왜 보내주려고 하는데?”
“어디든 네가 살아있으면 그건 네가 없는게 아니지 않니? 내가, 내가 다시 너를 찾아가마. 살아있으면 언제든 찾아가면 되지 않겠니?”
다시, 사내다운 웃음을 지으시는 라이너 황자님을 보고 나는 저 분이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정말이지 간절히 했던 것 같습니다.
조금 더 오래 살아서, 더 나이를 먹고, 더 어른이 되어서, 저 소년같은 웃음이 나이 드는 것을 보고싶다고요. 에드위나 공주님 역시 나처럼 생각하셨던 걸까요? 물끄러미 황자님을 쳐다 보시더군요.
“라이너야.”
“왜 에드위나야.”
“잘 지내라. 그만 처 맞고 다니고.”
“여자애가, 아니 사람이 그게 말투가 뭐니?”
“그래. 그렇게 말해야 좋은 여자도 만나지. 내가 말했나? 너는 참 특별한 사람이야.”
“왜, 왜 너 답지 않게 칭찬을 하고 그러니?”
“특별한 사람이니까, 그걸 알아볼만한 좋은 사람을 만나서, 그동안 받지 못한 사랑을 받아.”
난 알고 있었어요. 서두도 없이 덜컥 본론만 꺼내곤 하시는 성격 급한 우리 공주님이, 지금 처음으로 라이너 황자님의 마음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시고, 생각하시고, 거절하고 있다는 것을요.
그것이 애초에 연애감정이란 것이 없으셔서 였는지, 아니면 두분의 사이가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사이이기에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요.
라이너 황자님이 맹한데는 있지만 공주님 눈치만큼은 누구보다 잘 살피는 분이니 아마 그게 무슨 뜻인지는 알았을 겁니다. 그러니 그렇게 말씀하셨겠지요.
“에드위나야. 그 다음은 말하지마라.”
“아니, 말할래. 라이너, 우릴 도와줘서 정말 고마워. 너와 같이 있어서 정말 좋았어. 그리고 나는..”
“에드위나야아, 제발”
“나는 너를 사랑하지 않아.”
“너 그러다 내가 다 안한다고 하면 어쩔려고 그러니이.”
“그럼 뭐 여기서 너랑 죽어야지.”
“밉다, 에드위나야. 너는 말 하나는 정말 잘한다. 내가 그러지 못할 걸 알면서어. 알면서 그런다.”
“울지마, 라이너.”
“말해지 말래두우 굳이 그런다. 굳이. 왜 마지막인 것처럼 그래서 굳이 내 눈물을 보려하니이.”
이미 모두 알고 있는 것, 게다가 이루어질 수도 없는 것, 그 실연이 뭐가 그리 슬프시다고 라이너 황자님은 또 눈물을 뚝뚝 흘리십니다. 그런 황자님에다가 대고 우리 공주님은 다만 씩 웃을 뿐입니다.
“울지마. 잘된 일이야. 어차피 우린 안될 사이잖아.”
“왜? 내가 멍청하구우, 모자라서어?”
“아니, 너는 로이틀링엔의 황자고, 나는 윈저튼의 공주잖아. 그것도 까먹었어?”
“아, 맞다. 그렇지이.”
그렇게 말하고는 라이너 황자님은 울다 말고 웃습니다. 에드위나 공주님은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드셨지요.
“이제보니 네가 멍청해서 안될 것 같기도 하다. 라이너.”
“그래, 그럼 내가 로이틀링엔의 황자고 네가 윈저튼의 공주라는 사실을 안 까먹으면 나를 좋아해주련?”
“꿈도 꾸지마.”
그렇게 너스레를 떠는 공주님의 앞에서 셋이서 웃던 것이 이야기의 마지막이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일은 그렇게 쉽게 되지 않았습니다.
그날 저녁 늦게 에드위나 공주님은 우리 모두를 모아놓고 짐을 싸라 일렀지요. 달이 별궁 한 가운데에 뜰 때, 라이너 황자님이 오신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삐걱 하는 소리와 함께 별궁 문이 열렸지요.
라이너 황자님은 언제나처럼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들어오셔서, 우리 공주님의 가는 팔에 잘 어울리는 세 개의 팔찌를 끼워주셨습니다. 금색과 은색, 오래된 장밋잎 색의 팔찌 세개가 찰랑 거리는 소리를 내며 공주님의 손목안으로 들어가 한데에 엉켰습니다.
“하나는 시간, 하나는 공간, 그리고 하나는.”
“내 마음이지, 에드위나야.”
“마지막까지 헛소리 할래?”
그런 구박을 받으며 라이너 황자님은 별궁 한쪽에 커다란 원을 그리셨습니다. 원 안에 우리 사람들이 들어간 후, 공주님이 팔찌를 돌리면 된다는 간단한 계획이었지요.
“윈저튼에 도착하면 황제에게, 우리 아버지에게 서신을 보내거라.”
“무슨 서신?”
“너를, 너를 일찍 보내주어 고맙다고.”
“일찍이라니? 벌써 몇년 째 내가 여기 있는데?”
“그냥 그렇게 한 줄만 쓰거라. 그 뒷 일은 내가 알아서 꾸미겠다.”
에드위나 공주님은 그 말을 곱씹으며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는 사이, 라이너 황자님은 우리 윈저튼 사람들을 하나씩 하나씩 끌어안으셨습니다. 이제 말이 없어진 틸버트 역시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 오랜만에 우리를 방문했지요.
웃으며 시작한 인사는 종국에는 결국 눈물 바람으로 끝났습니다. 물론 제일 먼저, 누구보다 많이 우신 것은 또 라이너 황자님이셨답니다.
그 눈물은 에드위나 공주님과 마지막 인사를 할 때쯤에 절정이 되었습니다. 우리 공주님, 눈물이 퍽도 없으신 분이란 얘기를 제가 했나요? 집밖으로 쫒겨난 애처럼 소리도 못내고 눈물만 뚝뚝 흘리는 황자님이 가엽지도 않은지, 공주님은 메마른 눈으로 말했습니다.
“그렇게 울다가 안 보내주겠다 하겠다, 너.”
“아니다아, 에드위나야. 얼른 보내주련다.”
“울어서 퉁퉁 부은 눈에 뭐가 보이긴 하겠어? 제대로 되긴 하는거야?”
“사실 잘 모르겠단다아.”
“그런데 무슨 배짱으로 오늘 하겠대?”
“널 더 보겠다고 질질 끌었다가 네가 그만 죽으면 어쩌니?”
“그러게 말이야. 네 꼴을 보아하니 오늘 못 가고 이러고 있다가 여기서 죽겠네.”
“아니야아. 지금 보내줄게. 나는 네가 가는 게 좋다. 정말이야. 안 보내주려고 우는 것이 아니란다.”
그때, 에드위나 공주님께서 황자님의 손을 잡으셨습니다.
“그럼 울지마. 마음 아프니까.”
“내가, 운다고, 어디 네가 마음 아파할 애니이?”
너무 울어 딸꾹질을 하면서도 그렇게 투정 부리는 라이너 황자님에 우리 모두는 눈물을 닦을 새도 없이 웃었던 것 같습니다.
“아냐. 마음 아파.”
“…정말?”
“그럼, 그렇게 우는 꼴을 우리 조세핀이며 윈저튼 식솔들이 봐주고 있잖니? 이 애들 눈이 썩어날까 마음이 다 아파온다. 빨리 눈물 닦아.“
“알았다아, 알았어. 마지막까지 나를 그렇게 구박하니이? 에드위나야, 눈물을 멈출테니 약속해다오. 윈저튼에 도착하면 아까 그.. 말한 그 편지를 보내구우.”
“알았다, 알았어.”
“그리구우, 내게도 편지를 써주겠니?”
“그래, 써줄게.”
“정말로 써주련?”
“아니. 편지 같은 거 쓰는 취미 없어.”
“에드위나야, 너어 정말 못됐구나아.”
“맞아.”
“그래두우 가끔 여기 있을 때처럼 포도, 감자, 사과 같은 말이라도 써주련?”
“그래, 까먹지 않으면 쓸게.”
“그렇게 말하구 다 까먹을 거 아니니?”
“어떻게 알았어?”
다시 눈을 흘기는 라이너 황자님의 눈에 서러운 기가 비치더니 또 눈물이 돕니다. 지켜보는 우리 윈저튼 사람들은 모두 황자님처럼 얼굴 전체가 눈물범벅입니다. 모두가 다 같이 모여 한 번더 끌어안고 별궁 전체를 눈물바다로 만듭니다.
그러는 동안에도 혹시 누가 들을까 우리는 숨죽여 울음소리 하나 내지 못합니다. 끝없이 계속 될 이 지루한 이별을 끊을 사람은 언제나 냉정하신 우리 공주님 뿐입니다.
“라이너, 이럴거면 그냥 내일 오지 그랬어?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거야?”
“너는, 너는 정말루우 정이 없다, 에드위나야. 내가 그립지도 않겠니?”
“정이고 뭐고, 이제 정말 가야해.”
“그래에, 알았다. 내가, 내가 너를 찾아가마. 내가 언젠가는 너를-”
“라이너.”
“왜 그러니?”
“찾아오지마. 우리는 영영 보지 않는게 좋은 사이야. 그러니까 지금 잘 봐둬.”
고개를 숙이고 눈물만 뚝뚝 흘리던 라이너 황자님의 새침한 얼굴을 우리 공주님이 박력있게 양 손으로 감싸쥐십니다.
“싫다, 찾아가겠다. 너를 찾아가, 너의 아서 길런이 되련다.”
“됐어. 눈물이나 닦아.”
공주님이 황자님의 얼굴을 그러쥔 채로 양 엄지손가락으로 눈물 범벅이 된 얼굴을 마구 부벼 훔쳐 주자, 라이너 황자님이 고개를 비틉니다.
“따갑다, 에드위나야.”
“나 좀 똑바로 봐. 라이너.”
“싫다아, 에드위나야.”
“왜?”
“지금 그렇게 보라고 하면 이게 마지막일 것 같잖니. 나는 너를 보내고 또 갈 건데, 가서 언젠가 너를 볼 건데에.”
그렇게 어린애처럼 칭얼거리는 라이너 황자님의 얼굴을 양손으로 고정한 채, 우리 공주님은 그 근사한 이마에 쪽, 입을 맞추십니다. 놀란 황자님은 그제야 공주님을 올려다보셨지요.
“그래, 라이너. 이게 마지막이야.”
“에드위나야.”
“아프지마. 편지는 안할거야. 그러니까 알아서 잘 살아.”
“내가, 내가 다시 찾아갈테다. 모든 것이 해결되면 다시 찾아갈게. 그때까지 살아있어주련? 그때는 나를 사랑해주련?”
냉정한 우리 공주님, 그 말에도 꿈쩍도 안 하시고 그저 웃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나도 네가 그리울 거야, 라이너 폰 로이틀링엔.”
결국 황자님의 눈에서는 다시 눈물 한방울이 그림처럼 떨어집니다. 우리 공주님도 참 너무 하시지, 나라면 저 마지막 말을 영원히 잊지 못하겠다 같은 생각이나 하며 나는 천천히 윈저튼으로 이동할 준비를 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덜컹덜컹 하고 굳게 닫힌 별궁의 문고리가 흔들립니다.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미친 황제가 별궁의 닫힌 문을 부수고 들어옵니다. 우르르 병사들이 들어옵니다.
“가!”
병사들을 온몸으로 막아 선 채 라이너 황자님이 소리쳤습니다.
황제가 황자님을 쓰러뜨리는 소리가 납니다.
나는 공주님을 저만치 밀고 병사들과 황자님 사이에 섭니다. 틸버트가 그런 내 옆을 지킵니다. 공주님은 팔찌를 쥐고, 시녀애 손을 잡습니다. 그 손을 또 다른 시녀애가 잡고 모두들 열심히 달려 기어코 황자님이 그려두신 원 안에 들어갔습니다.
이제, 나만 들어가면 될 차례입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너무 느립니다. 내 뒤를 쫒아오는 병사들의 기세가 무섭습니다. 기어코 원 앞까지 온 내가 미끄러지자, 옆에 있던 틸버트가 나를 일으켜 세웁니다.
공주님은 이제 팔찌를 붙잡습니다. 틸버트가 나를 감싸안고 원안으로 뛰어듭니다. 환한 빛이 우리를 감쌉니다. 라이너 황자님의 신음인지 비명인지 모를 소리가 들려옵니다. 그 소리를 뒤로 하고 우리는 정신을 잃습니다.
그것이 로이틀링엔에서의 내 마지막 기억입니다.
========== 작품 후기 ==========
사랑하는 독자님들.
드디어 라이너와 에드위나 공주의 이야기가 끝나갑니다.
슬슬 코코와 아치가 보고 싶으시죠? 아주 쪼오오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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