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아치 왕자님.
거기 있어요?
열매달, 여섯번째 날 새벽.
-코델리아.
* * *
코델리아.
그럼요. 여기 있지요.
당신이 분부하신 대로 책상 앞에 앉아 꼼짝도 앉고 있었답니다.
당신만 기다리면서요.
그러니 제발 울지말아요, 코코.
아름다운 이야기잖습니까? 그렇지 않나요?
당신식으로 하면 8월 10일의 달을 보며
-당신의 성실한 벗, 아치 앨버트.
* * *
다정한 나의 벗 아치,
어떻게 울지 않을 수 있겠어요?
레이디 조세핀이 내 이름을 불렀잖아요.
에드위나 공주님이 우리 엄마란 걸 이제야 알게 되었는걸요.
얼굴도 본 적 없는 우리 아빠가, 라이너 황자님이란 걸,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나고 사랑했는지까지 전부 들었는데요.
아, 나는 얼마나 무딘 걸까요?
어쩌다 이제야 눈치챘을까요?
나에겐 이미 단서가 많았는데.
세상에, 에드위나 공주님은 우리 엄마 그 자체예요.
봐요, 어린 딸의 귀를 막고서 지나가는 행인에게 소리를 질러 겁주고 내쫒는 일, 그런 일이야 말로 에드위나 공주님이 할 법한 일 아니었나요?
엄마가 운영하던 고서적이랑 골동품점을 팔던 가게, 정말 말도 안되게 오래된 물건들이 많았는데 그것들 모두, 윈저튼에서 가져온 것들이었을거예요. 그렇죠?
그뿐인가요?
우리 엄마도 피곤할 때면 눈을 꾹꾹 누르는 버릇이 있었어요. 그럴 때면 난 엄마가 화가 났나보다 했지요. 레이디 조세핀이 설명해주기 전까진 그게 울음을 참을 때마다 하는 행동이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어요.
당연하죠. 나는 고작 열 살짜리, 눈치도 없는 꼬마애였을 뿐이니까요. 엄마가 어떤 삶을 살고, 어떻게 아빠를 만나서 나를 낳고 길렀는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칭얼댈 줄만 아는 철없는 여자애말예요.
있잖아요, 아치. 내가 지금 제일 슬픈 것이 뭔 줄 아세요?
어렸을 때 내게 그림책을 읽어주던 엄마의 목소리가 더는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이에요.
엄마는 일이 아무리 고단하고 피곤해도, 밤이면 날 무릎에 앉혀두고 그림책을 읽어주셨어요. 전 보통 어린애들이 그러듯이 언제나 같은 그림책을 가지고 와서는 읽고, 읽고, 또 읽어달라고 엄마를 졸라댔지요.
엄마는 딱 한 번만 더 읽어줄거라고, 더는 조르지 말고 자야한다고 무서운 얼굴로 말씀하시면서도, 책장을 펼치기만 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상냥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지요.
가끔은 그림 하나하나를 가리키며 설명해주기도 했고, 가끔은 그림과 그림 사이에 엄마가 지어낸 이야기들이 더 들어가기도 했어요. 그러니 매일같이 같은 책을 읽어도 내겐 지루할 틈이 없었어요.
그렇게 내게 그림책을 읽어줄 때마다, 엄마는 아빠를 생각했을까요?
그러니까 에드위나 공주님은, 라이너 황자님을 생각했을까요?
〈공주와 기사〉, 그 책은 분명 우리 엄마가 썼겠지요? 우리 엄마는, 앤 에드위나 공주님은, 틸버트에게 삽화를 내놓으라고 윽박이라도 지르셨을까요?
세상에, 라이너 황자님 말이 맞았어요. 엄마는 못됐어요. 아주 못된 사람이에요. 그 이야기를 수백번 들려주시면서 어쩜 단 한번도 나를 앉혀놓고 ‘자, 코코. 이게 엄마와 아빠의 이야기란다’ 하고 말해주지 않은 거지요?
어떻게 그럴 수 있지요? 어떻게 그 모든 이야기를 혼자 삼킨 채 모른 척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있을 수가 있냐고요.
화가 나요. 너무 화가 나서 라이너 황자님처럼 시간을 돌려 엄마를 만나러 가고 싶어요. 엄마를 만나서, 왜 아무것도 이야기 하지 않았냐고 미친 듯이 따지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럴 수 없겠지요. 생각이 그렇게 흘러가는 순간 내 분노는 바로 슬픔으로 변합니다.
레이디 조세핀은 어째서 이 모든 걸 내게 알려주기로 결심한 걸까요? 이제와 알아봤자, 엄마가 더 그리워지기만 할 뿐인데요.
사람들은 슬플 때면 가슴이 무너진다고 말하지요.
왕자님, 그것이 틀에 박힌 비유법이 아니라 진짜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걸 나는 이제야 알았어요. 마음이 미어집니다.
-당신의 벗, 코델리아.
* * *
친애하는 코델리아 그레이 양께.
에드위나 공주님은 분명 아주 행복해하며 당신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었을 겁니다.
어린 당신은 똑같은 책을 수 백번 고쳐 읽어주는 일을 시킨다해도 밉지 않을 만큼 사랑스러웠을테고요.
당신이 그 목소리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하지만 들어보세요, 나의 코코.
한 번도 에드위나 공주님을 만난 적 없지만, 난 상상할 수 있답니다.
당신 어머니는 조용한 애정을 담아 한 자 한 자 천천히 읽어주었을 겠지요.
무서운 장면이라도 나오면 낮게 목소리를 깔기도 하고,
플린이 노엘에게 그랬듯이 그림을 가리켜가며 친절히도 설명도 하고요.
아버지를 닮아 눈물이 많은 당신을 위해 세상에 가득한 비참한 이야기들을 모두 해피엔딩으로 바꿔치기 해놓을 때는 잠깐, 뜸을 들이며 ‘음...’ 하고 망설였을 수도 있겠습니다.
자, 어서 떠올려봐요. 귀찮다고 투덜거리면서도 솜씨 좋게 그런 일을 했을 당신 어머니를 생각하면 부서져 조각난 당신 가슴이 다시 뻐근하게 부풀어 오르지 않나요?
네, 코코. 공주님은 분명 당신을 보며 라이너 황자님을 생각했겠지요. 하지만 그건 쓸쓸함이나 그리움 같은 것이 아니었을 거예요.
두 사람이 고통스럽게 견뎌내어 일궈온 삶의 결실인 당신이 이토록 사랑스러우니, 그건 온전히 기쁨이며 행복이었을테지요.
그러니까 부디, 눈물을 그쳐요.
우리에게는 몇 가지 희망이 있다는 것을 알잖아요, 나의 셜록 아가씨.
앤 셀린 작가가 앤 에드위나 공주이자 당신의 어머니란 것을 안 지금, 당신이 제일 먼저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제일 잘 알고 있지요?
어서 리암을 찾아가 물어봐요.
앤 셀린 작가님이 대체 누구인지, 공주와 기사의 후속을 쓴 것은 또 누구인지요.
-슬픈 당신을 대신해 기민하게 움직이는 당신의 왓슨, 아치 앨버트.
* * *
아치 ‘왓슨’ 앨버트.
내가 우는 건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요?
-코델리아.
* * *
코델리아 ‘울보’ 그레이.
내가 당신에 대해 모르는 게 뭘 것 같아요?
-이제 당신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아치 앨버트
추신: 눈물 자국이나 닦고 궁금해하시는 건 어떤가 정중히 여쭙습니다. 말했잖아요, 코델리아?
당신 글씨는 보통 때에도 해독하기 힘들다니까요. 혹시 편지지를 눈물 닦아 보낸 건 아니죠?
* * *
얄미운 아치 왕자님.
그래요. 당신의 시력을 위해 우는 건 멈춰드리죠.
우리 엄마가 그랬는데요.
세상에 유머와 다정한 말만큼 중요한 것이 없대요.
우습죠. 우리 엄마는 말이 짧고 무뚝뚝한 사람이어서 ‘다정함’과는 거리가 멀었는데, 그래도 웃기긴 제법 웃겼죠.
나한테 설교를 하실 때는 하나도 안 웃겼지만 말예요.
‘코델리아, 물건을 사고 계산을 할 때면 꼭 가게 아주머니에게 고맙다고 말하거라, 버스를 탈 때면 운전 기사 아저씨에게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하렴, 지나가다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면 빙긋 웃거라, 그런 다정함이 우릴 구원한단다. 그게 싫으면 웃기기라도 해봐. 그럼 그 사람들이 먼저 웃겠지.’
엄마보다 아빠를 닮은 나는 웃기기 보다는 다정함에 조금 더 재주가 있지요.
그래봤자 아치, 당신을 이기려면 멀었지만요. 고마워요, 아치. 별 것도 아닌 일에 울고 불고 하는 나를 달래주어서요.
추신: 그렇잖아도 말하려 했는데요. 리암이 실토했어요. 공주와 기사 후속편의 작가는 앤 셀린 작가가 아니라 자신이었고, 이 이상 잘 쓸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대요. 네, 앤 셀린 작가의 정체는 캐내고 말고 할 것도 없었어요. 리암의 정체가 궁금할 뿐인데 아치 혹시 당신 주변에 ‘리암’이란 이름의 시종이나 마법사는 없어요?
* * *
다정한 나의 벗, 코코.
음, 일이 그렇게 흘렀는지는 미처 몰랐습니다.
앤 셀린 작가의 정체를 밝혀내려는 이 왓슨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간 셈이군요.
괜히 당신 마음을 헤집어놓는 일일까봐 제대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난 사실 당신 어머니가 아직 살아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에드위나 공주님이, 세 줄 팔찌와 라이너 황자의 마법에 힘입어 당신이 사는 세계로 가서 〈공주와 기사〉의 작가, 앤 셀린이 된 것이지요. 그리고 당신이 열 두살 되던 해, 또 다시 모종의 이유로 이곳에 건너와야만 했던 거예요. 그리고... 지금도 어딘가에서 리암이란 작자를 이용해 원고를 전달하며 살아계신 거죠.
네, 그것이 나의 엉터리 추리였습니다. 괜한 생각들을 한 거죠. 하지만 코델리아, 한 번 생각해봐요. 우린 에드위나 공주를 잘 알지 않습니까? 당신 어머니의 일이니 당신은 나보다 더 잘 알고있을테고요?
그분이 죽음을 숨기려고 어린 딸을 혼자 두고 사라질 분이신가요?
아니요, 그렇지 않아요. 세상에 어떤 어머니가 당신처럼 사랑스러운 딸을 두고 그럴 수 있겠나요? 나라면 죽기 직전의 단 한 시간도 포기하지 않을텐데요.
다시 한번 리암에게 물어보는 것은 어떻습니까? 그래, 그 재미없는 원고는 리암이 썼다치고요. ‘앤 셀린’ 이란 이름은 어쩌다 지었는지, 그 작자의 정체는 대체 무언지를 캐보세요. 분명 그 안에는 우리가 모르는 어떤 진실이 숨어 있을 거예요.
-당신의 왓슨, 아치 앨버트.
추신: 리암이라, 음, 그렇다면 원래 이름이 ‘윌리엄’인 셈인데 지금 윈저튼에선 그리 흔한 이름은 아닙니다. 이런 말 하면 우습지만 왕족이 선택한 이름은 다른 사람들은 쓰지 못하게 되어있거든요. 네, 나의 위대한 탄생 탓에 모든 아치와 앨버트와 윌리엄들은 이름을 바꿔야만 했죠. 어쩌면 그 자, 이름을 바꾸기 싫어 그리로 도망갔을 수도 있겠군요.
추신2: 그런데 당신, 리암에게 그러지 않았어요? 그 글, 쓰레기라고요.
* * *
이젠 왓슨이 아니라 홈즈라 불러도 될 아치 왕자님.
우리 엄마가 살아계실지도 모른다는 당신의 추리에는 그만 마음이 짠해지고 말았어요. 내 마음을 번잡스럽게 만들까, 그 말을 하기를 주저했다는 말씀에서 더더욱이요. 맞아요. 그런 헛된 희망을 가져봤자 더 큰 고통만 올테죠.
아치 당신은 꽤 영민한 분이잖아요.
엄마의 편지들이 모두 후원자님이 보내주신 거라는 걸 알았을 때, 이웃집 아주머니가 엄마가 오래 전부터 몸이 안좋았었노라고 이야기해주셨을 때, 그 모든 사실을 종합해 엄마가 죽기 직전 날 떠난 거라는 결론을 내리기 까지 내가 얼마나 힘들었을지는 말하지 않아도 짐작하시겠지요?
그러니, 그 이상이 있을 거라는 꿈을 품고 싶지는 않아요.
괜히 리암에게 물었다가 실망만 떠안고 싶지도 않고요.
게다가 오두막집 옆에 에드위나 공주님의 무덤이 있었다면서요.
엄마는... 엄마는 아마 죽기 직전에 아빠의 곁으로 돌아가신 거겠지요.
난 그냥 그렇게 생각할래요.
만약에, 만약에 엄마가 당신의 세계 어딘가에서 살아계신다면...
…아니에요. 이 생각은 하지 않을래요. 그러니 더는 나를 부추기지 말아요, 내 배려심 깊은 벗.
-겁쟁이 코델리아 그레이 올림.
추신: 쓰레기라고 까진 안했어요. 그냥 엄청나게 재미없다고 어떻게 이렇게 재미없을 수가 있냐고만 했죠... 네, 후회하고 있답니다. 분명 상처받았겠지요? 리암 마음을 어떻게 풀어주면 좋을까요?
-갑자기 다시 막막해진 마음의 코델리아.
* * *
별 걱정을 다 하는 코델리아에게.
재미없으면 재미없다고 말해야지요.
그게 뭐 당신 잘못이랍니까?
글이 재미없는 건 쓴 사람의 잘못이지요.
그러게 처음부터 나는 그 작자가 별로 마음에 안 들었다니까요.
계속 그와 만날거예요?
-당신의 “진심 어린” 조언자, 아치 앨버트.
추신: 여긴 아침이 밝아오고 있습니다. 나야, 밤을 새어 편지를 한 후, 한낮까지 곯아떨어지면 그만이지만, 당신 괜찮습니까 코델리아?
* * *
나의 기억력 나쁜 조언자 아치 앨버트.
당신이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것은 마크 아니었나요?
리암은 조심스럽게 다가가는게 좀 더 당신 스타일이라고 했잖아요.
기억 안 나요, 아치 앨버트? 사랑은 좀 더 속삭이면서 어쩌구 그러셨잖아요?
-당신 말을 귀담아 듣는 벗, 코델리아.
추신: 여기도 아침이 밝아오네요. 이제 5분만 있으면 전화해서 열이 불덩이같다면서 오늘은 쉬어야겠다고 말해야하는 시간이에요.
* * *
어쩌면 이제 아침잠에 빠져계실 나의 벗 코델리아에게.
나를 이리 놀리시는 걸 보면 이제 눈물은 아주 쏙 들어가셨나 봅니다.
네, 맞아요. 그랬던 것도 같네요. 내가 당신에게 드린 진심어린 간언을 ‘사랑은 좀 더 속삭이면서 어쩌구’ 라고 기억하고 계신 것은 조금 가슴이 아파오지만요.
어쨌든, 리암을 끊어내실 의향은 없어보이시는 군요. 뭐, 그건 당신이 알아서 할 일이죠. 내겐 라이너 황자가 에드위나 공주님께 드린 세줄 팔찌같은 것도 없으니 당신을 만나러 갈 일은 영영 일어나지 않겠지요. 그저 여기서 ‘어쩌구 저쩌구’ 참견이나 하고 앉아있겠습니다.
그런데 코델리아, 당신 그거 압니까?
난 말 수가 적은 편은 아니고(다 베데르 때문이죠. 친구를 골라 사귀어야 한다는 옛 선인들의 말을 귀담아 들었어야 했는데!) 속내를 숨기는 음흉함을 미덕으로 여기는 사람 역시 아닙니다.
그래도 내 평생 당신만큼 날 많이 말하게 한 사람은 없었어요.
당신에게만큼은 내 모든 속내를 적나라하게 털어놓았지요.
그런데도 요즘은 당신과 멀리 떨어져 오로지 편지만으로만 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이 퍽도 답답하게 느껴집니다. 리암이 그런 앙큼한 거짓말을 했다는 것 역시 이제야 뒤늦게 들었으니 말이지요.
뭘 이렇게 돌려 말하냐고요?
그러니까 다시 한번 마음에 있는 모든 걸 꺼내 솔직히 말해보자면, 좀 더 낱낱이 당신의 일상을 밝혀주길 바란다고요. 하나도 남김 없이, 일초도 빼놓지 않고.
이렇게 간절히 말하는 데도 내 집착에 응해주지 않는다면 당신은 역시 서책보관함에 수북히 편지를 쌓아놓으신 아버지보다는, ‘포도’ ‘감자’ 같은 것이나 보내신 에드위나 공주님과 더 닮은 딸입니다.
-영원히 당신의 필담 벗으로 남을, 아치 앨버트.
* * *
나의 다정한 집착자 아치 앨버트.
당신이 당신답지 않게 집요해지는 순간들을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하자면, 오늘 저녁을 다 쏟아야할걸요?
어쨌든 당신의 당부대로 1초 단위로 오늘의 일상을 이야기해볼게요.
이야기...할게... ... 없네요.
뭐, 그렇죠. 밤을 샌 죄로 평일 하루를 쉬어버린 직장인의 삶이란, 이토록 재미없습니다. 덕분에 퉁퉁 부운 눈에 얼음찜질을 하며, 낮잠을 조금 잤고요.
일어나서는 차갑게 식혀둔 차를 한 잔 마시며 내일 회사에 가서 아픈 척 연기할 궁리를 조금 해보았지요.
그러다 다시 한번 레이디 조세핀의 편지를 읽었고, 당신이 달래준 보람도 없이 한 번 더 울었습니다.
실컷 울고 나니까 배가 고파서 옛 동네에 찾아가서 빵을 먹었어요. 예전에 엄마와 함께 지내던 그 마을에는 엄청나게 커다랗고 결대로 잘도 찢어지는 맛있는 식빵을 파는 가게가 있거든요.
그곳에서 식빵이며, 시나몬 롤이며 스콘을 손에 집히는 대로 사와서, 차가운 방에 앉아 이번에는 뜨끈한 차와 함께 늦은 첫 끼를 때웠죠.
그렇게 설탕과 밀가루로 마음이 가라앉고 나니 슬슬 궁금한 것들이 생기더라고요.
아치, 지난번에 내가 엄마에게 들은 우리 아빠 이야기를 해드렸던 것 기억나세요?
아빠가 엄마 모르는 새에 어마어마하게 많은 편지를 써서, 어딘가에 맡겨두고 언제 찾아보려나 한참을 기다렸다는 이야기 말예요.
그 어딘가라는 것, 아마 에드위나 공주님이 레테 수도원에 버려둔 서책보관함 이야기겠지요? 기사 아서길런은 그렇게 북쪽 성 뒤의 숲으로 떠나서, 언젠가는 에드위나 공주님이 읽어주길 바라며 이 작은 서책보관함 안에 꾹꾹 눌러담을 만큼 기나긴 편지를 썼던 거겠지요?
뒤늦게서야 그것을 본 우리 엄마는 베데르가 편지에 쓴 대로 펑펑 눈물을 흘렸을 것이고,
내가 엄마에게 들은 내용처럼 아빠를 찾아가 끌어안고 입을 맞췄던 거겠죠?
우리 아빠는 거기에 대체 무슨 이야기들을 넣어 놓았을까요?
대체 무슨 내용을 써두었길래 엄마의 사랑을 얻은거죠?
그리고 그 팔찌는요? 우리 엄마가 그 팔찌를 끼고 이곳으로 오게 된 에드위나 공주님이라면, 그 팔찌는 대체 어디로 간거지요?
열심히 엄마가 남긴 유품을 찾아봤지만 팔찌는 커녕 고무줄 하나 없었답니다. 아치 왕자님, 당신이 진정 나의 집착자 노릇을 자청하신다면, 내 작은 부탁도 들어주실 수 있겠죠?
레이디 조세핀에게 제 말을 전해주실 수 있나요?
에드위나의 딸, 코델리아 플로라 그레이가 청하나노니,
부디 서책보관함을 이용해서 우리 엄마와 나누었던 편지들을 제게도 보여달라고요.
8.10. 저녁.
-오늘도 당신의 다정함에 기대며, 코델리아.
========== 작품 후기 ==========
독자님들께.
폭풍같은 사랑이 지나간 자리에 작은 시시덕거림을 들고 왔어요.
라이너와 에드위나 공주님을 좋아해주셔서 정말 기뻤지만, 그래도 다들 아치와 코코를 보고싶으셨지요?
저는 정말 정말 보고싶었답니다.(말많은 조세핀.. 가만안둬...)
원래는 조금 더 늦게, 더 많이 들고 오려 했는데 댓글창에서 다들 울고 계신 것이 마음 아파 급하게 들고 왔네요.
그러니 부디 울지마세요. 댓글창도....번져요.......
추신: 선작과 추천, 정성어린 코멘트와 느낌표, 온점들 모두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추신2: 오타와 비문이 천천히 수정될 예정입니다. 지적 정말 감사합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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