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나의 친애하는 벗, 아치 앨버트 윌리엄께.
그게 당신이었군요.
우리 엄마가 데려온 상처 투성이의 젊은 남자가요.
누군지도 모를 사람을 구해서 병원에까지 데려다 주었다고 우리 엄마의 선행을 칭송하던 이웃 사람들은 곧, 젊은 남자를 차고에 숨겨두고 간병 중이라니 무슨 일이냐며 뒷소문을 퍼뜨렸지요.
어린 마음에 난 그저 그 남자의 정체가 궁금했어요. 엄마의 옛 친구라도 되나, 혹시 아빠는 아닐까 하고 매번 차고 앞에서 기웃거리다 엄마에게 혼줄이 났지요. 그러다 한번은 엄마가 깜빡하고 열어둔 문틈으로 쓱 얼굴을 들이밀었던 것이 기억나요. 금빛 머리를 한 남자가 깜짝 놀라 몸을 일으키는 모습이 보였지요.
제대로 들여다 볼 틈도 없이 엄마의 불호령이 떨어졌지요.
“저리 나가 있어, 코델리아!”
도망가면서도 나는 문틈으로 그 남자를 훔쳐보려 노력했어요.
이미 멀어진 그곳에서는 누워있는 남자의 인영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요.
그런데 그것이 당신이었다니,
내가 당신을 내 집 앞 차고로 보내버렸다니.
아치, 대체 왜 거기까지 거슬러 올라간거예요?
포토벨로에서 날 만나기까지 7년동안은 도대체 무얼 하고 산 거고요?
어서 이야기해줘요 나의 수수께끼 왕자님.
-당신의 아주 아주 오래된 벗, 코델리아
* * -
호기심 많은 코델리아 플로라 그레이 양께.
당신께 아주 고약한 버릇이 하나 있다는 건 내 익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질문에 대한 답을 주는 대신 물음표들로 나를 익사시키는 그 버릇에 응하기엔 나 역시 오늘은 커다란 궁금증을 품고 있답니다.
그래, 모든 것이 제대로 돌아와 당신이 결국 예정된 대로 나를 여기로 보냈다는 것은 알겠어요.
그러나 그 이후는요? 내가 이곳으로 온 이후는 어떻게 되었나요?
당신이 앉아계실 오두막은 안전한가요?
다시 결계의 틈을 비집고 마물이 뛰쳐오진 않았고요?
당신이 흘린 눈물에 엘핀델 숲이 모두 잠기고, 공주의 오두막까지 비에 흘러내려가는 일은 없었습니까?
세실은요?
내 누이가 식량이 떨어졌다며 사냥을 하는 대신에 당신을 잡아 먹으려 들진 않았습니까?
사실 마지막 것이 제일 걱정이네요. 당신과 세실을 단 둘만 두고 떠나오다니,
당신이 날 여기로 보내주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그대로 죽었더라면 눈도 제대로 못 감았을 겁니다.
그래요, 나는 당신의 안위가 몹시 걱정됩니다.
그리고 플로리안으로 사는 삶은 즐거웠는지 역시 묻고 싶지요.
그러니 자그마치 7시간이나 불안에 떨고 있는 나를 안심시켜주세요.
그리고 밀린 이야기들을 모두 해주시고요.
그 이야기를 모두 듣고난 후엔, 나도 여유로운 마음으로 지난 7년 간의 이야기를 들려드리지요.
* * *
아치 왕자님,
어쩜 그렇게 능숙히 대화의 키를 이쪽으로 돌리시나요?
내가 걱정 되어 눈도 제대로 감지 못하고 죽었을 거란 딱한 이야기만 안했더라도, 나는 당신이 정말 얄밉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어쨌든 내 가장 큰 걱정거리였던 당신의 생사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한 참이니, 이게 나 역시 당신의 궁금증을 해결해드릴 때가 온 것 같긴 하네요.
이렇게 편지를 쓰고 있는 걸 보면 알겠지만 아직 세실에게 잡아먹히진 않았어요.
이제 플로리안이 되어 산 지도 두달 째도, 윈저튼에도 슬슬 적응한 참이니 그렇게 걱정하실 일도 없고요.
처음부터 내가 이렇게 여유가 넘쳤던 것은 아니에요.
처음 이곳에 떨어졌을 때, 그건 그리 평온한 착륙은 아니었거든요.
내가 팔찌를 손에 쥐고 상상한 건 별 게 아니었어요.
아치 왕자님이 있는 공주님의 오두막.
결계가 풀려 버린 에드위나 공주님의 오두막.
라이너 황자님과 에드위나 공주님의 무덤 근처.
계속 그 생각만 하고 있었죠.
그런데, 딱 두달 전에도 당신이 그곳에 있었던 것은 미처 생각했지 뭐예요.
빌어먹을 우리 아빠, 그렇게 똑똑했으면 이런 것도 알아서 잘 알아들어먹게 만들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이제와서 그런 생각을 해보지만 그땐, 생각이고 자시고 할 겨를이 없었어요. 불시착한 우주선처럼 내 몸이 수풀 위로 떨어졌어요. 머리를 부딪혔는지 눈 앞이 핑글핑글 돌았고, 정강이는 부서지기라도 한 것처럼 아팠어요. (당신이 걱정하실까봐 덧붙이는데 별 일 아니었고 멍만 조금 들었어요.)
주저앉아 다리를 붙잡고 어쩔 줄 몰라하고 있는데,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수풀 너머로 누군가 나타나더군요.
“너는...”
그렇게 말하며 나를 쳐다보고 말을 끝맺지 못하는 아름다운 입술, 대리석으로 조각이라도 한 듯 단정한 턱선, 하늘색 눈동자를 가리는 섬세하고 아름다운 속눈썹. 그건 리암이었죠. 방금 나를 여기로 보낸 바로 그 사람이요.
그대로 난 기절했어요. 정신을 잃으며 내가 마지막으로 한 생각은 당신이 나를 가지고 놀고 있구나 하는 것이었지요. 아니면 내가 아주 생생한 꿈을 꾸고 있던가요.
하지만 잠시 후 일어나서도 상황은 그리 달라져 있지 않았어요. 내 앞엔 여전히 당신이 예쁜 두눈 가득 수심을 담아내고 있었고, 그 옆엔 다른 사람들이 말도 안되게 이상한 옷차림을 하고 있더군요. 그리고 그 옆에 호호백발에 허옇게 내려온 수염, 볼썽사납게 쳐진 눈꺼풀을 한 늙은이가 있었죠.
'자식을 일찍 잃은 탓인지, 아니면 만족스럽지 못했던 자기 삶에 대한 반성인지 유난히 흐리멍텅해 보이는 눈’
앤 셀린 작가가 딱 이렇게 설명했던 그 늙은 눈이 내 앞에 있었던 거죠. 나도 모르게 설정집 속의 이름을 불렀어요.
“알피...?”
그리고 그 사람이 나를 보고 물었죠.
“에드위나냐?”
그 말에 반사적으로 주변을 두리번 거렸어요. 에드위나라니, 우리 엄마? 하고 바라보다가 말고 거기있는 모두가 나만 쳐다보고 있다는 걸 알았죠.
그제야 나는 깨달았어요.
내 앞의 남자는 선왕 알프레드가 맞고, 나는... 내가 바로 플로리안이라는 사실을요.
플로리안이 나와 같은 글씨체를 가지고 있었는데, 플로리안이 오로지 나만 알고 있는 모든 걸 알았는데, 그럼에도 나는 언제나 그녀가 나라는 생각을 저만치에 치워두고 있었지요.
웃음이 나왔어요. 모든걸 꿰어보는 척 하고 결국 이걸 몰랐던 내 자신이 우스워서 그렇기도 했지만 사실은 그보다 더 유쾌한 웃음이었어요.
내가 제대로 도착한 것이었어요.
다만 두달을 거슬러 올라갔을 뿐이었죠.
그걸 알고 나니 신이 절로 나더군요.
난 당신을 만났고, 당신은 내가 나란 걸 모르고 있었죠.
그제서야 난 당신이 내게 한 말이 무슨 뜻인지를 알 수 있었어요.
아무것도 바꾸지 말라는 그 말.
그건, 일이 원래대로 흐르도록 두란 이야기였지요. 그런 것 쯤이야 자신있었어요. 당신 편지라면 매일 밤 몇번이나 읽어내렸고, 그 안에 있는 내용도 모두 기억하고 있었으니까요.
난 몇 달 전 내가 읽은 편지 속에서 처럼 당신 허리를 꽉 붙잡고 말을 탔지요.
선왕 폐하와 아델라이드 여왕 폐하의 핑계를 대며 당신과 정원을 구경했어요.
지엘 궁금한 건 당신 방에 놓여 있는 서책보관함이었지만, 아, 아치 앨버트 당신은 어쩜 그리 그것을 귀히 여기시던지. 새 집필실까지 만들어가며 나를 접근도 못하게 하시는 모습엔 그만 눈물이 쏙 나올 만큼 서운했지 뭐예요.
내가 무얼 하든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는 모습에 섭섭함이 몰려오기도 했어요. 눈 앞에다 버드나무 가지를 흔들어봐도, 강아지풀로 간질러봐도 아랑곳 않고 멍하니 밤의 단꿈에만 빠져있던 한낮의 당신 옆에서 쓸쓸했던 적도 있지요.
그러나 매일 같이 서책보관함 생각만 하느라 정신 없는 당신을 질투하려해봤자, 당신이 그토록 신나게 기다리는 대상이 바로 나였음을 알기에, 나는 무어라 할 말이 없었어요.
그저 당신 맘을 뒤늦게 헤아렸을 뿐이지요. 언제나 저녁이 되기 전에 날 집으로 데려다 주던 당신은 그때 이런 복잡한 마음을 하고 있었을까 싶었지요.
그러나 그런 생각에 잠겨있기엔 하루는 너무 빨랐어요. 여름해가 긴 동안 너무 많은 일이 휙휙 지나갔죠. 내 셔츠를 벗기려하고, 물을 쏟아붓고, 붕대는 뭐냐고 묻는 당신 모습은 실제로 보니 내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과격했고요.
그래도 좋았어요. 정말이지 단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내가 사내녀석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한 당신을 보는게요. 다리를 걸질 않나, 아무렇지 않게 내 어깨에 팔짱을 괴질 않나, 손을 잡아 끌고, 끌어안고, 볼을 잡아당기고, 이마를 짚고, 뺨을 어루만지고, 머리를 흐뜨러뜨리는 당신 덕에 내 심장은 올 여름 쉴 새 없이 두근댄 걸, 당신은 알고 계셨을까요?
어떤 것은 내가 알던 대로였고
어떤 것은 상상보다 훨씬 좋았지요.
그리고 편지에는 나오지 않던 것이 등장하던 때도 있었어요.
레테 수도원에 처음 가던 날, 나를 반기던 노엘을 만났을 때가 그런 때였죠.
노엘은 날 처음 보았을 때부터 ‘코델리아다!’ 하고 달려왔고, 당신은 웃으며 노엘에게 편지 보내주던 그 코델리아는 여자고, 여기에 올일은 영영 없을 것이라 말했지만, 노엘은 정말이지 모든 걸 다 알고있는 애처럼 빤히 나를 쳐다보았죠.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의 눈초리라고 하기엔 너무 따갑고, 의뭉스럽다고 하기엔 너무 귀여웠어요. 그리고, 그렇게 눈을 마주치는 순간 갑자기 난 레이디 조세핀처럼 어지러움을 느꼈죠. 몽롱한 정신 속에 갑자기 기억이 돌아왔어요. 우리가 보냈던 편지들이 하나에서 두 개가 되었습니다.
플로리안과 당신만 있었던 수도원 이야기에 갑자기 노엘이 끼어들었고, 빨간 머리앤 책을 보내준 이유 역시 노엘이 되어버렸죠. 때로는 당신의 편지 속에서, 어떤 때에는 베데르의 편지 사이에서 노엘은 등장했어요. 모든 것들이 아득해졌어요. 원래의 기억과 새로운 기억이 합쳐지고, 그 모든 것이 내 진짜 기억이 되었지요.
그렇게 나는 노엘과 함께 내가 모르나 익히 알고 있는 여름을 났어요.
우거진 녹음 속으로 당신은 터벅터벅 걸어가지요. 발걸음이 닿는 곳은 언제나 제 1필경소 서책보관함 앞이고, 여름의 열기에 어른어른 거리는 당신의 아름다운 인영을 보며, 나는 노엘과 함께 풀밭을 굴러다닙니다.
그러는 내내 나와 편지를 하느라 나를 바라볼 새가 없던 야속한 나의 왕자님,
맞아요. 당신말대로 긴 여름이 쏜살같이 지나갔어요.
꿈 같은 시간들이었지요.
그리고 내가 아는 것, 내가 몰랐던 것들을 모두 겪은 후에,
이제야 난생 처음 경험하는 것들과 함께 나는 여기에 있습니다.
당신이 공주의 오두막으로 출발한 후부터 편지가 끊긴다는 건 알고 있었어요, 아치.
하지만 그렇다고 불안해 일은 없다고 생각했지요. 저쪽 세상에 이미 당신이 있는 걸요. 당신이 준 팔찌를 들고 내가 여기 온걸요. 그러니 아무 일 없을 것이 당연한걸요. 그걸 알면서도 이상하게 마음이 버거워져왔어요.
당신이 굳이 그곳에 갈 것은 무엇인가, 당신이 날 만나겠다고 그곳으로 간다면, 이곳에 남은 나는 다시 당신을 그리워해야하나, 아니면 이 팔찌를 가지고 당신을 따라가면 될까. 그런 쓸데없는 걱정들을 끌어안고 나선 여정이었을 뿐이에요.
일이 그렇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답니다, 아치. 당신이 또 다칠 줄 알았더라면, 아무것도 바꾸지 말라던 말을 무시하고서라도 어떻게든 당신이 아프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을텐데요.
네, 당신이 걱정한 일은 벌어졌어요. 엘핀델 숲은 내 눈물로 한 번 잠겼다 겨우 살아났습니다.
당신의 답장을 받고 나서야 내 눈물이 겨우 멎었으니까요.
당신의 편지는 숲을 살린 것 뿐만 아니라 내 목숨도 살렸지요.
그게 오기 전까지만 해도 세실은 아주 무서운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았거든요.
“아치 그놈 자식을 어떻게 한거야?”
“그게요, 그러니까 세실리아. 칼을 치우고 이야기 하면 안될까요?”
내가 아무리 애원해도 세실은 콧방귀도 끼지 않았습니다.
“그놈자식을 사라지게 만든다면 그건 내가 되어야해.”
“아, 네. 맞아요. 그렇게 하세요. 근데 이게 제가요.”
“빨리 말해. 이 검이 네 목에 박히기 전에.”
“세실, 그러니까 나한테 잘해줬잖아요..?”
“그래서?”
“아니, 그러니까요. 이게.”
“플로리안. 난 여자도 죽여. 남자를 더 잘 죽이지만 여자라고 안 죽이진 않아.”
일이 그렇게 되고 나서야 나는 당신이 그토록 열심히 주장하던 세실리아 윈저튼의 무서움이란게 무엇인지를 알아버렸답니다. 그동안 세실이 내게 퍽도 다정히 대해주었기에 모두 당신이 떠는 엄살이라고만 생각했거든요. 세실이 또 한명의 여자를 죽여 파묻기 전에 내가 당신 편지를 떠올린 것이 천만 다행이었어요.
'서책 보관함의 열쇠는 오른쪽 주머니에.’
당신이 그 말 그대로 행했기를 바라며 나는 눈을 꽉 감고 말했죠.
“오른쪽 주머니요. 오른쪽 주머니의 열쇠!”
세실은 그제야 검을 잠시 거두고 당신이 사라진 자리에 널부러져 있는 피투성이의 셔츠를 바라보았습니다. 어깨 상처를 치료한답시고 셔츠를 찢어발겨놓은 것이 천만 다행이었지요. 그 안에서 서책보관함의 열쇠를 찾았고, 그리고 나서야 편지를 하게 된 거랍니다.
네, 그러는 동안 7시간쯤이 걸렸나봐요. 당신을 보내고, 울고, 세실을 달래고, 설득하고, 다시 당신께 편지를 써볼 생각을 하는데 까지 말입니다.
나의 충실한 벗, 아치 앨버트 윌리엄.
당신이 편지를 바로 보내주어 다행이었어요. 초조하게 편지를 기다리는 동안 세실의 눈총은 여간 따가운 것이 아니었으니까요. 서책보관함으로 스르르 들어오는 종이를 보고나서야 세실은 검을 완전히 거두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래, 네 말대로 이걸로 편지를 주고 받는다 쳐. 저쪽으로 네가 아치를 보냈다는 걸 어떻게 믿어? 이 편지가 아치 그 자식이 쓴 건걸 어떻게 아냐고?”
“보여줄게요, 세실. 봐요. 아치의 필적이 맞죠?”
나는 당당히 당신이 보낸 편지를 세실의 코앞에 들이밀었습니다. 세실은 몹시도 심각한 얼굴이 되어 한참을 뚫어져라 그걸 쳐다보더군요. 그리고 이렇게 말했지요.
“모르겠어.”
“네?”
“그 자식 필적같은 걸 알게 뭐야?”
“남매..잖아요?”
“그게 뭐?”
“아까 아치를 사라지게 했다고 날 죽이려 들지 않았어요?”
“그거랑 필적이랑 무슨 상관이 있는데?”
그래서 나는 얼른 편지를 빼앗아, 당신이 제일 당신답게 능청떠는 부분을 한 줄 읽어주었지요.
“음, 아치 그 한심한 놈이 맞는거 같군.”
그제야 세실은 납득을 하더군요. 그 다음은 쉬웠습니다. 진이 빠진 나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고, 지치지 않는 세실은 얼른 토끼 한 마리를 사냥해왔죠. 그렇게 귀여운 것은 어떻게 먹나 하고 눈을 질끈 감아봤지만, 막상 입에 넣어보니 귀여운 만큼이나 맛도 좋아 모두 먹어버린 참이랍니다.
토끼 고기를 배터지게 먹으며 나는 당신께 편지를 썼지요. 편지를 다 쓰고 나서야 세실은 날 보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는 건데.”
“네?”
“아치는 그쪽으로 보냈고, 너는 여기에 남았어. 팔찌는 다시 거기로 가버렸고.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거냐고.”
레이디 맥베스답게 날카로운 말이었으나, 나는 그럴듯한 답변 대신 고개만 저었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이야기는 여기까지 였고, 이제 내게 펼쳐진 것은 완전히 새로운 장이니까요.
리암.
이제 난 알아요.
당신이 내게 행복했냐고, 행복하냐고 물은 이유를요.
두 번을 반복해도 좋을만큼 행복한 순간들이었단 내 말에 왜 당신이 그렇게 패배를 시인하는 군인처럼 힘없이 웃었는지도요.
나를 보내야지만, 모든 것이 원래대로 흘러가는 걸 당신은 아셨겠지요.
그렇게 해야지만 나와 당신이 지금의 우리로 있을 거라는 것도요.
그러나 이 행복을 두 번이나 살아버린 난 이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를 모르겠네요.
리암, 당신의 팔찌를 받고 이곳으로 와 난 두 달을 사며 우리의 나날들을 완성했어요.
그리고 그 팔찌를 당신께 채워 그곳으로 당신을 보냈고요.
하지만 당신은 다시 그 팔찌를 내게 채워 이리로 나를 보내셨지요.
우리의 돌고 도는 팔찌가 대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는 뒤로 하고요.
이제 내가 궁금한 건 그 팔찌들이 다 어디로 사라져버렸는가 하는거예요.
왕자님,
우린 다시 볼 수 있나요?
여기로 다시 올 수 있는 팔찌가 남아있나요?
라이너 황자님은 자신의 것 하나, 에드위나 공주의 것 하나, 두개의 팔찌를 만들었다고 했어요.
오두막을 잘 뒤져본다면 다른 팔찌라도 발견할 수 있을까요?
말해보세요, 아치. 당신이 거기서 보낸 7년 동안, 무엇이라도 들은게 있어요?
우리 엄마가 당신께 전해준 뭐라도 있다면 제발 내게 얘기해줘요.
그렇지 않다면 나와 세실은 며칠 몇날이고 밤을 새고 오두막을 팔 참이니까요.
추신: 당신이 멀쩡한 걸 알고 세실은 바로 정다워졌습니다. 하지만 인정해야겠어요. 세실은 정말 뱀 같은 여자예요. 그러니 빨리 무슨 방법을 생각하는 게 좋을 거예요. 나를 계속 세실과 붙여두면 걱정하는 것 보단 그게 낫지 않겠어요?
========== 작품 후기 ==========
독자님들께.
추천을 누르실 마지막 기회이며
다음편을 누르실 기회는 아직 두번 더 남았답니다.
재밌게 읽어주시지 않았다고 해도 읽어주셨다면 무조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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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참 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