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 해적왕-4화 (4/77)

〈 4화 〉 3화 - 활약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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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솔의 능력을 활용할 수 있게 되자 주명의 행동은 신속했다. 가장먼저 한 일은 당연하겠지만 죽기 직전의 어린 소년의 목숨을 구하는 일.

'target_heal_all'

[대상의 모든 부상과 질병을 치유합니다.(10포인트 소모)]

[남은 Point : 0/10]

"엄마. 엄마..흑"

비록 그 뒷맛이란게 환각이든 뭐든간에 어쨌든 이뤄지고 있던 소년의 어머니와의 상봉을 막은 것 같아 약간 씁쓸했지만.

그저 소년이 죽기 전 추억의 한조각을 핦으며 누리던 찰나의 착각이었다 해도, 소년이 어머니를 만나는 것을 막아세웠다는 것은 사실이니까.

'시간이 지나면 좀 진정되겠지. 아직 어리니까.'

'그보다 이제 포인트가 하나도 안 남았네.'

주명의 뇌리에 때려박듯이 '입력'된 도움말의 정보에 따르면 콘솔 명령어는 Point라는 것을 소모한다.

시간당 1 포인트(Point)가 자연 회복되지만 사용자 등급에 따라 최대 보유가능한 Point가 제한되며, 주명의 현재 등급(F) 수준에서는 10 포인트가 한계였다.

명령어도 그 성능에 따라 수준이 천차만별인데, 방금 주명이 사용한 완전치유라는 사기적인 성능의 콘솔 명령어의 경우 한번에 10 포인트나 잡아먹었다. 성능이 사기적인 만큼 그정도는 주명도 이해할만 했다.

그런데 이렇게 모든 포인트를 다 소모해 버리면 뒤가 없는데 왜 소년을 구했느냐고 묻는다면, 일단 사람이 죽어가는데 어떻게 가만이 있냐고 대답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주명이 믿는 구석은 당연히 있었다. 인도주의적인 생각에서 모든 가진 패를 다 쓰는 건 너무도 무모했으니까.

'뭐 포인트야 없더라도 그건 지금 당장은 콘솔을 못 쓸 뿐이란 얘기지.'

왜인지 모르지만 'help' 명령에 덕분에 콘솔 체계에 대한 정보 뿐만 아니라 마치 게임과 닮은 이 기묘한 상황 전반에 대한 정보 역시 알게 되었다.

그래서 알게된 것 중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상태창이 실존한다는 거였다!

콘솔같은 정신나간 밸런스 붕괴 설정이 현실에 존재하는데 어찌 상태창이 없을 수 있겠는가. TOP가 있는데 그냥 커피는 있는게 당연한 섭리일 것이다.

상태창과 함께 딸려온 것은 튜토리얼 특전이었는데, 특전 그 자체로는 특전이란 이름값에 어울리지 않게 별볼일 없는 수준이었다.

아마 콘솔이 없었다면 이 '게임'의 컨셉이 하드코어와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그런 류의 게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건 원하는 능력치를 1포인트 상승시켜 주는 스크롤이었다. 찢으면 효과가 발동되는 판타지의 그 스크롤말이다.

중요한 건 1이라는 포인트의 의미.

"레벨업을 해도 능력치 찍으라고 2포인트는 주는데 고작 1포인트는 어따 써먹으라고 준 거냐?"

당연히 저런 허접한 특전을 주명이 믿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게임은 못해도 꼼수나 버그 플레이는 쩔어 줬지."

평소 스*이림을 하던 때에도 주명은 시스템의 버그나 꼼수를 이용하길 즐겨 했는데 이번에 노리는 것 역시 그런 류의 꼼수라면 꼼수였다.

하지만 현재 그가 가능성을 파악한 꼼수의 목록 중에 사람의 목숨을 구해줄 수 있느 건 없었기 때문에 지금 당장 사용 가능한 명령어 중 방금 전의 그 치유 명령어가 있었던 것은 청말 천운이었다.

"꼼수든 뭐든 그건 나중 문제고, 일단 저 꼬마를 살릴 수 있어서 다행이야."

아무리 게임처럼 콘솔이 굴러가는 세상이라지만, 이 세계가 도저히 그저 데이터 쪼가리를 AI로 엮어 넣은 게임 같은 게 아니라는 건 해적 대장놈에게 쳐맞았을 때 이미 팩트를 확인했다.

현실이라면, 이게 진짜 세상이라면 사람의 목숨을, 그것도 죄없는 어린 생명의 죽음을 콘솔 같은 개사기 기능이 있는데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계속 시달렸을 것이다.

성인군자는 아니었지만 주명은 평소에도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었으니까.

"어떻게 달래줄지 막막했는데... 다행이라면 다행인가."

충격이 컸던 모양인지 모든 부상이 치유되었음에도 조선인 소년은 마치 기절하듯 자리에 누워 쓰러졌다.

모든 질병과 부상을 치료했다는 시스템 메시지가 거짓이 아닌 바에야 일단 저대로 두기로 했다. 의학 분야에 대해서는 주명도 잘 몰랐기 때문에, 그저 충격이 커서 잠시 잠들었구나 짐작하고 안타까운 눈으로 쳐다보는 것밖에 할게 없었으니까.

소년이 잠들어 있는 동안에도 시간이 흘렀고, 그 시간의 흐름이 1시간이 되는 순간 주명이 계획했던 꼼수를 실행할 때가 왔다.

[남은 Point : 1/10]

게임상의 꼼수에 있어서만큼은 정마로 그는 고인물의 반열에 올랐었으니까.

'scan_object_ID'(대상의 ID 찾기)

[튜토리얼 특전 스크롤의 ID : AA0000]

일단 scan으로 시작하는 류의 검색용 콘솔 명령어는 포인트가 소모되지는 않는다. 플레이어에게 아무런 직접적인 효과를 부여하지는 않으니까.

그리고 또 하나 주명이 알게된 사실은 오브젝트에도 레벨이 존재한는 거였다. 이건 스*이림에서는 없던 개념인데 고통스럽게 때려박힌 '도움말' 덕분에 알 수 있었던 개념이었다.

쪼랩 짱돌과 고렙 짱돌이 구분된다는 말씀. 그래봤자 짱돌이 짱돌이지 뭔 차이가 있느냐 궁금하겠지만 더 단단해지는 하는 모양이다. 거기에 스크롤처럼 1 포인트라는 숫자가 들어가 콘솔로 확인이 가능한 특별한 오브젝트들은 레벨업에 엄청난 의미가 있었다.

'scan_status_AA0000'

[이름 : 튜토리얼 특전 스크롤]

[레벨 : 1(경험치: 0/0.5)]

[효과 : 선택 능력치 1 상승]

'역시 오브젝트는 좁쌀만한 경험치로도 레벨업이 가능해!'

현실적으로 오브젝트가 경험치를 얻을 일은 없기 때문에 사실상, 아니 절대적으로 무의미한 개념이었다. 일종의 더미 데이터였던셈.

그래서인지 오브젝트는 레벨업 시 정말로 말도 안되게 미미한 경험치만 요구하였다.

이제 그가 무슨 꼼수를 쓰려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인데, 바로 '튜토리얼 특전 스크롤'의 콘솔을 이용한 '폭렙'이었다.

'AA0000_gain_EXP_100'

['튜토리얼 특전 스크롤(AA0000)'이 경험치를 100 획득합니다.(1포인트 소모)]

[남은 Point : 0/10]

경험치 100은 플레이어에게는 정말 극히 미미한 수준의 경험치였다. 그래서 콘솔 명령어를 사용하는데 필요한 포인트도 고작 1밖에 들지 않았다.

그 고작 1 포인트의 투자로 이끌어낸 결과는?

['튜토리얼 특전 스크롤(AA0000)'의 레벨이 20이 되었습니다.]

[이름 : 튜토리얼 특전 스크롤]

[레벨 : 20(경험치: 0/10)]

[효과 : 선택 능력치 20 상승]

밸런스는 저 멀리 한강으로 뻥 차버리려는 듯, 똥템을 미친듯한 혜자탬으로 바꾸는 엄청난 수준이었다.

"일단은 살아 남는 게 우선이야. 근력과 맷집을 늘려주는 힘에 몰빵한다."

[힘 능력치가 20 상승하였습니다.]

'상태창!'

[이름 : 김주명]

[레벨 : 1(경험치: 0/1,000)]

[능력 : 힘 36, 민첩 17, 지능 22]

[기술 : 없음]

성인의 평균적인 힘 능력치는 남성은 20에 여성은 15 정도. 원래 주명은 그다지 근력이 강한 편이 아니라 16의 능력치를 가지고 있는 약골이었는데 이제는 어디 전설에나 나올 법한 수준의 힘을 가진 것이다.

올림픽 역도선수의 힘 능력치가 25 정도이니 36라는 수치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수치인지 감이 올 것이다. 코끼리가 와도 비벼볼 수 있을 정도.

게다가 힘 능력치가 어디 근력만 올려 주던가?

배 밑부분에는 아무리 차곡차곡 쌓아놨다고 하더라도 워낙 항해중 흔들림이 심해 물건 한두개 정도는 원래 있던 자리에서 자리에서 벗어나기 마련이다.

근데 그것들의 무게가 어디 보통인가. 애초에 배 밑부분에 두는 건 균형을 위해서라도 가장 무거운 것들로 채워넣기 마련이니, 이런 곳에 주명과 소년을 가둬둔 왜구들을 악랄함을 옅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 벗어나는 물건이 하필 왜구들이 수탈한 철괴들을 모아놓은 상자였고, 하필이면 그  300Kg은 넘어가는 상자가 떨어지는 위치가 주명의 머리 위라는 게 문제였다.

"끄악!"

무엇이 떨어지는지 감조차 잡지 못하고 있던 주명은 부딪침의 순간이 와서야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질렀고, 엄청난 무게에 짓눌려 끔찍하게 살해당했어야 정상인데,

"뭐야? 그냥 조금 아프고 말잖아?"

그냥 머리에 주먹질 한대 맞은 수준의 피해밖에 입지 않았다.

"...이정도면 자동차랑 부딪쳐도 멀쩡할 것 같은데. 이런 미친 맷집이라니. 정말 내몸 맞아?"

"이거 통짜 쇳덩이들 넣어둔 상자 같은데, 최소 몇백 키로는 되어 보이는데 이게 이렇게 가볍다고?"

자신의 힘 능력치의 진정한 스펙을 경험하게된 주명은 만족하며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함부로 사람이 들락거리지 못하도록 배 밑부분은 마치 창고처럼 문으로만 출입할 수 있게 만들어 놓고 통짜 쇠로 된 자물쇠로 잠궈 놓았다. 하지만 그의 엄청난 힘에 16세기의 잡철 따위는 그냥 종잇장처럼 찢겨 나갔다.

"키, 키사마!"

조금 더 위로 올라가니 지키고 있던 왜구놈이 하나 있었지만,

"꾸엑!"

있었는데 없어졌다.

몽둥이만 들고 있고 날붙이는 전혀 들고있지 않은 모습에, 주명이 뛰어들어가 목을 조이니 엄청난 힘에 그대로 목이 터져 버리면서 몸과 머리가 분리되어 버렸다.

"이걸 의도한 게 아니었는데. 내가, 내가 사람을 죽이다니..."

피가 분수처럼 목에서 흘러나오는 그 끔찍한 광경을 보았다는게, 본인이 만들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는지 주명도 잠시동안 멍을 때렸다. 하지만 곧 고개를 털며 마음을 다잡았다.

"어린 소년도 죽이려고 한 쓰레기들이야 왜구들은. 그리고 이 혼란한 시기에 문명화된 현대의 도덕에 얽매이다간 나부터 죽어나간다."

배 자체가 그리 크지 않았기 때문에 주명은 대충 주변을 둘러본 것 만으로도 배의 구조를 파악할 수 있었고 조선인들이 갇혀 있는 창고를 찾을 수 있었다

이미 노략질의 성과에 도취된 모양인지 주변의 경비라고는 아까 자신이 죽인 왜구 한명밖에 배치되어 있지 않았던 듯했다. 너무나도 손쉽게, 별다른 반항도 못하고 그 왜구가 죽었기에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다른 왜구들은 모르는 것 같았고.

통짜 쇠로된 자물쇠였지만 역시나 종잇장처럼 찢어진 자물쇠가 막고 있던 창고 문을 여니 십여명 정도의 조선인들이 굴비처럼 묶여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에서 보게된 광경은 처참했다.

"흑.."

생기없는 눈으로 묶여 있는 조선인들은 차라리 행복한 편에 속했다. 왜냐하면 왜구 하나가 조선인 여인을 겁탈하고 있는 걸 주명은 봐 버렸으니까.

절망과 비탄에 잠긴 여인의 얼굴은 온통 눈물 범벅이었으며, 찢겨져 있는 옷 사이로 드러난 그녀의 가슴은 침으로 번들거렸다. 벌게진 얼굴로 허리를 열심이 놀리는 왜구새끼의 아래로 깔린 그녀의 아랫도리는...

"야이 씨발새끼야!"

주명은 살인의 최책감, 피에 대한 거부감이 일거에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한조각 남아있던 양심의 가책 따위는 지금의 이 개같은 광경을 보니 분노와 함께 날아가 버렸다.

"무, 무슨?"

정욕에 취해 눈이 풀려있었던지 상황파악이 안된 왜놈이 뭐라 지껄여 댔지만 금방 조용해 졌다.

"컥..."

주명이 왜놈을 집어들어 그대로 목을 꺾어 버렸으니까. 이제는 힘 조절이 아까보다 능숙해졌는지 터쳐 버릴 정도로 힘을 주지는 않아 정말 목을 꺾어버리기만 했다.

비록 뼈가 박살나서 머리가 그저 살가죽에 의지해 달랑거리는 게 그다지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었지만,

"흑, 흑흑"

해방의 기쁨도 잠시뿐이고, 자신이 당한 치욕적인 일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 여인의 모습처럼 보기 괴롭지는 않았다.

주명은 자신의 윗옷을 벗어 그녀에게 덮어 주었다. 이미 그녀의 옷은 옷으로서의 기능을 할 수 없게 되었으니 그녀가 조금이라도 안정을 찾길 바라는 마음에서 뭐라도 가릴 것을 준 것이었다.

밧줄로 묶여 있는 조선인들을 풀어준 뒤, 피칠갑을 한 그의 모습을 두려워 하면서도 뭐가 어떻게 되가고 있느 상황인지 궁금해 하는 그들을 뒤로하고 주명이 재빠르게 이동한 것은 아까의 그 배 밑부분이었다.

'일단 소년도 이곳으로 옮기자.'

넘실대는 파도에 출렁대는 배의 밑부분은, 사람이 머물러 있기엔 결코 안전한 환경이 아니었으니까.

소년을 조선인들이 모여있는 창고에 옮겨둔 주명은 다음 계획을 실행하기 앞서 무장을 보강하려 했다.

운 좋게도, 아니 조선인 여인이 그꼴을 당했으니 운 좋게도란 말은 취소다. 어쨌든 여인을 겁탈한 왜인은 입고있던 무구를 벗어두고 일을 치렀으며, 그 무구를 주명이 활용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비록 허접한 흉갑과 견갑, 이가 상당히 나가 있는 낡은 일본도가 전부였지만 수십의 왜인들을 상대하려면 최대한 무장해야 했다.

주명이 힘이 장사라지만 날붙이를 상대로는 또 어떻게 될 지는 모르는 일이니까. 힘센 코끼리도 한참이나 약한 인간이 든 창에 찔리고 찔리면 결국 죽게 되는 게 현실이니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에라이 썅!'

'이거 어떻게 입냐?'

하지만 어디 현대인인 그가 갑옷을 입어 봤던가. 게다가 갑옷은 작은 체구의 왜인이 입던 거라 그런지 너무나도 작았다.

일단 힘을 주어 최대한 갑주를 펴 보았지만 어떻게 입는 줄 모르니 그저 철판때기에 불과했다.

땀을 삐질 흘리며 당황하고 있는 그를 구해준 건 백발히 성성해 보이는 노인이었다. 주명이 알아채지는 못했지만 다른 이들이 겁에 질려있던 와중에도, 홀로 모든 것을 체념한 얼굴로 눈을 감고 있던 이였다.

그가 눈을 뜬 건 주명이 여인을 능욕하던 왜인을 응징했을 때와, 소년을 데리고 올려와 눕히던 때였다. 특히 소년을 보았을 때는 눈동자가 떨리기도 했을 정도.

어쨌든 그런 심지가 굳어 보이는 행동을 보여줬던 노인답게 목소리도 중후하니 무게감이 느껴졌다.

"혹시 장사께서는 갑옷을 입을 줄 모르는가?"

"그렇습니다. 그리고 너무 작아서 입어봤자 쓸모가 있을지."

"장사만 괜찮다면 내가 도와주겠네."

노인은 왜인의 갑주에 대해 잘 아는 듯했다. 그가 일러주는 대로 힘을 주어 철판을 펴고, 가죽 줄을 덧대고 하니 너무나도 손쉽게 주명은 흉갑과 견갑을 착용할 수 있었다.

비록 앞-뒷면만을 가린다는 하라아테(腹當)라는 최하급 일본 갑옷이 주명의 상대적으로 큰 체구 덕분에 그저 앞면과 뒷면의 2/3정도밖에 커버할 수 없게 되어, 갑옷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걸 걸친 모양새가 되었지만 어쨌든 안 입는 것보다는 나았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우리가 장사께 감사를 드려야지. 목숨을, 가족을 구해줬으니."

가족을 말하는 노인의 눈은, 행복한 꿈이라도 꾸고 있는지 웃으며 새근새근 잠자고 있는 소년의 얼굴으로 향해 있었다. 주명은 왠지 모르지만 소년을 평온한 모습을 보고 노인이 조금이나마 미소를 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이러지 마십시오!"

노인이 주명에게 공손히 절을 하자 다른 조선인들도 따라서 절을 했고, 연장자에게 절을 받는다는 난감한 상황에 주명도 식은땀을 흘리며 당황해 하다 결국 맞절을 했다.

"장사께서는 우리의 은인이시네. 이까짓 절로 다 갚을 수 없을 만큼 큰 은혜를 베푼."

"에이 아닙니다! 사람이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아직 끝난게 아닙니다. 왜놈들이 수십이 아직 남아있으니까요."

"우리도 돕겠네."

"예? 하지만..."

"내가 무기고의 위치를 아네. 그곳에서 병장기로 무장을 하고 우리도 장사를 돕게 해주게. 도움이 크게 못된다는 걸 아네만, 적어도 시선을 끌어줄 수는 있을걸세."

"...!"

주명은 조선인들이 무기를 잡고 자신을 도와준다는 말에 혹시라도 그들이 다칠까 걱정되었다. 자신이야 괴력과 강철맷집을 지닌 규격 외의 존재라지만 이들은 그저 평범한, 노인과 여자가 다수 포함되었으니 평범보다도 못한 전투력을 지니지 않았던가.

"장사께서는 금적금왕(擒賊擒王)의 이치대로 왜인들의 수괴를 잡으려 가는 것 아닌가? 그때 분명 도움이 될 거라 장담하네!"

하지만 형형한 눈빛으로 자신을 간절히 바라보는 노인의 말에, 눈물을 흘리면서도 분기를 참지 못하고 손을 꽉 쥐고 있는 다른 조선인들의 말에 차마 거절하겠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말이야 그렇게 했지만 최대한 많은 왜구를 자신이 치워버릴 생각이었다. 대장 목을 따기 전에 부하들이, 잡몹들이 다 죽을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막상 그렇게 대담한 마음을 품으면서도 그도 사람인지라 전투에 앞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겁이 났다.

하지만 눈물을 흘리며 고맙다고 절을 하는 조선인들의 그 모습이, 자신을 장사라 부르며 자신의 등만 간절히 바라보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두려움을 지워내었다.

'씨발, 씨발! 난 오우거다. 오크같은 왜놈들 잡몹 새끼들은 그냥 쳐죽이면 돼. 하나도, 전혀, 네버 두렵지 않아!'

무기고로 가는 동안 이제는 칼과 창 같은 날붙이를 든 왜인들이 나타났지만,

"컥!"

창을 든 왜인은 주명이 칼을 던져 버리자 일본도에 꿰인 꼬챙이가 되어 버려 리치의 이점을 전혀 살리지 못했으며,

"끄륵..."

칼을 든 왜인은 주명이 작정하고 아까 자신이 죽여버린 왜인이 지닌 창을 투창용으로 던져 버리자 이번에 창에 꿰인 꼬챙이가 되어 절명해 버렸다.

'어차피 칼이나 창이 익숙하지 않고, 직접 맞대고 싸우면 무서우니 지금까지처럼 그냥 원거리로 가자. 창이든 칼이든 그냥 던져서 원콤 내야지.'

주명이 길을 무기고까지로의 열자 노인을 포함한 조선인들을 불렀다. 처음에는 주변을 둘러보며 두려워 하던 사람들도, 그 사이에 다시 출몰한 다른 왜인을 주명이 손쉽게 투창으로 처리하는 모습을 보더니 용기 백배해져서 무기고로 뛰어 들어가 무장하기 시작했다.

그냥 그 자리에 가만히 있어도 상관없다며, 절대 무리하지 말라고 당부하고는 주명은 왜구의 대장을 잡겠다고 뛰쳐 나갔다.

그 모습을 보며 노인 정여수(鄭汝邃)는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들이 위험하다며 작은 도움마저 마다하는 그 고결한 성품, 정녕 혼자서 적을 쓸어버리겠다는 생각을 정말 실현시킬 수 있을 것 같은 고절한 용력 모두가.

'이름이 주명이라고 했던가.'

신라 왕실의 후예라고 할 수 있는 안동 김씨라는 말에, 동래를 본관으로 둔 정여수는 안 그래도 문(文)으로 이름 높은 유서깊은 가문에 걸출한 장사까지 났으니 참으로 부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상하게도 뭔가 가문에 부정적인 것 같았지만, 그건 아마 주명이라는 장사가 서얼 출신이라서 그런 것 같구먼. 적자(嫡子)가 무(武)에 저토록 뛰어날 리는 없느니...'

멀리서 들려오는 비명소리에 분명 저 소리는 왜인들이 공포와 고통에 내지르는 소리라 확신하며, 정여수는 누워있는 손자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준 뒤 사람들을 모아 소리를 지르게 했다.

"와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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