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화 〉 4화 - 배를 얻다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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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구 두목을 싸대기 세번으로 때려 죽이고, 주명은 혹시라도 사람들이 다칠까봐 걱정되어 어그로를 끌어준다고 소리를 내지르고 있는 조선 사람들을 향해 바로 뛰어갔다.
"조센징들!"
"다 쓸어버려!'
다행히 그가 늦지 않게 도착한 것 같았다. 수십의 왜구들이 막 조선사람들을 공격하려기 직전이었지만, 방금 공격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다친 조선 사람은 없었으니까.
"야이 왜구 새끼들아! 뒈지기 싫으면 다 꿇어!"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최대한 큰 소리로 소리를 지르며 왜구들 사이로 주명은 무언가를 던졌다.
데구르르
경악에 찬 표정을 짓고 있는 왜구들의 두목 다나카의 수급이었다.
"대, 대장이 맞아."
"어떻게, 어떻게 대장이?"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대장이 죽었다는 생각에 왜구들은 패닉에 빠졌고, 당연히 조선 백성들을 위험하게 만들 수 있는 공격적인 행동이 가능할 리가 없었다.
"조센징! 대장의 복수를 해.. 컥!"
"코로세! 코로세! 코로.. 크어억! 세카이요 곤니찌와아아(世界よこんにちは)!"
물론 주명을 향해 공격적으로 나오는 몇몇도 있었지만 모조리 창을 던져서 슥삭해 버렸다. 주명의 힘이 어찌나 좋은지, 왜구들은 창에 꿰뚫린 채로 먼 바다를 향해 포물선의 궤적을 그리며 날아갈 정도였다.
그걸 턱이 빠지도록 입을 벌리며 몇 번씩이나 쳐다보게 된 왜구들은,
깡
무기를 내려놓고 항복하는 길을 택했다.
어떻게 사람들을 포박할지 몰라 당황했지만, 조선인들이 전에 그들을 묶어 놓았던 밧줄로 왜구들을 묶는 것을 도와줘서 무력화 작업은 순조로웠다.
"피, 피가 안통하무니다!"
왜구들을 묶는 손에 너무도 분노가 담겨있는 나머지 놈들의 피는 순조롭게 혈관을 흐르지 못하게 된것 같지만,
어차피 죄 많은 놈들에게 고통을 준다는데, 놈들에게 그보다 더한 고통을 겪은 사람들이 분을 풀겠다는데 뭐라 딴지를 걸 필요도 마음도 없었던 주명이었다.
[적을 무력화 하였습니다.]
[750의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왜구 대장은 100의 경험치를, 평범한 왜놈들은 50 정도의 경험치를 주었던 것 같다. 그런데 수십명의 왜놈들을 묶어 놓으니 놈들을 죽였을 때와 비슷하 수준의 경험치를 주는 것을 보면 처치와 무력화를 동일하게 취급하는 것 같았다.
[레벨업!]
'뭐 땡큐지.'
덕분에 어느샌가 레벨업을 위해 필요한 경험치 1,000을 순식간에 채워 버릴 수 있었다. 레벨업이 가져다주는 청량감에 몸을 부르르 떨며 기뻐한는 주명이었다.
"천세! 천세!!"
"우리가 이겼어! 살았어!"
물론 레벨업보다 그를 더 기쁘게 했던 것은 얼싸안고 덩실덩실 춤을 추며 기뻐하는 조선인 백성들의 모습이었다.
그들이 노예로 팔려 나가 나락으로 떨어질 뻔한 운명을 바꿔주고, 가족이 무참히 살해당한 복수를 해 준 것이 자신이었으니 기뻐하는 모습을 보자 자신도 기분이 좋았다.
운명, 복수 모두 좋은 일이지만 지금의 기쁨도 잠시. 저들은 고향에 돌아가 잿더미가 된 터전을 바라보며 다시 망연자실해 할 것이다. 현실의 절망에 다시 울부짖겠지.
이왕 도움을 줄 거였으면 끝까지 주랬다고, 그렇게 두고볼 생각이 주명에게는 없었다. 또 무참히 짓밟히는 어린 소년, 비참하게 정조를 유린당하는 여인을 보며 결심한 바가 있었다.
'일단 이 배에 실린 물건들은 원래 저사람들의 것. 가는길에 모두 돌려준다면 살 길을 찾을 수 있을거야.'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지. 앞으로 살아간다 해도 2년 뒤 저 사람들을 기다리는 건...'
잠깐 짬을 내어 노인에게 물어보니 지금은 만력(萬曆) 19년, 서기로 치면 1589년이다. 지금 이 수십명의 백성들의 모습이 2년 뒤에는 수백만의 백성들의 모습이 된다. 지금은 한 마을이었지만, 나중엔 한 나라가 지옥도로 변한다.
역사학도로서 그 비참함을 잘 알고있는 그가,
거기에 콘솔와 게임 시스템이라는 엄청난 걸 가지고 있는 그가 가만히 있는다는 것은 한국인으로서 지는 동포에 대한, 사람으로서 지닌 양심에 대한, 그리고 역사학도로서 임진왜란의 비극을 보며 분노했던 그 자신에 대한 배신행위였다.
'임진왜란에 대비해야 한다.'
그러려면 일단 세력을 모아야 했다.
'세력을 모아야 조선 조정에 경고라도 해줄 수 있다. 지금 상태론 호패도 없는 내가 전쟁이 난다고 말해줘 봤자 잡혀가 불안을 조장한다고 고문이나 안 당하면 다행이지.'
'그리고, 조선의 약해빠진 군대를 생각하면 내가 군벌이 되어서라도 뭔가 역할을 해야 해.'
조선의 군대는 정말 약하다.
화포와 기병 빼곤 그냥 전반적으로 후달리는데, 기병은 신립 장군께서 탄금대 개돌 한방으로 거의 말아먹어 버리고, 화포란 화약병기도 조총이라는 신무기의 위력에 빛을 잃는다.
그러니 고작 2년밖에 안 남은 시점에서 조선의 육지에서 뭔가를 해 보겠다는 생각은 그저 개인에 불과한 주명에게는 만용에 가까운 생각이다. 따라서 원 역사에서도 비교우위가 있었던 바다에서 뭔가를 해야 했다.
'바다에서 세력을 일으켜 군벌이 된다. 잘 풀리면 바다에서부터 조선과 함께 일본을 저지할 수 있다.'
혹시 그렇지 못한다 하더라도 위대한 성웅께서 계시는 조선의 바다니 자신의 세력이 있다면 뭔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일단 저 사람들을 살던 곳으로 데려다 주는 게 먼저겠지.'
배를 몰 줄은 당연히 몰랐지만, 이제는 포로이자 노예가 된 일본인들을 부리면 될일이었다. 혹시 속이고 배의 방향을 일본 쪽으로 가게 하면 망하는 일이었지만,
'왜구 새끼들 배가 제주도로 가는 길이었으니 그럴 일은 없겠지.'
대체 제주도에 뭘 털어먹을 게 있다고 그쪽으로 향했는지는 모르겠다만 일본으로 가는 길에서 멀어져 있다는 것이 주명에겐 다행이었다.
저들도 죽고 싶지는 않을 테니 제주도에서 바로 대마도쪽으로 향하는 위험한 바닷길로 배를 몰지는 않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은 안심이 되었으니까.
거기다 배를 타본 경험이 있다는 어부도 한명 있어서, 그의 감시하에 운항을 하자 항해는 순조롭게 이어질 수 있었다.
"...달거리를 하네요."
"다행이야. 그래도 정말 다행이야. 삼신할머니도 보고 계셨던 거야 암."
"..."
능욕당했음에도 원수의 씨를 품지 않게 되었다는 데 위안을 얻은 여인과, 그녀를 위로하는 아줌마를 보며 사람들이 같이 통곡하고, 주명의 가슴이 미어질 때도 있었지만 항해 자체는 정말 순조로웠다.
물론 그런 일이 있었던 날 살아남은 왜구들은 분노한 조선인들에 의해 하나도 예외 없이 개패듯 쳐맞게 되었지만, 이미 전의를 상실했는지 왜인들은 너무도 순종적이었다.
순종적인 왜구들의 협조 속에 주명 일행은 조선인들이 살던 바닷가 마을에 결국 당도할 수 있었다. 생각해 두었던 대로 주명은 항해에 꼭 필요한 식량만 남기고 배에 실린 모든 재물을 사람들에게 돌려 주었다.
"아이고 장사님, 인두껍을 쓰고 어찌 이걸 받겠어요."
"안됩니다요! 마, 구함을 받고 이렇게 재물까지 넙죽 받는다게 사람 새끼로서 가당키나 할 일입니꼬."
"여러분. 살던 집이 불타 버리고 당장 먹을 것도 없잖아요? 지금 겨울인데 맨몸으로 어떻게 버티려고 그러세요. 그리고 전 이 재물 필요 없습니다. 원래 제 께 아니니까요."
"아이고. 흑흑"
미안함에 오히려 성을 내는 사람들, 고마움에 우는 사람들의 반발을 모두 물리치고 주명은 기어이 그들에게 배의 모든 재물을 내어 주었다.
물론 모든 사람이 주명의 후의를 수락한고 살던 곳에 남기로 한 것은 아니었다.
"어르신, 굳이 그러셔야 하겠습니까?"
"장사께서는 이 노구를 부디 받아 주시오. 지난번 일로 알겠지만 내 군기시에서 일했던 적이 있어 생각보다 쓸만할 것이오."
"형, 저도 할아버지와 형을 따라가서 형을 돕고 싶어요."
"부디 쇤내도 데려가 주세요. 쇤내가 요리 하나만큼은 자신 있습니다."
갑옷을 입는 걸 도와줬던 노인과, 자신이 목숨을 구해준 소년, 왜인에게 참담한 일을 당했었던 여인이 배를 타겠다고 따라나선 것이다.
노인과 소년은 그렇다 치더라도, 젊은 여자를 데려가는 건 아무리 현대인인 그라지만 주저했는데,
"바깥사람과 산 지 몇년 되지 않았지만, 금슬이 참 좋았습니다. 그런데 그 순하고 착한 사람이 쳐다보는 앞에서 범..해지고 그이는 왜인들의 손에 가버렸습니다."
"큰 은혜를 입은 마당에 염치, 또 염치없지만 부디 쇤내의 청을 들어주세요. 그이가 눈을 감은 이 땅에서는 도저히, 흑 도저히 눈을 뜨고 맨 정신으로 살 수 있을 것 샅지 않습니다."
그래서 두명의 조손(祖孫), 한명의 과부(寡婦)가 동행하게 되었다.
배야 해적선으로 쓰던 게 있다지만 선원은 어디 있냐고?
"너, 내 노예가 돼라!"
"하, 하이!"
밀짚모자를 쓴 기분으로 포로로 잡힌 왜인들을 부려먹으면 될 것 아니겠는가. 동료가 되라고 진짜 감화되어 모험에 나서는 건 개연성이 없지만, 노예가 되어 수탈 당하라는 건 칼만 쥐고 있으면 충분히 개연성이 넘치니까.
혼자서는 자다가 칼침을 맞을 수 있는데 대체 뭘 믿고 왜구들을 항해사로 쓰냐고?
물론 믿는 구석이 있다.
[이름 : 김주명]
[레벨 : 2(100/2,000)
[능력 : 힘 36, 민첩 19, 지능 22]
[기술 : 투척(Lv1), 피아식별(Lv201)]
레벨업으로 얻은 2개의 능력치는 일단 균형을 맞추고 스피드를 높이자는 생각에서 민첩에 다 투자했다. 해서 주명의 민첩은 17에서 19로 올랐지만, 아직은 평균보다는 부족한 수준.
기술은 하도 칼이고 창이고 던져대며 왜구를 쳐죽였으니 투척 스킬을 얻었는데,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피아식별이라는 뭔가 말도 안되는 숫자를 달고 있는 스킬이었다.
긴 항해의 시간동안 들어온 콘솔 포인트를 모조리 경험치 +100에 몰빵했다면 레벨이 더 올라있어야 분명 정상이다. 물론 주명도 그걸 알았기에 계속해서 경험치 콘솔을 사용하긴 했다.
하지만 지금 경험치가 왜구를 모두 처리하고 레벨업을 했던 그때에서 전혀 오르지 않았던 것은 바로 경험치를 소모해 주사위를 굴려댔기 때문이었다.
긴급한 상황에서야 쓸 엄두를 못했지만 이미 배를 차지하고 나서는 쓸 여유를 가지게 된, 또다른 꼼수 루트가 있었기 때문에!
이름하여 갬블링(도박)!
'gambling_with_EXP_100'
가치있는 무언가를 소모하여 아이템, 스킬북, 능력치 등을 확률적으로 얻는 도박성 짙은 기능이 바로 갬블링이었다.
대부분 아이템을 소모하여 가장 확률이 높은 다른 아이템을 얻는게 보통이었지만,
[경험치가 100 차감되었습니다.]
주명에게는 아이템 대신 소모될 경험치가 있었으며, 경험치의 최소 배팅값인 100 EXP 정도는 1시간에 한번씩 계속해서 충당할 수 있는 콘솔 명령어가 있었다.
[갬블링에 실패하였습니다.]
설정상 가장 낮은 배팅값으로 돌린 거라 대부분은 꽝이었지만.
반복 노가다의 결과 건진 거라고는 딱 하나뿐이었다.
[스킬북(피아식별 Lv1)을 얻었습니다.]
실제 세상에 존재하는 그냥 오브젝트들과는 달리 시스템으로 얻은 물건들은 특별하다. '튜토리얼 특저 스크롤'과 마찬가지로 효과에 확정적인 '수치'가 들어가니까.
수치가 들어간다는 것은? 한번 재미를 봤던 아이템 레벨업 꼼수가 가능하다는 사실!
[스킬북(피아식별 Lv201)을 사용하여 스킬(피아식별 Lv201)을 얻었습니다.]
[스킬 레벨이 10을 넘어 비전투 상황에서도 살의를 지닌 적을 식별합니다.]
[스킬 레벨이 25을 넘어 비전투 상황에서도 강한 적의를 지닌 적을 식별합니다.]
[스킬 레벨이 50을 넘어 1시간 내로 살의를 지닐 것이 확실시 되는 적을 식별합니다.]
[스킬 레벨이 100을 넘어 1시간 내로 적의를 지닐 것이 확실시 되는 적을 식별합니다.]
[스킬 레벨이 200을 넘어 24시간 내로 살의를 지닐 것이 확실시 되는 적을 식별합니다.]
'완전 씹사기가 따로 없다. 뒤통수 맞을 일이 없겠네!'
이쯤되면 적대적인 존재를 식별하는 데에는 거의 예지라고 볼 수 있는 수준의 미친 스킬이었다.
이런 게 생겼는데도 뒤통수를 맞을 수 있다면 그거야말로 병신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스킬북 레벨 올리는 데 경험치를 1만 넘게 쏟아부은 보람이 있네.'
그렇다. 몇일치의 콘솔 포인트가 스킬북의 레벨을 올리는 몽땅 데 투입된 결과였다.
그렇지만 몇번의 레벨업이 가능하다는 기회비용을 생각하더라도, 믿을 수 없는 해적들을 곁에 두고도 마음놓고 항해에 나설 수 있다면 충분히 이득인 결과물이었다.
"야이 개새끼야. 너 나 죽이고 싶었지?"
"아, 아니무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다 보여 이새끼야!"
"꾸에엑!"
적을 식별한다는 것은 '적'의 전신이 마치 피로 칠한 것처럼 붉게 주명의 눈에 비쳐진다는 의미였다.
스킬레벨이 높아지면서 살의와 적의를 지닌 부위가 더 붉게 변해서 공격 부위를 특정할 수 있게 해다는 이점도 있었는데, 스킬 레벨이 오름에 따라 이젠 아예 살의와 그 수단의 궤적까지 시각화하여 보여줌으로써 진짜로 공격을 알면서 피할 수도 있게 되었지만 그건 전투에서 확인해 보면 될 일이었다.
배를 타고 출발하기 전, 붉은 색으로 보이는 왜놈들은 모조리 실제로 피를 흘리도록 흠씬 두들겨 패줬다.
"이 빨갱이 새끼 같으니!"
공산주의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왜구들은, 서북청년단과는 아무 관계가 없지만 분위기는 비슷할 것 같은 주명의 응징에 피가 철철 날 정도로 쳐맞게 되었고,
나중에는 아예 주명의 시야에서 보이는 놈의 모습과 다른 이들의 시야로 보는 놈의 모습이 붉은 핏빛으로 잠시 일치할 지경까지 갔다.
물론 앞으로 잘 써먹을 노예들이기에 병신을 만들거나 목숨을 잃게 만들지는 않았지만 참혹한 광경이었다.
평소의 주명이었다면 주저했을 일이었지만, 왜구들의 패악을 눈으로 직접 목격했고 살인이라는 가장 큰 도덕적 금기도 이미 깨버려 정신적으로도 많이 달라진 그였기에 그런 일도 거리낌없이 저지를 수 있었다.
"폭력이 최고의 대화수단이다!"
마치 억눌러 왔던 폭력성을 해방하는 듯한 기분에 즐거움까지 느낄 정도였으니까.
그런 방식으로 몇번의 구타를 빙자한 본보기를 보여주자 20명 정도 되는 왜구들 그 누구도 붉은 빛을 지니지 않게 되었다.
몇일 동안의 준비가 끝난 뒤,
"잘 가세요 장사님!"
"고맙습니다 장사님! 부디 뱃길이 무탈하시길!"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의 진심어린 환송 속에, 주명이 스스로 '씨발 메리호(Fucking Merry)'라고 이름붙일까 하다 그건 좀 아니다 싶었는지 그냥 작은 싸구려 배라는 뜻에서 '참수리(해조, 海雕)'라고 붙인 배가 물살을 가르며 바다로 나아갔다.
뱃머리에 서서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드는 주명을 바라보며,
소년 정옥현(鄭玉賢)은 선망하는 어른을 바라보는 뜨거운 눈으로,
런 손자를 따스히 바라보던 백발의 노인 정여수(鄭汝邃)는 믿음을 거는 무거운 눈으로,
남편을 잃은 고통스러운 땅을 바라보던 여인 김초희는 짐이 되지 않겠다며 결연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두려움과 경외감에 사로잡힌 수십쌍의 왜놈들 눈은 덤.
모두의 눈이 주명에게로 향해 있는 이 순간, 주명이 탄 참수리 호는 쓰시마 섬을 향해 푸른 바다를 헤치며 나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세상의 눈 역시 조선 통신사란 화두에 그리로 모이고 있었다.
검푸른 바다, 석양이 지고 있어 붉은 빛으로 빛나고 있던 부산의 앞바다가 마치 배가 지나간 경로를 따라 피어난 포말로 희게 물들고 있는 것만 같았다.
수십만의 피를 빨아먹으며 피의 길을 요구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짓밝을 이 붉은 바다가 과연 이정도의 흰색으로 색이 바뀔 수 있는 것인가.
과연 주명은 조선의 절망이란 역사의 물줄기와, 피의 산하라는 역사의 색을 바꿀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