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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해적왕-11화 (11/77)

〈 11화 〉 10화 - 인연(3)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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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희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가장 먼저 깨달은 것은 옥현이였다. 그리고 그녀가 보이지 않자 그 떠남의 의도를 짐작한 이는 정씨 어르신이었다.

"설마 했는데 허어..."

무거운 표정으로 눈을 질끈 감고 침음성을 내던 어르신은, 늦기 전에 빨리 그녀를 찾아야 한다며 급히 일행을 재촉했다.

"초희야!"

"초희누나!"

하지만 애타게 그녀를 찾아 보았지만 주명 일행은 도무지 초희를 찾을 수 없었다.

일본어를 할 수 있는 주명(?)과 옥현이 사람들에게 물어가며 탐문한 결과 그녀가 향했던 골목까지는 발견할 수 있었지만 거기까지였다.

밤이라 음침하고 어두운 뒷골목에서, 인적도 끊겼는지 물어볼 사람도 찾아볼 수 없어 도저히 더이상 찾는 일이 진전되지 못했다.

밤의 어둠이 짙어져 갈수록 주명의 속은 더욱 타들어갔다.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네. 차라리 미리 말해줄걸.'

'초희란 아이, 더이상 생에 미련이 없어 보였네. 그녀에게 남은 건 자네에게 보은한다는 부채의식 하나뿐이었는데, 지난번의 그 일로 스스로 짐이 되었다 자책하는 듯 보였지.'

'은혜를 갚을 수도 없고, 오히려 스스로 짐이 된다면, 거기에 참담한 일을 겪은지라 생에 미련이 없다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초희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냥 왜구들 본진에 불시착할 뻔 했을때 놈들을 섬멸하고 돌아오니 통곡을 했던 게 기억난다. 그때는 그게 주명을 걱정해서, 그녀가 처한 위험한 상황이 끝나 기뻐 울었던 것으로 짐작하고 있었는데,

'그날 이후로 초희의 눈은 더 죽어버린 것 같았지.'

그 울음이 스스로를 자책하는 울음이었다니.

메밀 소바를 소울푸드인양 맛있게 먹고있는 그녀를 보며, 잘 먹으니 그저 괜찮다고 간주했던 게 큰 착각이었다.

'그리고 자네가 왜구를 소탕한다는 뜻을 밝혔을 때, 초희는 왜인지 더이상 음식을 입에 대지 않았네. 마치 뭔가를 포기하고, 동시에 결심한 것처럼.'

씨발. 그냥 닥치고나 있을걸.

남편의 죽음, 두 번의 윤간.

머리를 조금만 굴려 보면 모두 자살의 가장 큰 원인이 될 수 있는 것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니 조금만 더 세심했더라면 그녀가 스스로의 목숨을 내던지듯 떠나가기 전에 알아챌 수 있었을 텐데.

대관절 그녀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리도 스스로를 내던져야 하나, 왜 이런 운명에 내몰려야 하나 이 빌어먹을 16세기가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자신의 일행을 그렇게 방치했다는 데에서 주명은 자책감에 입술을 깨물었다.

'콘솔키가 있으면 뭐해. 정작 필요할 때는 써먹을 줄도 모르는 걸.'

진작 그녀의 'object_ID'를 파악해 두었더라면 이런 수고도 하지 않고 명령어로 금방 찾을 수 있었다. 근데 콘솔이란 대단한 걸 들고도 이게 뭔가.

위험이 가득한 현실이라는 사실에 대해 너무도 무성의했고 부주의했다.

일행의 'object_ID'는 파악해 둘 걸 그랬다며 아쉬움과 자책감에 주명은 입맛이 썼다.

"혀, 형? 저기서 싸움이 났나 봐요!"

"저건, 여인?! 여인이 칼을 들고 홀로 수십의 적과 싸우는 것도 이상하네만 저건..."

"...싸움이 아니라 농락당하는 것 같군요."

칼을 든 여인을 놀리듯, 거리를 주지 않고 최대한 창이나 긴 검으로 리치를 활용해 조금씩 상처를 누적시키며 힘을 빼고 있는 사내들의 무리를 보며 주명의 눈빛은 차갑게 가라앉았다.

마치 수십마리의 비열한 쥐떼들에 물어 뜯기고 있는 피투성이의 사자를 보는 것 같아 기분이 더러웠다.

핏발선 눈으로 분투하고 있는 여인의 기백을 보며, 엄청나게 불리한 상황에서도 사력을 다해 싸우고 있는 그녀의 투지를 보며 정말 한 명의 사자같다고 생각했다.

머리카락이 조금 붉고, 여인이니 암사자인 건가.

그 긍지높고 고고한 사자가 한낱 쥐새끼들에 의해 무너지는 광경을 보는 게 유쾌하지는 않았지만, 제3자인 자신이 저 싸움에 개입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경솔하게 끼어들어 일행을 위험에 빠트리게 할 수는 없으니까.

"하하하, 저년 봐라 아주 마음에 들어! 가슴도 튼실하게 큰 게 주무를 만 하겠고 음 아랫도리는 어떨까? 크크크. 저렇게 앙칼지게 저항하는 년일수록 배 밑에 깔며 덮치는 맛이 더 짜릿하지!"

하지만 두목으로 보이는 쥐새끼와 싱크로율 100%인 놈의 음심 그득한 추잡한 말이 들리자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초희의 일로 고뇌하던 주명에게 놈의 그 한마디가 도화선이 되었다.

섬나라 해적새끼들은 단체로 발정제를 쳐먹은 건가? 그래서 미래에 성진국이 된 건가?

초희가 왜 이렇게 되었는가. 그녀뿐만 아니라 왜구로 고통받는 조선의 수많은 여인네들은 왜 그런 치욕을 당해야 했는가.

"듣자듣자 하니 개같네 진짜."

"응? 넌 또 뭐하는 놈이냐?!"

성큼성큼 쥐새끼들의 포위망쪽으로 주명이 다가가자 나미에를 둘러싸고 있는 무리들 중 일부가 우르르 몰려와 그를 에워싸기 시작했다. 그들을 지긋이 노려본 주명은 놈들을 향해 손을 까닥이며 조롱했다.

"니놈들같이 개좆같은 새끼들 때려잡으러 온 정의의 사도라고 말하면 그 쥐좆만한 귓구녕으로 알아 들어 처먹으려나?"

"나니(뭐)?!"

"키, 키사마(이새끼)!! 쿠소야로(똥같은 놈)!"

자존감이 그리 높지는 않았던듯, 시덥잖은 도발에서 눈을 부라리며 달려드는 왜놈들을 보며 주명은 비릿하게 조소했다.

가장 먼저 달려들던 세이죠 패거리의 불량배는 커다란 쇠몽둥이를 휘두르며 머리를 깨부수려 위에서 아래로 휘둘렀다.

그 불량배의 덩치가 개중 가장 거대했고, 그 덩치만으로 패거리의 행동대장을 맡을 정도로 힘이 엄청났기에 놈이 휘두르는 쇠몽둥이는 마치 거대한 산이 하늘에서 떨어져 주명을 내리찍는 것 같은 위압감마저 느껴질 정도.

하지만 주명이 누구던가. 호랑이 기운도 아니고 무려 코끼리 힘을 가진 괴력의 사내, 삼손과 자웅을 겨룰만한 미친 완력을 지닌 자가 아니던가.

별다른 기교 없이, 속도도 그다지 빠르지 않고 오로지 힘으로만 내려찍은 그런 몽둥이는 다른 냉병기보다 손쉬운 상대였다.

"마, 말도안돼. 어떻게 이걸 손으로 잡...커억"

어린아이의 손목을 비틀어 물건을 빼앗듯, 손쉽게 거구의 불량배에게서 쇠몽둥이를 빼앗은 주명은 차원이 다른 몽둥이질이 뭔지 제대로 시연해 주었다.

"...."

위에서 아래로, 그저 심플하게 몽둥이를 내리쳤을 뿐인데 사람이 장작처럼 두쪽으로 쪼개져 버렸다.

장작은 날붙이에 속하는 도끼로 쪼개는 거라 그래도 절단면이 깔끔하기라도 하지, 사람의 몸뚱아리는 붉은 피와 허연 뇌수가 사방으로 뿜어지는 시각효과가 더해지며 끔찍한 광경을 보여주었다.

있던 용기도 가출해 버릴 정도로 비현실적인 그 광경에 기세 좋게 달려들던 다른 불량배들의 발걸음이 딱 멈추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불행한 사실은 주명의 몽둥이질은 멈추지 않았다는 것.

"니놈같은 개새끼들은."

일격에 사람이 좌우로 분리된다.

"1/2로 몸을 쪼개는 게 답이야."

또다른 일격에 사람이 대각선으로 분리된다.

"쪼개고, 또 쪼개면 못 오를, 아니 못 기어로르겠지."

무거운 쇠몽둥이의 공격은 한사람당 절대로 한번을 넘기는 법이 없이, 공평하게 사람을 쪼개 놓기 시작했다. 차이점이 있다면 쪼개지는 각도에 따라 피분수에 허연 뇌수가 섞이느냐 안 섞이느냐 하는 소소한 차이였을뿐.

저 더럽고 추잡한 왜놈의 무리들 때문에 초희가, 아무 죄 없는 그녀가 죽음마저 각오하고 자신을 떠났다고 생각하니 더 열이 뻗쳐왔다.

분노 때문에라도 그의 손속에는 자비가 없었거니와, 왜인지 자신 안의 끓어오르는 무언가는 피를 보면 더욱더 흥분하고 날뛰고 싶었기에 잔인한 손속이 이어졌다. 특히 저런 왜놈이자 쓰레기인 놈들을 때려죽이는 건 너무도 즐거웠다.

"오, 오니(鬼 : おに)다!!"

"닝겐(인간)으론 틀렸어. 우린 안될꺼야 아마.."

그 압도적인 괴력 앞에서, 사자를 물어뜯던 세이죠 패거리란 쥐새끼들은 그 본성이 어디 안가는 듯 진짜 쥐들처럼 온갖 기괴한 괴성을 지르며 우르르 도망가고 흩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나름 칼밥을 먹어본지라 싸움에 대해 잘 아는 세이죠는 주명의 괴력에는 놀랐을지언정 그의 기술 자체는 평범하다는 것을 간파해냈다.

재빨리 머리를 굴린 세이죠의 눈은 나미에에게로 향했다.

저놈이 난입한 이유는 분명 나미에란 계집과 관계된 게 분명하니 이 상황을 타개할 방책은 저 무사 흉내를 내는 계집을 어떻게든 자신이 확보하는 데 있었다.

계집의 검술이 나름 대단하긴 했지만 그저 그뿐이었다. 그가 끌고온 무리의 숫자가 무려 100명! 그것도 싸움을 할 줄 아는 놈들을 추려온 것이었다. 비록 주명이란 규격 외의 존재의 개입으로 쥐처럼 도망치는 추태를 보이긴 했지만.

어쨌든 전리품으로 품을 생각에 최대한 손상이 가지 않게 포획하려는 당초 계획만 아니었다면 저 계집쯤은 진작에 치워버릴 수 있을만한 전력이었다.

'힘에 비해 기술은 조잡하고, 속도도 그다지 빠르지 않다. 하지만 저 망할 괴력이 있으니 그대로 둔다면 필해다. 이렇게 된 이상 저년을 인질로 잡아 협상하는 수밖에.'

판단이 서자 행동은 더할나위 없이 신속했다.

주명의 활약에 전위가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예기를 유지하고 있는 그의 직속 정예들을 향해 눈짓으로 신호를 준 세이죠는, 그들과 동시에 나미에를 향해 쇄도했다.

나미에 역시 주명의 비현실적인 모습에 눈이 팔려있는 상황에서 벌어진 그 협공은 세이죠 패거리에게 기습의 이점까지 더해주었다.

"...큭"

세이죠의 검에 의해 검상을 입은 팔을 움켜쥐고 나미에는 신음을 토해냈다. 그녀의 뛰어난 반사신경이 아니었다면 팔이 잘렸을 정도로 매섭고 강렬한 검격이었다.

그녀는 세이죠가 절대 검술로는 그녀의 아래가 아니라는 걸 진작 파악하고 있었다. 사람됨이 비열하고 말뽄새와 행동거지는 저질에 경박하지만, 보폭이 일정하고 눈빛이 흔들리지 않는 것이 분명 고수의 기세였다.

그런 세이죠가 정예 부하들과 함께 협공을 가하자 나미에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그녀에게 부상을 안겨준 일격 다음에 이어진 세이죠 놈의 이격은 부러진 검을 이용해 겨우 쳐냈다.

하지만 부러진 검이 가진 짧은 리치 때문에 최대한 놈과 가까이 접근한 상황이었고, 다시 거리를 벌리기도 전에 세이죠의 변칙적인 연속공격이 이어져 세번째 검격까지는 그녀의 민첩한 운동신경 덕분에 막아낼 수 있었으나,

"악!"

그 사이에 등과 옆구리에서 들어온 검격을 막을 수 없었다.

세이죠의 검격을 막느라 사력을 다하고 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도저히 피할 방도가 없었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최대한 몸을 틀어 치명상은 피했다는 사실에서 그녀가 얼마나 우수한 무인임을 알 수 있었다.

"호오. 대단하군."

그걸 알기에 세이죠는 순수하게 감탄했지만 그뿐이었다.

이미 나미에는 등과 옆구리를 길게 베여 피가 흐르는 상황. 바로 목숨을 앗아가는 치명상이 아니다 뿐이지 치명적인 상처는 분명했다. 그녀는 누가봐도 고통에 몸이 굳어있었다.

이정도로 상처입은 여검객은 세이죠와 같은 고수에게 너무나도 손쉬운 상대였다.

"끄아아악!"

확실한 제압을 위해 큰 피해를 주어야 했고, 반면 주명과의 협상을 위해 목숨은 붙여놔야 했기에 세이죠는 절충을 하기로 했다. 그의 일본도가 나미에의 배를 관통했고, 끔찍한 고통에 나미에는 울부짖었다.

바로 죽지는 않을 것이다. 내장이 있을 만한 데는 최대한 피했으니.

나미에가 무력화된 것을 확인한 세이죠는 비릿하게 웃으며 최대한 큰 목소리로 주명에게 소리를 질렀다.

"어이! 동작그만!!"

"...!!"

주명은 꼬챙이에 꿰인 사자를 쳐다보았다.

무릎꿇은 여검객의 앞으로 삐쭉 튀어나온 쥐새끼의 검날, 그리고 그 검날은 나미에의 배에서 끊어졌다 쥐새끼가 손에 쥔 손잡이로 이어져 있었다.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눈을 부릅뜬 주명이었지만 쉴세없이 이어지던 몽둥이질은 멈추었다.

"그래, 이제 좀 협상할 자세가 되어 보이는군. 크크크"

"아아악!"

협상이란 말을 강조하며 쥐새끼는 쥐고있는 일본도를 살짝 비틀었고, 여검객은 그 결과로 찾아온 고통에 비명을 내질렀다. 분명 그녀의 목숨을 대가로 협상이란 걸 걸고 있다는 것을 잔인하게 알려주려는 심보였다.

그 광경에 주명의 눈동자가 크게 떨리는 것을 확인하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은 세이죠는, 손가락을 까딱이며 특유의 비열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야레야레(이런이런), 네놈이 날뛴 덕분에 우리 조직의 손해가 매우 크지 뭐야."

어금니를 꽉 깨물었지만 주명은 분이 가시지 않았다. 스스로에 대한 분노가 너무도 컸으니까.

처음부터 저 여검객을 구하려고 했으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텐데. 피를 보는 게 좋다고 쓸데없이 날뛰지 않고 정작 중요한 행동을 했어야 했는데.

왜 이리도 자신은 한심한 건가. 콘솔이란 엄청난 걸 지니고 있으면서도 왜 이리도 무능한 것인가.

저 여검객을 방치할 수 없어 뛰어든 것이라면, 이 상황은 이미 외통수. 저 '협상'이란 것에 응해야 했다.

"...원하는 게 뭐냐?"

"이년이란 네놈이 죽는 꼴을 보는 게 최고로 통쾌하겠다만 이래뵈도 거느린 식구들이 많아서 말야. 이년은 내 손짓 한번에 금방 죽여버릴 수 있지만 그러면..."

"으드득. 한 놈도 남김없이 쳐죽여 버릴 거다."

손을 저으며 밉살맞게 웃는 세이죠의 모습에 주명은 정말 피가 끓었지만 참아야 했다. 말 그대로 칼자루를 쥔 것은 지금 저 쥐새끼니까.

"워, 워, 흥분하지 말라고. 그걸 바라는 건 아니니까. 나도 체면이 있으니 그걸 손상시킨 것에 대한 보상이 필요하지. 족히 열 너댓은 죽어나갔으니 부하들의 장례도 치러야 하고, 뭐 그 뒷처리로 여러가지 씀씀이가 크단 말야."

"그러니 딱 금화로 30냥 정도만 주면 나도 그냥 물러나지. 뭐 나도 양심이란 게 있으니 큰거 말고 작은 금화로 말이야 크크크."

놈의 요구는 금전적인 보상이었다.

돈에 형제도 내다파는 불량배들의 세계에서 복수고 체면이고 모두 다 돈 앞에서는 뒷전으로 밀리니 현실적인 요구이기도 했다. 죽은 자들의 가족들도 돈만 제대로 쥐어준다면 별말이 없을 터였다.

손상된 위신? 그까짓 것은 돈으로 칼든 놈들을 더 사면 충분히 복구하고도 남았다.

소금화 30냥이면 대략 3,000만원 정도의 가치를 지녀는데, 사람의 목숨값이 저기에 포함된다고 본다면 현대의 기준으로 말도 안되는 푼돈이라 생각되겠지만 여기는 사람 목숨값이 정말 푼돈에 불과한 야만적인 중세 사회였다.

사람이야 언제든 손쉽게 충원할 수 있었다. 빈민가를 돌다 보면 널리고 널린 게 사람이었으니까.

주명은 재빨리 남아있는 CP를 확인했다.

전투를 앞두고 방어력과 피해저항 버프를 사용하느라 소모한 2포인트에, 시간이 흘러 저절로 회복된 게 또 2포인트였기에 객잔에 있었을 때 가지고 있던 5포인트 그대로였다.

일단은 지불이 가능한 정도였기에 주명은 망설이지 않고 명령어를 사용했다.

인벤토리 개념도 존재하기 때문에 콘솔로 생성된 30냥은 일단 인벤토리에 보관되었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보이기 위해 주명이 의도한 대로 그의 품속에서 소환되었다.

짤랑

자신앞에 던져진 금화들을 바라보는 세이죠의 눈빛이 금세 탐욕으로 번들거렸다.

"오오, 이것이야말로 황금! 빠르군. 너 이제보니 상당한 재력가인데?"

"받고 빨러 꺼져."

"야레야레, 생각해 보니 내가 계산하지 못한 게 있는데 말야. 이 계집년의 목숨값은 뺐지 뭐야. 아이쿠 내 정신좀 봐 크하하!"

주명을 약올리려는 의도인지, 아니면 협상에서 우세를 점하기 위한 수작인지 세이죠는 나미에의 몸을 관통하고 있는 검에 살짝 힘을주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검이 진동하며 상처를 헤짚었고, 나미에는 이어지는 고통에 신음을 내질렀다.

"크, 크으윽.."

주명이 크게 성을 내며 뛰쳐나가려 했지만 재차 검에 손을 가져가는 모습을 과장되게 연출하는 세이죠의 모습에 그저 욕설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개같은 새끼!"

"뭐 이바닥에서는 그런 말이 최고의 칭찬이지. 어쨌든 10냥만 더 내. 그럼 깔끔하게 이년을 놔 주지. 뭐 난 착한 놈이니까 이년을 꿰고 있는 내 검값은 받지 않지. 아 참 아쉽네. 나름 명검이었는데 말이야. 쩝."

눈빛만으로 사람을 찢어죽일 수 있다면 지금 주명의 눈빛이 그러할 터.

하지만 애초에 이 싸움에 난입한 목적을 떠올리며 주명은 분노를 최대한 삭히며 다시 1포인트를 소모해 얻은 10냥어치의 금화를 세이죠의 발치에 던져 버렸다.

세상 다 가진 행복한 만족감을 그의 역겨운 얼굴로 표현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자니 고역이었다.

금화를 챙긴 세이죠는 부하들을 뒤로 물린뒤 천천히 이 자리를 벗어나려 뒷걸음을 쳤다.

큰 부상을 입은 나미에에게 뛰어가 그녀의 상태를 살피던 주명은, 자신을 향해 비열하게 웃고 있는 세이죠를 향해 이글거리는 눈으로 말을 건넸다.

"너. 이름이 뭐지?"

"나? 나말인감? 크크크 내 이름도 모른다니 참으로 섭섭하네. 뭐 난 친절한 놈이니까 가르쳐 주지. 내 이름은 세이죠다!"

스캔 류의 콘솔의 문제점은, 인벤토리에 있는 대상이 아닌이상 스캔하려는 대상이 근처에 있어야 하고, 이름도 알아야 한다는 데 있었다.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

'scan_object_ID_"세이죠"'(대상 "세이죠"의 ID 찾기)

["세이죠"의 ID : 181818]

'근본이 아주 씨발스런 새끼였네.'

주명에게서 거리가 벌어진 것을 확인한 세이죠는 놀리듯이 주명을 향해 손을 까딱이며 도망쳤다.

"하하하, 신출귀몰한 바람같은 이몸을 찾아 복수따위 하겠다고 바보같이 설치지는 말라고. 그냥 지금처럼 호구처럼 살아 좆병신 새끼야!"

그런 놈을 향해 주명은 그저 피식 하고 비웃어 줄 뿐이었다.

'mark_on_target_181818'

["세이죠(ID: 181818)"의 머리 위에 화살표 모양의 마커가 표시됩니다.]

이 섬 안에 있다면 절대로 그의 시야 사라지지 않는 마커를 달고서도 저렇게 자신을 못 찾을거라 믿으며 개지랄 떠는 세이죠가 참 우스웠다.

게다가 마커는 공짜였으니, 아직 남아있는 1포인트의 CP로 주명은 한가지를 더 추가할 수 있었다.

쥐새끼같이 생긴 놈이 목소리는 어찌나 큰지 기분도 꿀꿀한데 몇일 동안은 여자나 따먹으며 지내야겠다고 외쳐대는 놈을 위한 선물을.

'add_debuff(impotence*)_to_target_181818'

* impotence : 발기부전

'좆병신은 너야 이새끼야. 니 좆이 이제 병신이거든.'

굳이 가운데 손가락을 날리지 않아도, 남자로서 최대한의 엿을 먹이고 나니 조금은 놈에게 당한 분이 가시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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